자유게시판


인생은 운

2018.01.08 00:23

SYLPHY 조회:694

어릴때 부터 인생은 운이라는 말을 종종 듣고 지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그런 말씀을 안 하셨지만, 친척분들이나 선생님, 아니면 학교에서 만난 선배들은 그런 말을 참 많이 했어요.
대학교에 와서 교수님들께서도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저는 인생이 운으로 결정된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참 나빴습니다.
인생은 노력으로 이루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운이 작용할 수 있지만, 운의 작용은 요행의 한 형태라 생각했습니다.

고등학교때의 일입니다.
공부를 거의 안 하던 친구가 3학년 1학기 수시로 지금은 제 모교인 모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밤새도록 디아블로2를 하고, 오전에는 잠만 자다가, 점심때 일어나서 밥먹고 축구한 뒤, 오후 수업시간 내내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던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의 내신 성적은 바닥이었는데, 입학 전형이 당일 지필고사 100%였습니다.
합격은 실력보다는 운이였겠지요.

당시 1차 수시 (3학년 1학기 수시)는 아마도 수능 최저등급이 없었던 기억입니다.
합격 후 2주 정도 학교에 나오다가, 담임 선생님이 '반 분위기를 망가뜨린다'며 등교를 안 하게 했습니다.

다들 '그 실력으로 학교 적응 못 할거다'고 저주를 퍼부었는데, 들리는 말로는 잘 먹고 잘 삽니다. ^^


다른 친구는 자우림 매니아였습니다.
공부는 저와 비슷하게 하던 친구였는데, 자습시간에 종종 제 귀에 자우림 노래를 들으라고 이어폰 한쪽을 꽂아주곤 했습니다.

그 친구가 어느날 학교에 안 나오더군요.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지역균형전형으로 서울대 수시 2차에 합격했다고 합니다.

학교가 서울이었는데... 그 친구는 대체 어떻게 지역균형으로 서울대에 갈 수 있었던걸까요?
지금도 의문입니다.

아무튼, 그 친구의 여러 성적이 저와 비슷했습니다.
서울대 갈 실력은 아닌 것 같은데.. 서울대 간 것은 운이겠지요. 제 실력에 서울대는 무슨.. ^^

그 친구도 잘 먹고 잘 삽니다.



이런 일이 생기다 보면, 주변에서 다들 '인생은 한방'이라는 말을 합니다.
운이 정말 중요하다는거죠.

저는 최근까지도 그 말이 참 듣기 싫었습니다.
인생은 노력으로 일궈 나가는거라 생각했거든요.



제 10대와 20대를 뒤돌아 보면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하루에 공부에 집중하는 시간만 최소 14시간, 많으면 17시간 찍어 보신 분 계신가요?
스탑워치로 공부에 집중하는 Net Time만 잰겁니다.
저는 그런 공부를 2년간 했습니다. ^^
그래도 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고선 이런저런 시험을 봤는데, 붙은건 그냥 운이었습니다.
공부한게 그대로 나왔거든요. 자랑을 좀 하자면 수석이었는데, 뭐 운이죠.
기본적인 실력은 있어야 겠지만 그만큼은 누구나 하는거고, 합격 여부는 운이 결정하는 것 같습니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책 (블랙스완, 행운에 속지 마라)을 읽어보니 인생에서 운이 얼마나 많이 작용하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성공한 사람의 전기를 읽고 그와 같이 행동하면, 자신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시험의 합격수기를 읽어보는 이유기도 하고요. 합격한 사람과 같이 행동하면, 나도 합격할 수 있다고.

성공한 사람의 전기를 읽어보면 강조하는게 '노력', '근면', '불굴의 의지'이지 않나요?
'운'이 좋아서 성공했다고 말 하는 사람이.. 있나요? 워런 버핏이 비슷한 어조로 말 하긴 했는데, 대부분은 그렇지 않죠.

이건희가 본인이 운이 좋아 성공했다 하던가요? 아닐거구요.
정주영도 본인이 운이 좋아 성공했다고는 말을 안 하지요..



생각해 보면요.
'노력'하고 '근면'하면서 '불굴의 의지'를 뿜어낸 사람은 정말 많습니다.
그런데 그 중 아주 일부가 성공했을 뿐이예요.
그리고 성공한 사람 중 '노력'하지 않고 '근면'하지도 않으며 '불굴의 의지'가 없는데도 성공한 사람도 많습니다.
물론 기본적인 신뢰와 실력은 갖추어 졌다는 전제 하에요.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 모두 노력과 근면과 의지는 가득 가지고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실패한 사람은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는거예요.

그 사람이 아무리 근면해도, 의지가 불타올라도, 실패한 사람은 아무도 조명해 주지 않아요.

즉 '근면', '노력', '불굴의 의지'가 성공의 '원인'은 아니라는겁니다.
요소의 일부겠지요. 적은 비중으로.


그러면 왜 사람들은 그토록 근면, 노력, 의지를 강조하며, 이 것을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할까요?
제 생각이지만 그건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그 어떠한 공통점도 없었기에,
그나마 공통점이라 할 수 있는게 근면, 노력, 의지였다' 라 생각합니다.

성공한 사람은 저마나 너무 다양해서 공통점이라곤 하나도 없었을테니까요.
그들을 성공으로 이끈 가장 큰 몫은 '운'이었으니까.




그러면 아얘 노력하지 마라? 그런 뜻으로 글을 쓴건 아니구요.
제가 매일 책 보고 공부하는데 익숙하다 보니, 사고방식이 참 교과서적입니다.
그런데 교과서적인 생활은 사회적 지능을 떨어뜨려서 점점 더 살기 힘들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다음의 문제를 풀어볼까요?

문제:
앞/뒤가 나올 확률이 동일한 동전이 있다.
이 동전을 99번 던졌더니 모두 앞면이 나왔다.
100번째 던질 때 동전 뒷면이 나올 확률은?


보기1. 50%
보기2. 1%

여러분은 무엇이라 답변하시겠습니까?



저는 보기1. 50%라 답변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참 교과서적인 답변이라고 해요. 
앞/뒤 확률이 각각 50%인 동전던지기를 99번 시행했을 때 어찌되었건 모두 앞이 나왔지만,
동전던지기는 독립시행이므로 50%다. 뭐 이런 사고방식이죠.

2번 고른 분 계신가요?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보기2. 1% (또는 다른 답변)라 생각하는게 세상 살아가는데 좋다고 합니다.
보기2는... "50%는 거짓말이다. 저놈이 날 속이고 있어. 99번 앞이 나왔으니, 다음에 뒤가 나올 확률은 고작 해 봐야 1%겠지."
이런 사고를 따라가고요.
완전히 세상을 살아가는 마인드지요. 교과서 따윈 집어치워.. ^^
(물론 기본적인건 알아야 한다고,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도 강조합니다. 교과서에 매몰되지 마라는거고요.)




저와 같이 '인생은 노력으로 일궈나가는 것이다'는 생각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보기1을 고르시지 않을까 싶은데요.
주어진 틀 안에서 순진하게,
주어진 가정을 믿으며 문제를 풀죠.
주어진 상황 안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해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하니까요.
Given, Given, Given... 논문 쓸때 참 많이 쓰는..... ㅎㅎ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건... 참 무작위적입니다. ^^ 비선형적이라고도 하지요.
박근혜가 탄핵될줄 누가 알았나요? 아니겠지요.. 
제가 지금 직장에 취직한 것도 순전히 운입니다. 저조차도 힘들거라 생각했었어요.


노력하다보면, 세상을 교과서에 맞추어서 보는 경향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교과서적으로 바라보면, 세상 또한 교과서처럼 선형적일거라 생각하는 것 같구요.
리스크는 생각치도 못한 곳에서 온다고 하지요? 저도 최근에 그런 일을 몇 겪었습니다.


이젠 세상좀 바라보고 살렵니다. ^^
인생이 운이라면, 운이 작용할 기회를 최대한 늘려야겠지요...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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