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옆 동네에 현재 우리나라 반도체의 위상과 삼성반도체 관련한 의견들이 올라왔더군요.
그래서 저도 몇 몇 댓글을 달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1990년대 제가 알고 있던 경험했던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관련 경험과 지식을 정리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당시 제가 보고 들었던 내용과 알고 있던 지식과 정보를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모두 맞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혹, 제가 알고 있던 내용 중에 맞는 부분이 있다면, 이쪽에 관심있는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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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에 대한 소개를 드리면, 1992년 6월부터 1998년 8월까지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IS실에서 근무했었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주로 맡은 일은 반도체 생산공정라인을 운영하는 소프트웨어를 운영 관리하고, 관련 소프트웨어(리포트 프로그램 등)을 개발하는 일을 했습니다.

시작합니다.

제 경험을 말씀을 드리기 전에, 삼성전자 반도체의 시작 배경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드리고자 합니다.
위키백과 등을 살펴보면 개략적인 내용이 나오기 때문에 그쪽을 읽으셔도 됩니다.

삼성의 반도체사업은 1980년대 초중반 고 이병철회장의 차세대 사업구상에서 시작합니다.
당시 이병철회장은 물론 현재 이건희 회장도 2000년대 초까지 해마다 연말 연초에는 일본을 일정기간 방문하고 왔습니다.
명목은 당시 선진국인 일본의 산업경제현황을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사업구상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삼성그룹의 모든 자본과 사업의 기반이 일본자본이었고, 특히 고 이병철회장이 존경하던 인물이 바로 마쓰시다 창업자였던 마쓰시타 고노스케였는데, 이병철회장 젊었을 때부터 해마다 마쓰시타 회장을 찾아가서 각종 사업에 대한 조언과 자금관련 지원 및 협력을 상담해왔던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어쨌든 70년대 삼성이 가전을 토대로 전자사업을 진행하였는데, 80년대에 이르러 다음 먹거리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70년대와 80년대는 전세계 가전을 소니, 마쓰시다, NEC, 산요 등 굴지의 일본 전자산업이 세계를 호령하고 있었습니다.
삼성전자나 금성사(현 LG전자)는 국내에서 근근히 버티고 있었으며, 해외 수출이라고 해봐야 일본 업체 또는 간신히 버티고 있던 미국전자회사(제니스 등)에 대한 OEM 수출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에 사업 다각화와 핵심 부품이었던 반도체에 대한 욕망이 있었던 삼성은 마침 마쓰시타 회장의 조언을 토대로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70년대 중후반부터 전세계 메모리 반도체를 석권하고 있던 일본과 ASIC(주문형) 반도체 및 마이크로 프로세서 쪽의 넘사벽이었던 미국 등에 비해 우리나라는 거의 불모지나 다름 없었습니다.
이러한 당시 상황은 삼성이 반도체를 한다는 것에 대해 모두 회의적이었고, 이병철 회장을 제외한 당시 삼성의 임원들은 물론, 차기 후계자로 지목되었던 지금의 이건희 회장조차 앞장서서 반대했을 정도였습니다.
반도체하면 삼성은 망할 거라고 말이죠. 사실, 당시 모든 상황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살펴봐도 삼성이 성공할 확률은 거의 0에 수렴했습니다.

어쨌던, 이병철 회장은 모든 난관을 무릎쓰고 당시 ASIC 반도체를 소규모로 생산하고 있던, 한국반도체(부천)를 인수하게 됩니다.
그리고, 메모리 반도체를 위해 지금의 용인시 기흥읍에 새로 공장을 짓고 4MB 이하의 DRAM을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미 당시 전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90%를 일본 전자업계가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술적 낙후성은 차지하고서 생산수율과 단가에서 도저히 싸움이 되지 않았기에 DRAM보다는 주문형 반도체를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하면서 근근히 버티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나마, 당시 주력 상품인 1MB, 4MB 메모리조차 자체 개발이 아닌, 일본 메모리 칩을 분해해서 X-RAY로 회로를 분석해서 베끼다시피 한 것이었기에, 어디다 자신있게 내놓고 팔기도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92년도에 삼성전자 기능 반도체에 배속되었을 때만 해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는 해마다 엄청난 적자를 내는 일개 사업부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생산라인은 1, 2 라인이 주력으로 4인치 웨이퍼를 기반으로 메모리를 생산하고 있었고, 새로 3, 4 라인을 구축하여 1MB와 4MB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제가 맡은 업무는 바로 신규라인인 4, 5라인의 공정을 관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생산공정 소프트웨어는 PROMIS라는 소프트웨어로 캐나다 업체가 개발한 것으로 반도체 및 화학 분야에서 대표적으로 쓰이던 소프트웨어 중의 하나였습니다.
참고로 생산공정 시스템을 SHOP FLOW SYSTEM 또는 MES(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이라고 부르는데, 당시 기흥에서 운영하던 MES는 크게 2 가지였고, 1,2 라인은 HP 3000을 중심으로 MPE 운영체제에서 코볼 언어로 개발된 SFMS라는 소프트웨어였고(일본 야수IBM에서 개발된 프로그램입니다), 4,5 라인을 운영하는 소프트웨어는 PROMIS는 포트란으로 개발된 소프트웨어였습니다.
이밖에도 일부 견본라인과 1라인 일부에서 IBM 기반의 생산관리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여간, 제가 근무하던 초기인 92년도만 해도 기흥사업장의 실적은 좋지 않았습니다만, 고 이병철 회장이 큰 애정을 가지고 사업장을 살폈었기 때문에 건물이나 시설 등이 괜찮았습니다.
다만,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는 처음부터 제가 배속되을 때까지도 매년 수십억에서 수백억씩 적자였기 때문에 그때까지도 적자를 삼성전자 가전쪽에서 지원받아 메꾸고 있었고, 그마저도 모자란 것은 삼성생명이나 삼성화재 등 돈이 여유있던 타 계열사에 반도체 관련 제품을 납품계약을 하고 이를 처리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납품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이런 사실은 근무할 당시 선배들에 들은 것도 있고,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내 소문이었죠.

그러던 것이, 94년도부터 극적인 상황반전이 일어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미 당시는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의 90% 이상을 일본에서 먹고 있었고, 일본 버블 경제의 최고점을 지향하고 있었습니다.

이걸 왜 말씀드리냐면, 80년대 당시 일본은 상장사들의 주식을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고 할 정도였으며, 세계 50대 기업의 절반 이상이 일본 기업이었는데, 최첨단 산업이던 반도체에서 마이크로 프로세서 시장만 석권하면 일본이 전세계 반도체 시장을 모두 지배할 수 있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80년대 초 시스템 및 프로세서 반도체 개발 7개년 계획을 구상하고, 당시 일본 최고의 반도체 기업이었던 마쓰시타, 소니, NEC, 미쓰비시 등 모두를 불러모 차세대 반도체 개발에 역량을 투입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AI(인공지능)칩 입니다.

무슨 소리인지 의아해하실 겁니다. 당시 80년대는 이미 인공지능에 대한 붐이 대단했습니다.
언어로는 IF, PROLOG, EIFEL, SMALTALK, ADA 등 인공지능 언어와 4GL이라는 4세대 언어가 소개되었고(당시 마이크로소프트웨어 잡지 등에도 연재되었습니다), 산업분야에서는 '카오스'니 '퍼지'니 하는 이론을 적용한 제품과 뉴럴넷 등에 대한 이론과 연구가 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아직 C 언어조차 마이크로소프트사의 MSC는 인기가 없었고(텍스트 그래픽만 가능 수준이었거든요), 제 주변에서 스칼라 C 컴파일러를 쓰네마네 하던 시절로, 지금은 없어진 볼랜드사에서 Turbo-C 1.0이 막 따끈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아직 제 3세대 언어인 PASCAL과 FORTRAN, COBOL, ALGOL이 주류였던 시절이죠.

하여간, 일본의 생각은 이미 메모리는 세계를 호령하고 있으니까, 마이크로 프로세서 쪽만 미국을 넘으면 된다는 거였습니다.
당시 마이크로 프로세서 시장은 인텔은 8086/88등 80계열, 모토롤라는 6800, 68000 시리즈, 선의 스파크, 자일링크의 Z 시리즈, IBM의 POWER 시리즈 등 수 많은 프로세서 업체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었는데, 대부분 CISC 기반이었고 IBM의 POWER PC 칩이 RISC 칩이었습니다.
그때 성능을 위해 병렬회로에 대한 연구도 붐이었는데, 일본은 이들을 모두 뛰어 넘는 인공지능 칩을 개발하면, 단숨에 전세계 반도체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을 석권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7개년 계획으로 일본 반도체 산업계의 모든 역량을 투입하게 됩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7개년 계획은 절반의 성공만 성취하게 되고, 이 7년을 통해 삼성 반도체가 일어서는 계기가 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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