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노하우


대학원 박사 학위를 한국에서 받고 외국에 나돌아 살기를 어언 7년 정도 되어갑니다. 그간 정부 지원 연구비를 탄 게 4번이고 그것도 같은 나라가 아니라 골고루 돌아서 받아왔습니다. 그러다 이번에 사립 대학이란 곳에서 월급을 받으면서 일 해봤는데요. 이번 달말로 또 전직해야 합니다. 그동안 실수투성이였던 것 같고, 느끼는 것이 많아서 적어보겠습니다.


우선, 외국에 나가서 일하길 희망하시는 분은 작은 시작을 하시길 추천합니다. 한 방법으로는 가능한 한 가장 적은 금액의 정부 지원 장학금을 찾아보세요. 조금 생소한 나라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저는 일본-핀란드-에스토니아-터키를 돌아다녔는데요. 매번 전직할 때마다, "그곳은 네 전공의 불모지다.", "지난 주 그 나라 대학에 총기사건 나서 10명 넘게 사망한 것 못 들었느냐?", "그게 어느 대륙에 있는 나라냐?" 이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한국사람들만 외국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것 같고요. 제가 아는 영국인, 미국인 교사나 교수들은 남아프리카, 오만, 조지아, 홍콩, 싱가포르, (심지어) 한국 등등 가리지 않고 직장만 있고 월급만 적당하면 다 갑니다. 거기서 평생을 살라는 것은 아니고요. 경력을 쌓아야 합니다. 저도 나라를 돌아다닐 때마다 배운 게 있었는데요. 한국에서는 제 전공을 갈고 닦았고 아직도 이게 제 지식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장기적 안목으로 전략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핀란드에서는 혹독한 겨울 날씨에서 끈질기게 살아남는 법과 그걸 뚫고 나가 현장에서 자료 수집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에스토니아에서는 역시 더 추운 러시아 바람이 부는 날씨 속에서 살아남는 법과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영어로 풀어내는 법을 배웠습니다. 영국출신 학술지 편집장 할아버지가 한 분 같이 있었거든요. 터키에 와서는 다양한 수업 방법과 제가 가르칠 수 있는 대학원 과목을 8과목이나 늘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상사 눈치 보는 법이랑 정치하는 법이요. 지금까지 일해오면서 어느 한 나라라도 안 갔다면 지금보다 제가 한참 더 부족했을 것 같습니다.


둘째로는 영어도 꾸준히 배워야 하지만, 내가 뭘 잘 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원어민 앞에서 한국사람의 영어가 매끄럽지 못한 것은 당연하고요. 대신에 컴퓨터를 잘 한다든가 (대학원의 경우) 통계를 잘 한다든가 다른 무언가로 사람들이 항상 나를 부를 만한 무언가를 준비해 둬야 하더라고요. 그래야 서로 도와가면서 동료랑 교류가 많아지더라고요.


셋째로는 초기에 직장 잡으러 돌아다닐 때는 잦은 전직을 너무 부끄럽게 생각 안 하셔도 됩니다. 왜냐면 유럽은 워낙에 직장 잡기가 어렵기 때문에 옮겨 다니면서 인턴이 긴 경우가 많습니다. 간접 경험이지만, 지인들을 통해서 미국의 예를 들어보아도 간혹 지워나 월급이 낮아지는 경우가 있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일자리를 찾아 백수의 기간이 없는 게 좋다고 하네요.


넷째로는 전직 준비할 때 절대 비밀에 부쳐야 합니다. 이건 내 월급이 누구한테 오느냐에 따라 조금 다릅니다. 정부 지원 연구비를 받을 때는 내 상사나 동료는 친구가 되고 전직 시 조언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립대에서 월급을 받을 때는 007 첩보 영화 처럼 움직여야 합니다. 윗선에서 교직원의 전직 낌새를 알아차린다면 바로 나가라고 합니다. 왜냐면 학기가 진행되고 있을 때 도중에 교직원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면 그걸 다른 강사가 받아서 가르치는 게 매우 힘들기 때문입니다.


다섯째로는 전직 준비 시 매우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터키 사립대의 경우 딱 2주 만에 붙었는데요. 빠른 게 좋은 게 아니더라고요. 계약기간을 8개월, 12개월 이렇게 짧게 재계약을 시키더니만, 나갈 때도 재계약이 없으니 바로 나가라고 하네요. 다른 유럽 국가들은 자리가 난다고 소문이 난 후, 실제로 공고가 나는 것은 반년도 걸릴 수 있으며, 지원하더라도 심사가 3달도 넘게 걸립니다. 즉, 처음 이야기가 나와서 실제로 그 대학에서 일하는 게 비자 신청까지 포함해서 최장 1년도 걸릴 수 있습니다. 그 사이에 전직 준비한다고 소문이 나서 당장 현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면, 본인만 손해를 보게 됩니다. 제 경우는 우습게도 유럽의 제 동료 교수가 자기 대학으로 오라고 하는 말을 제 상사가 뒤에서 엿듣고서 터키로 돌아와서 바로 다음날 저보고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여섯째로는 변화하는 본인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는 이게 좀 힘든데요. 한국에서 공부 잘한다는 소리 들으면서 고등학교, 대학, 대학원까지 마쳤고 제가 믿는 것에는 항상 남들과 끝까지 논쟁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었는데요. 사립대에서 일하다 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직장 상사인 학과장이 지도하는 석사 논문은 연구 질과 관계없이 꼭 무사통과 하고요. 거기에 토를 단다면, 통과 결정이 난 뒤에 그걸 고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래서 제 일도 아님에도 시간만 뺏기며 고생했습니다. 사립대학에서는 옳은 게 옳은 게 아닐 수도, 틀린 게 틀린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 토를 달기 시작하면 해고를 당할 확률이 커집니다. 지금은 절이 싫다면 중이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이걸 받아들이면서 속에서 욱하는 감정을 참아야 합니다.


일곱 번째로는 그나마 대학에서는 "논문 투고"라는 객관적인 외부 평가 방법이 있습니다. 높은 수준의 논문을 많이 써 놓으면 어떠한 곳에 가서도 그걸로 평가받고 전직 시 매우 유리한 조건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제가 본 경험에 의하면 미국에서 박사학위 받으면 터키나 타국에서 쉽게 전임 강사가 되고요. (인문, 교육계의 경우) SSCI급 논문이 1편 있으면 조교수, 2편이 있으면 부교수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미래의 지식 세계를 이끄는 대학에서 아무리 정치가 판을 치고 옳고 그른 판단이 흐리다 하더라도, 내 논문이 많이 있으면 언제든 정확하게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여덟 번째로는 동료, 친구를 만들 때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제 주변에서 항상 YES, no problem만 말하던 동료랑 같이 일한 적이 있었는데요. 둘이 하던 일이 한번 틀어지자 모든 잘못이 저에게 돌아오더라고요. 그 친구는 왜 아직도 제가 연락을 끊었는지 이해를 못 하는 것 같고 가끔 저에게 전화해서 밥 먹자고 합니다만, 저는 그 사람 앞에 서면 욕이 나올 까봐 안 보려 합니다. 그리고 미국인 여자 동료가 한명이 있는데요. 제가 연구실에 늦게 오는 것, 현 직장을 떠나고 싶은 것, 새로 직장을 잡은 것, 사사건건 모든 것을 상사한테 다 이야기합니다. 제가 왜 이 사람과 말을 트기 시작했는지 지금 생각 같아서는 화가 날 정도로 미운 동료입니다. 아직 싫다는 내색을 하진 않았고요. 그냥 빨리 떠나고 싶습니다. 페이스북 친구 하자고 안 하는 게 참 고마울 따름입니다. 얼마 전에는 자기 부모들이 와서 터키 여행가는 데 저보고 같이 가자고 하네요. 40대 싱글 여자분인데요. 자기랑 같은 호텔방을 쓰면 돈도 절약되고 좋을 테니 같이 여행가자고 하는데 당연히 거절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세상에 믿을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만, 아직도 몇 동료는 꾸준히 저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2003년도에 처음 만났던 일본인 교수는 지금도 계속 메일로 연락하면서 제가 혼란해할 때 조언을 해주고 있습니다. 전 세계 어디에서 메일을 보내도 잠자는 시간이 아니라면 답장이 항상 1시간 안에 와서 참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005년도에 처음 만난 핀란드의 교수도 유럽에 학회가 있을 때마다 제 비행기 삯을 내주면서 저를 초대했고요. 지금도 제 경력과 자기 대학에 상호 도움이 될 일이 있다면 지원을 마다치 않습니다. 오히려 한국인분들과의 교류는 아직 많지 않아서 아쉽네요. 속 깊이 이야기 하다 보면 다 좋은 분들인데요. 아마 저처럼 외국에 돌아다니며 사는 경험이 없으니 서로 조언을 잘 못 해주는 것 같습니다. 


아홉 번째로는 본인의 나이, 결혼 시기, 한국의 부모님 등도 고려해야 합니다. 방법으로는 한국에서 빨리 학위 받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외국 경험을 쌓는 게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춥고 어두운 타국에서 전직하려고 마음고생하고 우울증에 시달려도, '난 아직 어려.' 이 정신 하나로 지금까지 버텨온 것 같습니다. 또한 인생에서 결혼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니 배우자를 우선하는 것도 중요하겠죠. 제 주변의 젊은 부부들은 터키, 핀란드 등지에서 서로 의지가 되어가면서 타국에서 잘 살아가시더라고요. 일심동체가 저런 거구나 라고 저는 부럽게 봤습니다. 그러나 배우자에게 고된 삶을 강요할 수는 없으므로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국 나가고 싶다는 기혼인 친구가 저에게 얼마 전 문의를 해왔는데요. 부인의 말을 잘 듣고 상의하라고 전했습니다. 그러자 아마 포기한 것 같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제 부모님들은 아직 건강하시고 아버지가 일을 계속하시고 있습니다. 외국에 있는 남동생이 몇 년 뒤에 한국에 들어간다고 하고요. 이렇게 부모님에 대한 걱정이 적어서 외국에서 오래 나와 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쓰다 보니 영양가 없이 글만 길어진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위에 쓴 내용을 기반으로 저의 다짐을 잠시 말씀드려보면요.


첫째 셋째: 이전 직장보다 지위랑 보수가 많이 낮아지지만, 터키의 다른 도시로 가서 7월부터 일을 할 계획입니다.

넷째: 앞으로 제가 언제 어디로 전직할지 부모님 이외에는 절대로 말을 안 할 생각입니다. 케이퍽에 글 쓰는 것도 조심해야겠어요. ㅎㅎ 새 직장에서 새 노트북 받으면 (?) 그때 옮겼다고 케이퍽에 글을 남기겠습니다.

여섯 번째: 조금 더 정치적으로 주위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가면서 살 생각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동료에게 아부도 해야겠어요. (어휴~)

일곱 번째: 논문은 순조롭게 잘 써지고 있습니다. 석사학생들과 같이 쓰며 올해 안으로 많게는 최대 5편이 더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덟 번째: 우선 테니스 친구를 많이 만들어서 여가를 보내면서, 직장 동료랑은 거리를 두려 합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면 그게 어디로 갈 지 무서워요.

아홉 번째: 다음 달에 귀국하면 부모님께 잘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고를 때, 부모님의 의견을 충분히 귀담아듣고, 제 부모님께 어떻게 대하는 사람인가도 중요한 판단 기준에 넣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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