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폭력에 대해서
2013.06.27 04:26
오늘 외출을 했다가 저녁에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길에 딸아이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친구가 아빠한테 폭력을 당하고 도망 나왔는데 집에서 하루 재우면 안 되겠느냐고...
조금 기다리라고 하고 버스에서 내려서 같이 만났습니다.
종일 굶었다는 말을 듣고 아이에게 먹을 걸 사주고 이야길 들어보았습니다.
정리를 하자면...
- 부모님은 이혼을 하신지 몇 년 됨.
- 엄마와 헤어지고 아빠와 살고 있음.
- 아빠는 외국 여자와 재혼을 했음. (아기를 낳은지 며칠 되지 않음)
- 초등학교 때부터 아빠에게 자주 맞음.
- 폭력 횟수는 일주일 평균 4~5일.
- 벨트를 풀어 채찍 휘두르듯 방바닥을 치며 위협할 때도 있었음. (맞기도 했는지는 미처 물어보지 못했네요.)
-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놀겠다고 하면 당연히 폭언을 행사함.
- 귀가 시간이 늦으면 폭력.
- 시험 성적이 떨어지면 폭력 등등...
- 게다가 학교에서는 몇 몇 학생들이 심하게 괴롭힘.
- 담임에게 이야기를 해서 해결되는 듯 했지만 점점 더 심해짐.
- 학교 문제를 아빠와 상의할 엄두도 내지 못함.
사실 하루 재우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데, 내일 학교 가는 것부터 시작해서 문제가 계속 커질 것 같아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딸과 아이를 잠깐 기다리게 하고 경찰 지구대에 갔더니 야간에는 근무하지 않더라고요.
인터폰이 있길래 통화를 하면서 물어보니, 경찰로 접수하게 되면 정식 사건이 되는데, 아이가 원하지 않는다고 했더니 1366 번을 알려주더군요.
1366을 거쳐서 여성 상담, 아동 상담 등등의 센터와 통화를 했습니다.
아이에게 "아빠 경찰서에 잡혀가는 것 아니니까 상담사에게 솔직하게 말하라"고 이야기하고 전화를 건네주었는데...
아이는 그래도 아빠가 잡혀간다는 게 무서웠는지 별로 맞지 않았다고, 학교 친구 문제로 아빠와 이야길 하려다가 의견충돌 나서 나왔다고 둘러대더군요.
(그런 아이를 보니 애처롭기도 하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아이 아빠에게 화가 나더라고요.)
그 와중에 아이 아빠는 빨리 들어오지 않으면 그냥 안 두겠다는 협박 문자를 계속 보내고...
아이가 친엄마와 통화를 하길래, 바꿔달라고 해서 제가 아이엄마와 이야기를 좀 나누었습니다.
아이엄마 말로는 아빠와 이야기를 해서 한 달 후에 데려갈테니 그때까지 때리지 말고 데리고 있으라고 이야기를 했고 그러마고 약속을 했답니다.
그러면서 아이를 일단 집으로 돌려 보내달랍니다.
(아이를 왕따 시키는 학생 부모, 그 학생과도 통화를 했으니 내일 학교도 정상적으로 가면 된다고 하네요.)
그래서 아이가 무서워하기도 하고, 나도 안심이 안 되니 아이아빠와 내가 통화를 하겠다고 하고...
잠시 후, 아이아빠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일단 오늘은 늦었으니 재우고, 내일 학교도 보내겠다고 약속을 받고 아이를 들여보냈습니다.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아이에게 "일단 집에 들어가고, 만일 들어가서 아빠가 때리거나 하면 빨리 뛰쳐 나와라. 아저씨가 여기 서있을테니, 들어가서 괜찮으면 문자나 전화를 해라. 네 연락 받고 나서 돌아가마"고 약속을 했습니다.
아이 들어가고 거의 십분이 넘도록 연락이 없길래, 혹시 잡혀서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딸에게 연락해보라고 했습니다.
문자를 보내고, 잠시 후 "잘 들어왔다"는 내용의 문자를 받고 집으로 왔습니다.
아이아빠가 폭언은 좀 한 모양입니다. 약속한대로 손찌검은 하지 않았고...
딸아이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 친한 친구여서 저도 잘 아는 아이인데...
이렇게 집으로 돌려 보낸 게 잘 한 결정인지 모르겠네요.
원래는 아동 긴급구호시설에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정확한 상황도 모르고, 아이도 아빠의 폭력에 대해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렇게 하는 것도 그렇고...
아이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약속을 받은 것도 있어서 들여보냈습니다만, 아무래도 계속 마음에 걸리네요.
중학교 1학년 계집아이를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제 자식을 패는지...
사실, 폭력은 초등학교 시절 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제 기억으로도 우리 집에 종종 놀러 오던 아이가 안 오던 게 몇 년 된 것 같고, 딸에게 이야길 들어보니 대략 그 때쯤부터 아빠의 폭력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그러니 가정폭력이 벌써 적어도 2~3년 이상 지속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이가 심성이 착해서 몇 번 봤다고 저에게는 그나마 어느 정도 이야길 하고...
제가 이야길 들어주고 나름대로 같이 고민해주고, 이리저리 전화하고 부모와도 통화를 하고...
이런 모습을 보아서 그런지 어느 정도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가더군요.
아이에게, 나중에라도 또 오늘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엉뚱한 선택하지 말고 연락해라, 아저씨가 이야기 들어주고,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해주마... 라고 이야길 했습니다.
아이엄마의 말이 진심이라면 어쨌든 한달 후에는 친엄마와 함께 살게 되겠지만, 오늘 통화하면서 제 느낌으로는 그것도 쉽지 않겠다 싶더군요.
아이엄마가 재혼을 한 건 아니지만, 생계 문제도 있고 해서 아이와 함께 사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무얼 어떻게 물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위의 글을 읽으시고...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딸 가진 아빠 입장에서, 딸아이와 가장 친한 친구의 일이니 쉽게 넘어가지지는 않네요. ㅠㅠ)
코멘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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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06.27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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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dowPlan
06.27 09:41
참.. 어려운 문제네요. 저도 딸만 둘 있지만, 아직 어려서 미처 생각을 못해본 문제네요.
그 아이의 아빠의 폭력정도가 어느정도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상습적이고, 아이가 이해하는 합리적 이유가 동반된 체벌이 아니라면 아이의 정신적 피해가 문제일 것도 같습니다.
아이의 신체적 상처 정도를 확인하고, 가정폭력상담센터에 도움을 청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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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oh
06.27 10:38
그 아이 아빠에게는 법보다 주먹이 가까울 것 같네요. 밤에 쥐도 새도 모르게 너도 한번 맞아봐라 하고
패주고 싶네요..
직접적 개입 보다는 관련 기관의 도움을 받으세요.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설지는 모르겠지만
직접 나서봤자 남의 가정사에 왜 참견하냐는 식으로 오히려 그 개보다 못한 인간과 엮일 일이 걱정입니다.
떵이 무서워서 피하는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말 처럼.. 관련 기관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면
민원을 넣어서라도 해결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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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사랑
06.27 10:44
가슴이 먹먹해 지네요!
어떻게 해줄수도 없고,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도, 아이 아빠도 심리치료를 받는게 좋은데요!
어찌 방법이 없네요!
가슴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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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욱
06.27 11:15
잘 처신하신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인상은 남겨두시는 것과 대처 방안을 알려주신 건 너무 잘 하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외관상 크게 상해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는, 남의 가정사에 들이 대는 건 삼가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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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kkit
06.27 12:55
정말 잘하신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현실적인 문제도 중요하지만, 아이에게 노랑잠수함님이 심적인 안식처가 되어주셨다는 점에서 노랑잠수함님께서 지금 하실수 있는 일은 다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언제든 힘들고 괴로운 일을 당할 때 힘이 되어주신 인상만으로 그 아이는 심리적으로 상당히 안정될 것 같습니다. 아마 평생 노랑잠수함님을 잊지 못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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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dy
06.27 15:34
아이가 이미 많은 상처를 받았을것 같네요.
학교폭력에 가정폭력, 부모님의 이혼이라..
제가봤을때 그 아이에게는 어떻게든 사랑받고싶은 생각도 있을것 같아요. 아빠에게 맞기는 싫지만 아빠에게 버림받을수도 있다는 생각, 아빠도 엄마처럼 떨어져 지낼수도 있다는 생각, 내가 맞는것만 참으면 지금처럼 아빠옆에 있을수는 있을것이라는 생각등 여러가지가 있겠죠.. 만약 가정폭력의 시기가 이혼과 겹친다면 보통 자신때문에 헤어졌다고 자책하는 마음이 클수도 있겠네요..
지금은 관심을 가지며 주기적으로 돌봐주시는게 중요할것 같습니다. 주위에 무료로 상담가능한곳이 있다면 데리고 가셔서 상담받도록 도와주셔도 좋을듯하네요.. -
노랑잠수함
06.27 21:31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오후에 운동삼아 산에 다녀왔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딸아이와 윗 글의 주인공인 친구가 같이 하교 하는 걸 발견하고...
함께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위에 적은 것처럼 한 달 정도 후면 엄마에게 갈 것이고...
오늘 그 문제로 아빠와 상의를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 아빠가 "한 달 후엔 호적에서 파버릴거야!" 라고 했다면서 걱정을 하더군요.
남남이 되는 거 아니냐며... 그래도 아빤데... 이러네요.
친권자라는 용어까지 써가며 그런 것 아니라고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부모자식 사이는 절대 남남이 될 수 없는 거라고...
이런저런 이야길 하며 가서 집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왔습니다.
잘 마무리되길 바라야죠.
아 화만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