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알면 당신은...
2013.07.24 21:09
1990년 후반기 학번들에게는 아주 친근한 에반게리온 오프닝입니다. 당시에 한참 번성하던 영화 잡지에서 온갖 상징과 이미지 과잉의 이 애니메이션을 해석학적으로 분석하느라 난리였지요. 어떤 분들은 이 애니가 일본의 애니를 종국에는 멸망하게 만들었다고 비난을 하는 분들도 있고,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에 만들어진 마지막 명작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넘어서 30년으로 향해서 달려가려고 하는군요. 근데 이 시리즈는 1995년에 시작해서 아직도 영화가 나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각자가 젋었을 때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주로 음악과 패션 그리고 먹거리로 나옵니다. '응답하라 1997'이 99학번 및 2000년대 초반 학번의 사람들에게는 좋은 추억을 갖고 엄청나게 잘 팔린 것처럼 말이지요. 저는 1997년에 대학교 2학년이었는데, IMF 구제 금융과 대규모 부도 및 해고로 인해서 절대 좋은 추억이 없습니다.
그런 우울한 시점에서 에반게리온의 TV 시리즈를 접했을 때에는 참 찌질한 모습이 저랑 많이 닮았어요. 어리고 생각 없고 어떻게 해서든 앞으로의 길을 잡으려고 방황하며 갈팡질팡 하던 모습 말이지요. 그 시절에 친하던 친구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고시 공부한다고 해서 저를 주눅들게 만들고 각자 긴 방황 끝에 제 갈길을 찾아서 가더군요.
저는 아직도 길을 찾고 있습니다.
코멘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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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색주
07.24 21:40
카우보이 비밥은 끝에가 너무 홍콩 영화스러워서 아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히려 삶은 카우보이 비밥과 같은 것 같아요. 먹고 살려고 이것저것 하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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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is
07.24 23:00
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주제를 던집니다.^^
사람에 따라서 보는 관점이 다르기는 합니다만, 에반게리온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파면 팔수록 그 문제점이 드러납니다. 그것은 꼭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은 아니기에 '뭐가 문제인데?'라는 반론도 나올 수 있습니다. 그 문제는 이전, 그리고 이후에 나온 여러 작품과의 연관성이나 작품을 만들거나 만드는 데 관여한 내부 관계까지 들여다봐야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할 이야기가 에바를 까는건 아니라서 대충만 적어보자면 TV판의 주제 의식을 돈이 된다는 이유로 스스로 부정해버린 극장판들, 돈 욕심에 '환장'한 가이낙스와 그 출신 핵심 인물들(가이낙스의 작품들의 예산 투입에 대해 뒤져보면 도대체 이런 기업이 다 있냐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도의를 저버린 돈 낭비 행위가 자주 보입니다.)의 행동, 역시 돈이 원인인 내부 분열 등 꽤 많습니다.
어 떠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행위나 사건 뒤에는 분명히 원인이 있고 과정이 있습니다. 그 결과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원인과 과정은 알 바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일로 교훈을 얻으려 한다면, 그리고 미래를 찾으려 한다면 원인과 과정은 들여다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 원인과 과정을 알게 되면 결과만 봤을 때의 판단과 다른 결론을 내기도 합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그냥 결론만 보면 '일본사람 불쌍하다'입니다만, 그 원인을 따져보면 버블 경제때 일본이 벌인 난장판과 잃어버린 10년 초기에 일본 정부가 한 바보짓이었기에 어느 정도는 '당해도 싸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우리나라만 봐도 4대강 사업은 그냥 완성된 것만 보면 '자전거 도로 많아 좋네요. ㅋㅋㅋ'입니다만, 실상을 알고보니 부실공사에 떼 먹은 돈의 규모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그것을 알았을 때와 몰랐을 때 4대강 자전거 도로를 바라보는 시각은 같을 수 없습니다.
영화나 애니메이션같은 것도 이러한 것에서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만드는 사람의 꿍꿍이는 다르고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별의 별 일이 다 벌어집니다. 하지만 작품에서는 그것까지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물론 드러나지 않지만 그 꿍꿍이와 제작 과정의 트러블은 결국 숨어 있게 됩니다. 똘이장군은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이기 이전에 반공 마인드 전파를 위한 여러 가공이 된 프로파간다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한 것을 굳이 알아내려고 하지 않아도 세상은 살아갈 수 있습니다. 대신 그것을 어떠한 삶의 지표로 삼거나 삶에 영향을 줄 것으로 삼으려면 그 본질을 바라보려는 노력은 필요합니다. 악마의 의도로 만든 것을 정의로 믿는 것은 그렇지 않겠습니까? 제게 있어 에바는 애니메이션 거품 황금기(정확히는 불황의 시작)이라는 시기를 잘 만났으며, 오히려 잘못된 코드를 시장(제작 업계)에 던져준 결과 게임계의 아타리 쇼크급의 불황을 애니메이션 시장에 안겨준 원인입니다. 그저 시기가 재수가 없었던 것이 아닌 만드는 과정도, 만드는 사람의 마인드도 '멋지다'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에바의 진정한 주인공은 그대로 성장하면 인간적으로 걱정이 되는 민폐아 신지도, 겉과 속이 다른 아스카도, 사회적인 인간이 갖춰야 할 정신적인 요소 일부의 나사가 빠진 레이도, 몸은 컸고 책임도 생겼지만 정신적인 성장은 그것을 따라오지 못해 고민하는 미사토도 아니라고 봅니다. 바로 이카리 겐도우라는 넘입니다. 자신의 트라우마와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권력을 범위 안에서 마음대로 휘두르고 세상을 속이며 사람을 착취합니다. 나쁘게 보자면 썬글라스 낀 흉악한 중년의 계략에 그 의도를 전혀 또는 전부 파악하지 못한 소년소녀청년아가씨 + 노인들이 놀아난 것이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의 내용일 수도 있습니다.
그냥 당장 보이는 현상에만 안주하면 결국 진정한 의도를 모른 채 아버지의 손에 놀아나는 신지의 모습만 될 뿐입니다. 자신이 권력이나 힘을 쥐고 있지 않다면 어떠한 일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늘 본질을 찾으려는 마음 자세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그 결과 알게 된 것은 재미를 떨어트리고 오히려 혼란스러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세상을 바꾸고 자신을 바꾸려는 사람이라면 주어진 것을 의심하고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려는 의지는 늘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일단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추신: 저 오프닝의 MAD 무비를 찾아보시면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여러 종류가 있지만, 웃음의 싱크로율 400%를 찍는 넘들도 나올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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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색주
07.24 23:09
은하영웅전설에서 양 웬리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신의 신념에 대해서 회의를 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공화국을 구한 영웅이 될 수도, 황제를 처단하고 새로운 황제가 될 기회도 버리고 공화정의 장수로 남습니다. 많은 고민과 회의를 통한 결론이 진정한 가치관을 준다고 봐요. 예전에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승진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승진을 위해 경력을 관리하려는 제 모습에 놀랍니다.
세상을 바꾸기도 힘들고, 바꾼 세상에서 거꾸로 돌리려는 사람들도 많지요. 추하게 변한 486들을 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더군요. 이제 30대 중반을 넘어서 40으로 달려가는 시점이라, 고민을 잘 하던가 그만둘 시점으로 느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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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is
07.24 23:21
세상을 바꿀 수 없는 시기는 오지만, 남이 움직이는 세상에 무작정 쓸려다니며 자신을 희생해야만 하는 것 역시 NG 아니겠습니까? 정작 세상을 못바꾸더라도 적어도 자기가 자기이기 위해서는, 무뇌의 톱니바퀴가 아닌 자신이기 위해서는 결국 늘 세상의 흐름에서 자신의 위치와 행동 강령을 늘 검토해야만 합니다.
길게 적기는 했지만 사실 할 말은 꽤 단순합니다. '세상의 일에 무조건적인 수용만 하지 말고 생각 좀 하고 살자'입니다. 그게 에너지가 들고 그 결과가 그리 재미 없는 것일 수는 있어도 진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길은 그것 뿐입니다. 또한 익숙해지면 그 나름대로 재미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건담 Seed의 캐릭터나 행동이 그 모양 그꼴인 이유를 모르면 그냥 짜증을 내면서 봐야 하지만 그게 제작자 가운데 어떠한 막장 성격을 지닌 한 여성의 독단으로 벌어진 일이었다는 것을 알면 적어도 화풀이는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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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07.25 04:00
저는 사대강에 딴지.
사대강은 결과만 보더라도 자전거길 같은 눈에 당장 보이는 결과만 볼 것이 아니라, 생태계 파괴, 대규모 수해 유발 같은 잠재/간접적인 결과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과정은 망했지만 결과는 참을만 한 것이 아니라, 결과는 더 참담한게 사대강 사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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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보고 빠져 들었었죠 ㅎㅎ 지금 보면 뭐......
세계관이야 떡밥이 워낙 많아서... -_-;;
그때 ys 의 아돌에 빠졌었고...
창세기전 서풍의 광시곡 때문에 몬테크리스토 백작 이라는 소설도 읽어보고 -_-;;;
저 곡으로 비트매니아 에 빠져서 _-;; 한동안 그런적도 있고...
추억이네요 ㅎㅎ 덕분에 리듬잇 게임은 언제해도 재미있네요 (이상하게 옆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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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랑 비슷한 과정을 거치셨네요 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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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뷔
07.25 14:12
어라? 저는 해색주님 저보다 연상으로 생각했었는데... 쩝...
같은 학교였다면 제가 수업에 들어갔을 정도군요.... 강의보좌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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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색주
07.25 14:35
^^ 저는 96학번이옵니다.
저도 참 충격적인 애니... 카우보이비밥과 함께 말이죠...
지금도 애바 덕후질을 하고 있지만... 이젠 신지를 응원하믄 입장으로 바뀌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