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에 대한 생각 정리
2015.09.19 22:23
최근 들어 나라의 복지정책과 복지의 개념에 대해 재고중입니다.
가장 큰 화두는 복지는 왜 필요한가와 과연 얼마나 필요한가 입니다.
글을 쓰다보니 어느덧 두세 페이지는 될 것 같은 논술문이 될 것 같아서 목차만 쓰고 텨봅니다 =3=3=3
복지의 개념, 복지 정책이 생겨난 이유, 복지 정책이 확대된 이유
- 개인과 개인사이의 관계 조차 서로 마음을 맞추고 동의를 얻기 힘들다.
- 수백만명의 개인이 있는 사회인데 어떻게 그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이 결정되는가?
- 개인과 개인이 아닌 사회안에서의 인간의 인간성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기존의 복지의 개념
- 기독교에서의 원죄의 개념으로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생겨난 복지
- 현재의 사회의 약자들을 배려하기 위한 동정과 밥버러지로서의 복지
복지는 사회 발전에 해가 되는가?
- 사회 발전을 위한 예산을 복지에 투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주장
- 사회 안전망으로서 사회적 약자들이 불만을 가지고 사회 불안을 일으키지 않게 해야 한다는 주장
약육강식은 인간의 본성 중 하나
- 만약 일자리가 없을 때, 고용주가 절반의 임금이나 무임금 인턴으로 일하라고 요구하면
제아무리 대학원 나오고 박사학위를 따도 무료로 막노동을 할 수 밖에 없다. 돈이 없으니까.
또한, 지역별로 일자리에 편차가 발생하기 때문에 반드시 경제적인 약자는 발생하게 된다.
- 이 때, 복지정책이 있어서 실직자가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면서 다시 일자리를 알아볼 수 있도록 버텨줄 여력을 대준다면,
과연 박사학위를 딴 사람은 무임금으로 막노동을 하면서 인턴이 끝나기만을 기대하는 생활을 할까?
아니면 고용주의 헛소리를 생까고 자기가 원하는 임금 수준의 직장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까?
- 더 이상 고성장을 바랄 수 없는 사회에서 남을 이용해서 자신에게 유리함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이용 당하는 사람은 반드시 항상 손해만 보게 된다.
그리고 재산이 많아지는 등 유리한 조건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여 더 많은 사람을 이용해먹을 수 있게 된다.
남을 이용만 해먹고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은 약육강식 등 수많은 고사성어에도 나오는 인간 본성 중 하나이다.
- 결국, 법이나 도덕 관념 같이 남을 이용만 해먹고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에 대해 제재를 가하지 않으면
인간의 본성상 이득과 대가의 불균형은 가속화되고, 결국 사회의 구성이 불가능하게 된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탄생은 일부가 아닌 수많은 사람들의 과학연구 및 기술 발전을 토대로 발전해왔다는 이론상)
복지는 금전적으로 계량화한 그 나라의 인간의 최소한의 대가
- 복지 정책은 수많은 사람들의 합의로 마련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최소한의 가치이어야 한다.
- 법정 최저임금은 그 사회의 한 사람이 노동에 대해 최소한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대가가 되어야 한다.
즉, 어떤 불합리한 시도와 협박, 공갈에도 꿈쩍하지 않고
돈을 가진 사람과 돈을 안가진 사람이 서로 공존하여 사회를 유지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재물 교환단위가 되어야 한다.
- 법정 최저임금이 낮다면 그만큼 그 사회는 인간에 대한 기대치가 떨어진다는 말이다.
법정 최저임금이 높을 수록, 그 사회의 인간의 경제력과 생산성은 높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복지의 기준은 인간의 가치가 아닌 사회 구성원의 가치
- 복지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각 개인마다 불멸이며 동일하나, 한 사회속의 구성원의 가치는 변한다.
- 당연히 전국에 동일한 최저임금을 적용할 수 없으며, 현실에 맞게 지역단체 별로 별도의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한다.
또한, 개인의 수준 (재취업할 직장) 에 맞게 복지 혜택도 달라져야 한다. (집세, 교통, 물가, 병원비 등)
결론
복지정책은 헌법상으로 추상화되어 있는 인권이나 사람답게 살 권리 등의 나부랭이에 의지하면 안된다.
헌법보다 밀접하게 사람들을 조종하고 움직이는 경제원칙에 입각해서
정말로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변하게 해줘야 한다. (사람들의 요구 -> 정책 적용)
만약 사람들의 협의한 결과 현재 최저임금이 3천원 대로 떨어지더라도
그건 그 사회의 구성원의 가치가 그것 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 아직 해결 안되는 의문(반론)
①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침식받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몰리는 상황인데도 구성원의 가치(헐값)대로 복지정책을 적용해야 하는가?
코멘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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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산왕
09.19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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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하늘
09.20 07:34
인간의 존엄성...복지의 최소 수준은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봅니다.
폐지줍는 어르신들이..조금더 안전한 환경에서..또는 아예 그런모습을 보지 않을수있는 모습을 원합니다. -
다카오카
09.21 14:38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복지라는게 어찌 생각하냐에 따라 많은게 바뀔 수 있으니까요.
뭐, 그런건 비단 복지만은 아니겠지만 말이죠.. ^^
고뇌의 흔적을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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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09.23 03:53
복지는.. 더 힘들어져 갈 것입니다. 왜냐면 있는 분들은 더 약아지거든요. 자신들이 약아지는 것이 아니라, 약은 사람들 즉 없는 사람이지만 있는 사람의 앞잡이가 되어서 자기 밥벌이를 하고 싶은 사람들을 고용해서 자신들은 약아지지 않더라도 도 효율적으로 수탈하는 방법을 찾기 마련이죠. 실제로 최근 빈부격차가 거의 모든 나라에서 더 심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원글에서 잠시 언급된 바와 같이 사회는 궂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필요로 합니다. 지역적으로 다를 수는 있지만. 즉 저임금으로 착취되어야 할 분들이 존재해야 사회가 잘 굴러가고 있는 분들의 호화로운 생활이 뒷받침이 됩니다. 세계 곳곳에서 이런 예들을 볼 수 있는데요, 흔히는 대도시 근처 또는 내부의 빈민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면중 하나이지만 가장 어두운 곳은 아닙니다. 왜냐면 저런 빈민촌에도 웃음이 있고 행복이 있으니까요. 다만 그 웃음과 행복이 사라져가는 추세라는게..
결코 간단한 문제는 아니고, 수천쪽짜리 논문을 쓴 박사가 수백만명이 나와도 해결은 안 될 것입니다. 왜냐면.. 인간은 탐욕의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의 탐욕을 위해서 다른 분들의 목숨 정도는 파리보다 천하기 때문입니다. 고매한 많은 분들도 자기 눈에 뵈지 않는 분들의 목숨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예.. 한끼에 백만원 하는 -- 이거 있는 분들 사이에선 별로 비싼거 아니라고 합니다 -- 식당에서 스테이크 -- 물론 저런 비싼 식당에서 먹어본 적이 없어서 거기서 뭐 먹는지 모릅니다 -- 반 먹고 남기는 분이 이거 싸갈까요 ? 이거 정도 값이면 아프리카에서 굶어죽는 아이 백명이 몇달은 더 먹을 만한 식량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알까요 ?)
고매한 이론은 알지도 못하니 다 집어치고.. 인간이 인간으로 생존하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부터 시작해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1. 살찌지 않을 정도 분량에 금방 토하지는 않을 정도의 맛을 가진 음식
2. 날씨 신경 별로 안 쓰고 (여름에 좀 덥고 겨울에 겨우 얼어죽지 않을 정도에 눈/비/바람 정도 겨우 피하는) 잘 수 있는 1평 남짓 공간 (깨끗한 화장실 포함)
3. 남들이 냄새난다고 도망가지 않을 정도로 청결한, 그냥 부끄러운 곳은 다 가리고, 군중속에 섞여 있을때 눈에 확 띄지는 않을 정도의 옷
4. 혹시 아플때 치료비 신경 안쓰고 치료받을 권리
5. 가끔 가까운 친구/친척에게 연락할 수단
6. 혹시 신체장애를 가진 분이라면 위의 1번부터 5번까지를 일반인 처럼 하게 할 수 있는 도움
7. 사회 기본적 구성원으로 살 수 있을 교육
8. 품위유지를 위한 직업
9. 약간의 여흥수단 -- TV ?
정도일 듯 합니다. 참 많네요. 이 정도 있으면.. 사람이다 라고 생각할 수는 있겠네요. 문제는 복지에는 돈이 드는데.. 누가 지불하느냐의 문제죠. 이게 쉽지 않은게.. 한가지만 예를 들죠.
태어나지않은 태아가 사람이냐 말이 많은데요.. 사람이라고 가정하고 (제가 믿는 바이기도 하고요) 5개월된 태아가 엄마 몸밖에 나와서 살아남으려면 10-50억 정도가 든다고 합니다. 6개월된 태아는.. 단 한달 밖에 차이가 안나지만, 엄마 몸 밖에 나오게 되더라도 살아남는데 드는 돈은 천만원 남짓 (인큐베이터).. 7개월된 태아는 왠만한 경우에는 추가 비용없이 살아남는다고 합니다.
그럼 정해진 예산에서 5개월된 태아 한명을 포기하면.. 6개월된 태아 수백명을 살릴 수 있다는 얘기. 7개월된 태아는 사람이라고 불릴만한 모든 권리를 갖고있다는 것은 또다른 얘기. 이때.. 5개월된 있는 집의 아이 하나를 포기하고 6개월된 태아 수백명을 살리는 것이 맞을까요 ? 아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복지정책을 구현할때는.. 있는 집에서 5개월된 아이 하나를 살릴때는 6개월된 태아 수백명 살릴 돈을 더 내고 치료를 받도록 하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럼 없는집의 5개월된 아이는요 ? 부모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해야 하나요 ?
이렇게 누가 사람이냐 아니냐를 내가 정할 수 있으면 조금 논의가 쉬워질 수 있지만, (이게 맞는 논의냐는 별개 문제) 모두 사람이라면.. 상황은 훨씬 복잡해 집니다. 예를 들어 한명이 불치병에 걸려서 하루에 1억씩 치료비가 드는데 이 치료만 하면 자연사 할때 까지 살 수 있다고 합시다. 보통 사람은 하루에 만원만 있으면 생존한다고 칠때. (온 가족이, 하루 만원보다 훨씬 아래의 생활비로 사는 사람이 세계 인구의 절반은 넘을듯) 1억이면.. 만명의 복지를 책임질 수 있게 되네요. 그럼 이 한명을 포기해야 하나.
조금 황당한 얘기는 저 하루에 만원씩 쓰면서 사는 '보통 사람'들이 한달에 몇만원씩 모아서 기부를 하면.. 그 기부금을 모아서 하루에 1억씩 드는 치료법을 개발하고, 그 개발한 사람은 자기 돈은 들인거 없이 하루에 1억씩 돈을 벌게 되고.. 기부한 보통사람들은 저 1억이 없어서 그냥 죽습니다. 의료보험요 ? 저런 치료는 아예 제공하지도 않지요. 아 미쿡 얘기고요.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
사실 복지란 인간 사회의 존재 이유 그 자체입니다. 도로 뚫고, 교육시설 확장하고 좋은 직장 늘리는 것도 복지와 무관하게 생각할 수 없죠. 또한 복지 정책이 늘어가는 건 당연히 세상이 살기 좋아지고 아름다워 지길 바라고,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기 때문이죠.
사회가 갈수록 살기 좋아지고 선해지기 때문에 복지는 계속 늘어갈 겁니다. "옛날이 좋았어" 하는 사람들은 그 시절 인간 취급 못 받았던 노동자들이나 돈 몇푼에 팔다리 잘려나가는 시절을 잊었나 봅니다. 노예시급 이야기 어쩌고 하는 것도 요즘 세상이 살기 좋아서 그런 거죠.
저는 저의 부모님 보다 선하고, 저의 자식들은 저보다 선할 겁니다.
혹자는 요즘 시대가 이기적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래서 아이도 낳지 않고 편하게 살려는거 아니냐... 라고도 말하는데...
종족번식본능=선함 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먹고 자고 하는 것과 같은 본능 중 하나인데, 여기에 문화적 정치적, 그리고 종교적인 왜곡이 들어갔고, "희생" 이라는 듣기 좋은 단어까지 더해져서 다르게 들리긴 하는데 크게 보면 뭐... 결국 자기들 하고 싶은 일 중 하나일 뿐이죠.
저는 다른 방식으로 선을 행합니다. 저보다 어리거나, 약한자의 도전을 받아 줍니다. 민주적으로 살려고 합니다. 탈 권위적이 되려고 합니다. 비겁하게 찍어 누르지않고 피하지도 않고 도전을 받으려고 합니다. 위대한 챔피언이 도전자를 피하지 않는 것 처럼요.
실제로 선진국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탈 권위적인 면이라더군요. 저는 영미권 국가들이 잘사는 이유중 하나에 나이 안 따지는 문화랑 그것을 가능하게 한 언어적인 특징도 한 몫 한다고 봅니다.
아무튼, 복지 정책은 늘어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중 두가지는, 결국 생산성은 향상될 것이고, 인간은 계속 선해질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