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반 만에 한국갑니다.
2016.08.19 14:41
이런저런 사정으로 호주와서 한번도 한국에 가지 못했네요. 드디어 갑니다. 처음 왔을 때와는 달리 스스로가 많이 변했음을 느낍니다. 좋은 변화도 있지만, 그게 좋기만 한게 아니고, 안 좋은 쪽으로도 변했지만, 또 그게 안 좋기만 한 것도 아니기에 뭐라고 단정지을 수가 없네요. 겉보기에는 좀더 열심히 사는거 같지만, 그렇다고 삶에 충실하다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한국나이로 35세. 이제 빼도박지 못하는 나이. 젊다, 어리다는 핑계는 통할수도 없고, 예전처럼 맨땅에 해당하면서 살수도 없습니다.
근데, 그러고 보면 항상 늦었던 것 같습니다. 뭐든지 말이죠. 고등학교는 25세 때 검정고시로 패스했고, 대학 입학은... 호주에 유학왔을 때 나이가 29세 였으니... 첫 정규직도 31세 때 호주와서 였네요. 일은 그 전에도 많이 했지만 변변치않은 것 뿐이었죠. 그 밖에도 제 인생은 뭔가 남에게 자랑할 만한 그럴 일이 없었습니다 항상 늦었으니까. 저에게는 특별해도, 남들에긴 이미 지루한 이야기일 뿐인 거죠.
뭐, 다 제탓만은 아니지만, 저의 탓이 가장 크다는건 부인 못하겠네요. 반면 안 좋은 일은 항상 일찍 경험했습니다. 경제적 파산, 교통사고, 가족이나 친지의 투병과 사망 등등. . 호주 와서도 결국 볼꼴 안볼꼴 다보고 지금까지 왔네요. 돌아 보면 덕분에 악운에 강한거 같기도 한데, 꼭 그렇게 다 경험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어린시절의 감수성을 지킬 수있다면 좋겠지만 이게 쉽지가 않나봅니다. 사실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반은 의식적으로도, 그걸 알았기 때문에, 될 수 있는한 실수 투성이에 좀 찌질한 사람으로 남고 싶었는데 조금 씩 변해갑니다. 별거 아닌거에 화도 내고, 분해서 울기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말이죠. 감정마져 없다면, 결국 인간이 기계보다 잘하는게 별로 없어질 그런 세상이 다가오다 보니, 제가 잘 살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들고 아쉽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 한국행 비행기에서는 베르세르크, 충사, 슬램덩크, 지뢰진 같은 제 인생의 만화들을 다시 볼겁니다. 이제는 거주할 집도 없는 그 곳으로 가서, 단 한 번 뿐인 인생에서 정말 하고 싶었던게, 그냥 이런 안정적인 삶이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볼겁니다. 가난에 질려버려서, 혹은 두려워서 너무 안정적인 길을 택해 버린건 아닌지. 단 한번이라도 스스로에게 기회를 줘 본적 있는지 물어볼 겁니다.
코멘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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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푸른나무
08.1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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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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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산왕
08.19 15:10
쓰다보니, 저의 고질 병이 중2병이 다시 올라와서 심각하게 쓰긴 했는데, 걍 잠깐 놀러가는 겁니다.
축구좀 하고, 피씨방에서 밤세 컵라면 먹으면서 오버워치좀 하다 오려고요. -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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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준용군
08.19 15:31
오실때 선물좀 굽신 굽신
켁 ㅡ..ㅡ
모처럼 어렵게 오신거 편히 쉬어 가세요 ^^ -
- 속도 같은거 전혀~ 의미 없어요. 좀 늦어도 괜찮으니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길 바랍니다. 저는 남들보다 다 빠른 편이었지만 왜 그리 살았나 싶어요. 아무 의미 없어요.
- 한국은 기회가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오래 갈것 같아요. 잔치가 끝나고 손님이 계산을 치루고 나간 분위기 정도나 될까요. 호주 만큼이나 저성장 사회로 본격 진입했습니다. 또 다른 s-curve를 그린다면 모를까.....여기서 기대 하지 마세요.
- 건강, 가족, 영혼을 우선순위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
별날다
08.19 19:22
에구.. 환영합니다.. (/^^)/
오시면 번개나 한번 하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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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kim
08.19 22:59
그래도 이렇게 속을 털어 놓을 수 있는 곳이 있어 좋네요. 한국 가시면 번개도 하시고 새로 충전 해 오세요. 아, 나도 가고 싶다!!! -
좀 쉬시죠.
치열하게 사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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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하루
08.19 23:36
어서오세요 아직 한국 더워요 -
사드사랑
08.20 01:17
잘 다녀오세요. 우리나라를 '한국'이라고 부르게 되면 '교포' 라더군요. 속도 의미없다고 저도 계속 되뇌며 살고 있습니다. 의미 없어요. 열심히 살면 그게 좋은거다 라고 생각합니다. 최강산왕님은 그 측면에서는 아무에게도 뒤지지 않으신듯 합니다.
겪으신 일을 제가 일일이 다 모르겠으나 참 우여곡절 사연이 많으신 것 같군요....
한국으로 아예 귀국하신 것인지.... 아님 다시 호주로 나가실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곳이든 갈 곳이 있다는 사실은 희망을 갖게하는 단어 같습니다.
앞으로의 삶도 계속 화이팅 하시기 바라고~ 한국의 컴백도 환영 및 축 하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