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릴레이 - 지난 밤 이야기.
2017.02.02 01:21
물집이 잡히다.
밤새 불러대는 무전기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지경이다. 수은주는 영하로 내려간지 오래... 빙판위를 내달리는 바람은 볼살을 애이는 듯 한데... 안전화를 신은 발바닥은 땀으로 축축하다. 그야말로 눈섭이 휘날리도록 일을 하였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손가락 마디에 잡힌 물집이 그제야 눈에 들어 왔다.
서둘러 작업일지와 설비사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유선으로 작업상황을 알렸다. 조업팀에서 생산 시간을 맞추지 못해 조업 종료가 많이 늦어졌지만 설비 문제가 아니었기에 보고 사항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조업지연 시간에 대한 보고서가 빠졌다고 한다. 조업측에서 자신들의 조업지연을 설비 문제로 걸고 넘어진 것이었다.
뒤통수를 후려 맞은 기분으로 조업 담당자와 한참을 설전을 벌렸다. 이미 퇴근 시간은 지나고 있었으나 부당하게 떠 넘겨진 조업지연 시간을 확실히 해야만 했다. 조업 지연에 관한 책임 공방이 끝난 후 간략한 보고서를 한 장 더 쓰고 나서야 겨우 퇴근을 할 수 있었다.
늦은 퇴근은 아침 식사도 거르게 했다. 씻고 집에 와서 누웠으나 잠이 오지를 않았다. 억울했다. 잘못도 없이 누명을 쓴 기분이 들었다. 억지로라도 잠을 청해보려 했으나 눈을 감으면 아침의 언쟁이 더 선명해졌다. 어느새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이 되어 있었다. 물 한모금 마시고 진정하려 했으나 쉽게 감정이 가라앉지 않았다. 다시 누워 잠을 청했다.
억지로라도 자야만 했다. 야간 근무를 하려면 낮에 조금이라도 자두지 않으면 힘들기 때문이기에... 한참을 뒤척이다 설핏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한 시간도 채 잠들지 못하였다. 이대로는 진정되지 않을 듯 하여 옷을 대충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햇살이 무너지는 오후의 겨울 바람은 매서웠다. 철길 옆으로 난 산책로를 걸었다. 추위탓인지 평소에 많이 보이던 운동하던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산비탈에 앉아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또 걷고 걸었다. 다리에 가벼운 경련이 일었다. 손가락도 쥐가 나려는 듯 아려왔다.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느라 밖으로 나와있던 손이 얼어 붙는 듯 했다. 볼 살을 애이는 바람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가슴속엔 아직도 집을 나설때의 감정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또다른 감정이 그 위를 덥고 있었다. 사그라지지 않는 감정의 탑이 높아져만 갔다.
어느순간 핸드폰의 소리가 사라졌다. 전원을 눌러도 켜지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스마트폰 동결 증상이 나타난 것이었다. 얼어버린 스마트폰을 품에 넣고 녹여 보아도 전원은 들어오지 않았다. 외부 전원을 넣어야만 켤 수 있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너무 멀리 나와 버린 탓에 한참을 걸어서 집에 도착하였다. 핸드폰에 전원을 넣으니 조그만 사과마크와 함께 화면이 켜졌다. 몇 통의 문자와 부재중전화 한 통이 보였다. 통화 버튼을 눌러 핸드폰이 갑자기 꺼진 정황을 알렸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지난밤의 설비 사고로 인해 설비 상황을 체크하여 다시 보고서를 써 보내야 했기에 평소 출근 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출근을 해야했다. 저녁 식사는 그렇게 먹을 수 있는 시간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점심 때 자기전에 마셨던 물 한 잔이 오늘 음식의 전부인 샘이었다.
출근 후 정비 내역을 확인하고, 설비 상황을 체크하고, 또 여러 서류를 뒤적여서 보고서를 만들고... 어느새 본 근무시간이 되어 조업 상황에 따른 일들을 한다. 아침이면 지금 만들어 놓은 보고서와 또다른 보고서들을 가지고 유선으로 통보하고 각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내야 하겠지...
손가락 마디의 물집은 조금 커진 듯 보이지만 아직 터트리지는 않았다. 내 안의 감정을 터트리지 못하고 쌓아 두는 것처럼 손가락 마디의 물집도 터트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조금 따끔거리기는 하겠지만 바늘을 찔러 물을 빼고나면 지금보다는 손가락을 사용하기 편하지 않을까.
내 안의 감정도 물집처럼 조용히 물을 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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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불러대는 무전기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지경이다. 수은주는 영하로 내려간지 오래... 빙판위를 내달리는 바람은 볼살을 애이는 듯 한데... 안전화를 신은 발바닥은 땀으로 축축하다. 그야말로 눈섭이 휘날리도록 일을 하였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손가락 마디에 잡힌 물집이 그제야 눈에 들어 왔다.
서둘러 작업일지와 설비사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유선으로 작업상황을 알렸다. 조업팀에서 생산 시간을 맞추지 못해 조업 종료가 많이 늦어졌지만 설비 문제가 아니었기에 보고 사항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조업지연 시간에 대한 보고서가 빠졌다고 한다. 조업측에서 자신들의 조업지연을 설비 문제로 걸고 넘어진 것이었다.
뒤통수를 후려 맞은 기분으로 조업 담당자와 한참을 설전을 벌렸다. 이미 퇴근 시간은 지나고 있었으나 부당하게 떠 넘겨진 조업지연 시간을 확실히 해야만 했다. 조업 지연에 관한 책임 공방이 끝난 후 간략한 보고서를 한 장 더 쓰고 나서야 겨우 퇴근을 할 수 있었다.
늦은 퇴근은 아침 식사도 거르게 했다. 씻고 집에 와서 누웠으나 잠이 오지를 않았다. 억울했다. 잘못도 없이 누명을 쓴 기분이 들었다. 억지로라도 잠을 청해보려 했으나 눈을 감으면 아침의 언쟁이 더 선명해졌다. 어느새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이 되어 있었다. 물 한모금 마시고 진정하려 했으나 쉽게 감정이 가라앉지 않았다. 다시 누워 잠을 청했다.
억지로라도 자야만 했다. 야간 근무를 하려면 낮에 조금이라도 자두지 않으면 힘들기 때문이기에... 한참을 뒤척이다 설핏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한 시간도 채 잠들지 못하였다. 이대로는 진정되지 않을 듯 하여 옷을 대충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햇살이 무너지는 오후의 겨울 바람은 매서웠다. 철길 옆으로 난 산책로를 걸었다. 추위탓인지 평소에 많이 보이던 운동하던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산비탈에 앉아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또 걷고 걸었다. 다리에 가벼운 경련이 일었다. 손가락도 쥐가 나려는 듯 아려왔다.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느라 밖으로 나와있던 손이 얼어 붙는 듯 했다. 볼 살을 애이는 바람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가슴속엔 아직도 집을 나설때의 감정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또다른 감정이 그 위를 덥고 있었다. 사그라지지 않는 감정의 탑이 높아져만 갔다.
어느순간 핸드폰의 소리가 사라졌다. 전원을 눌러도 켜지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스마트폰 동결 증상이 나타난 것이었다. 얼어버린 스마트폰을 품에 넣고 녹여 보아도 전원은 들어오지 않았다. 외부 전원을 넣어야만 켤 수 있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너무 멀리 나와 버린 탓에 한참을 걸어서 집에 도착하였다. 핸드폰에 전원을 넣으니 조그만 사과마크와 함께 화면이 켜졌다. 몇 통의 문자와 부재중전화 한 통이 보였다. 통화 버튼을 눌러 핸드폰이 갑자기 꺼진 정황을 알렸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지난밤의 설비 사고로 인해 설비 상황을 체크하여 다시 보고서를 써 보내야 했기에 평소 출근 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출근을 해야했다. 저녁 식사는 그렇게 먹을 수 있는 시간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점심 때 자기전에 마셨던 물 한 잔이 오늘 음식의 전부인 샘이었다.
출근 후 정비 내역을 확인하고, 설비 상황을 체크하고, 또 여러 서류를 뒤적여서 보고서를 만들고... 어느새 본 근무시간이 되어 조업 상황에 따른 일들을 한다. 아침이면 지금 만들어 놓은 보고서와 또다른 보고서들을 가지고 유선으로 통보하고 각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내야 하겠지...
손가락 마디의 물집은 조금 커진 듯 보이지만 아직 터트리지는 않았다. 내 안의 감정을 터트리지 못하고 쌓아 두는 것처럼 손가락 마디의 물집도 터트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조금 따끔거리기는 하겠지만 바늘을 찔러 물을 빼고나면 지금보다는 손가락을 사용하기 편하지 않을까.
내 안의 감정도 물집처럼 조용히 물을 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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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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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사랑
02.02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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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샛별
02.03 00:05
달달한가요? ^^
주말에나 겨우 보는 딸래미 생각하며 버티고 있어요. -
대머리아자씨
02.02 08:06
모모에 나오는 한 대목 같습니다.
시간도둑에게 시간을 빼앗긴 사람의 하루 같아요.
그래도 화이팅입니다. -
맑은샛별
02.03 00:06
시간도둑. ^^;;
예전엔 여유 시간이 많았는데... 순천 오고 나서는 여유 시간이 별로 없네요. -
별날다
02.02 09:06
와! 글 솜씨가 대단하시네요... 마치 바로 옆에서 보는 듯... 생각과 마음이 느껴집니다. (/^^)/
책을 내보시거나 어디에 기고해보시면 어떨까 하네요... ^^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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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샛별
02.03 00:08
감사합니다. ^^
여러가지 일들로 치여 살다보니 글 한 줄 쓰는 것도 쉽지 않네요. 책으로 묶을 정도로 글이 많지도 않고 팔릴만한 내용도 아니라서요. 출간은 없을 듯 싶네요. -
조슈아
02.02 09:38
와... 소설에 한 대목 같네요.
힘들다고 넉두리를 쓰신거 같은데 넉두리 같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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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샛별
02.03 00:09
일상이 소설 같고, 영화 같기도 하고, 드라마 같기도 하고 그렇죠. 좀 더 여러가지를 누리는 스토리였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 -
푸른들이
02.03 09:18
포항이신 줄 알았더니 순천이셨군요. 가족들이랑 포항보다는 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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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샛별
02.04 00:02
순천에 온지 이제 1년 조금 넘었네요. 딸 출산 즈음에 내려 왔거든요. ^^
정신없이 바쁜 글을 쓰셨는데 왠지 달작지근 한 것은 왜 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