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친구 장례식

2021.02.22 14:32

나도조국 조회:864

선배 장례식 까지는 가봤는데 친구 장례식은 처음이었습니다. 이 나이까지 친구 장례식을 갈 일이 없었다는게 특이한 건지. 코로나 때문에 몇사람 밖에 못 들어가기도 했지만, 무슨 이유에선가 유난히 썰렁한 장례식장에.. 친구 아이들은 스무살 남짓은 되었는데 내 눈엔 아가 같기만 한데, 엄마랑 셋이서 까만 옷을 입고 한쪽 구석에 서 있고, 어디 앉아야 할지 서야 할지,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도 아무 생각도 없이 머릿속은 하얗기만 한 시간이었습니다.


미쿡식 장례식이라, 친구 녀석은 세상모르고 저 앞에서 자는 듯이 누워있는, 무슨 생각을 해도 숨이 턱 막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섯개 남짓 서 있던 화환은 누구한테서 온건지. 그 중 하나는 우리가 보낸 거라는 것 정도.


대학 들어가서 마지막 학위하고 나올때까지 십년 이상을 바로 옆에서 보냈는데, 이 녀석이 어떻게 여기 지금 누워있는지 아무 것도 아는게 없다는 현실. 미국에 와서도 바로 이웃에 살았는데, 왜 이렇게까지 아무 연락도 안하고 살다가 이런 소식을 듣고서야 얼굴을 보게 된건지. 무슨 생각을 해봐도 아무 답은 안나오고. 녀석은 자는듯 웃는듯 그냥 누워만 있습니다. 내 기억속에 있던 환하게 웃는 젊은 날의 얼굴은 그대로 있는데, 머리숱은 세월이 할퀴고 지나간건지.


장례식이 끝나고, 여느 미쿡 장례식에서 하듯이 한사람씩 나가서 가까이서 먼저간 사람 얼굴을 들여다 보고. 바로 옆에 서 있는 가족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말을 건네고. 인사를 하고 나왔습니다. 장례식장 건물 한쪽 구석에 영구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약한 시간이 되면 녀석을 싣고 화장장으로 갈 것이고, 조그마한 항아리에 담겨 가족 품에 안기겠지요. 그냥 그렇게 가는 건가 봅니다. 주차장에 있던 차들이 다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차를 가지고 빠져나왔습니다. 틀림없이 가족이 같이 있는데.. 그 녀석만 두고 떠나는 것 같아서.


아빠가 먼저 가버린 가족이 미쿡서 살아갈 수 있을지. 아이들은 공부를 제대로 마치고 삶을 이어갈 수 있을지 수많은 의문이 꼬리를 물었지만 오늘 물어볼 일은 아니다 싶기는 한데.


잔인한 달입니다. 장례식이라고 나눠준 떡 한덩이 베어 뭅니다. 야속하게 떡이 참 맛있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공지 [공지] 2025년 KPUG 호스팅 연장 완료 [9] KPUG 2025.08.06 1641
공지 [공지] 중간 업데이트/ 다시한번 참여에 감사 드립니다 [10] KPUG 2025.06.19 2318
공지 [안내의 글] 새로운 운영진 출범 안내드립니다. [15] 맑은하늘 2018.03.30 37345
공지 KPUG에 처음 오신 분들께 고(告)합니다 [100] iris 2011.12.14 453802
29803 테레비를 샀습니다 [14] updatefile 바보준용군 09.11 146
29802 체력이 마이너스이구만요. [8] 해색주 09.08 133
29801 영포티는 모르겠고 [7] file 바보준용군 09.06 143
29800 영포티라고 아시나요? [11] 해색주 08.31 272
29799 그 동안 만든 것들 [8] file 아람이아빠 08.31 162
29798 kpop demon hunters [11] 왕초보 08.28 172
29797 가족의 중요성 [13] 인간 08.19 295
29796 휴가는 잘 다녀오셨나요? [20] 해색주 08.18 268
29795 오아시스 욱일기 논란 [5] 왕초보 08.15 251
29794 몇년만에 자게에 글을 쓰는 중인지 모르겠습니다. [11] Electra 08.14 272
29793 자세한건 만나서 이야기 하자. [12] 산신령 08.13 260
29792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19] highart 08.09 286
29791 무지개 다리를 건너다. [6] 인간 08.03 391
29790 밤새우는 중입니다. [15] 왕초보 07.29 286
29789 가방..안 팔아요 [12] file 아람이아빠 07.19 386
29788 MSN은 진정 보수 우파였던 것일까요 [6] 엘레벨 07.19 321
29787 컨테이너와 산업디자인 [17] 왕초보 07.16 312
29786 롱릴리프라고 아시나요? [15] 해색주 07.07 381
29785 할 일도 없는데.. 대출광고 명함 신고나 매일 해야겠네요 [7] 아람이아빠 07.07 320

오늘:
6,235
어제:
17,872
전체:
17,023,8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