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친구 장례식

2021.02.22 14:32

나도조국 조회:847

선배 장례식 까지는 가봤는데 친구 장례식은 처음이었습니다. 이 나이까지 친구 장례식을 갈 일이 없었다는게 특이한 건지. 코로나 때문에 몇사람 밖에 못 들어가기도 했지만, 무슨 이유에선가 유난히 썰렁한 장례식장에.. 친구 아이들은 스무살 남짓은 되었는데 내 눈엔 아가 같기만 한데, 엄마랑 셋이서 까만 옷을 입고 한쪽 구석에 서 있고, 어디 앉아야 할지 서야 할지,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도 아무 생각도 없이 머릿속은 하얗기만 한 시간이었습니다.


미쿡식 장례식이라, 친구 녀석은 세상모르고 저 앞에서 자는 듯이 누워있는, 무슨 생각을 해도 숨이 턱 막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섯개 남짓 서 있던 화환은 누구한테서 온건지. 그 중 하나는 우리가 보낸 거라는 것 정도.


대학 들어가서 마지막 학위하고 나올때까지 십년 이상을 바로 옆에서 보냈는데, 이 녀석이 어떻게 여기 지금 누워있는지 아무 것도 아는게 없다는 현실. 미국에 와서도 바로 이웃에 살았는데, 왜 이렇게까지 아무 연락도 안하고 살다가 이런 소식을 듣고서야 얼굴을 보게 된건지. 무슨 생각을 해봐도 아무 답은 안나오고. 녀석은 자는듯 웃는듯 그냥 누워만 있습니다. 내 기억속에 있던 환하게 웃는 젊은 날의 얼굴은 그대로 있는데, 머리숱은 세월이 할퀴고 지나간건지.


장례식이 끝나고, 여느 미쿡 장례식에서 하듯이 한사람씩 나가서 가까이서 먼저간 사람 얼굴을 들여다 보고. 바로 옆에 서 있는 가족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말을 건네고. 인사를 하고 나왔습니다. 장례식장 건물 한쪽 구석에 영구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약한 시간이 되면 녀석을 싣고 화장장으로 갈 것이고, 조그마한 항아리에 담겨 가족 품에 안기겠지요. 그냥 그렇게 가는 건가 봅니다. 주차장에 있던 차들이 다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차를 가지고 빠져나왔습니다. 틀림없이 가족이 같이 있는데.. 그 녀석만 두고 떠나는 것 같아서.


아빠가 먼저 가버린 가족이 미쿡서 살아갈 수 있을지. 아이들은 공부를 제대로 마치고 삶을 이어갈 수 있을지 수많은 의문이 꼬리를 물었지만 오늘 물어볼 일은 아니다 싶기는 한데.


잔인한 달입니다. 장례식이라고 나눠준 떡 한덩이 베어 뭅니다. 야속하게 떡이 참 맛있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공지 [공지] KPUG 운영비 모금. 안내 드립니다. - updated 230805Sa [26] KPUG 2023.08.05 8018
공지 [안내의 글] 새로운 운영진 출범 안내드립니다. [15] 맑은하늘 2018.03.30 30646
공지 KPUG에 처음 오신 분들께 고(告)합니다 [100] iris 2011.12.14 440885
29768 소소한 지름들 new 해색주 05.04 3
29767 펌/ 무거운 침묵 by 추미애 newfile 맑은하늘 05.04 13
29766 시민들이 모여있네요. 조국 장관 이후.오랜만에 서초역 왔네요 [7] update 맑은하늘 05.03 47
29765 비가 오네요. [2] 해색주 05.01 63
29764 손수건 만들기.. [10] file 아람이아빠 04.28 93
29763 추천 가전제품 (비데랑 정수기) [4] file minkim 04.19 291
29762 오랜만에 등산화 신고 천마산역 가는길이네요 [9] 맑은하늘 04.13 596
29761 10년 넘어서 노트북 바꿨습니다. [14] file matsal 04.12 615
29760 전 이 시국에 미싱.. 갤럭시탭 케이스 리폼.. [2] file 아람이아빠 04.11 560
29759 이 시국에 팜 =) [7] 왕초보 04.11 566
29758 윤석렬 대통령 파면 [11] 해색주 04.04 569
29757 Palm M505/M515 [7] 라이카 04.04 265
29756 현재 00시 27분 시민들과 안국역에 있네요 [10] file 맑은하늘 04.04 245
29755 희망은 있는걸까요 ? Hope... [18] 맑은하늘 04.03 278
29754 항상 집이 쵝오 라고 느끼는 이유가 [13] file 바보준용군 03.31 323
29753 털찐 강아지..새 옷 입고.. [9] file 아람이아빠 03.28 276
29752 경북 산불이 엄청나네요. [6] 왕초보 03.26 325
29751 연금 개혁에 말이 많군요. [6] 해색주 03.22 318
29750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는군요. [17] 해색주 03.20 329
29749 하하하 제감자탕 뼉다구가 말입니다 [16] 바보준용군 03.20 297

오늘:
903
어제:
2,195
전체:
16,237,7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