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후가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2023.06.22 03:35
저 말을 87년에 듣고 다시 듣게 되네요. 87년에 들었을때는 딱 두.달.만에 작은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이번에는 아버지신데,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어떻게 이 방학 와중에 우리나라를 들어가야할지. 간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지. 멍 하네요.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갑니다. 87년은 우리나라에도 많은 일이 일어난 해지만 개인적으로도 작은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몇달 사이에 돌아가시면서 많은 기억/추억들을 남기고 가셨지요. 그리고 10년 남짓 후에는, 제가 미국 나와있었던 핑계로 모르고 있었던, 다른 작은 아버지의 소식, "2주 남았단다"을 듣고 무작정 미국-인천-부산 으로 바로 들어갔었네요.
2주 남았다던 작은 아버지는 잠옷바람으로 맞아주셨고, 평소보다 체중이 많이 줄어있으시기는 했지만, 얼굴색도 좋고, 아예 건강하신 분이었습니다. 아담한 뒷산 가볍게 산책도 하고, 기장에 가서 점심도 먹고 바닷바람도 잘 즐기고, 즐거운 마음으로 미국으로 돌아왔네요.
그러고 한달 쯤 지났을까, 작은 아버지 잘 계시죠 하고 아버지께 여쭈어 보았더니, 갔다. 하시더군요. 의사가 얘기한대로 딱 2주뒤에 가셨답니다. 제가 갔던 그날, 반짝 좋았었고, 그날 밤에 혼수상태에 빠지셔서, 2주후에 가셨다네요. 이미 잘 보고 갔고, 굳이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얘기하지 않으셨다네요. 그 날 내가 안 갔으면 며칠이라도 더 사시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들었었습니다.
어제 "예후가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라는 문자를 받았네요.
그냥 멍 합니다.
코멘트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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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리
06.2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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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조국
06.22 08:51
아.. 되뇌기에는 너무 아픈 기억을 공유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여기 일들 대충 정리하고, 가능한한 빨리 들어가 볼려고 합니다. 항암이 기적적으로 잘 되어서 기우에 그치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무것도 못하더라도 아버지랑 함께 한 기억이라도 조금 더 만들고 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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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phonse
06.22 21:33
에고... ㅠㅠ 우째요. ㅠㅠ -
나도조국
06.23 00:42
늘 그러셨지만, 전화속의 아버지는 그냥 덤덤하시네요. 갈때 되었으면 가야지. 일단 해 볼 수 있는 치료는 다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 연세에 할 수 있는 치료라는게 그리 많지 않은데, 그 연세에 암이 이렇게 빨리 퍼지는 것도 흔치 않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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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하늘
06.22 22:39
조금의 시간이라도 행복한 기억, 추억...사랑하는 이들과의 시간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몇일이라도 몇달이라도 더 시간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평안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
나도조국
06.23 00:42
딱 제가 바라는 게, 조금이라도 시간이 더 있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잘 보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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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kim
06.23 00:12
어휴, 무슨 말을 해야할 지... 언젠간 누구에게나 닥쳐올 그 때가 되었군요. 부디 평안한 시간 보내시길 기원드립니다. -
나도조국
06.23 00:44
맞습니다. 언젠가는 누구에게나 닥쳐오는 시간인데, 또 어떻게 생각하면 갑자기 닥치는 것보다 이렇게 예고를 해 주는게 더 좋을 수도 있는데, 이 나이가 되어서도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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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준용군
06.23 06:51
마음 고생 심하시겠네요..힘내십시요 -
나도조국
06.23 09:53
아직은 그냥 멍 합니다. 점점 힘들어지겠지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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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뷔1
06.23 08:28
떠나 보내 놓고 돌아 보면 몇 가지 후회되는 일들이 있더군요.
같이 여행을 다녀온 기억이 1도 없고, 같이 술 한 잔 해본 적도 없고, 같이 목욕 해본 게 언제인지....
남아 있는 기억이라고는 병상에 누워있던 모습밖에 없네요.
맑은하늘 님 말씀처럼 조금의 시간이라도 같이하는 시간을 가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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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조국
06.23 09:54
고맙습니다. 그래서 하루라도 더 건강하실때 뵙고 오려고 합니다. 여행이 힘드시면 산책이라도 하고, 그것도 힘드시면 얘기라도 좀 더 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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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이아빠
06.23 11:57
아버지가 폐암 수술 하셔야 한다고.. 서울에 있는 병원 가시겠다고..
병원에서 수술전 아버지 상태 설명 듣고 어찌나 울었는지.. 그냥 눈물밖에 나오지 않더군요.
수술실 들어 가실 때 안아드리고 싶었는데...
수술 후 3주 뒤에 돌아가시고 난 뒤에 그 때 안아드리지 못 한게 십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후회 되더군요. 갑자기 돌아가실거라 예상을 못 한 이별이라.. 마음 추스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더군요.
남은 시간이라도 좋은 추억 만드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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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조국
06.24 02:00
아픈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저도 어쩌면 시간이 그렇게 밖에 없을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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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색주
06.24 03:55
마음 고생이 심하겠습니다. 아버님과 좋은 시간 보낼 수 있기를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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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조국
06.27 01:47
고맙습니다. 다 때려치고 비행기표 알아보고 있어야 하는데 자꾸 일만 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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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bilee
06.24 19:57
잘 치료되시고 다시 건강을 회복하시길 기도합니다. -
나도조국
06.27 01:48
고맙습니다. 모조리 오진이라는 얘기가 나오면 좋겠는데 하루 하루 상황이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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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호
06.25 00:02
어떻게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번엔 그 예후가 잘 맞지 않기를 기도해 보며
소중한 기억을 되살리시고 또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소중한 분들과 몇 번 갑자기 이별을 하면서 (수일 전까지도요)
"내일"이 참 사치스러운 개념임을 느끼면서도,
좀 정리되고... 시간 나면 보자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는
스스로의 오만과 한계를 매번 느끼곤 합니다.
하루하루가 추가되는 축복인데 당연이라 생각하는 오류....
벗어나기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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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조국
06.27 01:50
고맙습니다. 하루 하루가 소중한데 입원을 하시니 전화 드리기도 쉽지 않네요. (휴대전화를 갖고 입원하셨는데, 입원실 안에서는 아무도 전화를 쓰지않는답니다. 남 불편하게 하는건 절대 못하는 성격이셔서 -_-;;) 나와서 전화를 해야 하는데 아버지 상태가 입원실을 나오실 수가 없어서 문자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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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06.26 15:01
힘 내시라는 말씀 외에 달리 드릴말이 없네요.
힘 내세요. -
나도조국
06.27 01:50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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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령
06.28 10:43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87년 어느 날 좋은 6월에 아버님이 돌아 가셨습니다.
암투병을 오래 하셨고, 임종 직전에는 고통 때문에 고생도 많이 하셨습니다.
임종 당일. 아침에 등교를 위해 안방에 들려 양말을 신고 있는데, 누워 계신 아버님이 조금 주물러 달라 하시더군요.
보통은 2~30분을 주물러 드렸었는데, 이때는 등교란 핑계로 한 5분 대충 하고 학교로 출발 하는데 아버님이 매우 아쉬워 하시더군요.
점심 시간에 학교로 연락이 왔고 집으로 돌아 가는 길이 정말 힘들고 허무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제가 뵌 아버님의 마지막 얼굴은 통증 때문에 막내 아들에게 몸을 주물러 달라 하셨는데 학교를 가야 한다는 핑계로 서둘러 떠나는 아들에 대한 서운함 가득한 얼굴입니다.
당시 아버님의 연세는 만 48세이셨습니다.
지금은 제가 일찍 단명 하신 아버님보다 오래 살고 있고, 몸은 불편하시고 힘드시지만 팔순의 어머님도 생존해 계십니다.
지난 주에도 가평에 다녀 왔지만 제가 생각 하는 효도는 그저 얼굴 자주 보여 드리고, 식사 같이 하는게 최고의 효도라고 생각 합니다.
많이 미흡하지만 효도 하려고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 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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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조국
06.28 13:29
얼마나 힘드셨을지 (아버님도 산신령님도) 상상이 안 갑니다. 아픈 기억은 잊혀지지 않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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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령
06.28 14:12
지난 주 24일 토요일이 아버님 제사였습니다.
벌써 36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신기하게도 아버님의 얼굴은 아직도 생생해요.
마지막 모습 아니어도 생전의 여러 상황이 생생하게 기억 나기는 해요.
열이 많이 나서 아버님 자전거 뒤에 앉아서 병원 가는데 느꼈던 아버님 등의 편안함.
막걸리나 소주 한 잔 드시면서 웃으실 때의 그 넉넉함.
심심치 않게 들렸던 어머님과의 부부싸움 소리... 더 이상 볼 수 없다는게 안타깝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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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조국
06.30 02:37
보내드리고 오면 사무치는 그리움이 시작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세상 열심히 살다가 다시 뵙게 될 날이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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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산왕
06.28 19:22
위로의 말씀 드립니다.
아버지 께서는 왕초보님 처럼 지혜롭고 강인한 아들을 두셔서 자랑스럽고 행복하실 겁니다.
가족과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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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조국
06.30 02:38
강해야 하는데 강하지 못하네요. 고맙습니다. 한번은 겪어야 하는 일이고 결코 일찍 오는 것이 아닌데, 쉽지는 않네요.
작은 아버지와 아버지는 준비해야하는 것이 마음가짐의 차이만은 아닐거에요. '큰 일'에 대해 하나하나 점검하고 정리해서 대비하시길 조심스럽게 말씀드려봅니다. 저 역시 어딘가에 출제로 인해 비공개합숙에 들어가 있을 때 보안 전화로 온 쪽지로 '아버지 위독'이란 문구 하나로 나가야하나 고민하다 나왔더니 2주만에 아버지가 소천하셨습니다. 남의 일에는 감놔라 배놔라하는 저였지만 제 '큰 일'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기억만 남아있네요. 부디 이런 걱정이 기우에 그치기를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