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경위서 쓰고 왔습니다.

2010.05.06 17:12

로이엔탈 조회:952 추천:1

이번 달부터 근무조가 바뀌어서 야근 들어가면 열 다섯 시간을 연속 근무합니다. 대신 이틀 쉽니다. ㅋ


어제 야근이었습지요. 매일 주요 상황을 파워 포인트로 작성하고 있는데, 반장이 엉뚱한 지시를 곧 잘 내립니다. 뭐랄까, 우리와 관계 없는 일인데 자꾸 파워 포인트에 추가하라는 일이 자주 있지요. 그건 내가 맡은 업무와 관계된 일이 아닌데, 왜 우리 파워 포인트에 추가해야 하느냐고 얘기를 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습니다. 계급도 위고, 나이도 위고, 짬밥도 많고,... 분쟁 일으키기 싫어서 결국 못 이기는 척 해주지만 엄청 투덜거리지요.


어제도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못하겠다고 하니까 다른 사람 시켜서 수정을 하더군요. 다시 문서 열어서 지워 버렸습니다. 상급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인쇄를 해야 하는데, 인쇄해서 줬더니 자기가 추가하라는 내용 어딨냡니다. 지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버럭 짜증을 내더군요. 은근슬쩍 말도 짧아집니다.


이미 했던 이야기, 왜 우리 업무가 아닌데 우리한테 넘어 오느냐? 실무자 의견이 이렇게 무시되어도 되는 거냐? 내가 납득할 수 있게 얘기를 해줘야 하지 않느냐? 그랬더니 야, 너를 동반한 반말이 시작되더니 니가 나보다 계급이 높냐, 니가 나보다 군생활 오래 했냐 등... 눈을 부라리며 짖어대기 시작합니다.


바로 앞에 나무로 만든 필통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눈은 반장을 쳐다보면서 오른 손으로는 필통에 든 펜과 자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반장도 눈치를 채더군요. 필통이 비워져서 필통을 움켜 쥐고 일어섰습니다. 눈이 돌아가니까 이 직장 짤리면 굶어 죽는다는 걱정 같은 건 안중에도 없게 되더라고요.


뒤에서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팔꿈치 걸고 필통 빼서 내려 놓았습니다. 큰 소리나고 하니까 사람들이 조용해지면서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퇴근하고 한숨 자고 나서 지금 생각해보니... 어떻게든 버텨서 한 방 후려 갈겼어야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ㅅ-




씩씩거리며 사라졌다가... 다시 와서 시비를 거는데, 눈 마주치면 화 날 거 같아서 모니터만 쳐다 보며 대꾸도 안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라졌다가 다시 오더니 경위서 쓰라고 하네요. 지가 바라는 건 반성문이었겠지요. 저도 사실은 잘못했습니다로 써야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한컴 사전에서 '경위'라는 단어를 찾아보니 옳고 그름을 가린다는 뜻이더라고요. 그래서 잘못했다 소리는 안 하고, 나는 이래서 이렇게 행동했다는 식으로 썼습니다. 은근히 비꼬아서 '넌 병신이야'라는 말도 세 번이나 했는데, 멍청한 자식이 못 알아봤는지 언급이 없네요.


뭐... 그렇게 한바탕 휘몰아치고... 업무 마치고 교대하는데, 사람들 다 모아 놓고 교육하기 시작하더군요. 말은 번드르르 했지만, 지가 우리 근무조에서는 가장 높은 사람이니까 지 말 잘 들어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역시나 눈 안 보고 천장 보면서 딴청 부렸습니다. 할 말 있으면 자기한테 하고, 자기가 판단해서 고칠 게 있으면 고치겠다고 하는데... 저보다 경력, 계급, 나이가 위인 분들께서 이미 여러 차례 얘기했음에도 바뀌는 게 없자 포기하고 다른 근무조로 옮겨 버렸습니다. 사실은 저도 옮겼어야 했는데, 같이 일하는 분이 저보다 더 반장을 싫어해서 제가 참아보겠노라고 양보했거든요.




뭐... 이미 2002년에 악연이 있긴 했습니다. 당시 영내 하사였는데, 당직 서던 지금의 반장과 싸움이 있었거든요. 주먹이 오가는 싸움은 아니었고, 지는 하극상이라고 여긴다는데... 아무튼, 어리고 겁 없을 때라 달려들었었습니다. 제 동기 녀석도 몇 차례 다툰 적이 있는데, 근무 평정을 개판으로 줘서 동기가 진급 순위 꼴찌가 됐었던 적이 있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저도 지금 평정 기간입니다. 반장이 1차 평정을 하는데, 뭐라고 쓸런지 기대가 됩니다. ㅋㅋㅋ




자기한테 불만이 있고, 자기한테 말하기 싫으면 더 윗 사람한테 직접 얘기해라, 자기 안 거쳐도 된다...라고 하는데. 저는 그냥 참고 넘어가렵니다.


똥이 무슨 죄가 있냐, 밟은 놈이 바보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심란하고 그러다가... 좋은 사람들 부쩍 많이 만나게 되서 참 좋았는데... 역시나 카오스 이론은 통하누만요. 좋은 사람들 때문에 즐거우니까, 이내 나쁜 놈이 등장해서 괴롭히네요.


이 직장 때려 치우고 나가면 월 100만원도 못 받는 비정규직으로 근무할 게 분명한지라... 어떻게든 버티긴 하겠습니다만... 직장 출근하는 순간 벙어리, 귀머거리 되어야 할 거 같습니다. 공무원이 무능하다는 건, 업무에 무지하면서도 계급과 직책 이용해서 좌지우지하려는 머저리들이 위에 많아서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래는 블로그에 일기 형식으로 끄적거려야 할 글인데... 어찌하다보니 마음의 안식처에 글 남기게 됩니다. 좋은 글 많이 써야 하는데, 이런 글이라 죄송합니다.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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