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위서 쓰고 왔습니다.
2010.05.06 17:12
이번 달부터 근무조가 바뀌어서 야근 들어가면 열 다섯 시간을 연속 근무합니다. 대신 이틀 쉽니다. ㅋ
어제 야근이었습지요. 매일 주요 상황을 파워 포인트로 작성하고 있는데, 반장이 엉뚱한 지시를 곧 잘 내립니다. 뭐랄까, 우리와 관계 없는 일인데 자꾸 파워 포인트에 추가하라는 일이 자주 있지요. 그건 내가 맡은 업무와 관계된 일이 아닌데, 왜 우리 파워 포인트에 추가해야 하느냐고 얘기를 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습니다. 계급도 위고, 나이도 위고, 짬밥도 많고,... 분쟁 일으키기 싫어서 결국 못 이기는 척 해주지만 엄청 투덜거리지요.
어제도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못하겠다고 하니까 다른 사람 시켜서 수정을 하더군요. 다시 문서 열어서 지워 버렸습니다. 상급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인쇄를 해야 하는데, 인쇄해서 줬더니 자기가 추가하라는 내용 어딨냡니다. 지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버럭 짜증을 내더군요. 은근슬쩍 말도 짧아집니다.
이미 했던 이야기, 왜 우리 업무가 아닌데 우리한테 넘어 오느냐? 실무자 의견이 이렇게 무시되어도 되는 거냐? 내가 납득할 수 있게 얘기를 해줘야 하지 않느냐? 그랬더니 야, 너를 동반한 반말이 시작되더니 니가 나보다 계급이 높냐, 니가 나보다 군생활 오래 했냐 등... 눈을 부라리며 짖어대기 시작합니다.
바로 앞에 나무로 만든 필통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눈은 반장을 쳐다보면서 오른 손으로는 필통에 든 펜과 자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반장도 눈치를 채더군요. 필통이 비워져서 필통을 움켜 쥐고 일어섰습니다. 눈이 돌아가니까 이 직장 짤리면 굶어 죽는다는 걱정 같은 건 안중에도 없게 되더라고요.
뒤에서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팔꿈치 걸고 필통 빼서 내려 놓았습니다. 큰 소리나고 하니까 사람들이 조용해지면서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퇴근하고 한숨 자고 나서 지금 생각해보니... 어떻게든 버텨서 한 방 후려 갈겼어야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ㅅ-
씩씩거리며 사라졌다가... 다시 와서 시비를 거는데, 눈 마주치면 화 날 거 같아서 모니터만 쳐다 보며 대꾸도 안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라졌다가 다시 오더니 경위서 쓰라고 하네요. 지가 바라는 건 반성문이었겠지요. 저도 사실은 잘못했습니다로 써야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한컴 사전에서 '경위'라는 단어를 찾아보니 옳고 그름을 가린다는 뜻이더라고요. 그래서 잘못했다 소리는 안 하고, 나는 이래서 이렇게 행동했다는 식으로 썼습니다. 은근히 비꼬아서 '넌 병신이야'라는 말도 세 번이나 했는데, 멍청한 자식이 못 알아봤는지 언급이 없네요.
뭐... 그렇게 한바탕 휘몰아치고... 업무 마치고 교대하는데, 사람들 다 모아 놓고 교육하기 시작하더군요. 말은 번드르르 했지만, 지가 우리 근무조에서는 가장 높은 사람이니까 지 말 잘 들어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역시나 눈 안 보고 천장 보면서 딴청 부렸습니다. 할 말 있으면 자기한테 하고, 자기가 판단해서 고칠 게 있으면 고치겠다고 하는데... 저보다 경력, 계급, 나이가 위인 분들께서 이미 여러 차례 얘기했음에도 바뀌는 게 없자 포기하고 다른 근무조로 옮겨 버렸습니다. 사실은 저도 옮겼어야 했는데, 같이 일하는 분이 저보다 더 반장을 싫어해서 제가 참아보겠노라고 양보했거든요.
뭐... 이미 2002년에 악연이 있긴 했습니다. 당시 영내 하사였는데, 당직 서던 지금의 반장과 싸움이 있었거든요. 주먹이 오가는 싸움은 아니었고, 지는 하극상이라고 여긴다는데... 아무튼, 어리고 겁 없을 때라 달려들었었습니다. 제 동기 녀석도 몇 차례 다툰 적이 있는데, 근무 평정을 개판으로 줘서 동기가 진급 순위 꼴찌가 됐었던 적이 있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저도 지금 평정 기간입니다. 반장이 1차 평정을 하는데, 뭐라고 쓸런지 기대가 됩니다. ㅋㅋㅋ
자기한테 불만이 있고, 자기한테 말하기 싫으면 더 윗 사람한테 직접 얘기해라, 자기 안 거쳐도 된다...라고 하는데. 저는 그냥 참고 넘어가렵니다.
똥이 무슨 죄가 있냐, 밟은 놈이 바보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심란하고 그러다가... 좋은 사람들 부쩍 많이 만나게 되서 참 좋았는데... 역시나 카오스 이론은 통하누만요. 좋은 사람들 때문에 즐거우니까, 이내 나쁜 놈이 등장해서 괴롭히네요.
이 직장 때려 치우고 나가면 월 100만원도 못 받는 비정규직으로 근무할 게 분명한지라... 어떻게든 버티긴 하겠습니다만... 직장 출근하는 순간 벙어리, 귀머거리 되어야 할 거 같습니다. 공무원이 무능하다는 건, 업무에 무지하면서도 계급과 직책 이용해서 좌지우지하려는 머저리들이 위에 많아서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래는 블로그에 일기 형식으로 끄적거려야 할 글인데... 어찌하다보니 마음의 안식처에 글 남기게 됩니다. 좋은 글 많이 써야 하는데, 이런 글이라 죄송합니다. ㅠ_ㅠ
코멘트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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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하늘
05.06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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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남자
05.06 17:33
토닥토닥...잘 참으셨어요.
끝까지 이 직장 유지해야 합니다.
전 한계급 위인 분이 5일만에 주요사업설명서를 만들어보자 하셔서 반대표를 던졋네요
취합하고 편집해야 하는 제 입장에선 기관과 부서는 이틀밖에 시간을 줄 수 없거니와, 변동사항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미리 주요사업설명서를 만든다는 건 여러모로 문제가 있다 생각되서요...
사실은 말은 그 분이 하셔도 제 팔다리가 고생해야 할 문제라.....너무 시간이 없는게 싫습니다.
그러나 내내 찜찜해요...아..난 소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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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솜진주
05.06 17:40
옛날 군대생활을 하면서 저의 참모생각이 나네요~~
벌써 10년이지난 일이지만요..
저도 참모(중령 그것도 말년고참)와 싸우면서 참모책상을 보는대서 겉어찾거든요.
(저의 군대생활 8년)
힘내시구요..지혜롭게 헤쳐나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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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05.06 19:51
토닥토닥..
그런데 참모가 중령이면.. 연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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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솜진주
05.07 09:41
중령=대대장 / 대령===연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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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명
05.06 20:02
우리도 근평하는데... 급수 별로 합니다.....
저는 6급인데;; 우리 지사에서 6급은;;;; 저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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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타
05.06 21:23
아직 젋으셔서 그래요... 그런사람때문에 직장을 관둔다 해도 그들은 신경도 안쓸텐데... 왜.. 손해보는 행위를 하세요..
그냥.. 무시하시고. 걍.. 다른곳에 신경쓰시는것이 좋을듯해요..
웬만한것 해달라고 하면 해주시는 센스도 보여주시구요.. ^^;
천천히 가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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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도 저런 순수함이 있을때가 있었더랬죠. 언제더라.. ^^;;
그리고 잘 참으셨어요. 누구 좋으라고.
친구가 참 고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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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엔탈
05.06 23:13
다독거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능력이나 되고 오라는 데나 많으면 에라이~ 하고 때려 치울텐데...
그렇게 자꾸 옮겨 타다 보면 결국 제 자리겠지요. 그냥 생각 안 하려고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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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샛별
05.07 00:37
저랑 비숫한 상황인 듯 싶네요.
저도 직장 상사와 무척이나 자주 싸우는 편이거든요.
이미 오래전부터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죠.
직속상사라고 할 수 있는 계장은 별 문제가 없는데...
그 위로 부장, 차장, 기장, 소장, 사장이 문제라서 싸우고 있죠.
사실 싸우는 이유가 다른 부서로 가겠다고 우기는 데... (갈 수 있는 사유가 되거든요.)
사장이하 소장, 기장, 차장, 부장급에서 못 보내주겠다고 해서 전쟁이 시작된 거거든요.
아직까지 결판이 나지 않는 상태이기에 언젠가는 또 한바탕 싸울 듯 해요.
빨리 다른 부서로 가든지 해야 싸우지 않을텐데... 힘드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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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비슷합니다. 저는 외국 사람들한테 둘러 쌓여서 무슨 동물원 원숭이 같은 느낌 들 때도 많고요. 출입문 옆에서 조금 안쪽으로 자리좀 옮겨 달라고 하니 다른 사람들이 다 중요하고 나만 곧 나갈 사람이니 그냥 참고 버티라는 식으로 답을 들었습니다. 제가 큰소리 치면 외국 사람의 대처 방안에 대해서 그 사람들끼리 회의를 하고 저의 행동에 어떻게 대응할지 이야기 하는 것 같아요. 자국말로 이야기 하니 제 눈앞에서 뭐라고 회의를 해도 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경력을 쌓는 다는 게 이런 것도 포함되는 것 같아서 그냥 꾸욱 참고 있습니다.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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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l5brj
05.07 12:21
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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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넷
05.07 16:35
기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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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05.07 19:45
직장생활 하시는 분들 그런 경험들 한번씩은 다들 가지고 계시죠?
그냥 어금니 꽉 깨물고 넘어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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閒良낭구선생
05.07 21:41
아무리 좋은 직장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맘같지않다능...
스트레스 어떻게 풀것인가...그게 관점일듯...
편하게 생각하면서 다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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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
05.08 23:49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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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얀
05.09 10:55
사는게 요새 정말 힘들긴 힘들죠...
업무 마무리 시간인데, 글 읽고, 사회생활하면서, 비슷한 경험들 한, 두번 해보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제가 경험해보니, 시간이 흘러도, 변한것은 없는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일상이 반복되더라구요..
제가 생각해 보면, 일단 피하는것이 상책입니다.
좋은게 좋지 하면서, 넘어가려고 하다가도, 자신이 절제를 못할(?) 정도의 상황까지 된다면, 어느 정도의
선을 이미 넘은것이라 생각합니다.
직장을 그만두는것은, 정말 마지막 상황에서, 생각할 것이니....생각지 마시구요...
일단 조를 바꾸는 방법을 열심이 찾아보는것이 우선인것 같습니다.
저도 다른이들의 고충 들어주려고 하는데, 그러다가, 정작 제 자신이, 정신 못차리고 있을때가 있습니다.
이기적인것 같지만, 자신의 마음과 몸이 편해야, 남을 돌아볼 여력이 생깁니다. 스트레스 너무 받지 마시고
한단계, 윗분하고, 소주한잔 하시든지, 나름 여러방법으로, 직, 간접적으로 현 상황을 잘 전달해 보시길...
주위 도움을 요청할 때는, 너무 주위의 상황 생각하지 마시고, 도움을 요청하세요
도와주고, 도움 받고, 그게 사회생활 아닌가 하고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