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19금) 추억 이야기 7번째. 방석집 그녀
2010.02.13 22:34
추억 이야기 일곱번째 - [ 방석집 그녀 ]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한여름이었다. 늦은 시간까지 잔업을 하며 땀을 흘리며 일을 마친 직장 동료와 나는 시원한 맥주 생각이 간절했다. 퇴근 후 맥주와 함께 시작된 술자리는 다음날 출근에 대한 부담감이 없다는 이유로 소주와 맥주를 반복하며 새벽길을 방황하게 되었다. 마지막 한잔을 외치며 찾아간 곳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방석집이었다. 이미 아침을 맞이하는 시간이었기에 영업을 끝낸 집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우리를 반겨주는 곳이 남아 있었다. 다시 술상자가 들어 왔고 술 못 먹고 죽은 귀신이라도 들린 듯 엄청나게 마셔버렸다. 마치 몇년동안 마셔야 할 술을 하룻밤에 모두 마셔버리려는 듯 했다. 들여온 술상자가 비어갈 즈음 방석집의 마지막 코스가 남아 있었다.
직장동료는 술자리 파트너와 함께 옆방으로 사라졌고 내 곁에서 술시중을 들던 그녀와 단둘이 남았다. 하지만, 방석집의 마지막 코스를 진행하기엔 술을 너무나도 많이 마셔 버린탓에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진행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영업을 마칠 시간이 되었으니 밖에서 잠시 기다렸다가 자신의 집으로 같이 가자고 제안했고, 빨리 쓰러져 잠들고 싶었던 나는 아무생각없이 가까운 곳이라는 말에 응하게 되었다. 직장동료를 택시에 태워 보낸 후 얼마 뒤 그녀가 나왔고 우리는 그녀가 임시로 머물고 있던 모텔로 들어 갔다. 그리고 아침이 밝을 때까지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그 날 이후로 그녀를 만날 기회는 없었다. 상당한 지출이 있었기에 몇 달동안 카드값을 매우느라 술자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계절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었다. 회사에서 돌발상황이 발생하였고 늦은 시간까지 잔업을 해야 했다. 땀을 흠뻑 흘리며 돌발상황을 처리하고 밖으로 나오니 시원함도 잠시 차가운 바람에 온몸이 얼어버릴 듯 했다. 이런날엔 따뜻한 사케가 마시고 싶어진다. 일본식 선술집에서 정종을 데운듯한 일본술 사케를 마시며 술자리가 시작 되었다. 술을 마시는 것이 쉽게 절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세상에 알콜중독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한잔의 술은 두잔을 부르고 두잔은 석잔을 넘어 한상자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1차에서 시작하여 5,6차가 될 무렵 우리는 예전의 방석집을 기억해 냈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하늘에 미명이 비칠 무렵이었다. 예전의 파트너를 옆에 앉히고 다시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영업이 끝난 후 직장동료는 택시를 타고 떠나고 나는 그 자리에 남았다. 잠시 후 내 옆에 앉아 있던 그녀가 나왔고 그녀의 새로운 보금자리로 향했다. 후미진 골목 안쪽에 작은 방하나를 얻었다고 했다. 그녀의 방은 무척 추웠다. 보일러가 고장났다고 했다. 기름마져 없어 오랫동안 돌리지 못하였다고도 했다. 차가운 그녀의 방에서 새벽까지 마셨던 술이 아무런 효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추위속에 얼어 버렸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겉옷을 벗을 생각도 하지 못한체 전기장판에 열이 오르기를 기다렸다. 전기장판의 바닥은 그나마 따스했으나 우풍이 심한 듯 입김이 하얗게 피어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두꺼운 옷을 껴 입고 이불속에 누웠으나 쉽게 잠이오지 않았다. 서로를 껴 안은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에겐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있다고 했다. 이혼 후 아들과 함께 생활하였으나 마땅한 직업을 구할 수 없어 생활이 빈궁해졌고 결국 아들은 아버지에게 보내졌다고 했다. 처음엔 연락도 하고 가끔 만나기도 했으나, 몸파는 일을 하게 되면서 연락을 끊었다고 했다. 삶이 너무 힘들어 자살도 여러번 시도했다고 하였다. 그녀의 손목에 그어진 자국들이 아픈 상처를 간직하고 있었다. 아침이 오기까지 그녀는 몇번이나 눈물을 보이고 있었다.
창밖이 환히 밝아 올 무렵이 되어서야 그녀의 방에서 나왔다. 내가 그녀를 위해 도와 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또다시 술취한 남자들을 상대하며 몸을 팔게 될 것이고 그 돈으로 기름을 사고 보일러를 고칠 것이다. 보일러를 수리 할 때까지 차가운 방안에서 누워 있을 그녀를 생각하니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 세상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삶을 모두 알 수는 없기에 그들이 겪고 있는 제각각의 고통의 비중을 누가 심하고 누가 가볍다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약자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사는 듯 하다.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매춘부들과, 불편한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들과,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노동자들과, 알지 못하는 곳에서 나름의 괴로움으로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올해는 희망을 바라 볼 수 있기를 바래 본다.
코멘트 24
-
별_목동
02.13 22:35
추천:1 댓글의 댓글
-
맑은샛별
02.13 22:37
안 읽으셔도 되요~~ 야한 이야기 아니에요~~ ^^;;
추천:1 댓글의 댓글
-
Mito
02.13 22:46
슬픈 현실이죠...
추천:1 댓글의 댓글
-
맑은샛별
02.13 22:55
하루쯤은 이들을 위해 기도해 줬으면 해요.
추천:1 댓글의 댓글
-
별_목동
02.13 22:49
안경 쓰고 다시 읽었습니다.
수기인가요?
이런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라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프네요.
명절에 따로 갈 데도 없을텐데요.
추천:1 댓글의 댓글
-
맑은샛별
02.13 22:57
안경까지 쓰고... 글을 너무 많이 적었나 봐요. ^^;;;
제가 올리는 대부분의 글들은 경험에서 나오는 거에요.
명절에 더욱 외로움을 느끼시는 분들을 위해 잠시나마 기도해봐요.
추천:1 댓글의 댓글
-
라기
02.13 22:50
사실 .. 생계형 보다는..
쉽게 벌기 위해서 늘어나는 것들이 더 마음 아픕니다..
스트레스 받은거 풀러 호빠 -_-; 가는 그런것들요..
추천:1 댓글의 댓글
-
맑은샛별
02.13 22:58
요즘은 쉽게 벌 수 있는 이유로 하시는 분들도 많은 듯 해요.
오래전 동호회에 나오시던 여성분도 남성회원을 꼬드겨서 쉽게 용돈을 타서 쓰더군요.
(자취하는 남성회원의 집엘 밤 늦게 왜 찾아갔는지는 아시는 분만 아시죠. ㅜ_ㅜ)
아.. 케퍽 이야기는 아니에요.
제가 활동하던 지역 동호회 이야기에요~~ ^^;;
추천:1 댓글의 댓글
-
꼬소
02.13 22:59
가슴 한켠이 아려온다는 말이 실감나는 글이네요..
현실이라면 참... 매정한 현실이군요..
추천:1 댓글의 댓글
-
맑은샛별
02.13 23:13
네.. 현실이에요.
지금도 그 방석집에 가면 그녀가 있을꺼에요.
하지만... 올 해는 술을 자제하려고 계획중이라....
추천:1 댓글의 댓글
-
yohan666
02.13 23:28
음.. 저도 전에 이런 생각을 해본적이 있었지만...
세상에는 구해야 할 사람들은 많은데 내 능력은 어떤가????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추천:1 댓글의 댓글
-
맑은샛별
02.13 23:34
세상엔 정말 소외되고 외면받는 사람이 많이 있죠.
그들중에 한명이라도 제대로 구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의 능력은 스스로 조차 나락에서 구원하지 못하고 있네요. ㅠ_ㅠ
추천:1 댓글의 댓글
-
Dr.Aspirin
02.13 23:41
제 선배님들중의 한 분이 비슷한 처지의 여자분과 냉혹한 현실에서 만나 결혼까지 고려했다가 그만 둔 적이 있었습니다. 여자 분의 상처가 너무 커서 어디서부터 치료를 해주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말씀을 했었고, 결국 여자분이 먼저 떠나셨더랬지요. 특별한 케이스라고 할까요, 또다른 회사 선배같은 경우는 그런 처지의 여자분과 결혼을 했고, 과거를 묻지 않는 조건하에 지금까지 살고 있죠. 그런데 그 선배님도 술만 드시면 욱하는 성질때문에 결혼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은 듯 합니다. 술을 어서 끊어야 할텐데....
추천:1 댓글의 댓글
-
맑은샛별
02.14 00:04
전 한 때 장애여성과 결혼하겠다는 결심을 한 적이 있어요.
여러 봉사 모임에서 활동하면서 장애인들의 순수함에 끌렸었죠.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더라구요. 마음에 두는 이성이 있었지만.. 대쉬도 하지 못했어요. ㅠ_ㅠ
추천:1 댓글의 댓글
-
과수원지기
02.14 00:00
쉽게 단정할 수 없는 삶의 무게를 느끼게 됩니다.
추천:1 댓글의 댓글
-
맑은샛별
02.14 00:05
삶의 무게는... 정말 무거워요. ㅜ_ㅜ
추천:1 댓글의 댓글
-
왕초보
02.14 04:28
흐릿한 사진.. ;_;
-
맑은샛별
02.14 09:16
삶이 그렇죠. 흐릿한 창문으로 보이는 것처럼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인생... ㅜ_ㅜ
추천:1 댓글의 댓글
-
산신령
02.14 12:47
차분한 글 잘 읽었습니다.
가끔은...(정말 가끔... ) 샛별님의 삶이 부럽단 생각을 해 봅니다.
// 전 이런 글 구경 할 수 있는 이곳이 정말 좋습니다~!
-
맑은샛별
02.14 17:15
제 삶이 아주 가끔이라도 부러워 할만한 삶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네요. ^^;;
저도 여러분야에서 뛰어난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는 케퍽이 정말 좋아요. ^^*
-
왕초보
02.14 13:56
서산마루에 시들어 지는 지쳐 버린 황혼이
창에 드리운 낡은 커텐 위에 희미 하게 넘실거리네
어두움에 취해버린 작은 방안에 무슨 불을 밝혀둘까
오늘 밤에는 무슨 꿈을 꿀까. 아무 것도 보이지않네.
-
맑은샛별
02.14 17:17
왕초보님... 시조시인으로 등단하셔도 되겠어요.
어쩜 그리고 절절하게 글을 쓰시는지...
-
인생은한방
02.17 12:18
아주 오래전에 듣고 또 불렀던 노래군요.....제목은 기억이 안나고....
테이프로 들었었는데, 노래하는 여학생의 그 앳되고 맑고 처량한 목소리가 기억납니다.
-
맑은샛별
02.17 13:55
아... 노랫말이었군요. ^^;;
제가 모르는 곡인 듯... 어쩐지 글이 좋다 생각했어요. ^^*
죄송합니다.. 눈이 아파서 내려버렸어요... 시나브로 읽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