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다는 것
2011.01.27 02:22
쪼금 깁니다. 스크롤이 짜증나실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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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다섯...
마흔 다섯 해를 살아왔다는 이야기이고, 갑작스런 문제만 생기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스무해 이상 더 살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일 년이라는 단위를 기준으로 숫자를 쌓아가기를 마흔 다섯 번 했다는 말이다.
어릴 적, 그러니까 법적으로도 어른이라 대접받지 못하고 학교라는 울타리를 생활의 중심축으로 움직이던 그 때까지는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그다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대접받을 수 있는 후배들이 좀 더 늘었다는 정도?
군대를 제대하고 나니 비로소 ‘나도 이제 어른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즈음이었을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조금은 무거울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성질 급한 친구들 몇은 결혼을 했고, 몇 년 후 그 친구들이 아기라는 생명체를 안고 나타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이 듦에 대해 조금씩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몇 년 후엔 아이 엄마와 헤어지고...
그 때 나는 ‘차라리 빨리 나이를 먹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기도 했다.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내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함께 손잡고 늙어가야 할 나의 반쪽이라고 생각했던 사람과의 이별은 그렇게 고스란히 통증을 남기고 떠나갔다.
아니, 어쩌면 내가 떠난 것일 게다.
그 때, 고작 다섯 살 남짓했던 딸아이는 내 손가락을 아프게 쥐고 있었다.
아이가 커가고,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으며, 이제 5학년이 된다.
딸아이는 이제 제법 자란 딸이 되어 나의 말동무가 되어준다.
오래전 아내와 사별을 하고 홀로 딸을 키운 아빠가 딸의 결혼식을 끝내고 돌아왔는데 차마 현관문을 열지 못하고 집 주위만 서성였단다.
아무도 없는, 아니 시집간 딸의 흔적이 온통 배어 있는 집에 홀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서...
무슨 뮤지컬의 줄거리라던가?
이 이야기에 나오는 아빠의 마음, 현관문조차 열지 못하는 그 속내가 이해되었고, 콧등이 찡했다.
얼마 전 끝난 드라마에서 사업에 망해 쫒기는 아빠에게 딸이 ‘아빠, 죽지마. 자살같은 건 하지 말라구요...’라며 우는 장면을 보았었다.
드라마, 영화를 보며 울어본 기억이 없었던 나는 처음으로 그 장면에서 눈물을 쏟고 말았다. 딸과 둘이서 살며 보낸 지난 몇 년이 그대로 겹쳐졌다.
나이가 든다는 것...
우리는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에 슬픔을 느낀다. 적어도 삼십대 중후반을 넘기면서부터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즐겁지 않다. 생일상에 놓인 케이크도 반갑지 않고, 그 위에 불타는 초의 숫자는 케이크를 무너트릴 것 같이 무겁게 느껴진다.
우리는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 여든을 향해 가시는 아버지는 뇌경색의 후유증으로 걸음도 느릿해졌고, 말투도 어눌해지셨다. 그럼에도 나이를 먹어가는 속도는 참 빠르게 느껴진다.
지팡이를 짚지 않으시면 바깥 외출도 힘들어하시고, 앉았다가 일어나실 때는 내 손을 잡으셔야만, 아니 내가 힘주어 잡아드려야만 겨우 일어나시는 아버지가 어찌 나이 먹는 속도는 그리도 빠르신지...
아버지는 요즘 그런 말을 하신다. ‘휴...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된 건지...’
그 말끝에 항상 따라붙는 말은 이렇다. ‘이제 어쩌냐?’
하루 하루 시간을 보내기가 버겁고, 나이 먹는 게 두려우신 게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힘들고, 자고 일어나면 또 어떻게 될지 공포스러우신 게다.
우리는 왜 나이 먹는 게 이렇게 무섭고, 어렵고, 힘든 것일까?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용기는 경험에서 나온다. 아무래 용맹한 사람도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일은 무서울 수밖에 없다. 용기를 가지려면 연습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익숙해지고 나면 무서울 것이 없다.”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군대에서는 모든 전투 상황을 가정해서 부단히 훈련을 하는 것 아니겠는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 그것은 절대 연습을 할 수 없는 일이다. 제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도, 철저하게 리허설을 하는 배우조차도 경험할 수 없는 것이 나이 듦이다. 서른 살 청년은 서른한 살을 경험할 수 없고, 마흔 다섯인 나는 마흔여섯을 절대 경험할 수 없다.
더구나 주위에 나이든 사람들조차 나에게 스승이 되지 못한다. 그들이 나이 들어가는 모습은 절대 나의 앞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섭고 힘든 것일 수밖에 없다.
나이 드는 것이 무섭지 않은 나이는 몇 살쯤일까?
단언컨대 절대 그런 나이는 없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 새로운 경험은 익숙해질 수 없으며, 누구나 나이 든다는 것은 새롭고 힘든 일이다.
그렇지 않은 척, 대범한 척, 초연한 척...
그 위선의 가면 너머에는 초조하게 진땀을 흘리며 찡그린 표정이 숨어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정답일지 모르겠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나이 든다는 것은 바로 그렇게 스스로의 약한 모습을 확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별 것 아님을 인정하게 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상상력, ‘어쩌면... 이럴지도 몰라...’라는 그 물음, 지금까지 인간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던 바로 그 가정법이 인간으로 하여금 나이 듦에 대해 공포를 갖게 하는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상상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난 몸이 약해져서 혼자 제대로 걷지도 못할 거야.’
‘불치병에 걸려서 개고생 하다가 죽을지도 몰라.’
‘내 주위엔 아무도 남지 않고 혼자 쓸쓸하게 죽어 가면 어쩌지?’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마음이 고와진다고 한다. 죽음을 실감하게 되는 그 나이쯤 되면 주위를 둘러보게 되고, 가족들에게, 친지들과 친구들, 이웃들에게 친절한 사람이 된다고 한다. 인심도 쓰고 넉넉하고 인자한 사람이 된다고 한다.
어쩌면, 이것도 바로 그 ‘나이 듦’에 대한 공포 때문은 아닐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있다.
빨리 나이를 먹어서, 지금의 이 힘든 시기가 모두 지나가고, 한가로운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조용하게 지난날들을 추억하는 낮은 목소리... 그 주인공이 되고 싶다고 말이다.
어쩌면 그마저도 나이를 먹으며 겪게 될 힘들고 어려운 시기가 무서워서 모조리 생략하고 싶은 마음, 사실은 나이 먹는다는 것이 무서워서 매해 한 살씩 무거워지는 나이를 건너뛰고 싶은 그런 마음일지도 모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나이를 먹는 것만큼 무서운 것도 없지만...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던가?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에서 키팅 선생님, 우리의 캡틴께서 외쳤던 바로 그 말... 까르페디엠!
일부러 귀신의 집 체험도 하는 마당에 나이 먹는 공포도 즐기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뒤를 돌아보니...
서른아홉, 이를 갈며 삼십대의 아홉수를 아프게 살아낸 내 모습이 보인다. 딱 그 정도면 견딜 만 할 것 같다.
코멘트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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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peraesthetic
01.27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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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덤덤한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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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욱
01.27 03:24
토닥~ 토닥~
참...애러버요...인생.
그런 생각없이 살려고 도전하고 노력하는데...역시 작은 인간임을 돌아보게 되면...참, 허탈하네요.
그래도 얘기할 후손은 잘 마련하셨네요. 이루신것만 보세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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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01.27 03:52
부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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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분만큼 나이가 되지는 않았지만, 4년전에 시작한 외국 생활이 부모님과 통화나 연락을 할 때면 가슴을 천근만근이 되어 내리 누르는걸 느낍니다. 남보다 훨씬 더 늦게 시작해서 뚜렷한 결말도 보이지 않는..........
많이 공감하고 갑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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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나이인데... 장가도 못(?)가고 해논것도 없고 .......
왕초보님의 부럽.... 이란 말이... 못이되어....가슴에 팍팍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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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정말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고 읽었습니다. ( 전 아직도 인생의 성장통을 겪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노랑잠수함님도 힘내시기를.....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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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차분히 장문을 읽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나이먹고도 철없이 살기로 했습니다 ㅡㅡ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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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아자씨
01.27 09:08
저도 올해 아마 50일 겁니다.
45부터 늙는 게 몸으로 오더군요.
노안에, 등도 조금씩 굽나 싶고.... 아, 이건 컴퓨터 때문인가...
하여간...
그냥 늙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할 수 있었던 것을 할 수 없게 되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게 되네요.
웃음소리도 끽끽끽 하는 식으로 바뀌는 것 같고....
상황이야 노랑잠수함님과 많이 다르지만....
늙는다는 게 연습이 안 되는 일이니
발버둥치기보다는 그냥 받아들이는 삶을 살라고요.
어? 이젠 이게 안 되네? 음... 이젠 안 되는 건가 보다. 하고 살아요.
왜, 안돼~! 왜~!!!! 이러는 분도 직장에 있기는 한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차차 스스로 늙어가는 것을 보여주며 사시데요. 본인은 부정해도.
뭐, 주제 없고요. 그냥 그렇다는 거에요.
잘 읽었습니다.
추천 한방 때렸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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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저랑 동갑이시군요.
주위 친구 중에 노안이 온 친구들이 있어 나이드는 걸 두렵게 느낍니다.
그래도 철없이 즐겁게 살려는데 잘 안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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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녹차 한 잔을 다 마시며 읽었습니다..
나이를 먹는 것이 즐거운 사람이야 있겠어요? 특히 40넘어선 더더욱..ㅋ
저도 3년만 더 지나면 50세가 되는 나이이지만 전혀 실감이 나지도, 받아들여지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대머리아저씨님 말씀이 정말 맞는 것 같더라구요.
자꾸 옛날 생각만 하면 현재의 자기 나이를 즐기지 못한다고 하네요.
제 선배님들은 늘 이렇게 말씀하시죠..
'자네 나이만 되었어도..." ㅋㅋㅋㅋ
저도 이젠 후배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막 들어요.
오늘 부터라도 하루 하루 더 열심히 살아야 겠어요.
이왕이면 먼 훗날,
후회라도 덜 할 수 있도록. 아쉬움이 그리 크지 않도록! ^^
우리 힘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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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팅!! 하시고... 다들... 남들에게 말 못할 속앓이가 한가지씩은 있겠죠?
그래도 우린 다시 화이팅 합니다. 아빠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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閒良낭구선생
01.27 10:51
아아아아
이글 격하게 공감합니다.
더 늙기전에 저질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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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욱
01.27 11:05
푸하하하하하하하~
낭구샘님 말씀이 정답이시네요.
자자~ 지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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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빠이야
01.27 12:35
동갑분들이 많으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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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몽이
01.27 12:42
오랜만에 울림이 있는 글을 읽어서 뭐라도 리플 달고 싶어서 로그인했습니다. ^ ^
난 내 나이가 참 좋다..지금 더 젊고 싶지도 않고, 더 늙고 싶지도 않고,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나이가 참 좋다..라고 말씀하시는 50대 초반 분을 뵌적이 있습니다.
가식적이지 않은 진심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자꾸 자꾸 그 분이 행동하시는것 모두에 눈길이 갔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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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하늘
01.27 12:49
조금전, 문자 한통을 받았습니다.
생애전환기건강검진하라구요 ㅜ.ㅜ 어찌되었건, 무조건,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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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욱
01.28 01:51
히힛....Gpad 들고 꼭 다녀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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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토
01.27 13:11
좋은 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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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솜진주
01.27 13:16
눈팅으로만 지내다가 노랑잠수함님의 글에 댓글을 달고자...
저도 2년이지나면 노랑잠수함님과 같은 나이가 되네요..
그때가되면 저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이런 저런생각이 들게하네요...
힘내시구요...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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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ch
01.27 13:18
생각하게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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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일단 나이 먹음에 대해 갖는 생각은 다 같은가 봅니다.
이젠 나이 먹는 것이 익숙해질 때도 된 것 같은데...
그래도 영 그리되지 않네요.
어쨌든...
내일은 또 태양이 뜰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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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l5brj
01.27 23:22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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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01.27 23:34
힘내시고 홧팅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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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야
01.28 06:27
감사합니다. 이제 겨우 30대 초반인데... 아, 30대라는 말을 참 오랜만에 써봅니다.
난 그동안 뭘했는지... 이렇게 두번만 지나면 90일텐데... 간밤 잠들지 않아 이렇게 두리번거렸고... 자게엔 글 남기고...
못난 제 자신이 부끄러운 요즘입니다... 그래도 먼 훗날 지금을 돌아보면서 씩 웃을 수 있게 해보렵니다.
인생 선배님으로서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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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꽁이
01.31 15:20
와우... ㅎㅎ
동물의 왕국같은 프로를 보면 사자무리의 우두머리 수컷이라 하더라도 죽을때는 혼자가서 죽는 것을 보면 이제는 뭔가 이해가 되는 동물의 행동이라는생각이 듭니다. 천하장사같았던 아버지가 몸살도 걸리시고, 체중도 빠지시고, 허리도 굽고, 피부에 검버섯이 생기는 것을 보면서 우리 아버지도 늙으시는 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은 생활력이 있으셔서 잘 왕성하게 활동하시지만 2번째 은퇴후에는 제옆에서 골프랑 치시면서 생활하시면 좋겠는데 미국 오지에 있는거보다 고향가서 생활하시겠다고 하셔서 고심입니다. 옆에서 서로에게 잔소리하고 티걱태걱하며 자리를 지키는 자식이 자식노릇하는 놈이 아닌가 싶네요. 이놈에 뭔 출세를 하겠다고 부모도 부양안하고 외국에 있는지 원....
자식이 외국서 태어났으니 한국에 가기도 뭐하고.... 뭐 복잡하게 생각하면 복잡한 상황이 제 상황입니다. 허허.....
나이 늙는거, 더 크게 보면 인생... 답이 없습니다. 최소한 저한테는 그렇습니다, 신앙밖에서 생각하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