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 관한 글 [한번읽고 검수좀 부탁드려요ㅠ]
2011.06.17 05:11
누구를 위한 학생인권인가?
우리의 학교의 현실은 구속과 차별과 경쟁이 일상화되어 있다. 그런 곳에서 자유와 평등 그리고 연대의식을 키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학생인권조례의 필요성을 요구한다. 제대로 교육이 이루어 질 수 없는 환경에서 교육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시기상조라고 말하는 교육 인권에 대해서 만시지탄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교육인권조례에 대해서 다뤄보면서 과연 누구를 위한 학생인권인지 생각해 보자.
우리의 학생들은 어둑어둑한 아침 학교를 등교한다. 그리고 보충학습, 자율학습을 하고 수업을 듣는다. 그리곤 캄캄한 밤이 돼서야 학원으로 간다. 그래서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집에 올 수 있다. 또한 단순히 교사의 지시에 불응한다는 이유로 폭언과 구타를 당해야하고, 어른들의 입맛에 맞는 짧은 머리를 하고 똑같은 옷만 입어야 한다. 또한 학교에서는 가정환경조사라는 명목 아래 가정환경이나 부모님의 지위 등을 꼭 보고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
학생의 인권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학생도 인간이기에 누려야 할 권리가 있다. 일본에서는 ‘아동인권조례’를 두고 있고, 베트남은 1991년 ‘아동보호 및 교육에 관한 법’을 제정했다. 필란드는 1995년 아동을 대등한 인격체로 보는 규정을 헌법에 포함시켰다. 아프리카통합기구(OAU), 미주기구(OAS)에서도 각각 아동인권조약을 정했다. 유럽 역시 1996년에 ‘아동의 권리행사에 관한 유럽조약’을 체결했다. 물론 우리나라도 ‘청소년 보호법’이 있다. 그러나 ‘청소년 보호법’에는 학생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학생인권조례의 필요성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그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고 자랑스러운 어른이 되기를 원한다면 평화롭게 학습하면서 ‘인권’을 이야기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여려가지 말들이 있다. 학생인권조례로 교사들에게 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교권침해를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또한 교사를 왜 학생들의 적으로 모느냐고 토로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가 그런 교사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위에서 제압하고 명령을 한다고 해서 과연 교사의 권위가 서는지 반문한고 싶다. 그리고 실제 교사들의 교권을 침해하는 주범은 실제로 교육청과 교장 혹은 학부모나 학교 관리자를 지목했다. 교사들의 교권을 인정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학교운영과 행정의 개선이다. 단순히 학생인권조례가 교권침해의 주체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시민들이 자발적인 움직임으로 학생인권조례를 만드는 것, 그자체가 고무적인 일이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좋든 싫든 학생인권에 대한 말이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면서 학생인권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는 것이 무척 긍정적이다. 그러나 사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아무리 좋은 조례라 할지라도 현실과 괴리되거나 실천하기 어렵다면 무용지물이다. 열악한 학교 환경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열악한 교육의 환경 개선과 함께 학생인권에 대한 관심과 실천은 같이 병행 되어야 한다.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계속해서 학생인권을 무시할 때는 10년 뒤에도 20년 뒤에도 똑같이 열악한 환경에서 시기상조를 이야기하는 우리의 미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생인권조례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학생인권조례의 대부분은 시민들의 발의에 의하여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취지는 위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로 무척 긍정적이다. 하지만 학생인권조례조차 그 과정 속에서 학생들의 참여나 혹은 학생을 성인과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 부분이 있다. 학생인권조례안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도 학생은 아직 덜 성숙한 인간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성숙하기 위한 과정을 돕는 어른들의 방법으로 학생인권조례를 아이들에게 ‘선물’하는 것처럼 보인다. 학생의 인권을 이야기한다면 학생들의 의견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함께 만들어가야 하지만 현재는 학생들이 빠진 채 학생인권을 이야기 하고 있다. 진정으로 자유와 평등을 배우게 하고 싶다면 학생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학생인권조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학생인권조례는 청소년은 꼭 학생이어야 한다고 전제하는 분위기다.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꼭 학교만이 청소년들에게 답은 아니다. 그런데 꼭 청소년과 학생을 동일시하여 청소년은 모두 학생이어야 하는 전제를 보여주는 것 같다. 또한 현재의 학교는 모든 아이들에게 입맛에 맞는 교육을 주지 못한다. 대안학교조차도 모든 학생들에게 백퍼센트 만족스러운 교육을 줄 수 없다. 또한 현재의 학교의 목표는 학생을 인격체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거의 모든 학교의 목표는 대학입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인권보다 청소년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옳지 않을까?
학생의 인권에 대한 이야기는 최근 핫이슈는 아니지만 자주 입에 오르내렸다. 그리고 상당 부분을 학생들의 인권에 맞도록 수정한 학교들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다. 아직 학생의 인권에 대해서 관심이 부족하고 학생을 인견체로 보는 사람들 또한 부족하다. 하지만 학생들과 함께 그들을 인격체로 인정하고 올바르게 성장 할 수 있도록 할 때 사회는 진정으로 자유와 평등을 위해서 함께 고민 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 과제로 쓰긴 했습니다만..ㅠ 열심히 쓴다고 썼는데.. 초벌이라그런지...
상태가 메롱이네요 ㅠㅠ
( 요거 말고 밀린게 있어서.. 헬레네 랑에 종합학교 이야기도 써야하네요 ㅠㅠ)
맞춤법이나~ 그냥 한번 읽고 검수좀 해주세요 ㅠ
그리고~ 그냥 인권조례에 대한 이야기도 ~ 좋습니다~ㅎㅎ
-글쓰기 연습좀 해야겠습니다.... 제가봐도 너무 글을 못쓰네요..ㅠ -
코멘트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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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06.17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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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ㅂ=..새로쓸까 고민됩니다...
너무맘에는 들지않는데....ㅠ
기한이 정해진글이니....
에고고~ 다시 글보러 가겠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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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06.17 05:58
제가 만약에 쓴다면..
현재 학교라는 틀에서 (초중고대 어디를 목표로 한 글인지도 밝혀야 적당하겠죠) 학생들이 당하고 있는 불이익을 밝히고, 이에 대한 반향으로 학생인권어쩌구 가 누가 어쩌구 해서 만들어지게 되었다 라고 전제하고..
이 학생인권어쩌구의 한계에 대해 논하고 앞으로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마무리를 지으면 될듯도 한데요.
사실 모든게 잘 되었다고 하더라도 조례라는 것의 한계는 너무나 좁은듯 합니다. 헌법-법률-명령-조례-규칙.. 이라.. -_-;; 아무 힘도 없을듯 하다는. 원래 헌법으로 그냥 해결되어야 하는것 아닌지. 자연인으로 존재하는 순간 어떠한 이유로도 기본적인 인권은 보호되어야 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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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학생인권인가?
ㄴ 글의 얼굴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제목을 간접적으로 독자에게 표현하려면, 내용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든지, 아니면 본문을 다 읽고 난 후 다시 제목을 볼 때 진짜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신중하게 계산해야 합니다. 단지 멋지다는 이유로 꼬질르는 식의 제목은 KIN
우리의 학교의 현실은 구속과 차별과 경쟁이 일상화되어 있다.
ㄴ 그런가요? 갑자기 무겁게 시작해서 시겁했습니다. 차라리 뭔가 무시무시한 뉴스를 예시로 드는 게 어떨지..
그런 곳에서 자유와 평등 그리고 연대의식을 키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ㄴ 못 따라가겠어요
그래서 학생인권조례의 필요성을 요구한다.
ㄴ ...
제대로 교육이 이루어 질 수 없는 환경에서 교육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ㄴ 순환논리로 보입니다만
그래서 시기상조라고 말하는 교육 인권에 대해서 만시지탄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ㄴ 계속해서 논제가 바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인권조례에 대해서 다뤄보면서 과연 누구를 위한 학생인권인지 생각해 보자.
ㄴ 제목을 다시 썼네요. 좋은 서론의 마무리입니다만 서론 자체를 못 따라가니 다시 강조해도 못알아듣겠습니다.
== 본론1: 비참한 학생들의 삶 ==
우리의 학생들은 어둑어둑한 아침 학교를 등교한다.
ㄴ 조금 더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그리고 보충학습, 자율학습을 하고 수업을 듣는다.
그리곤 캄캄한 밤이 돼서야 학원으로 간다.
그래서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집에 올 수 있다.ㄴ 주석을 보세요.
또한 단순히 교사의 지시에 불응한다는 이유로 폭언과 구타를 당해야하고, 어른들의 입맛에 맞는 짧은 머리를 하고 똑같은 옷만 입어야 한다.
ㄴ 불쌍한 학생의 처지라는 건 이해가 가는데 글의 길이가 너무 짧아서 설득력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요즘엔 선생이 학생 때리기 어렵다는 건 기본 지식이라 갑자기 구타어쩌고 하면 이해할 수 없죠. 예시 추가 필요
또한 학교에서는 가정환경조사라는 명목 아래 가정환경이나 부모님의 지위 등을 꼭 보고해야 한다.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
ㄴ 주석을 보세요.
== 본론2:
학생이 누려야만 하는 권리학생인권 조례의 필요성???? ==학생의 인권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ㄴ 원래 학생은 인간 이하라는 것이 전제인가요? 인권이라는 너무 광범위하고 묵직한 주제를 아무런 설명없이 도입했습니다.
학생도 인간이기에 누려야 할 권리가 있다.
일본에서는 ‘아동인권조례’를 두고 있고, 베트남은 1991년 ‘아동보호 및 교육에 관한 법’을 제정했다. 필란드는 1995년 아동을 대등한 인격체로 보는 규정을 헌법에 포함시켰다. 아프리카통합기구(OAU), 미주기구(OAS)에서도 각각 아동인권조약을 정했다. 유럽 역시 1996년에 ‘아동의 권리행사에 관한 유럽조약’을 체결했다.물론 우리나라도 ‘청소년 보호법’이 있다.
그러나 ‘청소년 보호법’에는 학생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ㄴ .... 세계적으로도 아동에 대한 보호법만 있고 학생에 대한 보호법은 없네요. 그럼 당연 학생 보호법 없어도 되는 것?
학생인권조례의 필요성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그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고 자랑스러운 어른이 되기를 원한다면 평화롭게 학습하면서 ‘인권’을 이야기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ㄴ 세계적으로 존재하지도 않는데 필요한가요? 근거 없이 주장을 발전시키니 사상누각입니다.
== 본문3: 인권조례 반론 + 에 대한 반론 ==
그러나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여려가지 말들이 있다.
학생인권조례로 교사들에게 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교권침해를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또한 교사를 왜 학생들의 적으로 모느냐고 토로하는 사람도 있다.
ㄴ 흥미로운 부분인데, 구체적으로 왜 그런지에 대해 듣고 싶네요.
그러나 학생인권조례가 그런 교사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위에서 제압하고 명령을 한다고 해서 과연 교사의 권위가 서는지 반문한고 싶다. 그리고 실제 교사들의 교권을 침해하는 주범은 실제로 교육청과 교장 혹은 학부모나 학교 관리자를 지목했다. 교사들의 교권을 인정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학교운영과 행정의 개선이다. 단순히 학생인권조례가 교권침해의 주체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ㄴ 재밌을 것 같은 부분인데 보다 자세한 설명이 없어서 글이 뼈대만 앙상하네요. 살좀 붙여서 미인 만드세요.
== 결론?: 인권 조례를 만드니 이 또한 조치 아니한가 ==
시민들이 자발적인 움직임으로 학생인권조례를 만드는 것, 그자체가 고무적인 일이다.
ㄴ 으음... 갑자기 새로운 논제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좋든 싫든 학생인권에 대한 말이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면서 학생인권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는 것이 무척 긍정적이다.
그러나 사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ㄴ 헐... 일단 지금까지 벌여놓은 것부터 수습한 다음에 새롭게 시작해주시길...
아무리 좋은 조례라 할지라도 현실과 괴리되거나 실천하기 어렵다면 무용지물이다.
ㄴ 설마 그 빈약한 반론으로 좋은 조례가 되어버린 건 아니겠죠?
열악한 학교 환경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열악한 교육의 환경 개선과 함께 학생인권에 대한 관심과 실천은 같이 병행 되어야 한다.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계속해서 학생인권을 무시할 때는 10년 뒤에도 20년 뒤에도 똑같이 열악한 환경에서 시기상조를 이야기하는 우리의 미래를 볼 수 있을 것이다.ㄴ 보통 글쓰기 교습시 이런 식의 결론이 좋다고 배울텐데, 남이 이렇게 써놓은 거 보면 레알 닭살이네요. 엄중히 있을지도 모르는 미래에 대해 경고하는 것도 좋지만 더 간단하고 쉬운 결론을 써보면 어떨까요?
== 읭? ==
하지만 학생인권조례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ㄴ 힁? 결론낸 줄 알았는데 또 있네요?
학생인권조례의 대부분은 시민들의 발의에 의하여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취지는 위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로 무척 긍정적이다. 하지만 학생인권조례조차 그 과정 속에서 학생들의 참여나 혹은 학생을 성인과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 부분이 있다. 학생인권조례안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도 학생은 아직 덜 성숙한 인간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성숙하기 위한 과정을 돕는 어른들의 방법으로 학생인권조례를 아이들에게 ‘선물’하는 것처럼 보인다. 학생의 인권을 이야기한다면 학생들의 의견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함께 만들어가야 하지만 현재는 학생들이 빠진 채 학생인권을 이야기 하고 있다. 진정으로 자유와 평등을 배우게 하고 싶다면 학생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학생인권조례가 되어야 할 것이다.
ㄴ 꽤 재미있는 내용인데요. 어떤식으로 학생 조례를 지지하는지 예시를 잘 덧붙여서 제대로 된 포지션에 붙인다면 좋겠습니다.
또한 학생인권조례는 청소년은 꼭 학생이어야 한다고 전제하는 분위기다.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꼭 학교만이 청소년들에게 답은 아니다. 그런데 꼭 청소년과 학생을 동일시하여 청소년은 모두 학생이어야 하는 전제를 보여주는 것 같다. 또한 현재의 학교는 모든 아이들에게 입맛에 맞는 교육을 주지 못한다. 대안학교조차도 모든 학생들에게 백퍼센트 만족스러운 교육을 줄 수 없다. 또한 현재의 학교의 목표는 학생을 인격체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거의 모든 학교의 목표는 대학입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인권보다 청소년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옳지 않을까?
ㄴ 이건 좀 터프하게 논리를 밀고 나가는데요. 자기 자신도 못믿을 말을 남들이 쉽게 믿을리가 없죠. 문장 하나하나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그게 정말로 잘 연결되는지 다시 생각해보세요.
== 결론2? ==
학생의 인권에 대한 이야기는 최근 핫이슈는 아니지만 자주 입에 오르내렸다. 그리고 상당 부분을 학생들의 인권에 맞도록 수정한 학교들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다. 아직 학생의 인권에 대해서 관심이 부족하고 학생을 인견체로 보는 사람들 또한 부족하다. 하지만 학생들과 함께 그들을 인격체로 인정하고 올바르게 성장 할 수 있도록 할 때 사회는 진정으로 자유와 평등을 위해서 함께 고민 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ㄴ학생 인권에 대한 뉴스를 텁 던져놓는 것보단, 긍정과 부정쪽의 입장을 다시 확인하는 요약글을 쓴 다음 글쓴이의 주장을 강조하는 식으로 마무리 하는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 주석 =
글을 중언부언 하지말고 묘사로써 끝낸다. 묘사도 필요하지 않은 곳에는 쓰지 않는다. 글을 읽다보면 가파른 언덕 같은 느낌이 들것이다. 형용사, 부사, 접속사는 되도록 쓰지 말자는 원칙이다. 그래서 글이 깔끔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원고 매수도 안나가고 진도도 안 나간다. 작업시간은 길어지고 힘이 많이 든다.(웃음) 하루 종일 써봐야 잘된 날은 원고지 10장, 잘 안된날은 2장 밖에 안되고. 그러면 약 올라서 술 마시고 아침까지 괴로워하고 내 자신의 불완전 안에서 괴로워하며 살 뿐이다.- 김훈, 2007년 9월 12일 한밭도서관, "한권의 책읽기 초청강연회" 중글쓰기에서 정말 심각한 잘못은 낱말을 화려하게 치장하려고 하는 것으로, 쉬운 낱말을 쓰면 어쩐지 좀 창피해서 굳이 어려운 낱말을 찾는 것이다. 그런 짓은 애완 동물에게 야회복을 입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애완 동물도 부끄러워하겠지만 그렇게 쓸데없는 짓을 하는 사람은 더욱더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그러므로 지금 이 자리에서 엄숙히 맹세하기 바란다. '평발'이라는 말을 두고 '편평족'이라고 쓰지는 않겠다고. '존은 하던 일을 멈추고 똥을 누었다' 대신에 '존은 하던 일을 멈추고 생리 현상을 해결했다' 고 쓰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똥을 눈다' 는 말이 독자들에게 불쾌감이나 혐오감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존은 하던 일을 멈추고 대변을 보았다' 고 써도 좋다( '존은 하던 일을 멈추고 응가를 했다' 도 괜찮겠다).-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중 -
감사합니다!ㅎ
큰 도움이 됬습니다...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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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욱
06.17 10:36
헐, 어마어마한 분석력이시군요.
존경스럽습니다.
저도, 글을 좀 잘 써야 할 텐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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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쓰러갑니다...ㅠㅠ
주제가 뭔가요 ? 맞춤법은 뭐 혼자 하세요. 몇군데 보이네요.
엔지니어라서 그런지 글을 쓰게 되면.. 일단 글 머리에 이 글이 무슨 내용이고 뭘 주장한다 라고 전제하고 시작하게 되어서 그렇지 않은 글을 보면 불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