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추억 이야기 일곱번째 - [ 방석집 그녀 ]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한여름이었다. 늦은 시간까지 잔업을 하며 땀을 흘리며 일을 마친 직장 동료와 나는 시원한 맥주 생각이 간절했다. 퇴근 후 맥주와 함께 시작된 술자리는 다음날 출근에 대한 부담감이 없다는 이유로 소주와 맥주를 반복하며 새벽길을 방황하게 되었다. 마지막 한잔을 외치며 찾아간 곳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방석집이었다. 이미 아침을 맞이하는 시간이었기에 영업을 끝낸 집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우리를 반겨주는 곳이 남아 있었다. 다시 술상자가 들어 왔고 술 못 먹고 죽은 귀신이라도 들린 듯 엄청나게 마셔버렸다. 마치 몇년동안 마셔야 할 술을 하룻밤에 모두 마셔버리려는 듯 했다. 들여온 술상자가 비어갈 즈음 방석집의 마지막 코스가 남아 있었다.

 

직장동료는 술자리 파트너와 함께 옆방으로 사라졌고 내 곁에서 술시중을 들던 그녀와 단둘이 남았다. 하지만, 방석집의 마지막 코스를 진행하기엔 술을 너무나도 많이 마셔 버린탓에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진행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영업을 마칠 시간이 되었으니 밖에서 잠시 기다렸다가 자신의 집으로 같이 가자고 제안했고, 빨리 쓰러져 잠들고 싶었던 나는 아무생각없이 가까운 곳이라는 말에 응하게 되었다. 직장동료를 택시에 태워 보낸 후 얼마 뒤 그녀가 나왔고 우리는 그녀가 임시로 머물고 있던 모텔로 들어 갔다. 그리고 아침이 밝을 때까지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그 날 이후로 그녀를 만날 기회는 없었다. 상당한 지출이 있었기에 몇 달동안 카드값을 매우느라 술자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계절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었다. 회사에서 돌발상황이 발생하였고 늦은 시간까지 잔업을 해야 했다. 땀을 흠뻑 흘리며 돌발상황을 처리하고 밖으로 나오니 시원함도 잠시 차가운 바람에 온몸이 얼어버릴 듯 했다. 이런날엔 따뜻한 사케가 마시고 싶어진다. 일본식 선술집에서 정종을 데운듯한 일본술 사케를 마시며 술자리가 시작 되었다. 술을 마시는 것이 쉽게 절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세상에 알콜중독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한잔의 술은 두잔을 부르고 두잔은 석잔을 넘어 한상자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1차에서 시작하여 5,6차가 될 무렵 우리는 예전의 방석집을 기억해 냈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하늘에 미명이 비칠 무렵이었다. 예전의 파트너를 옆에 앉히고 다시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영업이 끝난 후 직장동료는 택시를 타고 떠나고 나는 그 자리에 남았다. 잠시 후 내 옆에 앉아 있던 그녀가 나왔고 그녀의 새로운 보금자리로 향했다. 후미진 골목 안쪽에 작은 방하나를 얻었다고 했다. 그녀의 방은 무척 추웠다. 보일러가 고장났다고 했다. 기름마져 없어 오랫동안 돌리지 못하였다고도 했다. 차가운 그녀의 방에서 새벽까지 마셨던 술이 아무런 효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추위속에 얼어 버렸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겉옷을 벗을 생각도 하지 못한체 전기장판에 열이 오르기를 기다렸다. 전기장판의 바닥은 그나마 따스했으나 우풍이 심한 듯 입김이 하얗게 피어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두꺼운 옷을 껴 입고 이불속에 누웠으나 쉽게 잠이오지 않았다. 서로를 껴 안은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에겐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있다고 했다. 이혼 후 아들과 함께 생활하였으나 마땅한 직업을 구할 수 없어 생활이 빈궁해졌고 결국 아들은 아버지에게 보내졌다고 했다. 처음엔 연락도 하고 가끔 만나기도 했으나, 몸파는 일을 하게 되면서 연락을 끊었다고 했다. 삶이 너무 힘들어 자살도 여러번 시도했다고 하였다. 그녀의 손목에 그어진 자국들이 아픈 상처를 간직하고 있었다. 아침이 오기까지 그녀는 몇번이나 눈물을 보이고 있었다.

 

창밖이 환히 밝아 올 무렵이 되어서야 그녀의 방에서 나왔다. 내가 그녀를 위해 도와 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또다시 술취한 남자들을 상대하며 몸을 팔게 될 것이고 그 돈으로 기름을 사고 보일러를 고칠 것이다. 보일러를 수리 할 때까지 차가운 방안에서 누워 있을 그녀를 생각하니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 세상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삶을 모두 알 수는 없기에 그들이 겪고 있는 제각각의 고통의 비중을 누가 심하고 누가 가볍다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약자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사는 듯 하다.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매춘부들과, 불편한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들과,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노동자들과, 알지 못하는 곳에서 나름의 괴로움으로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올해는 희망을 바라 볼 수 있기를 바래 본다.

 

PP0021.jpg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공지 [공지] KPUG 운영비 모금. 안내 드립니다. - updated 230805Sa [24] KPUG 2023.08.05 1554
공지 [안내의 글] 새로운 운영진 출범 안내드립니다. [14] 맑은하늘 2018.03.30 24481
공지 KPUG에 처음 오신 분들께 고(告)합니다 [99] iris 2011.12.14 434536
677 - [13] 앙겔로스 02.15 991
676 닌텐도 DS 수리 비용 [7] 바이디 02.15 3164
675 대길이가 언년이를 못찾는 이유. [5] file 크론드 02.15 1148
674 짧은 설 연휴를 보내면서... [4] 까망앙마~! 02.15 851
673 아리버스토리 살까? 말까? [13] 雪松 02.15 995
672 저는 오늘부터 연휴 시작입니다. 므흐흐흐~ [6] 로이엔탈 02.15 1055
671 저는 여자에게 인기가 없습니다. [25] 최강산왕 02.15 983
670 boxee 사용하시는 분 계신가요? [4] bluepond 02.15 1612
669 새해부터 짤렸어요 심란하네요 ㅎ [25] 박경준 02.15 1080
668 이길 따라 쭈~욱 가세요!! [7] 라기 02.15 958
667 글이 별로 없네요. 케퍽 퀴즈~ 한번 할까요? (난이도가 좀 높네요.) ^^* [34] file 맑은샛별 02.15 973
666 초코렛 받으셨나요??? [8] 인포넷 02.15 873
665 [긴급] 새집 접속에 약간 문제가 있습니다. [17] KPUG 웹마스터 2호기 02.15 1051
664 아악 또 당했다.. [9] 성야무인 02.15 1020
663 나이 32에 세뱃돈;; [7] ajna_ 02.15 1110
662 오즈 옴니아 사용기를 쓰려고 했는데... [13] 돌마루™ 02.15 931
661 왜이리 귀찮은지..... [15] [天上의]狂魔 02.15 884
660 악운 과 함께하는 준용군-_- [20] 위대하고잘생긴전설의준용군 02.15 1039
659 사랑은 울트라 앞의 터렛만큼 부질없어라. [11] 크론드 02.15 1094
658 딸아이에게 줄 PC를 세팅하고 있습니다. [12] 냉소 02.15 924

오늘:
595
어제:
717
전체:
15,195,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