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게으른 자의 어항
2013.09.08 00:59
집에 두 자 좀 못되는 어항이 하나 있습니다. 4년전 누군가 아파트 바깥에 버려놓은 어항을 주워와서 어항을 꾸민 거였습니다.
물은 언제나 수정같이 맑아보이지만, 아마도 질산염이 가득차 있을 겁니다. 질산염을 낮추기 위해서는 환수를 해주는 방법을 씁니다.
워낙 게으르다보니, 먹이는 타이머에 따라 자동으로 공급하고 있고, 불도 시간이 되면 들어왔다 나갑니다.
이제 어항 관리에 대해 몇마디 해보겠습니다.
어항을 가지신 분 중 저지르기 쉬운 실수가 청소 부분입니다. 다시 말해 너무 자주 청소해서 균형을 깨뜨리는 일이죠.
물을 100%에 가까이 환수를 해버린다든가, 락스로 벅벅 어항에 낀 이끼를 벗겨낸다든가, 수돗물로 바닥재를 씻어낸다든가 하다보면 물을 정화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박테리아가 죽어버리고, 뿌옇게 백탁이 오는 등 흔히 물이 깨진다고 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어항을 잘 관리하려면 박테리아를 잘 살게 하고, 배설물을 치워주고, 물을 적절히 갈아주는게 필요한데 이게 왜 그런지 설명하겠습니다.
어항 물이 오염되는 원인은 대부분 수중생물의 배설물인데, 이로 인해 암모니아가 증가합니다. 암모니아가 그대로 남아 있으면 문제가 심각해지겠죠. 그런데 이것이 박테리아에 의해 아질산과 질산염으로 바뀌어지고, 순환체계를 이루며 물이 어느정도 잡히게(안정화) 되는 겁니다. 이 과정이 원활하지 않으면 물이 깨지는 거라고 하죠(즉, 암모니아가 아질산, 질산염으로 안바뀌고, 어느 한 요소가 계속 증가한다면 독성 역시 증가하는 셈이죠). 물이 깨지면, 물고기들도 살기 어려운 환경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물이 안깨지게 하려면 이 과정에 개입하는 박테리아가 어느정도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따라서 박테리아에게 염소성분이 있는 수돗물 샤워는 않좋겠죠? 될 수 있으면 박테리아를 죽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겁니다.즉 물생활에 박테리아는 꼭 필요한 겁니다. 이런 이유에서 어항을 초기에 셋팅할 때, 유기물순환과정을 빨리 만들어주기 위해, 물이 잘 잡힌 다른 어항의 스폰지 짠 물(박테이라가 가득 담긴 물)을 부어주기도 합니다.
저는 측면여과기와 걸이식 여과기를 사용하는데, 청소를 하더라도 솔로 대충 털고, 여과기에 딸린 스폰지를 쥐어짜는 정도로만 하고 청소하는 물도 환수시 어항에서 뽑아낸 물을 사용합니다. (물이 잘 잡힌 어항에 있던 스폰지를 짤때면 흙냄새가 납니다.)
스폰지가 더럽다고 수돗물에 헹구거나 벅벅 씻으면, 박테리아가 다 죽어나가겠죠?
물이 더러워지는 것을 박테리아가 막아낸다고 해도 한계는 있는 법입니다. 암모니아도, 아질산도, 질산염도 물고기들에게는 안좋은 것들이니까요. 결국 더러운 물을 뽑아내고 깨끗한 물로 교환해 줄 필요가 있는 거죠. 이게 환수(물갈이)입니다.
어떤 사람은 2~3일에 한번 환수를 한다고 하는데, 저는 게으르기에 환수는 1~2주일에 한번 정도 사이펀으로 물을 뽑아내고 하루쯤 받아놓은 물을 넣어줍니다. 이때 한번에 1/3을 넘지 않고 많이 해봐야 절반 이상을 갈지 않습니다.
물생활 하시는 분이 하기 쉬운 두번째 실수는 먹이의 과잉공급입니다.
대부분 1분 이내에 모두 소화할 정도로만 줘야지 너무 많이 주면, 똥도 많이 싸고, 똥이 많아지면, 수질도 쉽게 나빠집니다.
너무 배고파 죽는거 아니냐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물고기들이 과연 자연상태에서 얼마나 먹이를 잘 먹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 경우 먹이는 하루에 5번 주도록 자동공급기를 세팅해놓았습니다. 4시간 간격으로 주고, 저녁에 잘때만 8시간 간격으로 주는 거죠.
가끔씩 블랙안시를 위해 호박이나 오이를 넣어주고, 새우들을 위해 시금치를 냉동실에 얼렸다가 조금씩 넣어주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1주일에 한번정도 특식으로 냉동 장구벌레를 넣어주고 있죠.
바닥에 사는 녀석들을 위해 가라앉는 먹이를 가끔씩 던져주기도 합니다.
구피야 계속 낳고 죽고 하지만, 스터바이 코리도라스는 1년 이상 살고 있고, 카디날 테트라 중 2마리는 어항을 처음 가져왔을 때 부터 살아남아서 이젠 고등어가 됐습니다. 블랙 안시도 처음부터(2010년 6월) 살고 있구요. 새우들도 이번 여름 더위를 잘 이기고 살아남았습니다.
때로는 적당한 무관심(생태계에 대한 인위적 개입 최소화)도 물생활에는 도움 됩니다.
요약하면,
1. 지나친 청소는 금물, 박테리아도 먹고 살아야 한다.
2. 먹이 너무 많이 주지 말자. 먹이과잉공급은 수질악화의 주범.
3. 물 적당히 갈아주자. 한번에 다 가는 것은 물을 깨는 지름길이다.
이상 어느 게으른 자의 어항 이야기였습니다.
코멘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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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09.08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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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리티
09.08 07:43
강좌로 보내주세요. 이 아까운 글이 자게에서 묻히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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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나라
09.08 13:22
아.. 저는 너무 게으른거였군요.. ㅠ,.ㅠ
바닥청소는 거의 안하니 에효.. 그래서 애들이 죽어나간거였군요...
열대어관련글이 조금씩 올라오는거보니..
열대당 하나 만들어보는것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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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bilee
09.08 17:31
바닥청소는 저도 안합니다. 물 갈아줄 때 사이펀으로 바닥에 있을 찌꺼기와 똥을 뽑아내는 정도로만 하고, 바닥재를 들어내거나 씻은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저면 여과방식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바닥재를 청소할 이유도 없구요. 일단 물이 한번 잡히고 나면 대규모 환수를 하지 않는 이상 물이 깨지는 법은 없습니다. ^^ -
빠빠이야
09.08 13:31
물이 뿌옇게 보인다 싶으면 물을 통채로 갈아주곤 했는데 그게 문제였나 보네요..
물갈이는 평균 2주에 한번 완전, 한달에 한번씩 수돗물로 바닥자갈ㅈ까지 완전히 닦아주곤 했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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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bilee
09.08 17:43
백탁도 물이 잡혀가는 과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초기에 물이 뿌옇게 되도 그냥 놔두거나 줄어든만큼만 보충해주거나, 1/4정도 부분적으로 환수를 해주다보면 맑은 물이 됩니다. 지나친 세척과 환수는 물이 잡혀가는 과정을 다시 리셋시켜버리는 셈입니다. 백탁이 또 오는 거죠. 수도물은 절대 사용하면 안되고 최대한 그냥 기다리는게 답입니다. 통상 물이 잡히는데는 한 달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이때 박테리아가 사는 곳(여과제,바닥재,스폰지)은 될 수 있으면 건드리지 않는게 좋습니다. 정 더러우면 살살 쥐어짜주거나 털어주는 정도로 청소해주면 되고 반드시 수도물이 아닌 어항 물을 쓰셔야 합니다. 물잡기의 키워드는 기다림이지요. -
FATES
09.08 19:03
저는 가장 큰 스트레스가 여과기 청소와 벽면 이끼던데. 특히 여과기는 한달만 지나도 내부 스펀지가 새까매 지더군요. 벽면 내부도 자석달린 청소기도 신통찮고, 청소고기로 알려진 종류도 그저 그렇고.. 혹시 어떤 방법을 쓰시나요? -
jubilee
09.08 22:30
측면여과기를 쓰시나보군요. 스펀지가 새까매지는 것은 정상입니다. 그게 다 박테리아 덩어리들이거든요. 저도 3주쯤 청소를 안하면 떡이 되어 있습니다. 그 상태가 정상이라고 생각하시면 마음이 편합니다. 어항에서 뽑아낸 물을 조금씩 작은 그릇에 받고, 그 안에 스펀지를 담그고 쥐어짜면, 갈색 흙탕물이 나올 겁니다. 이걸 일곱번쯤 꽉꽉 쥐어짜면 흙탕물이 좀 덜 나오죠. 이정도면 충분합니다. 완전히 깨끗이 하려고 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박테리아는 우리 편입니다. 어느정도 박테리아가 남아있게 하는게 중요하죠. 사실 우리는 너무 깨끗한 것을 좋아한답니다. 만약 그래도 정 거슬리시면, 안에 넣는 스펀지를 교환하시는 방법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이때 새로 스펀지를 장착하고, 기존에 스펀지에서 짠 물을 500~1000ml정도 부어주시면 좋습니다. 당장에 어항이 혼탁해지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여과기가 다 빨아들일 거고, 물은 다시 자리잡힐 겁니다. 만약에 스펀지 짠 물이 흙탕물이라 탐탁치 않으시면 그 물을 놔두면 어느정도 흙(박테리아 덩어리)이 가라앉습니다. 그러면 위의 맑은 물만 분리해서 그 맑은 물만 부어주셔도 같은 효과이긴 합니다. 이렇게 스펀지 짠 물을 부어주는 이유는 기존에 어항 안에서 자라던 박테리아를 새로운 집(새로운 스펀지)으로 이사가게 하는 겁니다.
만약 여과기가 두 개가 있으면 어떻게 청소를 해야 할까요? 동시에 청소하지 않는다가 답입니다. 1주에 한번씩 번갈아가며 청소하는 게 좋죠. 암모니아를 아질산으로, 아질산을 질산염으로 바꿔주는 박테리아가 여과제나 스펀지에 그냥 남아있는게 물을 안정화하는데 중요하니까요. 즉, 변화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에 포인트가 있습니다. 급격하게 박테리아가 감소하면 그만큼 분해를 못하게 되버리고, 그러면 물이 흐려지는 등 백탁이 오는 거니까요.
자 이제 이끼 차례군요. 아무래도 컨설팅 료를 받아야 할 듯.... 쿨럭. ㅎㅎ
일단 현재 어항 온도가 25도 이상이면, 히터를 꺼 주세요. 이끼는 온도가 높으면 잘 생깁니다.
둘째, 벽면 이끼는 잘 안 없어지는데 약간의 노동력을 들이면, 이를 완전 해결하는 방법이 하나 있긴 합니다.
바로 이렇게 생긴 민도칼을 쓰시면 됩니다. 고무장갑을 끼시고 이 면도칼을 잡은 뒤 15도 정도 각도로 세워서 벽면 이끼를 긁어보세요.
수세미와 솔로 문질러도 안떨어지던 그 지독한 이끼들이 깨끗이 벗겨지는 모습을 보시며, 그동안 벽면이끼로 쌓였던 스트레스가 그냥 풀릴 겁니다. 어항 벽면에 기스가 날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기스 안납니다. ㅎㅎ
6개월에 한번꼴로 이렇게 청소해줍니다. (어떤 때는 벽면이끼를 그냥 놔 뒀더니 자연스럽게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 방법으로 청소할 일도 없습니다.)
셋째, 이끼발생을 아예 줄이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자외선 살균식 측면 여과기를 쓰는 방법입니다. 확실히 벽면이끼 뿐 아니라 다른 이끼도 줄어듭니다. 구입하실때 안의 내장 자외선 전구만 교환 가능한 제품인지 확인하는게 좋습니다.
넷째, 시중에서 파는 이끼 제거제는 될 수 있으면 쓰지 마세요. 이게 계면활성제 성분이 들어있는데, 새우등 갑각류에게는 치명적입니다. 양 조절을 잘 못하면, 거의 다 죽습니다.
다섯째, 알지이터나 새우, 램즈혼 등을 이끼 제거하기 위해서 넣곤 하는데, 얘들이 먹이가 충분하면 굳이 이끼를 안먹고 삽니다. 그러니 이끼 청소가 잘 안되는 경우가 생기죠(참고로 청소와 관계없이 램즈혼은 너무 이상증식하는 놈이라서 권하지 않습니다. 하라는 청소는 안하고 번식에만 힘을 쓰는 놈들입니다. 어항이 램즈혼으로 가득찬 것을 상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런 생물학적 제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물리적 제거가 최고죠. 눈에 보이는 이끼들을 건저내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도 어느정도 저희들끼리 뭉치게끔 놔뒀다가 한번에 들어내는게 편합니다.(게으름 인증!)
그럼 즐거운 물 생활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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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ES
09.09 13:04
오..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이건 강좌란 감인데요 ^^. 램즈혼은 예전에 너무 고생한 적이 있어서 저도 비추입니다. 버들치 큰놈 두어마리 넣었더니 완전 박멸되어서 만세를 부른적 있어요. 레드램즈혼은 공포 그 자체의 번식력이더군요. 제 생각엔 아무래도 이끼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다른 것도 아니고 생태계 인데, 발생하는 것을 억지로 통제하는 것도 문제인 듯 하고.. 가끔 빡세게 청소 해 주는것 빼고는 방법이 없는 듯 해요. 저는 특히 어항 벽면 모서리에 실리콘으로 연결된 부분이 더러워 지는걸 잘 못 참겠던데, 그건 칫솔로 박박 문지르는 방법 이외에는 없더군요. 많이 배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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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뷔
09.09 13:13
좋은 글 감사합니다.
물잡이는 인내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1년 넘게 바닥 청소 전혀하지 않고 말씀하시는대로 부분 환수만 계속하면서 잘 지냈는데...
어느 한 순간 모두 용궁행이더군요.
원인은 먹이 과잉.... 아들 녀석이 먹이를 갑자기 많이 줘서...
쉽지가 않더라구요. 잘 지내다가도 한순간에 가버리니...
PH측정 키트를 사볼까 고민중입니다.
게으른자의 어항이 아니고 현명한자의 어항이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