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KM 속도의 비비탄을 칼로 자르내요 ~~ㅎㅎ
2012.03.27 16:34
http://www.youtube.com/watch?v=soSGl3RUbDg&feature=player_embedded
350KM 속도의 비비탄을 칼로 자르내요 ~~ㅎㅎ
60KM 축구공~~~
300KM 야구공~~
350KM 비비탄~~
500KM 야구공 ~~
작년에 방송되었다는대 대단 ㅎㅎ
코멘트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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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용군
03.27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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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뚱
03.27 19:07
ㅎㅎ 혹시 국내 야구연습장 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그거 100km도 안나옵니다. 일본에 연습장은 시속별로 레인이 따로 있는곳도 있어서 120km들어 갔다가 손도 못대봤어요 ㅡㅜ 제가 허접해서 그럴수도 있지만 대학때 야구도 좀 하고 했는데 차원이 달라요. 시속 300km면 박찬호 최고 구속의 거의 두배잖아요 ㅎㅎ. 알미늄 방망이보다 무거운 칼로 더군다나 칼집에 넣고 있다가 베는 이아이로는 쉽지 않으실겁니다 연습해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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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03.27 16:41
칼구하는게 포인트 아니면 식칼로 사사삭~~~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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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용군
03.27 16:45
예전에도 한말이지만 우리가 쓰는 주방용 식칼 ....중세 시대로 가져가면 전설의 명검 수준 입니다-_-
잘 휘지도 않고 탄력도 좋고 가볍고 녹도안쓸고 이빨도 잘안나가는 전설의 명검-_-
사람들이 일본도에 참...환상이 많은것 같아요 알고보면 철도 좋은거 없고 재련 기술도 형편 없어서 울며겨자먹기로 만든칼 인데-_-
재련기술은 당시 청나라 명나라가 짱먹었습니다-_-
최고의재련기술은 이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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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과에서 자주 하는 이야기지만, 다리를 만들때 돈 생각하지 말고 재료를 쳐부어버리면 가장 단단한 다리가 만들어진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게 가장 낮은 기술이지요. 최고의 토목기술은 "무너지기 직전"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즉 무너지지 않으면서 최소한의 돈을 들이는거죠. 하지만 가장 단단한 다리는 아니지요.
재련기술도 결국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은 한겹으로 철을 다루는 기술이 없어서 두가지 이상의 재료를 섞어 여러겹으로 감싸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후진 기술이라고 하는 이유는 결과물 자체가 나빠서가 아니라, 하나 만드는데 돈과 시간이 너무나 많이 들고 전문기술을 필요로 한다는 점입니다.
애초에 일본도의 목적 자체가 대량생산용이 아니었습니다. 일반병사들은 기껏해야 조악하게 만든 창을 들고 대나무로 몸을 감싸는 정도였죠. 일반병사들의 무기를 위해 들일 시간을 전부 아주 일부의 사무라이 전용 무기를 만드는데 쓴겁니다.
일본의 제련기술은 떨어졌지만, 그런다고 일본도 자체가 폄하받을 이유도 없습니다. 임진왜란때 우리 제련기술이 더 좋아서 조선의 주방용 칼은 일본에 비해 월등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용 무기로 따지자면, 결국 다 부러져나가는 약한 칼이 될수밖에 없었던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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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용군
03.27 18:47
제가아는것과 다른게 하나 있네요
당시 일본은 재련기술은 물론이요
질좋은 철광석을 얻을수 없어 사철에서 얻었다고 하죠
어쩔수없이 접철 방식을 택한겁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접어서 때려야하는 -_-
당시 조선의 철광석은 매우 우수한 평을 받았습니다
당연 무기질도 압도적으로 좋았습니다-_-
다만 숙련된병사와 단병접전에 특화된 부대도 아니었고 평화에 익숙하다보니 개판 오분전이었죠-_-
정리 하자면 일본도는 그냥 평범한 날만 잘서게 만든칼입니다.
무슨장인 정신 어쩌네 저쩌네 해도 그냥 날잘드는 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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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뚱
03.27 18:58
물론 조선군이 파죽지세로 깨진건 오랜시간 실전경험이 없는 나태한 군기도 이유긴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전술차에서 기인했다라는 자위설?도 있습니다. 조선군은 활이 주무기여서 활로 일단 적당히 양념하고 붙는 식이었는데 비록 사거리도 짧지만 조총이라는 신무기의 투입으로 극도의 혼란이 가중되어 전열이 일찍 붕괴되버려서 그 뒤로 근접전에서 일본도가 맹활약을 한것은 사실입니다.
장인정신이 사람에 따라 포장은 아니겠죠. 장인이 한땀한땀 만든 옷과 대량생산되어 나오는 옷, 예술품으로 인정받느냐 아니냐에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른것이겠죠. 도자기 보십시요. 실용성 없습니다. 그냥 심미적인 예술로 인정하는것 외에는요. 일본도도 효율성은 많이 떨어집니다만 예술품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많은듯 합니다. 전 일본도의 하몬을 보면 정말 아름답다라고 느낍니다 ㅡㅡ;;; 그것이 상황의 조악성때문에 만들어진 어쩔수 없는 흉터라는걸 알면서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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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용군
03.27 19:10
참 요즘들어 느끼는건데...-_-
일본음식...
정말 조미료가 발달하지못해서 -_-.....뭐 그런음식뿐이죠
우리가 먹는 라면이야 원조가 원래 중국이고 일본에서 현지화-_-
우리가 먹는 돈가쓰 종류 카레 전부 일본에서 현지화 해서 국내도입-_-
족발이야 중국음식인것 잘아실테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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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뚱
03.27 19:16
저도 느끼는 것이지만 일본의 포장기술은 세계 최고인것 같습니다. 원조를 포장해서 내놓는 건 일류같아요 ㅎㅎ 다만 포장을 하면서 자기것으로 만들고 상품화 하는 것도 최고같습니다. 미쿡의 우주왕복선도 교토인가에 있는 몇평짜리 작은 공장에서 나오는 부품이 없으면 귀환이 안된다고 하잖아요 ㅎㅎ 팔로군의 건면이 노획안되었다면 지금 상품화된 라면도 없을지 모르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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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뚱
03.27 18:48
일본도가 코부세라는 방법 (무른 날 부분을 강한 검신으로 둘러쌓는 제조법)으로 만들어진것은 제련기술 측면보다 재료의 조악성이라고 하더군요. 일본은 철광석이 안난다네요. 그래서 사철 (모래같은 알갱이철)을 제련 과정을 통해 강하고 무른 재질로 만들어 접어서 칼을 만든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한반도 고대 삼국중 제철기술이 가장 뛰어난 변한 (가야) 이주민 설도 있고 -연오랑 세오녀 설화- 허접한 재료로 최대한의 성능을 내기 위한 제련 기술은 비록 그 효율성은 꽝일지 모르지만 기술력 자체는 그리 떨어지는것이라고 보여지진 않습니다. 다만 주변국에 비해 월등한 실력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일본도를 접한 조선군들이 위력은 대단하나 우리가 만들면 더 잘만들겠다 라고 했다네요 ㅎㅎ 실제로 임난 이후 명~청 과 조선군에서는 일본도의 위력에 놀라 벤치마킹을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기는 자신들의 전투 양상에 적합한 것이 명기임을 알고 금방 버려졌다고는 합니다. 전투 양상이 중국과 한국, 일본이 다 다르기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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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용군
03.27 18:55
가장중요한 문제는-_-
철을 얻기위해 사철을 용해 시키는데 그양이 노력에 비해 형편 없기 때문입니다.-_-
오히려 임난이후 조선에서는 일본도를 가져다가 만들어서 썻습니다 왜도 라고하죠
솔직히 노략질하기 좋은 칼이지 집단전하기에는 썩구린칼이 왜도입니다.
가장 중요한건 잘 부러 지고 잘 휘었거든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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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도술과 눈썰미 하나는 최고네요...
날아가는 파리 고추도 자를 분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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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뚱
03.27 18:13
시속 350km면 초속 97m 정도고 보통 노말 상태 전동건보다 약간 빠른 정도입니다. 총질 15년차이고 수천발을 맞아봤지만 ㅡㅜ 놀랍습니다. 물론 bb건은 종속이 떨어지고 hop up을 걸기때문에 튜닝안한 노말상태라면 40미터 넘어가는건 눈에 보이고 손으로도 잡습니다만 거리상 15~20미터에서 날아오는 건 보고 피하기도 쉽지않습니다. 더군다나 6밀리짜리를 벤다는건 글쎄요 몽둥이로 맞추는건 모르겠지만 居合로 벤다는건 ㅎㄷㄷ 하군요. 물론 연습 많이하면 될지도 모릅니다만 ㅎㅎ
일본도의 역사는 천년을 훌쩍 넘깁니다. 제가 박물관에서 본것만 해도 헤이안시대 제품부터였으니 1300년은 넘긴 물건입니다. 제련을 여러번 한것이 기술적인 문제인지는 자세히 모르겠습니다만 임난때 명 원군이 왜군에게 일도양단 당하는걸로 초기에 심리적 공포가 대단했다고 하는걸 보면 90센티의 이 칼이 그리 녹록하지는 않았던것 같습니다. 어쨌든 지금도 인정받는 칼은 사라센과 일본이라고 하니 일본의 마케팅?이 잘먹힌것도 있겠지만 허접한 칼은 아닌듯 합니다. 현대의 전설 명검을 7.62밀리로 쏘면 어떨까요 ㅎㅎ 일본도는 7발까지 7.62밀리 나토탄을 베고 8번째에 부러지더군요. 시속 350km의 6밀리 0.2그램 비비탄의 총구 운동에너지는 약 1j이 좀 안됩니다. 7.62mm nato탄은 3500j 정도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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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kness
03.27 19:40
역사와 품질이 딱히 비례하는건 아니죠
현대의 일본도는 공예품으로서 가치가 있는것이지 현대기술로 만든 도검과 객관적으로 비교하면 당연히 발바닥이나 핥는 수준일겁니다.
그나마 재료는 현대적으로 가져다 쓰니 조금 나으려나..
총알 베는건 일본도 아니어도 그냥 개나소나 가능합니다.
면도날로 베었다는 내용 본 기억도 있네요
탄환 자체가 원래 별로 단단한 물건도 아니고 애초에 철갑탄을 쐈다면 한방에 부러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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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뚱
03.27 20:21
현대제품이 무조건 우월하다는 모든케이스에 맞는건 아니죠. 하나만 볼까요? 성덕대왕신종을 매달때 쓰이는 막대는 얼마전까지 재현이 불가능했습니다. 그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지름이 더 커야하는데 크면 고리에 끼워지지 않았죠. 1300년전에 만든 막대만도 못합니다. 철강최강이라는 포철에서도 말입니다. 발바닥을 핥던 어쩌던 그걸로 목을 치면 잘린다는건 확실합니다. 다만 목을 치기에는 아깝겠죠. 개나 소는 총알을 베지 못합니다. 맞으면 죽습니다. 면도날도 가능할수 있겠죠. 다만 동일 조건에서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면도날에 m60을 7발 연속 쏘면 어떨지. 말씀하신 철갑탄은 단단하지 못하다는 일반 탄환과 표피는 구리로 동일합니다. 다만 중심에 텅스텐등의 무거운 중량의 철심이 들어가서 회전력을 높여 관통력을 높인 물건이지 표피가 철갑은 아닙니다. 철갑탄으로 실험하시고 결과를 알려주시면 좋겠네요. 궁금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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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kness
03.28 02:27
음..직접 실험해보라는건 그냥 농담이시겠죠? -0-
여긴 미국이 아니고 저도 군인이 아니니 orz
뭔가 본문 방향과는 삼천포로 흘러가는데 아무튼..
면도날과 일본도를 1:1로 비교한다는것 자체가 이미 일본도의 fail에 가깝다고 봅니다
아무리 현대의 물건이라지만 체급(?)이 다르고 공장에서 마쿠닥 찍혀나오는 물건인데..
곰뚱님이 말씀하시는 물건과 제가 생각하는 철갑탄이 다른 물건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도 당연히 표피가 철갑이라는 뜻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금속 철이 아니라 뚫다는 의미의 徹을 사용하는 명사이니까요..
아마 실험했던 방송사에서 철갑탄 실험을 하지 않은 이유는 민간에서 구하기 어려워서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솔직히 실험해보지 않아도 결과는 상식적으로 뻔한 수준일겁니다.
12.7 탄종이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장갑차가 뚫려나가는 마당에 일본도가 버텨줄 가능성은..
현대의 기술로 재현이 불가능하다는 소위 로스트 테크놀로지도 사실 허구 내지는 과장이 많은것도 사실입니다.
실전된 이유는 딱히 기술 자체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냥 쓸모가 없어서 사장되는 경우가 왕왕이 있죠.
근래의 예를 들자면 자타가 공인하는 군사강국인 미국은 의외로 재래식 잠수함을 만들 기술력이 없습니다.
딱히 기초 기술력이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수년간 원자력 잠수함만 굴려도 불편을 뭇느끼는 상황이라 연구개발이 없었기 때문입니다.실제로 대만에서 잠수함 판매를 요청했을 때 유럽쪽에서 대리구매를 시도해야 했던 사례도 있지요..
그리고 좀 나쁘게 이야기 하자면 로스트 테크놀로지, 고대의 신비 이런 생각 자체가 현대인의 오만이라 볼수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한때 초고대 문명설까지 유행하던 피라미드의 경우도 고대 이집트인의 기술력으로 가능할 리가 없다는 편견의 작용이 컸던게 사실이구요..
실제로는 당대의 기술력만으로 현대에도 건설 가능하다는것이 충분히 입증되어있는 것으로 압니다.
에밀레종의 경우도 사실 그대로 믿기는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http://scieng.net/zero/view.php?id=tech&page=10&category=&sn=off&ss=on&sc=on&keyword=&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425
이정도 지식이 없는 제가 봐도 고리의 강도를 미리 몰랐다는게...미리 계산도 해보지 않았다는건지;;
와전된 이야기이거나 단지 해당 상황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가 부실했다고 생각됩니다.
더군다나 일화의 배경이 되는 70년대의 한국이면..문화재의 연구복원, 그것을 위한 기술투자 어쩌고 하는 분야에 자금 부어가면서 연구할만한 시절은 아니었죠.
어쩌다보니 글이 굉장히 길어졌는데 딱히 옛것을 폄하하려 한다기 보다는 애초에 과학의 발전 자체가 인간의 발전사에 가깝기 때문에 그것을 역행하는 결과물이 나오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뭐 대충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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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뚱
03.28 10:26
하하하 검색을 많이 하고 글을 주셨네요. 면도칼도 10만원 넘는것도 있더군요. 거품내서 하는 ^^ 경차가 시속 200km을 한번 넘겼다고 포르쉐와 1:1로 비교할순 없겠죠. 경차의 용도는 시속200km를 넘기는게 있는게 아니니까요. 상식적 수준이라고 짐작하시는 이유와 근거를 요청드린것이었습니다. 직접 해보시라는것은 아니구요..^^;
일본도와 대결?을 벌였던것도 캘리버50(12.7mm)이었네요. 제 기억이 가물거리네요. 아마 언급하신 철갑탄이 아닌 fmj였겠지만 원래 대전차용으로 개발된 50구경이 때린데 또 때려서^^; 7발을 버틴건 저로서는 놀랍습니다. 서양식 long sword나 반월도 등으로 테스트한 자료는 없어서 비교가 아쉽네요.
미국이 재래식 잠수함을 못만드는 거나 우리나라가 2000년 초까지 오토바이 엔진 못만드는거나 별로 놀랍진 않네요. 지금도 국내 굴러다니는 국산 오토바이 엔진은 국산이 아닙니다 . 그런 경우는 많으니까 특히 산업분야에서는요.
성덕대왕신종은 지어낸 이야기는 아닙니다. 경주국립박물관에 전화해서 확인해봤습니다. 현재 고리는 늘어나서 새로 만든것이고 핀 부분은 예전것 그대로 사용중이라고 담당자가 확인해주더군요. 제 학부때 답사때 기억으로도 이 핀이 조선시대인가 한번 교체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통일신라때 물건인지 확언은 할수 없지만 아무튼 복잡한 수식을 학부 2년, 4년이면 알수있는 수준이라고 퍼온 글의 원작자가 이야기 하는데 포인트는 천년을 넘게 학부 2,4학년 수준의 지식과 수식이 없이 만들어 이상없이 달려있는 물건을 대체하려 한, 계산 착오든 연구가 부족하든 현대기술( 광복이후를 현대로 구분합니다)의 결과물이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까이꺼 대충 만들면 되겠지라고 생각한 현대인의 오만의 결과일수도 있구요. 석굴암만 해도 그렇지요. 검색 잘하시니까 검색해보시면 될듯합니다.
칼 이야기에서 성덕대왕신종까지 정말 많이 빠졌네요. ㅎㅎ 저도 학부지만 조금 역사학을 공부한 입장에서 과학의 발전이 인간의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는 말에는 대체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렇지 않은 예도 있긴 하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발전을 추구하는 존재이고 그 결과 우리가 지구상에서 잘 살고 있는것이겠지요. 다만 발전, 실용, 효용을 따지기 어려운 시대를 초월하는 부분도 분명 존재합니다. 그 존재를 인정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른것이겠지요. 저도 덕분에 많은걸 알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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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연비
03.27 21:33
신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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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03.27 22:31
덕분에 칼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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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색주
03.27 23:18
일본도를 폄하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봅니다. 당시 여러 사서를 보아도 일본의 근접전은 당시 동아시아 최강이었고 사무라이들의 전투력 또한 결코 약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조선의 경우 해전에서는 근접전을 철저히 회피한 상황에서 화포로 적선을 부수고 화전으로 불태우는 전법을 썼습니다. 또한 왜군의 도선을 피하기 위해서 아예 근접이 어려운 판옥선을 개발할 정도였지요.
명나라의 경우 왜구의 끊임없는 침입으로 인해서 절강쪽에 피해가 많았고 후에 일본식 도검과 근접전에 대한 진법을 도입한 이후에야 겨우 어느정도 싸워볼만한 정도였지요. 실제 척계광이 그러한 무인들의 중에 가장 유명하고 그의 전법이 임진왜란때 도입됩니다.
명과 조선 모두 일본도를 모두 높게 평가하였고 제식에 도입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조선의 경우 왜검의 제조자를 꾸준히 데려왔으며 계속해서 제조 기술을 알아내려고 노력을 해왔죠. 조선은 궁시가 유명했으며, 조선의 궁시/명의 창/왜의 왜도+조총이 유명했습니다. 조선의 경우 맥궁의 관통력과 기동성이 좋았지만, 조총에 비해서 밀리고 조총+왜검의 근접전에서는 형편없이 밀리는 형편이었습니다.
일본도가 사철이 주원료이기는 하지만, 제조 솜씨는 대단하였습니다. 상대적으로 일본도의 품질도 상당히 좋았고 그것을 사용하는 사무라이들도 상당히 잘 훈련되고 실전 경험이 많은 인원들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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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뚱
03.28 11:25
전란을 몇 백년을 이어온 전사집단이었으니 그들의 전투력은 가공할만 한 것임에는 이론이 없습니다. 1603년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평화가 찾아오고 무사도가 쇠퇴했다고는 하나 19세기 류큐(오키나와)왕국에 침입하여 멸망시킨 사츠마의 군인들은 고작 3000명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천년이상된 무기가 지금까지 예술품으로 인정받고 (비싼가격에 대중화는 실패했지만) 전통의 명맥을 이어오는건 일본도밖엔 없습니다. 우리의 맥궁이 정말 대단한 무기임에는 분명하지만 박물관에나 있고 불과 500년전 가공할 위력을 자랑하던 신기전은 얼마전 복원수준에 이른게 다입니다. 서양애들 중세 리인액트는 유희에 지나지 않지요. 총과 미사일의 시대에 칼이 왠말이냐 하지만 피카소의 작품보고 저게 뭐야 하는 사람도 있듯이 (제가 그러네요 ㅎㅎ) 식칼에 비견될 그런 칼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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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한 댓글로 인하여 균형이 흐트려져버렸다능..^^
..
어찌되었든 저양반도 나름 경지에 오른듯합니다요.. 그냥 보고 감탄하면 될일이죠..ㅎㅎㅎ
비비탄만 빼고 저도 할수있을것같은데요 축구공하고 야구공쯤이야-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