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니체, 스피노자
2017.07.21 01:00
요 몇 년간은 플라톤에 빠져서 살았던 기억입니다.
특히나 플라톤은 영어 번역이 좋은게 많아서 읽어본 책은 모두 영어로 봤습니다.
한국어는 번역이 잘 된게 드뭅니다.
모 대학 철학과 교수님도 제대로 된 번역본이 거의 없다는게 너무 아쉽다고 하시네요.
대학교에서 수업하려면 최소한 영어책으로 수업해야 하는데,
대부분 철학에 관심 없는 학생들이 입학하다 보니 한국어 책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그러면 수업 내내 거의 오역 교정하다가 한 학기가 끝난다고... (물론 과장이지요)
아무튼, 플라톤의 책은 영어가 워낙 쉬우니 관심 있으시면 영어로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펭귄 클래식이나 옥스포드나 둘 다 괜찮습니다.
19세기 번역본은 저작권이 없어서 저렴이판도 있는데, 19세기판은 아무래도 문체가 요즘과 달라서 이질감이 있긴 합니다.
잡얘기가 길었네요.
최근에는 칸트, 니체, 스피노자에 관심이 많이 갑니다.
시작은 칸트였습니다. 정언명령이라는게 있는데요.
첫째. 자신의 행동준칙에 따라 행동하되, 이는 보편접 법칙이 되어야 한다.
둘째. 인간을 절대로 단순한 수단으로 다루지 말고, 언제나 한결같이 목적으로 다루도록 행동하라.
이 말이 있습니다.
참 좋은 말이예요.
일견 간단해 보이기도 하는데, 곰곰히 보면 참 지키기 힘든 말입니다.
저도 오늘하루 인간을 수단으로 보고 행동한게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칸트만 읽으면, 두 번째 정언명령을 다른 사람에게 주로 적용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 에리히 프롬의 책 몇 권을 읽고 나니
정언명령 두 번째는 나 자신에게 가장 먼저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칸트도 정언명령 두 번째를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라 말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책들을 읽으니, 포커스가 나 자신에게 더 오게 되었습니다.)
나 자신에게 정언명령 두 번째를 적용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나 자신을 수단으로 보지 마라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소명, 혹은 미션이 무엇인가요?
저는 아직 답을 못 찾고 있습니다.
에리히프롬은 인생의 소명/미션을 찾는게 인류 철학의 역사라고 말할 정도로 어려운 질문입니다.
그런데, 소명이나 미션까지는 아니더라도 삶에서 추구하고 싶은 것은 많습니다.
특히나 현대사회는 이런게 물질로 많이 표현되지요...
행복하게 살고 싶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
행복해지려면? -> 돈이 있어야 한다. 내 집이 있어야 한다.
자유롭게 살려면? -> 회사에 구속받지 않아야 한다. 회사 안 다녀도 먹고 살만한 돈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우리가 삶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는 물질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행복해지려면, 자유로워지려면 그에 상응하는 돈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가 되죠.
결국 나 자신을 돈 버는 수단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아이러니하지만, 행복을 위해 스스로를 착취하고 스스로를 돈 버는 수단으로 씁니다.
칸트의 두 번째 정언명령, 인간은 그 어떤 경우라도 수단으로 다루지 말고 목적으로 여겨라.에 어긋납니다.
(여담이지만, 한병철씨의 피로사회, 투명사회가 이들에게 큰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저는 여기서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제가 제 자신을 착취하면서 살아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에리히 프롬은 현대 사회 (1930년대를 말합니다.)에서 사람은 본질로 평가받기 보다는 사회적으로 평가받길 원한다고 합니다.
즉 '어느 직장의 누구', '어떠한 커리어를 가진 전문가'와 같이, 그 사람의 본질을 평가하지 않고 사회적 입지로 평가받길 원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당사자는, 거기에 알맞은 가면을 써서 '진짜'같이 연기한다고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저는 이 부분도 공감이 많이 됐습니다.
저는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을까요?
자기 자신을 착취하며 살아왔습니다.
제 자신의 본질이 형편없음을 알았기에, 사회적인 입지로 평가받기 위해 스스로를 착취하며 살아왔습니다.
아직도... 오늘도 저는 그렇게 살고 있고요.
이런 삶이 올바르지 않다는걸 자각하고 있지만, 고치기도 참 어렵습니다.
고치려면 다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게 가장 어렵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이런 말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해 기계를 만들고 여분의 시간을 낸다.
하지만 기계가 일을 대신해 줘서 생기는 여분의 시간에 무얼 해야할지 몰라 허둥댄다.
그래서 그들은... 그 경이로운 기계를 추앙하는데 시간을 보낸다.
요즘 구글의 딥러닝이 떠올랐습니다.
이 업계에선 대단하거든요. 따라갈 수도 없을 정도로 대단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쪽 연구자들은 구글을 거의 추앙하다시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글이 연구하는 분야는 피하는 움직임도 있고요.
칸트, 스피노자, 니체, 에리히 프롬...
참 좋은 책을 많이 낸 분들입니다.
(플라톤도 정말정말 좋습니다. ^^ 언제 읽어도 감동...)
많은걸 느끼게 해 주는 분들이예요.
읽어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내 삶의 소명을 찾아라.' 요즘 저의 모토입니다. ^^
코멘트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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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날다
07.21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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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LPHY
07.21 12:07
목민심서, 유배지에서 쓴 편지 등 정약용 선생님 말씀이 참 좋지요.
중국 철학은 저와는 잘 안 맞는 것 같습니다. 일견 옳아보이는 말도, 이런 사상들이 종합되어 권위만을 내세우는 사회가 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들고요.
이렇게 편견을 가진 시각이 제가 동양철학을 잘 모른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조선시대 철학 서적들은 또 좋은게 참 많습니다. 이걸 보면 중국쪽과 저는 잘 안 맞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은 상형문자를 쓰던 시절에도 했다고 합니다.
인간이라는 종의 습성이라고도 누구는 주장하더라구요. ^^ -
최강산왕
07.21 09:11
"삶에 의미란 없다" 라고 어느 교회 목사님이 양심선언 하시던게 생각나네요. 보통,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살고, 어쩌고 저쩌고 주저리 주저리 말하는데 말이죠.
정말 의미가 없다 라는 말은 아니고, "본인의 행복을 희생시키면서 까지 꼭 이루어야 할 만한 가치 있는 일은 이 세상에 없다"
정도로 해석하면 될 거 같습니다.
저는 그래서 한걸음 가볍게 살려고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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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LPHY
07.21 12:09
종교는 소명을 갖게 해 주어서 삶을 더 편안하게 살 수 있게 해 준다고 합니다.
물론 편안하기때문에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삶을 산다고도 하고요.
저는 종교가 없어서 어떤 기분인지 모르겠지만
삶에 소명이 있다는건 참 행복할 것 같습니다. ^^ -
행복주식회사
07.21 11:36
인문학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한국 사회가 그 만큼 병들어 있어서 철학을 즐기기 보다는 마치 당위를 갖고 보아야 하는 것처럼 전파되는 것도 웃기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한 때 CEO나 경영 서적들이 마치 광풍처럼 일었던 시절 한국의 직장인들은 사실상 의미 없는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찍어내리는 방식의 업무가 다반사인 한국에서 무슨 소중한 것 먼저하고...자신의 업무를 무슨 중요도와 의미를 부여해가면서 정하나요? ㅋㅋㅋ 부장님과 이사님이 시키면 그게 우선순위이지...ㅋㅋㅋ
철학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인도 여행을 가보면 한국의 생활이 덧없지만 그게 카스트 제도라는 허물에 쌓여 너무 많이 것이 잠깐 보고 가는 여행객 눈에는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만 던져주는 것처럼 보여지기 때문이죠. 그보다는 내 삶은 내 가족과 그저 행복한 시간과 일을 소소하게 나누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여기에 몰입하는 게 가장 뜻깊은 일이다 생각이 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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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LPHY
07.21 12:02
그 부분을 잘 설명해 주는 철학자들이 위의 분들입니다.
니체, 칸트, 스피노자, 에리히 프롬.
우리나라에서 고전이라 함은 고대 그리스 시절이나 공자 맹자 정도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회 전체적으로 인문학에 대한 공감대가 크게 형성된지 오래 되지 않아 그런 것 같습니다. -
행복주식회사
07.22 05:34
20년도 더 되었지만 내 언급하신 철학자들의 관련 서적은 몇 권 읽어보았습니다.
제 삶의 물음에 딱히 답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스피노자는 점점 더 싫어지는 철학자 중 하나네요. 어쨌든 인문학은 삶 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중요한 골격을 만드는 필요한 자양분 중 하나라 생각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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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후^^
07.22 07:36
저도 스피노자를 좋아해서 에티카 여러 판본으로 3권을 가지고 있는데, 말씀하신거 처럼 대체적으로 철학서 번역이 좀 그렇죠.
전 칸트는 답답한 양반같아서 싫더군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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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LPHY
07.22 09:58
철학서적 번역 전문 회사의 번역서들도 이중번역 (그리스어->영어->한국어 또는 독일어->영어->한국어)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교양서적 출판사는 그리스어 -> 중세영어 -> 현대영어 -> 한국어로 번역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습니다.
천병희 선생님과 같이 그리스어를 곧바로 한국어로 직역하는 책도 있지만 드물고요.
한국어로 직역한다고 해도 그게 올바른 한글로 쓰여진 책도 드뭅니다. -_-;
한글책도 신영복 선생님처럼 글 잘 쓰는 몇몇 분들을 제외하면
블로그쓰듯 대충 휘갈겨쓰고 출판해 버리는게 대한민국 출판사의 현실인데...
철학서적 번역이 잘 되길 바라는건 욕심같기도 합니다.. ㅠㅠ
칸트는 원래 답답한 양반이잖아요.. ^^
그 시기에 결혼을 안할 정도로.. 마을 사람들이 치를 떨었다니까요.
사교성은 좋다는 평가가 남아있는데, 사교시간도 분단위로 정확하게 재어서 할당(?)했다고 하네요.
글에서는 사람 성격이 보인다고 합니다.
니체가 시력을 읽기 전에는 연필로 글을 썼는데요, 시력을 잃기 시작하면서 쇠타자기로 도구를 바뀌었습니다.
그리고나서 글도, 옆에서 사근사근 말 하는 듯한 느낌에서, 쇠로 두드리는 듯한 느낌으로 바뀌었다고 하더라구요.
니체 친구들이 글을 읽고 그리 느꼈다고 합니다.
연필로 쓰냐 타자기로 쓰냐에 따라서도 글의 느낌이 바뀌는데
칸트는 읽다보면 이 사람 성격이 느껴지더라고요 ^^
오... 멋지네요....
철학이라..... 마음에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 모두 가져다 주는 것이죠.. ^^
영어로 된 좋은 말씀도 좋지만, 우리말로 잘 풀이된 것이 많은 우리나라와 주변의 철학책도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싸면서도 잘 풀이된 책이 많아요.. 서양보다 몇 백 년에서 몇 천년 더 오래 전부터 '사람은 왜 사는 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해 생각해 온 동양입니다.
중국 대륙에서 나온 것이 참 엄청 나기는 하지만, 저는 우리나라의 것을 더 알려드리고 싶네요.
뭐.. 오래된 것도 참.. 좋지만, 정약용 선생님이 쓰신 목민심서, 경세유표만 읽어봐도 머리를 망치로 얻어 맞은 듯한 깨달음을 얻으실 수 있죠.
하여튼 ,,, 깨달음의 누리에 들어오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저도 꾸준히 읽고는 있는데... 먹고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법구경'을 벌써 한 해가 넘도록 1/3도 못 읽고 있네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