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렇게 당시 94, 95년을 맞이하면서 저도 많은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삼성 기흥 사업장은 3조 2교대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즉 하루에 16시간만 생산을 하고 야간 10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는 생산라인을 정지하였습니다.
또한, 한달에 하루는 생산공정라인을 완전히 정지시켰죠. 물론, 저는 그 쉬는 일요일에 나와서 서버 유지보수작업(데이터베이스 백업, 서버 재설정 등)을 했고요.
그런데, 94년도에 들어서 메모리반도체 주문이 물밀듯 들어오면서, 3조 3교대, 365일 24시간 무정지로 가게 됩니다. 크흑~~~
그러면서 받은 것이 바로 '삐삐(페이저. 일명 개목걸이)'.....

하여간, 365일 24시간 무정지로 라인이 돌아가면서, 제가 있던 팀이 관리하던 4, 5라인의 데이터가 매일매일 하루가 다르게 기하급수로 늘더군요.
그러면서, 엄청난 양의 서버와 스토리지 증설로 이어지고, 저희 팀도 3교대 근무를...

어쨌든, 이런 저런 크고 작은 사고도 있고 했지만, 엄청난 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하루가 다르게 기흥 사업장의 환경이 달라지더군요.
그러면서 신규 6, 7, 8라인의 증설은 물론 새로 온양 사업장도 생기는 등 엄청난 속도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가 성장하게 됩니다.
이때가 기흥 사업장 한쪽에서 작게 운영하던 LCD 라인에 대한 투자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후, 큰 일 없이 세월은 흘러가더군요.
뭐, 제가 다루던 소프트웨어가 FACTORY WORK 이라는 것으로 업그레이드 되고, 서버가 ALPHA 칩을 장착한 DIGITAL 시스템으로 도배하였으며, 덕분에 캐나다 출장도 가보고 했네요.
이런 저런 성과 덕에 저는 97년 여름에 서울 잠실로 올라오게 됩니다. 잠실 월드타워에 있었는데, 그때 하게 된 것이 바로 차세대 기술 개발이었습니다.
제가 있던 곳에 약 500명이 있었는데, 팀별로 달랐지만, 주된 주제였던 신기술이 VOD, 검색엔진, CALS, 지식기반시스템 등 매우 다양했습니다.
저는 CALS와 검색엔진 개발 관련 팀에 있었는데... 새로운 기술 업무에 대한 기쁨도 잠시... 

겨우 3개월 뒤에 우리나라에 큰 사건이 터지게 되죠. IMF 외환위기!

이 사건으로 인해 모든 회사들이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우리나라의 산업 및 사회구조가 완전히 달라지게 되는 것은 모두들 아시게 될 겁니다. 그런데, 이 IMF의 최대 수혜자 중의 하나가 바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라는 것을 모르실 겁니다.

왜냐하면, 80~90년대 우리나라 반도체 사업은 삼성 뿐만 아니라, LG그룹과 현대그룹도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LG그룹은 가전, 산전, 계전, 기전 등에 각 계열사별로 흩어져 있던 반도체분야를 LG반도체(주)로 통합하여 운영하고 있었는 데, 청주공장이 대표적이었습니다.
현대그룹은 지금의 여주이천에 새로 공장을 짓고 하이닉스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IMF 사태가 발생하면서 정부에서 현대하이닉스와 LG반도체를 합병하도록 합니다.
물론 일방적으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합쳐라가 아니고, 두 회사의 경영상태, 사업전망, 경쟁력 등을 평가해서 심사결과에 따라 몰아주는 거였죠.

참고로 당시 LG반도체는 주로 ASIC 기반으로 하고 있었지만, 상당한 수익을 내면서 알차게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메모리 반도체를 주력으로 하던 현대하이닉스는 공장라인을 완전 자동화하고 무인 운영을 추구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생산수율이 80%대를 넘나드는 불안정한 수율로 인해 해마다 상당한 적자를 보고 있었죠.
그래서 당시 관련 분야 종사자들은 대부분 현대하이닉스가 LG반도체에 흡수될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삼성전자에서도 LG반도체의 생산노하우와 현대하이닉스의 최신 설비가 조화를 이루게 되면, 삼성전자에게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대비책을 세운다 어쩐다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99년 결과는 전혀 생각지도 않게 현대하이닉스가 LG반도체를 흡수 합병하게 됩니다.
당시 LG반도체가 심사에서 이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실제로도 모든 평가항목이나 실적을 봐도 그렇고 하여간 그랬지만, 심사결과는 현대하이닉스가 더 높은 점수를 받아서 하이닉스로 합쳐지는 것으로 결론이 납니다.
뒷 이야기가 많지만, LG에서는 방심하고 있었고, 현대에서는 각종 로비 등을 총동원해서 역전시켰다고 하더군요.

여담이지만, 그렇게 현대하이닉스로 결정되던 그날! 수원 시내 모든 식당과 음식점이 삼성전자 사람들의 회식으로 빈자리가 없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현대가 반도체 메모리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겨우 5년도 안되었기 때문에 저도 그렇고 당시 관련 전문가들 입장에서는 현대가 반도체 메모리 사업에서 자리를 잡고 안정화되어 수익을 내기까지는 앞으로도 10년은 걸릴거라고 추정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추정은 매우 정확한 것이고, 그것도 그동안 반도체 메모리 시장이 계속 활황이고, 현대가 사고 없이 잘 사업을 진행한다는 가정이었죠. 따라서, LG반도체의 ASIC 분야의 수십년 노하우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LG가 주가 아닌 현대가 주가 되면 이건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당시 현대가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하면서, 관련 노하우 및 인력이 매우 부족했기 때문에, 삼성전자는 물론 LG 반도체 인력을 상당히 빼갔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생산 라인을 완전 자동화하여 무인으로 운영하였죠.
겉으로는 사람인 라인에 들어가면 각종 오염물질이 유입되므로 불량율 감소를 위한다는 거였습니다만...
실제로는 부족한 인력을 자동화 라인으로 대체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반도체 라인을 운영해보면, 사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동화로 처리할 수 없는 것이 매우 많고, 생산성도 자동화 기계보다 사람이 몇 배 나은 것도 많습니다.
지금은 다르지만, 예를 들면 당시 웨이퍼 표면 오염물질 확인은 삼성전자 기흥에서는 라인의 작업자가 테스터장비(100배 이상의 고배율 현미경)로 직접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숙련된 작업자가 8인치 웨이퍼 한 장 전체를 현미경을 통해 눈으로 확인하는데, 단 2초도 안 걸립니다.
하지만, 자동화된 테스터 장비가 웨이퍼 표면을 전체 스캔하는데는 무려 1분 이상이 걸리는 것이 당시 기술수준이었습니다.
테스터 장비 한 대 가격이 제일 싼 것도 2~3억원이었는데도 말이죠. 어차피 테스터 장비에 웨이퍼를 한 장씩 걸로 빼고 하는 것은 자동화하지 못해서 작업자가 하는 것은 똑같았고요.
이밖에도 라인에 문제가 생기면, 삼성은 라인 내 간이 대기실 또는 작업 중이던 작업자가 즉시 처리했지만, 현대는 라인 밖 대기실에서 들어가서 처리하였기 때문에 처리가 비효율적이었다고 들었습니다.

하여간, IMF 때 두 회사가 현대하이닉스로 통합되면서, 삼성전자에서는 향후 10년은 경쟁자가 없는 보장된 미래라는 소리를 대수롭지 않게 나눌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현대하이닉스는 이후 몇 차례의 법정관리와 매각을 통해 SK에 인수되었는데, SK에 인수되기 전인 2000년 대후반에 이르러서야 라인이 안정되어 안정된 수율을 바탕으로 순익을 내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0년이나 걸린 까닭은 합병 당시 LG반도체 소속 전문가들이 대거 퇴사했기 때문었는데, 삼성 출신이고 그것도 메모리반도체 전문인이 대부분이었던 현대하이닉스 쪽에서 LG반도체를 인수하게 되니, LG반도체 임직원 입장에서는 경력이나 실력 등에서 인정하기 힘들었던 것으로 봅니다.
하여간 그렇게 LG반도체의 인재들이 당시 대만 등 외국회사나 관련 중소기업으로 옮겼다는 이야기가 많았고 사실이었을 겁니다.
덕분에 현대하이닉스가 LG반도체의 노하우를 자기것으로 만드는데 매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고, 그 양이나 질적인 면에서도 손해가 컸기 때문에 10년이란 세월을 고생한 거겠죠.

이후로, 삼성전자의 발전과 승승장구는 제가 더 설명해드릴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전 전통부 장관이셨던 진대제 장관이 1992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 상무이사로 와서 기술적인 부분에서 많은 공헌이 있었고, 이후 삼성전자 대표이사까지 지내시면서 많은 업적을 세웠지만,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이상으로 제가 알고 있었고, 당시 경험했던 던,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대한민국 특히 삼성전자의 1990년대 발전사에 대한 기억을 정리해보았습니다.
물론, 제가 잘못 알고 있거나, 틀린 부분도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만, 혹 관련 사항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공지 [공지 -최종 보고] 운영비 모금. 말씀 드립니다 [2] KPUG 2019.12.28 255
공지 [공지 -중간 보고] 모금 중간 보고드립니다 [14] KPUG 2019.10.29 782
공지 [공지] KPUG 운영비 모금. 안내 드립니다. 미리 감사드립니다. [24] KPUG 2019.10.17 807
공지 [안내의 글] 새로운 운영진 출범 안내드립니다. [12] 맑은하늘 2018.03.30 4006
공지 KPUG에 처음 오신 분들께 고(告)합니다 [99] iris 2011.12.14 412223
28869 ISSCC와 폐렴 [1] update 나도조국 02.22 51
28868 흉흉 합니다.. [7] 아람이아빠 02.20 137
28867 인생이 2015년에서 멈춘거 같은 느낌이네요.... [3] update tntboom 02.19 107
28866 8개월간의 힘든 항암치료를 마치며... [16] update 敎主 02.19 130
28865 조금 홀가분하게 떠나보고 싶었는데, 마음처럼 안되는군요. [5] 해색주 02.16 218
28864 빅지름 하였습니다. [10] file 스파르타 02.12 231
28863 턴테이블을 하나 샀습니다. [21] 노랑잠수함 02.12 178
28862 봉준호 감독님 대단하시네요!! [4] 박영민 02.10 158
28861 조만간 맥북 프로 2010 업그레이드 할 것 같습니다. [6] 해색주 02.09 144
28860 뭐 줏어먹을 게 있다고 [4] 해색주 02.09 131
28859 작은차로 차박을 6번 [7] 바보준용군 02.09 159
28858 통신학회 이번에도 다녀왔습니다. [4] 스파르타 02.08 105
28857 뜬금없는 차 자랑...^^ [14] file 노랑잠수함 02.06 216
28856 쓸때없는 구상 다마스 캠핑카 [13] file 바보준용군 02.05 219
28855 요새 가지고 노는 장난감입니다. [7] Lock3rz 02.04 177
28854 이번엔 대부도 차박을 다녀 왔습니다 ㅡ. ㅡ [11] file 바보준용군 02.02 197
28853 미니멀리즘을 추구해야 하는데 [10] 해색주 02.01 197
28852 오늘도 철없는 아재는 뭔가 쓰짤 때기 없는걸 집에 들였습니다 [6] file 바보준용군 02.01 179
28851 노트북 셋팅이 어느정도 끝났습니다. [3] file 스파르타 02.01 122
28850 새 밥벌이 머신 구매 하였습니다. [19] file 스파르타 01.28 317

오늘:
2,057
어제:
2,590
전체:
12,989,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