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기억 3 - 여의주 물고 구름 타니 바람도 순풍이라 ...
2020.01.19 20:43
코멘트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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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하늘
01.20 09:27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TX
01.20 11:13
LG반도체가 참 아깝네요. 글 감사합니다. -
minkim
01.20 23:59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
나도조국
01.22 04:34
재미있는 시절에 재미있는 곳에서 근무하셨네요.
진대제 사장의 공과는 보는 시각에 따라 많이 다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언급하지 못할 사정이 좀 있어서.
삼성이 반도체에서 도약하는 시기는 256k와 1M DRAM이 교체되던 시기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이 시장 상황을 오판하고 1M로 너무 빨리 넘어가고 시장은 256k를 원해서, 기술개발이 뒤떨어져서 1M으로 못 넘어가고 있던 삼성이 한동안 혼자 장사하면서 그동안 쌓였던 적자를 모조리 해소하고, 향후 몇년을 먹고살 만한 기반을 마련했다 라고 알고 있죠. 90-94년이 삼성/하이닉스가 4Mb (B 아님) 양산하던 시기는 맞습니다. 하이닉스는 당시 현대전자죠. 개발은 대략 91-92년에 완료되었죠. 하이닉스도 92년 경에는 이미 수율이 100%를 넘어서 안정화되어있었습니다. (말이 안되는 듯 들리지만 100% 넘는 수율이 안정화된 메모리에서는 흔합니다. 쉬운건 아니지만) 물론 16Mb 기술을 거꾸로 들여와서 원가를 더욱 낮추는 작업도 3사 공히 진행하고 있던 때였고요.
메모리 개발 초창기에 국책프로젝으로 세금 왕창 몰아준 것도 잊으면 안됩니다. 메모리3사야 다 개발해 놓은걸 국가가 숟가락만 얹었다 라고 강변할지 몰라도 (이건 사실이긴 합니다) 그럼 다 개발해 놓은걸 무슨 염치로 세금 가져다 썼냐 라고 되물어야 합니다. 지금 삼성 하이닉스의 성공에는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세금 몰아다준 국민의 피가 깔려있습니다. 물론 그 몰아다준 세금의 상당부분은 비자금으로 어디론가 흘러갔겠죠. 누구의 말이 되어있을 수도 있고요.
하이닉스는 어쩌면 원가절감에 삼성보다 더 적극적이라 수율이 조금 떨어지는 경우가 왕왕 있었습니다. 양산중에는 케미칼을 안 바꾸는게 정상인데.. 싼거 써보다가.. 뭐 그런 거죠. 삼성은 나름대로 기계 만지는 사람들이 알아서 tuning해서 수율을 올리는 통에 calibration한번씩 할때마다 조금씩 홍역을. 사람 하나 나가면.. ㄷㄷㄷ 당시엔 전무 상무 이런 사람들도 그리 실전 경험이 많지 않아서 (예외는 아무도 없죠. 짐인 짐만 빼고는요) 어마어마한 경영정책상의 실수를 많이 저지르곤 했었답니다. 그 밑에서 말 그대로 쌔빠지게 고생한 분들의 노고에 묵념. ㅠㅜ
LG전자가 ASIC쪽에 경험이 많았는지는 살짝 의문스럽지만 LG가 메모리는 잘 하고 있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다들 일본회사 제품을 사진찍어서 베끼는 상황이라, 칩 사진찍어보면 어느 회사것을 베꼈는지 쉽게 알 수 있기는 했는데, LG는 베낀다기 보다는 아예 일본 히타찌랑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같이 개발하는 상황이어서 나름 앞서가고 있기는 했었습니다. 그런데 앞서간다는게 사실 돈이 남아야 앞서가는 것이라, 공정이 앞서가는게 굳이 좋은건 아니랍니다.
하이닉스가 그때 고생을 한 건 맞는데 trench cell을 버리고 stack cell로 가면서 메모리 셀 어레이의 수율문제는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3사 공히 그때쯤은 전체 디자인은 베끼지만, 주변회로 설계나 spare cell 사용등에서는 자체 기술을 개발해서 상당한 특허를 내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인력에 대해서는 삼성에서 빼가는 인력이 제일 많았지만 하이닉스/LG/삼성간 이동이 어느 방향이건 제법 있어왔습니다. 나름 눈치를 봐야하기때문에 이적후 한동안 잠적하다가 일을 하는 경우도 있고, 해외 기업을 통해 징검다리 이직도 흔했습니다. 국내사의 해외지사를 통한 눈가리고 아웅 징검다리도.. ㅎㅎ
사실 하이닉스 초기 고생의 일부는 왕회장님이 자초하신 건데요.. 첫 팹이 거의 완공단계에 들어왔을때 왕회장님이 방문하셨답니다. 이 공장이 아시아 최대인가 ? 저.. 실은.. 다 필요없고 아시아 최대로 키워.. 한마디에 완공단계이던 팹을 재설계.. 덕지덕지.. 팹을 키워서 공장 구조가 비정상적인 부분이 좀 있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사실이건 아니건.. 당시 '관리부장'이 전무급이던 연구소장을 좌지우지하던 상황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을 일입니다. 일개 부장이 자기보다 까맣게 높은 상무급이라도 상대도 안해줬습니다. 거의 '전무 보내' 정도.
사실 삼성 ASIC이 IMF의 최대 수혜자란 얘기는 다른 측면에서도 있었는데요.. 그해 진대제 사장이 ASIC으로 1조 매출을 하겠다고 공언을 했는데 IMF직전까지 5천억도 못해서 (거의 연말이죠) 목표 달성이 불가능이란 건 기정사실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IMF로 1불당 2천원이 넘으면서 1조를 가볍게 달성. ㅋㅋ 그렇지만 우리나라가 ASIC의 불모지인 것은 다른 이유가 큽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실리콘 밸리 곳곳에서 잘 활약하고 있는걸 보면 사람 문제는 아닙니다.
이번 삼성 인사에 잘 아는 사람들이 주왁 포진했더군요. 나도 나이가 많이 들었나 싶었습니다.
추천:1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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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날다
02.08 11:02
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아무래도 삼성 안에서 일하고 있던 저로서는 정보의 통로가 편중된 면이 있겠죠.
LG반도체가 메모리에 기술이 있었고 잘하고 있었다고 하셨는데,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다만, 그당시 삼성 뿐만 아니라 LG도 그렇고 다른 중소 반도체 업체들도 주로 메모리 보다는 ASIC 위주였던 것으로 선배들에게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ASIC 이라는 게 말 그대로 주문형 반도체인데, 여기에는 메모리도 포함이라.. ㅎㅎㅎ ... 제가 ASIC이라는 표현보다는 파운드리 중심이라는 말을 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근무하던 시절 DRAM 시장이 터진 초기 1~2년까지도 삼성 반도체는 10대 관리 제품(? 정확한 명칭이 생각 안나네요)이라고 해서 당시 인텔, 모토로라, 썬, 실리콘 그래픽스 등 세계 주요 반도체 회사의 반도체를 주문받아 위탁 생산하고 있었고, 이들 제품의 비중에 전체 생산에서 제일 컸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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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조국
02.11 17:43
다른 회사는 잘 모르겠지만, 삼성은 당시 부천에서 주문형 반도체 개발을 제대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자체 기술 개발은 그리 원활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부천의 주역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삼성을 뜨셨고 어떤 측면에서는 그게 꼭 나쁜것 만은 아니었습니다만, 삼성이 그 기술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지요. 믿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ETRI나 일부 학교들도 쓸모있는 일을 제법 하고 있었습니다. 쓸모 없는 일도 많이 하고 있기는 했었습니다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학교에서 기술을 선도하기가 힘들어졌고, 우리나라 회사들이 기반기술을 개발하지는 않으면서 학교와 기반기술 개발을 같이 추진하지도 않는 상황도 개선되지 않는게 안타깝기는 합니다. (기반기술이 뭐냐는 질문도 한참 얘기할 만합니다 ^^) 국내외에서 공부 많이 한 분들이 교수라는 틀에 갇혀서 썩어가는걸 보면 너무 안타깝습니다. (뭐 그렇다고 제가 뭘 뾰족하게 잘 하고 있는것도 아닙니다. ^^)
당시 위탁생산은 foundry라고 부르기는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foundry라기 보다는 2nd source 정도로 보는게 더 맞을 겁니다. 고객사가 원하는 공정을 만들고 (1st source) 고객사가 주는 db를 그냥 찍어내는 것이니까요. (지금의 foundry에서도 이런 사업이 존재하긴 합니다) 그래서 지금 삼성이 foundry를 제대로 하려고 노력을 합니다만, 일단 기본적인 mind-set이 따라주지 않아서 고생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물론 삼성이 처음 추진할때 (20세기 말, 진박사님이 시스템반도체 할때 얘기입니다) 보다는 엄청나게 좋아졌습니다만. 잘 하는 분들도 많이 들어가 계시고요. (그런데 잘하는 분들 많은 것에 비해서 결과물이 너무 안나온다는게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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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나도조국님.
이번 삼성 인사에 잘 아는 사람들이 주왁 포진했더군요. 나도 나이가 많이 들었나 싶었습니다.
연세가 매우 많으시군요.~!! 제가 아는 그 분 맞죠??
To : 별날다님.
저도 물리학과 출신이다 보니, 1~2년 선배들이 이천시의 현대 하이닉스로 취업하신 분들도 많으시고, IMF 직전 취업 했던 주변인들도 삼전이나 현대 하이닉스 등으로 취업을 했다가 현재의 SK 하이닉스에 일부 생존(?)해 계신분도 있고, 삼전에서 잘 살고 있는 동기들도 있기는 합니다.
연륜이 묻어 나는 글에 저는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
나도조국
01.24 07:35
산신령님이 저를 잘 아시는거 맞죠. ㄷㄷㄷ
용수그룹을 알아야 하이닉스를 조금 안다고 할 수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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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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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조국
01.24 09:27
LG합병당시 이미 공장 위치가 청주/이천으로 분리되어있었기때문에 임원진을 제외한 분들이 텃세로 회사를 나간다던가 하는 것보다는 불확실한 경영방향 등때문에 자리를 뜨셨을 겁니다. 향후 LG반도체 청주공장은 파운드리 사업부 (매그나칩)과 플래시 (하이닉스 잔류)로 정리되게되죠. 어차피 DRAM하시던 분들은 히타치 관련 기술이었기때문에 하이닉스의 주력 DRAM과는 별개의 기술을 개발하고 계셨습니다. 아마 당시 기존 고객을 천천히 하이닉스 쪽으로 넘기고 청주쪽 DRAM은 접었을 겁니다. (제가 미국온 뒤의 일입니다)
IMF당시엔 하이닉스 자체도 매우 어려워서 (LG합병과는 완전 별개로요) '당장 순익이 나지 않는 프로젝은 다 접는다' 를 모토로 상당히 쓸모있을 수 있었을 많은 프로젝들이 공중분해되었었습니다. 잘한 결정이냐 아니냐는 알기 힘들지만 메모리가 아닌 기술의 기틀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걷어차버린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청주에 반도체 관련 업체도 제법 있어서 청주대에는 반도체공학과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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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
01.29 08:46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