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돌발상황

2010.02.25 17:27

tubebell 조회:853 추천:4

"어젠 재밌었어?"

 

어제 그녀는 친구의 집에서 밤을 샜다고 그랬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밤을 샜다고 내게 말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부재로 내가 지레 짐작했을 뿐.

 

"응, 겁나 피곤해."

 

즐거웠다는 느낌보단 어제 너무 무리해서 이제 남은 힘이 없다는 표정에 더 가까웠다.
앞만 보며 약간 지친 표정으로 걸어가는 그녀를 보자니 이유 없이 미안했다.
왜일까, 그냥 내 힘든 마음을 이렇게 잘 지내고 있는 그녀에게 전달하는 것이 미안했고
내가 너무나도 그녀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것이 또 미안했다.

 

나도 모르게 마음 속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미안해."

 

"응? 뭐가?"

 

아차, 싶었지만 이미 튀어나온 말이라 해명을 해야 했다.

 

"아니, 그냥...... 넌 잘 살고 있는데 난 늘 너를 붙잡고 안 좋은 이야기만 하잖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엄청 화가 난 표정으로 톡 쏘아붙이는 그녀.

 

"아...... 진짜 그러지 좀 말라고! 내가 오빠한테 그러는 거 좋아서 그런거지.
 싫으면 내가 오빠 얘기를 듣기나 하겠어?"

 

보통때면 그 정도 선에서 끝났을 그녀였는데 오늘은 말이 조금 더 길었다.

 

"어휴, 왜 대체 안 믿는거야? 내가 장난스레 얘기하는 거 같지만 나 정말로 오빠 좋아한다니깐?
 문자에 적고, 지나가는 말로 그렇게 말하고 하는 게 그냥 예의상 하는 말 같아?
 나도 함부로 그런 말 쉽게 내뱉는 그런 사람 아니라고!"

 

사실 평상시에도 누구에게나 좋아한다, 사랑한다 따위의 말을 쉽게 하는 그녀였기에
나는 저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도 없을 뿐더러, 그 말들이 타인에게 하는 '좋아한다'와
내게 하는 '좋아한다'로 구분짓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사실은 그녀는 저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예의상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가 끝나기 전에
난 그녀의 어깨를 돌려 당겼다.
휘둥그레 커진 그녀의 눈이 시야에 들어왔고
내가 눈을 감았는지 그녀가 눈을 감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오직 감촉만이 내 입에 느껴졌다.

 

도둑키스.

그 순간에도 이건 너무 무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휩싸였지만 후회하긴 이미 늦었었다.
그녀도 역시 허락을 했기에.

 

길거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니, 다른 이들이 우릴 보고 있을 거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기쁨이 우리 주위를 감싸는 것 같았고, 행복이 다시금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잠시 후에 난 살그머니 눈을 떴다.
과연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아직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입은
웃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이 나지막하게 말한다.

 

"좋아."

 

부끄러움, 낯설음, 어색함을 넘어선 느낌.

그건 사랑이었다.

 

 

* 이건 얼마전 tubebell님께서 꿈을 꾸셨던 내용을 옮긴 글입니다 -_-;;;;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공지 [공지] 2025년 KPUG 호스팅 연장 완료 [9] KPUG 2025.08.06 153
공지 [공지] 중간 업데이트/ 다시한번 참여에 감사 드립니다 [10] KPUG 2025.06.19 790
공지 [안내의 글] 새로운 운영진 출범 안내드립니다. [15] 맑은하늘 2018.03.30 32333
공지 KPUG에 처음 오신 분들께 고(告)합니다 [100] iris 2011.12.14 443298
29776 노트북 메모리가 박살났습니다. [6] matsal 06.05 287
29775 산신령님을 뵈었습니다. [7] 해색주 06.02 336
29774 [공지] KPUG 운영비 모금. 안내 드립니다. - updated 250601Su [28] KPUG 06.01 1208
29773 최근에 만든 만든 신상..강아지 원피스.. [14] file 아람이아빠 05.27 452
29772 험난한 재취업기[부제 : 말하는대로 된다. ] [16] 산신령 05.21 527
29771 에고 오랜만에 근황이나.. [19] 윤발이 05.18 471
29770 알뜰폰 가입했습니다. - 이제 동영상 자유롭게 볼 수 있습니다. [9] 해색주 05.16 443
29769 망할뻔 한 강아지 가방.. [10] file 아람이아빠 05.15 385
29768 소소한 지름들 [7] 해색주 05.04 465
29767 펌/ 무거운 침묵 by 추미애 [6] file 맑은하늘 05.04 396
29766 시민들이 모여있네요. 조국 장관 이후.오랜만에 서초역 왔네요 [8] 맑은하늘 05.03 370
29765 비가 오네요. [2] 해색주 05.01 357
29764 손수건 만들기.. [10] file 아람이아빠 04.28 404
29763 추천 가전제품 (비데랑 정수기) [4] file minkim 04.19 548
29762 오랜만에 등산화 신고 천마산역 가는길이네요 [9] 맑은하늘 04.13 859
29761 10년 넘어서 노트북 바꿨습니다. [16] file matsal 04.12 873
29760 전 이 시국에 미싱.. 갤럭시탭 케이스 리폼.. [4] file 아람이아빠 04.11 824
29759 이 시국에 팜 =) [7] 왕초보 04.11 816
29758 윤석렬 대통령 파면 [11] 해색주 04.04 815
29757 Palm M505/M515 [7] 라이카 04.04 504

오늘:
5,702
어제:
15,027
전체:
16,568,0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