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온 터키의 Izmir 새 집에서 삽질 프로파일링을 해봤습니다.
2012.06.27 20:19
지난주 터키의 유명한 관광도시 Izmir에 도착했습니다. 친구도 없이 혼자 열심히 살아남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예전 학생들의 말을 빌리면 이 도시는 터키에서 가장 미녀가 많다고 유명하다네요.
어제 집 계약하고 이사도 했습니다. 대학이랑 가깝고 해서 비싸게 주고 계약했는데요. 역시나 돈이 좋군요. 버스 타기도 쉽고 슈퍼도 적절한 거리에 있어 마음에 쏙 듭니다. 무엇보다 가구 인테리어가 정말로 로멘틱하게 꾸며져있는데요. 분명 이전에 대학생이 묵었을 텐데, 그런 피 끓는 젊은이들이 이런 훌륭한 공간에서 무엇을 했을 까요? 처음에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는데 군데군데 발견되는 잔해(?) 들이 자주 눈에 띄어서 나름 프로파일링(삽질)을 해봤습니다. 참고로 거실 등불은 침침한 파란색 빤짝이가 회전하는 스타일입니다. 켜 놓고 있으면 CSI에서 체액 찾을 때 쓰는 등불이 켜 있는 느낌이 납니다. 차잇점은 이게 회전도 해요. 집에는 에어콘 두대, 벽걸이 티비가 두대, 사람 둘은 누울 수 있을 법한 대형 소파가 들어있습니다. 거의 모든 바닥은 긴털 카펫으로 깔려있네요. 무슨 호텔같습니다. 전에 살던 사람은 어떤 생활을 했을 까 궁금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곳곳에서 남녀 모두의 물품이랑 헤어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본래 방주인이 남자였는가 여자였는가를 구별하는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욕실의 온통 핑크빛 타올들을 보면 여학생이 산 것 같지만, 거실의 투박한 담배 재떨이는 남자 것 같기도 합니다. 처음 냉장고에 앱솔루트 보드카가 반이 상 비워져 남겨져 있었고, 자주 밥을 자주 해먹은 흔적이 없는 것을 보니 남자 같았지만, 이게 결정적인 단서는 아니니까요. 그러다 집 전체에 균일하게 떨어져 있는 검은 짧은 머리카락를 보고 남자임을 확신했습니다. 디럽게 이거 줏는 것도 일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겨있는 빈 맥주캔들의 양을 생각해 보면 여자가 먹고 쌓아 놓기는 조금 많은 양이었습니다.
두번째로 침대 시트를 갈다가 매우 긴 금발의 머리카락을 아주 많이 발견했습니다. '이 검은 머리 남자가 머리를 길렀다가 금발로 염색도 했었나?' 라고 추론을 해봤지만, 짐을 날라주던 친구가 옷장에서 발견한 작은 검은색 콘돔 팩을 저에게 보여주며 제 추론이 틀렸을 꺼라군요.
이 모든 단서들을 종합해 보면 여자친구분은 자주 놀러왔지만 밥을 해주진 않았으며, 어떤 이유에선가 침실과 욕실을 주로 사용한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저는 얼굴 모르는 남들이지만 그 둘이 결혼해서 같이 큰 집으로 이사간 후, 애기들 낳고 잘 살고 있으면 좋겠네요.
바닥의 카페트랑 침대 시트는 업체에 맡기고 갈았지만 뭔가 더 많은 일이 일어났을 것 같은 그 거대한 소파의 시트는 쉽게 갈을 방법이 없네요. 앉을 때마다 뭔가 징그럽고 더럽다는 느낌이 듭니다. CSI에 나오는 파란색 광선 센서를 빌려오지 못하는 이상, 날 잡아서 소파 커버도 벗겨 빨아야 겠어요.
관광도시에 왔으니 저도 관광을 해봐야 할텐데 혼자라 게을지고 외출이 귀찮아 지네요. ㅠ_ㅠ
코멘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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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배
06.27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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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게 터키 남자애 머리카락 줍다가 생각한 겁니다. 집안 구석구석 청소하는 아줌마가 깨끗하게 청소를 해줬는데도 머릿카락들은 우리보다 색이 연해서 잘 남더라고요.
유럽애들 중에서 금발을 넘어선 실버 색들은 거의 거미줄 처럼 안 보입니다. 공동 세탁기에서 제 옷들을 넣다 빼면 은발이 붙어 나와서 간지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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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동거였을지도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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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생각도 해봤는데요. 집에 수납공간이 매우 적어서요. 덩치큰 소파만 거실을 다 차지하고 책상도 하나 없고, 의자도 없습니다. 여기서 학생 둘이 사는 것은 힘들것 같았어요. 그냥 로멘틱하게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라면 가능합니다. 앉아 있을 필요 없이 누워있을 공간은 많거든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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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들이
06.28 08:38
맥주와 담배를 좋아하는 집에선 별로 밥을 하지 않는 금발의 여성에게 짧은 검은 머리의 남자친구가 자주 놀러 온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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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다른 흔적으로는 경마랑 로또 입력용지가 매우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맥주, 보드카, 경마, 로또, 담배, 외식 ... 이런 취미를 갖는 사람이 여자라면 큰일이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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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i램프는 비추입니다. 욕실과 카펫, 그리고 새로 세워진듯한 벽체에서 푸른빛이 돌면 더 무서울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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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램프 살인범이 아니라 성범죄자 잡을 때 쓰는 램프 아닌가요? 어떤 에피소드 보니 그걸로 말라버린 체액 흔적을 찾더라고요.
피도 체액의 한 종류니 벽에서 얼룩이 검출되면 정말 무섭겠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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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오르한 파묵의 검은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살던집 같습니다 소설의 장소는 이스탄불이지만요 글을 읽다보니 CSI보다는 검은책이 생각납니다^^ 좋으시겠어요 저도 터키 한번 가보고 싶은데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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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 이라는 터키인이 쓴 책 [검은책] 이네요. 시간내서 읽어봐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와... 대단한 추리력....ㅎ
제 방도 한번 그렇게 삽질 한번 해볼까요..?..
이사한지 이제 한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