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e님의 '근데 DJ가 호남에서 절대적 지지 기반을 확보한게 언제부터인가요?'
2012.11.28 00:12
아래 왕초보님의 글에 쓰신 @Sue님의 댓글에 댓글을 거의 다 적고 검토하는 중에 익스플로러가 죽으면서
제가 쓴 댓글이 날라가서 홧김에 여기에 올립니다.
DJ가 호남에서 절대적 지지를 얻게 된것은 박정희정권, 전두환&노태우정권에서 의도적으로 만든것입니다.
호남: 박정희 49.9% :윤보선 33.8%
영남: 박정희 53.3% :윤보선 30.5%
부산은 비슷한 득표
호남: 김대중58.7% :박정희32.7%
부산: 김대중42.6% :박정희54.4%
영남:
김대중23.3% :박정희71.9%
71년 대선당시 DJ의 돌풍에 겁을 먹은 박정희와 공화당 정권은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 사람보다
월등히 많은 점을 이용하여 공화당 정치인들이 영남 유세에서
'박정희대통령은 경상도 대통령이 아닌가?'
'경상도 사람이 박후보를 안찍으면 미친놈이다'
'인구가 많은 경상도 사람이 단결만 하면 선거에서 절대 질리없다.'등등의 망국적
발언을 공공연한 유세장에서 연설하였습니다.
그리고 경상도에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숱한 삐라를 뿌렸습니다.
이에 자극받은 전라도 사람도 DJ가 전라도 사람임을 자각하여
DJ에게 더 많은 표을 주었습니다.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DJ의 호남 장악력은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DJ가 호남에서 절대적 지지 기반을 확보한게 언제부터인가요?'
위의 표(박: DJ)에서도 보듯이 경상도는 박에게 '몰표'를 주었지만
호남에서의 득표는 몰표가 아닌 DJ의 압도적'우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DJ의 호남 장악력은 그 결정타가 '광주사태'입니다.(물론 호남차별정책도 한 몫을 했지요.)
'광주 민주화 운동'은 호남사람들을 정치적으로 한 덩어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87년 대선때 DJ가 등장하였을 때
그동안 차별받았으며, 더군다나 가족이나 친구를 총에 잃은 호남사람들은 정치적 구세주로 DJ를 떠 받들게 됩니다.
이 때부터 호남에서는 8,90%가 넘는 몰표가 호남 대선후보, 또 총선때는 호남을 연고로 한 정당에게 쏟아집니다.
이상은 DJ가 호남에서 절대적 지지 기반을 확보할 수 있었던 이유와 시기에 대하여 간단히 적었습니다.
Ps - 공화당 정권 초기에 국회의장을 상당히 오래 해 드신 이효상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위 표(박대 윤)에서 보듯이 부산을 제외한 영남과 호남의 압도적 지지가 없었다면 전국적인(호남과 영남을 제외한)
지역에서 압도적 우세를 보인 윤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을 것입니다.
윤후보는 겨우 10만여 표차로 대통령에 낙선하게 되는데...
윤후보에게 박후보가 밀린다고 생각한 국회의장 이효상이라는 작자가
대구의 한 유세장에서
'박후보는 신라 임금의 후손이다. 이 고장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자'라고 지역구도의 씨앗을 뿌리고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만듭니다. 이에 재미를 붙인 이효상이라는 작자는
71년 박대 DJ의 대선때는
영남지역 선거 유세 때마다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경상도사람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다'등등의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숱한 연설로 지역감정구도의 거두로 자리 메김을 하셨습니다.
코멘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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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이
11.28 01:05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호남쪽에서 지지를 받으시는 이유 중 하나가 5.18 운동에 대해서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하신 정치인이시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 때문에 전 전 대통령의 미움을 사서 큰 위기를 겪으시기도 했구요. 그때 고인께서 쓰신 글이 앙망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이 점에 대해서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서 남겨봅니다. -
왕초보
11.28 03:08
그런데 많은 분들이 자각하지 않고 싶어하시는 부분이, 그렇게 훌륭하신 DJ가 대통령을 5년이나 하셨는데 왜 아직도 친일부역자 척결은 고사하고, 광주항쟁의 자리매김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지난 오년동안 뒷달음질을 열심히 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 전 십년은 최소한 대통령은 부끄럽지 않은 분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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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찡긋*
11.28 08:05
DJ가 훌륭하고 안하고의 글이 아닙니다.
위 글은 단지 DJ가 호남에서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게된 배경을 적은글입니다. -
윤발이
11.28 12:08
과거사 청정리 위원회라던지 모두 DJ 가 대통령 되고 만들어 진거죠..
뭐 DJ 할아버님이 대통령 하더라도 어쩔수 없습니다. 역대 다수당은 다 구 딴나라당이었으니까요.
심지어 그 10년동안도 언론, 검찰, 경찰, 심지어 기업들도 다 그쪽 세력이었으니..
그래서 저는 이번에는 정말.. 정치적 복수는 아니더라도.. 개혁이 있었으면 합니다.
노통때도 삼성을 밀어준게 가장 바보같은 짓이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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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광주 주민증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때문에 경찰서에 잡혀가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YS때와 DJ때는, 저에겐 아주 천지개벽같은 차이를 느꼈습니다. 제가 범죄자도 아닌데, 데모가 있다는 이유로 경찰만 보면 맞을까봐 피해다녀야 하는 삶하고는 차원이 다르더군요. 어느 순간 제가 전경의 눈치를 보는게 아니라 전경이 제 눈치를 보는걸 깨달았을때, 정말 일제에서 해방된 사람들의 느낌이 어떤거구나 하는걸 1/1000 정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광주항쟁의 자리매김이요?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데요. 최소한 지금은 사귀던 사람의 가족들이 "광주 빨갱이들"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광주사람이라고 이유없이 비난받는 일도 줄었구요. 물론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있지만, 정말 15년 전에 비하면 확실히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줄었습니다.
왕초보님이 체감하지 못하시는 이유는, 본인이 당하질 않았던 수많은 문제들을, 브라질 보듯이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룰라 대통령이 엄청 존경을 받는다고 하지만, 우리에게 브라질은 브라질이고 문제가 산적한 나라일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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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P
11.28 07:05
신라 임금의 후세가 살았 있었다니...
이럴수가!!!! ㅜ.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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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왜 그러세요?
저도 박가입니다. 족보에 혁거세 할아부지부터 나와요. 몇년 전 받은 족보 앞편에는 경주 왕릉 사진도 들어있고.
근데 성이 박(모든 박씨가 박혁거세에서 나왔으니. 여긴 중국계가 없어요. 박정희 일가는 고령박씨던가요?),
경주김이라고 신라왕의 후손이라고 하기는 민망하지 않나요? 어지간히 많아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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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준예준아빠
11.28 11:19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던때가 71년 선거때라고 알고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