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주소 체계의 땜빵, 내 이럴 줄 알았다...
2013.02.28 22:00
오늘 집 앞에 모 구청(어떤 구청인지는 아실 분들은 다 아실겁니다.)에서 뿌린 안내문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내용인 즉슨 새주소에 '상세주소'를 원하면 부여해줄테니 알아서 신청하라'입니다. 무슨 넘의 상세주소인지 전말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새 주소, 정확히는 도로명 기반 주소 체계는 종전의 지적 기반 주소 체계가 후지다(?)는 이유로 일명 선진국 시스템인 도로명 체계로 바꾸는 것입니다. 물론 그 가운데 벌어지는 '주소로 대략적인 위치를 머리 속에서 바로 추정할 방법이 전무한' 문제와 시도군이 바뀌는 초 장거리 도로인 경우 오히려 심각한 혼란이 온다는 점은 위대하신 정부는 무시하고 넘어갑니다. 여기서도 무시하고 넘어가봅니다.
하여간 지번 체계가 후지다고 새 주소를 만든 것은 좋은데, 이 웃긴 것들이 쓸 수 있는 주소 표기를 크게 제한해버린 것입니다. 공식적인 주소에는 건물명이나 아파트명도 못적습니다. 그게 청와대건 정부종합청사건 말입니다. 물론 괄호를 쳐 옵션으로 병기를 할 수 있게는 했지만, 여기서도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건물의 소유권 지분이 분리되지 않는 하숙집, 원룸, 고시원, 기타 다가구주택은 그것을 분리하여 표기하는 것이 지금까지 금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다세대주택과 다가구주택의 구분 기준은 건물의 각 호수에 별도 등기가 되어 있어 매매가 가능한지 여부입니다.(높이 구분은 무의미합니다.)
폼 나게 주소를 줄인답시고 생각을 짧게 한 결과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1인 가구나 렌트 푸어를 그야말로 '없는 사람 취급을 해버린 꼴이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지금까지의 행정자치부의 입장은 매우 간단합니다. '나는 우편물을 집 앞에 던져두고 갈거고, 각 방별로 알아서 잘 가져가시오. 못받아도 우리 책임 아님~'입니다. 민간 우편물이야 정부에서 뭔 소리를 하건 일단 호수를 적어 놓으면 정부보다는 훨씬 친절한 우편배달원께서 나름대로 분리를 하여 주겠지만, 정부 우편물인 세금 고지서, 과태료 및 벌금, 경찰 및 법원 관련 우편물에 대해서는 '그딴거 없다'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행정 편의적인 멋진 제도를 만든 것입니다.
먹고 살기가 어렵고 전세 가격이 폭등하여 안정적인 거주지를 얻기 어려운 사람들이 늘면서 정부 입장에서는 외면하고 싶은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정부도 그제서야 지금의 제도가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안내문을 돌려가며 보완책을 마련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보완책도 정말로 정부 하는 짓이라는게 보일 정도입니다.
다가구 주택의 상세 주소의 부여를 정부, 즉 자치단체에서 해주는게 아니라 '신청하는 사람만 해준다'는 것입니다. 신청을 한 사람에 한해서만 그 주소를 법적으로 인정해주며, 신청을 안하면 정부는 내 알 바 아니라고 보겠다는 행정 편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발상입니다. 그것도 그 건물이 있는 구청이나 시청에 와서 서류를 작성하고 신청하며, 주민등록 처리는 이 신청 여부와 상관 없으니 상세 주소가 나오면 알아서 다시 동사무소나 면사무소에 가서 정정 신청을 따로 해야 합니다.(이건 인터넷으로도 되는 모양입니다만.) 신청도 따로 받고 구세대적인 신청 방식도 짜증나는 일인데, 주민등록까지 한 번에 안바꿔주고 따로 가서 바꾸라는 두 볼일을 시키는게 지금의 정부입니다.
이렇게 웃긴 삽질을 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새주소가 지번 주소가 낡고 덜떨어진 것이라고 비난을 퍼붓고 나온 것임에도 그 기반이 전부 지번 주소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토지와 건물이 등록된 그대로만 새주소 발급을 했기에 해당 건물의 실제 거주 내역이 다를 수 있다는건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에서야 허겁지겁 보완책을 내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보완책은 전부 '알아서'로 시작하여 '알아서'로 끝납니다. 알아서 시간을 내어 알아서 두 번 행정기관을 방문하여 신청을 해야 하고, 그걸 안하면 그 책임은 전부 주민이 짊어지는 시스템입니다.
추신: 이 제도는 원룸, 고시원, 쪽방 등 다가구주택에 한정합니다. 각 세대별로 등기가 따로 나오고 소유권이 분리되는 아파트나 오피스텔, 일반 빌라 등 다세대주택은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이것들은 다 지적대장에 내용이 있던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1번지 가카오피스텔 444호라는 주소는, 서울시 강남구 썬글라스박길 18, 444호(가카오피스텔)로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2번지 그네코원룸 4호는 과거 제도에서는 서울시 강남구 썬글라스박길 19까지밖에 못씁니다. 이걸 원룸 거주자가 강남구청에 가서 상세주소 발급 신청을 하고, 2주 뒤에 주소가 나오면 다시 신사동사무소에 가서 주민등록 정정신청을 접수해야 비로소 서울시 강남구 썬글라스박길 19, 4호(그네코원룸)이라는 표기를 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코멘트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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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욱
02.28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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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is
02.28 22:53
그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만든 주소 시스템을 쓰는 것도 일입니다. 도로명 주소(즉, 도로명)이 겹치는 것도 많을 뿐더러 행정구역이 바뀌면 이어지지도 않아 검색도 힘듭니다. 최악의 경우 수백, 수천개의 번지수가 목록에 뿌려지는 일도 벌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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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욱
03.01 00:34
결국 구번체계 신번체계 둘다 유지하게 된다는~ 아..또 짜증이 물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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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한박스
02.28 22:56
헉. 단순한 삽질인줄 알았는데 재앙급이네요 ㄷㄷ -
푸른솔
02.28 23:16
택배기사들에겐 슈퍼울트라익스트림리퍼펙트 재앙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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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색주
02.28 23:32
이게 한국에서 가장 지지부진한 사업있고, 무엇보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지번체계로 가 있다는 것이 정부를 조급하게 했을 것입니다. 실제 제가 알기로는 지번 체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구글 맵 같은 경우도 적용이 안된다고 들었습니다.(작년에 분석 준비하다 실패) 조만간 이런저런 일들을 하면서 이 분야에 대해서 많이 배울 수 있게 될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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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뷔
03.01 08:08
아항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이래서 업체들이 다들 난감해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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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넷
03.01 09:54
현 정보화 시대에서 한방에 처리를 할 수 있는 일을 뒤쳐지는 시대의 일처리 방식으로 하는 이유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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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마
03.02 01:45
새주소 사업단에서 몇년간 일해본 바
정말 뻘짓도 이런뻘짓 없다 입니다
쩝...
정부 하는일 보면 정말 멘붕이죠
ㅎㅎ
사실 이것 때문에 시스템 뜯어고치는 게 짜증나 죽겠습니다.
주소를 찾을 수 가 없어요...TT
이런 "호로 어린양"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