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영화인지도 모르고 봤었던 설국열차 간단 감상평
2013.08.04 22:59
저는 이 영화의 감독이 누구인지도 몰랐고, 외국인들이 등장하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냥 충동적으로 친구랑 아무 생각없이 가서 봤습니다.
봉준호의 영화였다는 것도 보고나서 친구가 얘기해주는 바람에 알았네요 ㅎ
경험하고 느낀 만큼 보인다 - 은하영웅전설
이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하기 전에
"은하영웅전설"이란 작품에 대해 잠깐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제가 이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1999년 대학교 1학년 때였고 소설로서 읽었는데, 너무 재밌어서 3일만에 10권을 다 읽었었습니다.
이 때는 이 작품의 매력이 개성을 가진 다양한 캐릭터와 그 캐릭터 사이의 관계, 그리고 양 웬리의 천재성 뭐 그런 것이었죠.
그러다가 군생활을 하면서 한국 서민집안출신의 일개 사병의 입장에서 한국 군대의 실상을 경험하고,
한국 정치의 현실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느끼게 된 다음인 2004년에 다시 110편짜리 장편 애니메인션으로 이 작품을 다시 봤었는데,
이 때 정말 이 작품을 다시 봤습니다 ㅎ
작중의 자유행성동맹의 정치나 사회, 군대의 현실이 한국 사회의 그것과 너무 닮아있음과 그 세밀한 묘사와 메세지에 감탄했습니다.
그래서 이후 저의 한국 정치, 사회, 군대에 대한 시각에서 이 작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초딩이 본 "괴물"과 30대가 본 "괴물"이 같을 수 있을까?
간단한 예를 들자면, 초딩 6학년이 한국영화 "과물"을 본다면, 과연 무엇을 느낄까요?
"고지라 한국판이네 괴물이 입에서 불도 안나오고 ㅎ"
뭐 이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20년이 흘러 한국의 군사, 정치 현실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난 다음에 이 영화를 본다면
아마 고지라 한국판이네 하는 소리는 쏙 들어가겠죠.
제가 이해한 설국열차를 통해 봉감독이 하고팠던 말의 큰 그림은
이 사회의 기득권층 및 지구의 남북문제 등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기득권층이 어떻게 또 얼마나 치밀하게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 하는지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려 하는 것 같습니다.
"현재의 니네 처지에 불만 가지지 말고 (긍정적으로 )이를 받아들여라!"
=> "서민들아 니들이 삶이 좀 힘들어도 그게 니들의 운명이자 몫이니 긍정적으로 (지루한) 희망을 갖고 살아라"
"밖에 나가면 얼어 죽는다"
=> "지금 우리의 체제를 벗어나면 다죽는다(삼성, 현기차 등 대기업 없이는 우리 경제 풍비박산 난다) 그러니 그런 건 생각도 마라"
"괴물"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봉감득은 한국사회 기득권층(특히, 수구꼴통세력)이 볼 때 위험분자입니다.
일명 빨갱이 영화 만들어서 기껏 뉴라이트 교과서로 가르쳐 놓은 애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수도 있는 천하의 ㄲㅆ놈인 것이죠.
(저런 메세지를 영화 속에서 던져데니, 당연한 결과라고 봅니다)
근데 간혹 몇몇 분들은 봉감독의 메세지가
"이 사회에서 군말말고 자기자리를 지키라!"는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하시기도 하던데,
그 간의 봉감독 성향을 봐서도 이건 "다음 중 화자의 의도"가 아닌 것이라 보여집니다.
요약하자면, 지배계층 또는 기득권층에 대한 진정한 타도가 힘든 이유, 기득권층이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사회체제를 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가는지, 지구의 현실은 어떤 것인지
뭐 이런 것들에 대해 "봉감독스런 시선"에서, 관객들에게 "이런 현실을 보고도 뭐 느끼는 거 없수?"라는
질문을 던지는 정치적 영화이다! 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좋은 시도를 했다고 보고, 그런 시도를 했다는 것 자체로 좋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이 영화가 포스트아포칼립스영화라고 해서
"투머로우"나 롤랜드 에머리히의 "2012" 같은 작품에서 느꼈던 재미를 생각하고 이 영화를 보신다면
꽤 실망하실 겁니다. 그런 쪽의 재미는 별로 없거든요.
안녕하세요? 정상호라고 합니다.
저도 만문에 써볼까 하다가 마침 글을 올려주셨기에 댓글로 답니다. 설국기차 이야기입니다.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니 영화를 보실 예정인 분들께서는 보신 후에 읽으심이... )
저는 봉감독 영화인줄 알고 보았고 원작이 프랑스인가 소설이라고도 보았고
어떤 의미에서든 하층민의 혁명이야기라는 식으로 영화에 대한 설명을 보고 영화를 보았습니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시작해야할 것 같습니다.
지금 팔을 한 번 굽혀보시지요. 한번 접었다가 펴보세요.
팔을 접고 펴는데 몇 개의 근육이 필요할까요?
( 간호사를 하셨던 어머니와 친구 의사에게 물어보았는데 잘 모르시겠다는 답을... )
분명한 것은 최소 2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접을 때 당겨주는 근육, 펼 때 당겨주는 근육.
- 이미 눈치를 채셨을테니 본론으로 돌아갑니다.
저는 윌포드의 설명에 아주 동감하는 입장입니다.
설명에 동감한다고 했지, 방법에 동감한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회를 먹을 수 있는 시기가 있듯이 조절은 분명히 필요합니다.
그것이 일반적으로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힘,
또는 수많은 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데
이것을 보통 뭉뚱그려 “자연”이라고 이야기하고 극복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존재 자체가 그 자연이 제약하는 수준에 적응한 것이라
그 제약을 벗어던졌다고 했을 때에 우리가 어떠한 상황이 될지는 모릅니다.
과연 우리가 존재할 수는 있을지......
존재는 하더라도 현재와는 상당히 다를수도 있겠지요.
물론 현재의 상태가 가장 이상적인 것은 아니니
달라지는 것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지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겠지요.
그것인 개“선”이 될지 개“악”이 될지 모르지만요.
분명한 것은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형태이건 조절은 필요하며
그 조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변화로 일어날 수 있는
“현재는 알 수 없는” 변화된 상황, 미래를 받아들이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겠죠.
영화로만 보자면, 좀 작위적인 느낌이 많이 듭니다.
왜 뒷칸의 사람들이 기차에 태워졌는가가 먼저 의문입니다.
물론 그들이 기차에 “탈” 이유야 분명하지만,
태우지 않을 수도 있었던 사람들에게
뒷칸 사람들을 태웠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앞칸 사람들의 건강한 유전자 유지를 위해 새로운 유전자 공급처라도 필요했을까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설명이고 가정입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넘어가면 어쨌거나 현상의 유지를 위해서는 조절이 필요하다는데는
저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동의합니다. 다만, 보다 세련된? 민주적인? 방법이 필요하겠지만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결국 조절이 필요하며 따라서 현상을 유지해야한다는 뜻이 될텐데,
사실 왜? 입니다. 왜 꼭 현재의 상황을 유지해야만 하죠? 기차는 왜 달려야만 할까요?
내리고 싶은 사람은 내리게 해주면 안될까요? 어차피 조절이 필요하다면?
원하는 사람이고 자원자인데요.
물론 영화이고 상징적인 부분이 많다는 것은 인정합니다만,
그래도 왜 그러한 상징들이 우리에게 이해되는가도 생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결국 제가 현상 유지를 위한 조절을 지지하는지, 변혁을 지지하는지도
제 스스로까지 불분명해졌습니다만
- 사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조절을 지지하는 편이었는데
쓰다보니 자꾸 왜? 라고 생각되네요 -
조절을 한다면 합리적인 방법이 필요하다는 정도까지는 정리가 됩니다.
팔을 굽히고 펴려면 서너개의 근육은 필요하다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