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저의 회사 관련 인생 스토리입니다.
2년간의 행정조교를 마치고 국책연구기관에 위촉연구원으로 들어가 낮밤 가리지 않고 일했죠. 봉급이 적은지 많은지는 염두에 두지 않고 일했습니다. 일 한다는 것이 좋았으니까요. 2년이 지나니 외부위탁과제가 없어 계약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실은 2년 이상 계약을 유지할 수 없다는게 속 사정이었습니다. 2년 이상 계약을 하려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IMF가 지난지 얼마 안되는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않았겠죠. 마무리 인사를 드리러 센터장을 만났을 때 "나중에라도 다시 와서 일해 줄수 있나"라고 하더군요. 말씀은 감사하나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아무런 대책 없이 사회로 나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한 일년간 백수로 지냈습니다. 결혼도 이미 했고, 아이도 태어났지만, 반년 동안은 실업급여를 타먹으며, 반년은 다른 연구기관에 연구원도 아닌 연구보조로 들어가서 알바를 뛰며 지냈습니다. 돈이 다 떨어져 갈 무렵 IT회사에 지원서를 냈는데,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하더군요. 보러 갔더니 다음날부터 출근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필요했던 거죠. 그렇게 시작된 회사에서 8년여를 일했습니다.

회사에서 일하다보니 섬나라님이 경험한 것처럼 한 회사에 오래 있는 것이 나중에는 자기에게 불리한 것이 되버리더군요.
남들은 연봉 올려서 다른 회사로 전직하는데, 책임감 때문에 다들 떠나도 나는 남아있어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하며, 아래 팀원들이 하나 둘 회사를 떠나는 모습에 마음 아파했고, 회사가 그들을 붙잡지 못하는 모습에 실망했습니다. 더 좋은 곳으로 간다는 사람들에게 잘 가라고 축하해줄 뿐이었지요. 어떤 사람을 붙잡기 위해서 팀장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내 봉급을 얼마간 까서 그 친구에게 줘라. 그렇게 해서라도 그 친구를 붙잡았으면 한다." 하지만 팀장은 그러더군요. 형평성 문제 때문에 안된다고. 사람들은 하나 둘 씩 떠나갔고, 어느덧 내 주위에는 아는 사람들보다 새로운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경력에 다른 회사에서 옮겨오는 사람들의 연봉이 나보다 몇십 퍼센트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꿋꿋이 내 일만 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던 것은 결국 어리석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회사에 충성을 다하겠다고, 회사를 떠나는 것이 회사를 배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나중에 돌이켜 보니 회사에서는 저를 볼 때, 결국 얘는 월급 안올려줘도 군말없이 일만 하는 애로 생각하게 되더군요. 그렇게 어느덧 세월은 흘러 '능력이 있어도 안 옮긴 것'에서, '옮기지 않은 것은 능력이 없어서 그런것이다'가 되버렸습니다. 후후.

회사생활을 하며 어느 정도 직급이 오르니 계속해서 긴급대처반, 문제해결반으로 문제 프로젝트만 투입되더군요. 프로젝트를 살려내라고.. 그래서 몇차례 다 망가져가는 프로젝트를 살려냈습니다. 야근에 철야를 밥먹듯이 하면서 말이죠. 살려낸 후 넌 원래 잘하잖아. 고생했다. 말로 끝나더군요. 마이너스 프로젝트의 손익을 개선해서 손실폭을 최대한 줄이며 프로젝트를 끝내도, 원래부터가 마이너스 프로젝트였잖아라며 나의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내가 너무 겸손한 것이 탈이었습니다. 순진하게 회사도 조금은 날 알아주니 그 정도면 됐다라고 생각했죠. 소위 잘나간다는 PM들은 문제가 생길때 남의 팀원까지도 뺏어가서 일하면서도 나중에는 기관 표창까지도 받더군요. 남에게 팀원을 뺏기면서도 '부족한대로 내가 좀 참고 견디지'했던 것은 내게 아무런 이득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회사 생리가 뭔지 알았습니다. 필요하면 남의 팀원이라도 뺏어와서 내 프로젝트를 성공시켜야 회사에서는 인정받는다는 것을 멍청하게도 뒤늦게 깨우친 거죠. 모두가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세상에서, 이타적으로 살아가 봤자 본전치기나 도리어 바보같은 놈이 된다는 것을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적당히 이기적이 되기로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어느날 눈 떠보니 원치않는 사내정치에 휘말려 회사가 절 차내더군요. 제 위 상사를 쳐내기 위해 팔다리를 먼저 잘랐던 거죠. 이미 떨어질 PT에 집어넣고 발표를 하라고 해놓고, 들어가서 PT를 하고나니 사업수주 실패 책임으로 회사를 나가라고 하더군요. 우습지도 않았던 것이 그 PT란 것이 발표장에 들어가서 발표를 시작하는데, 벌써 심사관들은 채점을 끝내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함정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들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내쳐진 상태로 배신감과 상처와 회한 속에서 6개월 동안 걸려오는 전화를 일절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인생에 두번째 실업급여를 타면서 지냈습니다.
어느날인가 아들이 "아빠는 회사 안가?" 그러더군요.
그래서 마흔 둘 나이에 대기업이라는 곳에 지원해봤습니다. 결과적으로 두 명을 뽑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100:1의 경쟁을 통과했더군요. 세상 물정 모르고 연봉 협상이란걸 해본 적이 없어서 우습게도 실 연봉이 500 정도 깎여서 들어갔습니다. 6개월 정도 쉰 까닭도 있었겠지만요.
어쨌건 여러면에서 대기업은 좋더군요. 복지도 좋고, 사람들도 그닥 정치적이지 않아서 좋고, 몇년간 일하다 보니 제 분야에서 어느정도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봤자 유리천장이더군요. 임원이 되지 않는 이상, 초라하게 50이 되기 전에 옷을 벗고 나가는 선배들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그러면서 아, 회사에 충성을 다한다고 해도 회사가 나에게 해주는 것은 월급 말고는 없구나. 소모품처럼 이렇게 계속 살아갈 것인가. 고민을 했죠. 때마침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신생회사로 옮겨야 한다는 부담감,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만족 등의 이유로 네 번쯤 거절하다가 결국에 승락하고 자리를 옮겼습니다.

지금 있는 곳의 복지는 원래 있던 곳에 비할 바 아니지만, 연봉도 올랐고, 팀원들도 좋습니다. 그 동안을 돌아볼 때 회사 중심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가정보다는 회사 우선이었고, 내가 해야 할 책임은 최선을 다해서 완수한다는 신조를 가지고 살아왔죠. 그래서 가족들에게 많이 미안합니다.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 태어났던 큰아이가 어느덧 커서 올해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첫째에게는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갖지 못해서 못내 미안합니다. 얼마전에는 첫째에게 백범일지를 사주었습니다. 한 번 읽어보라고. 그 책을 읽은 첫째가 뭔가를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현실에 대한 불만을 그저 감내하지 말고, 기회가 있으면 다른 곳으로 점프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내가 없어도 회사는 굴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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