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할 수록 아이에게는 비싼걸 사주세요.
2018.08.03 02:47
저희집은 경제적으로 가난한 편이었습니다. 뭐, 상대적으로 좀 많이 티날 정도였고, 무엇보다 너무 없이 살면 피할 수 없는, 온몸에 배어있는 "싼티" 때문에 아이들이 자주 놀리곤 했었죠.
그당시 저를 기죽지 않게 만든건, 아버지가 사주신 세가의 8비트 게임기 였죠. 뭐, 엄밀히 말하면 삶은 여전히 개판이었습니다. 허허....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물세는 반지하에서 살때, 더럽다고, 꼬질꼬질 하다고, 그리고 성격도 괴짜라고 놀림 자주 받는 저는
선물로 받은 수퍼페미콤으로 순식간에 영웅이 되었었죠. 그때 스트리트 파이터2를 하기 위해 줄선 아이들 앞에서 정말 우쭐 했었죠. 저를 보기위해 우리집에 그리 많은 아이들이 오는 경우는 그전에도 없었고, 아마 그 이후도... - _ -;;
그이후 중학교1학년때 집에 들인 컴퓨터(정확히 말하면 누나에게 사준거지만)가 아직까지도 제 자존감에 엄청난 영향을 줬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몇년에 한 번씩 부모님께서 엄청 무리를 하신거죠. 근데 가만 생각해 보면, 이것만큼 가격대 성능비가 좋은 투자가 없었습니다. 학원, 과외, 좋은옷, 좋은 집, 좋은 음식으로 처발라도(엄청난 돈을 들이면서) 아이에게 진짜 자존감을 주기는 쉽지 않은거 같아요. 더군다나 가난한 환경이라면 더더욱. 그때의 느낌은 저를 특별한 사람처럼 느끼게 해줬죠. 그래봐야 했던건 게임 밖에 없었지만요 ㅇ,.ㅇ;
정작 초고속 인터넷 깔리고, 컴퓨터 붐이 왔을 때, 저는 컴퓨터도 없었죠. 그러다 여차저차 알바해서 간신히 중고 컴퓨터를 샀죠. 변변한 책상도 없어서 책을 겹겹이 쌓아 올린 다음에 널판지를 올려서 책상처럼 만들었죠. 그다음 오래된 중고 모니터를 올리고, 의자도 없어서 마룻바닥에 앉아서 몇년만에 컴퓨터 전원을 다시 켤 때의 전율이 아직도 생각나네요.
여차저차 해서 돌아보면, 저는 상당히 행복한 편이었습니다. 안 좋은 일도 많았지만, 진짜 전율에 가까운 감정을 많이 느꼈습니다. 행복감. 그런것들 덕분에 좀 상황이 안 좋을 때도언젠가는 될거라는 말도 안되는 기대감으로 살아왔고, 좀 안좋은 일이 있어도 그럭저럭 살아온거 같습니다. 정말 힘들었던 기억들은 희미하게 사라지는데(걍 무덤덤해지죠 ㅎㅎ), 행복한 기억들은 참 오래가네요. 앞으로도 그런게 힘이 될거 같습니다 : )
결론.
집안 사정이 힘들어서 이것저것 애들에게 해주기 힘든 경우라면, 걍 비싼거(컴퓨터 같은 거, 기왕이면 VGA 강려크한 걸로) 꽝 하나 사주는게 싸게 먹히고 오래 갈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말입니다. 그게 경제적이에요.
물론 아이가 원하는게 악기면, 악기도 될수 있고, 뭐 다른게 될수도 있겠죠.
포인트는 아이가 정말로, 미친듯이 원하는거일 경우, 가장 비싼걸로 해주세요.
한방에 크게~ 아자!
코멘트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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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08.0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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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하늘
08.03 09:33
모든 부모님들믜 마음 아닐까 싶습니다... -
최강산왕
08.06 15:47
그렇죠. 쩝;; 참 어려운 이야기인것 같습니다.
근데 저는 아이들이 정말로 원하는거 평생에 한두번 해주는게 오히려 오래가는 것 같고, 결과적으로 경제적이라는 느낌에 한번 써 봤습니다. -
공감가는 내용이 많이 있네요.
어릴적 아버지가 사업 실패하고
IMF직전 빚이 10억 이였습니다
그때 전 초등학교 1학년즈음이였고요.
참 많이 힘든 시기였어요.
덕분에 먹고싶은 것도 입고 싶은것도
준비물도...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어요.
나이가 들어 이제는 부모님 마음이 이해가 가지만
어릴적엔 참 미웠습니다. -
맑은하늘
08.03 09:37
IMF에 대한 우리 시대의 기억들...
많이 아프고...많은 사건들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사회 안전망이 무엇인가도 생각하게 되구요...
행복하시길...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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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IMF 직전에 10억이었으면 지금으로치면...
고생 많으셨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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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어머니가 밤낮으로 일해서
거진 다 갚으시고 제가 결혼해서 와이프랑
남은거 다 갚았어요.
덕분에 카드도 체크카드쓰고
대출 무지 싫어해요ㅠ -
해색주
08.03 09:15
좋은 부모님이시네요. 요즘은 스마트폰이 그렇더라구요. 큰 화면 좀더 빠른 CPU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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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하늘
08.03 09:40
아이에게 자존감을 주는일...어렵네요.
새벽에 운전오래해서 피곤한 몸상태에서 본...김태리 영화...리틀 포레스트
괜찮은 영화네요 -
맑은하늘
08.03 09:32
아이에게 쾅하고...잘 해주려 노력하겼습니다.
자존감 배웠네요. 감사합니다 -
박영민
08.03 11:16
친구 집에 닌텐도 처음 샀을때 난리도 아니였습니다.
(요즘 애들 하고 싶은거 못해주어서 마음이 좀 그랬는데 최대한 해주는걸로 해야겠습니다. 그만 지를때가 되었나봅니다.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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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산왕
08.03 13:31
다 해줄 필요는 없구요, 큰걸로 한방이 중요하죠. ㅎㅎ. 이게 싸고 오래 먹히는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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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때 제 베프가 그런 상황이었어요. 반지하 단칸방에 살았거든요. 반면 저희는 비록 좋은집은 아니었지만 3층집 이었고요. 그 아이는 늘 프로스펙스, 나이키 옷과 신발 등 비싼 치장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스펙스나 월드컵 같은 싼거.. 생각해 보면 그게 그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주던 것 같아요. 운동을 참 잘하던 아이였지요. 싸움도 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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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산왕
08.04 12:52
저는 뭐, 옷도 그렇고 다 찌질했죠... ㅎㅎ
그래도 게임기 덕에 어디서 꿀리지 않았던거 같습니다.
쌀없어서 밥굶고 그런거는 1그람도 신경 안쓰이더군요. 게임기 들고 친구집가서 밥은 얻어 먹으면 되는거니 후후후...
그러고보니 10대 때는 집밥 보다 친구집에서 더 먹었네요 ㅡ ㅡ;; -
IIIxe
08.04 02:37
사 줄 여력이 있는 것은 가난이 아닌데.
그냥 아끼면 살 수 있는 거지요.
진짜 가난을 겪은 사람이 들으면 화날듯요.
간만에 왔는데 정말 고인물 같습니다. 다음에 또 몇년 지나면 들릴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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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산왕
08.06 15:48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앞으로는 좀더 설명을 더하거나, 남을 배려하는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자주 또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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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싸
08.04 03:20
정말 예전에는 그렇게 강려크 한게 있긴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게 뭐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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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산왕
08.07 05:03
글쎄요. 확실한건 스맛트폰은 아닌거 같아요. 다들 가지고 있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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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X
08.08 17:54
요즘은 값나가는 것 한두개 사준다고 될 것 같지 않아서 좀 구사하기 힘든 전략인 것 같습니다.
요즘애들은 부모의 경제력이 세습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경제 계급 관념이 박혀 있습니다.
마음으로야 뭘 안해주고싶겠습니까만. 작은 무리도 하기 힘든 부모님들이 많으시겠죠.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