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친구를 보내고 왔습니다.

2022.01.14 01:33

해색주 조회:316 추천:1

 저는 시골 성당 복사단 출신입니다. 한 해 걸러 한 명씩 신학교에 들어가서 신부님이 되는 그런 신앙심 강한 성당이었습니다. 저는 골짜기 세대라고 해서 위학년, 아래학년은 모두 신학교에 들어갔는데 세명의 복사 가운데 아무도 신학교에 가지 않았던 그런 학년이었습니다. 늘 조용하고 말이 없던 친구가 복사단 회장, 잘생기고 노래 잘하던 성가대 출신이 부회장, 뚱뚱하고 말도 잘 못하는 제가 총무였습니다. 아마 그때부터 저는 늘 넘버3였던 것 같습니다. 어디를 가던 3등은 하자는 생각을 갖고 살았으니까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 3때까지 함께 어울렸던 우리 셋은 참 달랐습니다. 인기가 많고 성가도 잘하고 모든 사람이 좋아했던 부회장, 늘 조용히 있으면서 무게를 잡아주는 회장,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전혀 없었고 겉도는 저 이렇게 셋이서 5년이란 시간을 같이 했습니다. 당시에는 토, 일요일에는 늘 성당에서 살았고 거기서 숙제도 하고 미사도 가고 이것저것 많이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천주교 동아리에 들어갔고 시골 성당에서 떨어진 시내에서 활동을 주로 했죠. 그렇게 조금씩 멀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학교를 갔고 2년 정도 성당을 다녔지만 그 친구는 늘 조용히 자리만 지켰고 별다른 말이 없었습니다. 지금 보면 정말 말이 없었는데 우리가 보기에는 좀 수줍은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어머니 돌아가셨을때 조용히 찾아와서 미안하다고 말했던 그 친구의 부고를 어젯밤에 받았습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고 언젠가 보겠지 했던 친구라서 별 감정이 없을 것 같았는데 오늘 문상 다녀오는 길에 펑펑 울었습니다. 다시는 못본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 죽음이 근처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요? 호그와트에서 같이 지내던 기숙사처럼 우리들은 주말마다 복사 서느라 바빴고 미사 순서 못외어서 제의방에서 엉덩이 맞고 깍지 끼고 엎드려 뻗쳐 했던 그런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기나긴 성탄 전야 미사나 부활절 미사때 잠이 들어서 의자에 못나와서 끌고 나왔던 기억들 모두 생각이 났습니다. 이제 다시는 못본다는 생각이 나니까 너무 슬펐습니다. 엉엉 울었네요.


 늘 조용하고 자기 주장이 없던 과묵했던 친구였는데 우울증이 깊었다고 합니다. 그런거 몰랐어요, 원래 조용한 친구인줄 알았는데 마음이 아프더군요. 이렇게 길이 어긋나고 멀어지면 싸늘한 시신으로 만나는구나 생각이 들더군요. 별난다님을 조문을 갔을때도 다시는 못본다는 생각에 너무나 슬펐는데, 이렇게 보내는구나 생각이 들으니 너무나 슬펐습니다. 


 아침에 속초를 갔다가 화성에 가서 조문하고 사당에 올라와서 이번에 그만둔 회사 동기들과 저녁 먹었습니다. 슬프고 외로웠고 괴로웠는데 동기들 만나서 안정이 되었는데, 대리 기사님 불러서 집에 오는 길에 펑펑 울었습니다. 자주 보고 그런 친구가 아니라, 언젠가 봐야지 하고 꼬깃꼬깃 접어둔 친구를 보내고 오는 길에 너무나 슬펐습니다. 씩 웃는 모습이 기억나는 친구였는데...


 명절때 내려가면 혼자서 납골당 찾아가 보려고 합니다. 바보같은 친구라서, 그냥 버려둔 친구라서. 돌아보면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늘 바쁘게 살아온것 같습니다. 주변을 돌아보지도 못했고 아이와 아내를 돌보며 살았던 20년이었네요. 이번에 3주 정도 쉬면서 저를 많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가끔은 주변도 친구도 봐야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울적한 노래 들으니까 눈물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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