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세차.

2010.05.16 13:22

밥 말리 조회:927 추천:5

 

 

날씨가 꽤 좋은 봄날의 일요일 아침 입니다.

 

 

어쩌다 보니 이시간에 책상에 앉아 있게 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그냥 사는 얘기 이니 편안히 읽으십시요. ^^

 

 

 

 


저는 이렇게 화창한 날이면

 

뜬금없이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날씨가 좋으면 항상 아버지와 아버지 세차를 했습니다.

 

그게 언제부터 였는지는 모르지만

 

꽤 오래 전부터 아버지는 세차를 하실때 저를 데리고 하시곤 하셨죠.

 

 


어린맘에 일요일이나 공휴일이 되면 늦잠도 자고 그러고 싶겠지만


제 아버진 항상 쉬는 날 아침은 식사를 하시고 세차를 저와 꼭 같이 했었습니다.

 

(위로 형님이 한명 있는데.. 항상 세차는 저랑만 했었습니다...   이건 왜 그러셨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네요 ;;)

 

 

 

 

세차의 대략의 과정은 이렇습니다.

 

아버지는 물을 대강 뿌리시고

 

거품질을 하시고  마른 걸레로 물기를 닦아내고 광을 내십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차체를 닦으시고

 
 

저는 구석구석을 닦습니다.


바퀴와 번호판. 앞유리..

 

실내청소와  아버지가 미쳐 못 닦은 세세한 곳들을 물수건을 들고 구석구석 닦아 냅니다.

 
 
재밌는건..

 

나이가 들수록..점점 역할이 바뀌어 간다는 겁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는 제가 차체를 닦고 아버지께서 구석구석을 닦습니다.

 

 

 


아버지께서 한번은 세차를 하시며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차를 직접 닦는 다는건 ..

 

 

 세차비를 아낀다는 그런 문제이기 이전에

 

 

나를 편리하게 해주는 물건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랍니다.

 

 

 

사람이건 물건이건 은혜를 입었으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으로 갚아야 한다는 그런 말씀을


이어서 하시더 군요..

 

 


저는 쳐다 보지도 않고 혼잣말 하듯이 하셨습니다.


대답을 해야 하는건가? 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혼잣말 말이죠 .

 

 그래서 따로 대답은 안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때 이후론

 

적어도 제게 세차를 도와드리는건

 

 

나름의 아버지 삶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고

 

 

아버지의 노동의 노고를 갚는(?)  행동이였습니다.

 

 

 

 

어찌보면 별일 아닌거에 거창 의미지만

 

 

세차를 하면서 아버지의 노동의 실체를 느낀다고 해야하나..

 

그런 느낌을 받았었읍죠.

 

 

 

그저  아버지는 내가 공부할수 있게 돈을 벌어다 주는 구나~  하는

 

그런 막연함이 아니라

 

 

더러운 차 바퀴를 손으로 직접 만지고..

 

 

그 오일 냄새를 코로 맡고

 

 

구석구석의 때를 씻어 내면서

 

 

아버지의 노동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게  아들의 입장에서 좋았습니다.

 

 
 

 

 

 그후  부모곁을 떠나 대학을 다니고


회사 생활을 바쁘게 보내며


공휴일은 그저 늦잠자는 날이 되어 버리더군요

 

 

 

 

 

그러다 오늘 아침에

 

 

어제 무리한  음주를 하고 누워있는데

 


 
아침에 방문 앞으로 세차 준비를 해서 나가시는 아버지가 보입니다.
 

 

 

 

 

오랜 습관이여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일어나 지더군요.

 

 

하지만 숙취에 머리가 쪼개 질듯하여 도로 누웠습니다.

 

 

이 무슨..   -_- ;;

 

 

 

 

 

다시 잠은 안오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차바퀴는 누가 닦지..


실내는 누가 청소하고


 
같이 하면 빨리 끝났었는데


혼자 하시면 얼마나 걸릴까....
 

하는 생각이 납디다.

 

 

 

 

 

뭐 그런생각을 하면서 있다가 보니

 

 

아버지께서 세차를 마치고 들어오십니다. 

 

 

 

 

 

저를 보고도

별말 없는 아버지.

 

 

 

 

 

어쩌면 이제 아버지는


혼자 세차를 하시는게 '당연' 해 져 버린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근 10년간 혼자 세차를 하시면서 말이죠.

 

 

 
내가 점점 바빠(?) 지고 집에 있는 시간이 조금씩 줄어듬에 따라

 

아버진 아들과 같이 하는 시간이 줄어드는거 였습니다.

 

 

 

 

 

 
세차를 끝내고 TV 앞에 앉아계시는 모습을 보면서

 

책상에 앉아 편지지를 꺼내고 펜을 잡았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대략...


 

언젠가 아버지께서 점점 노동의 능력을 잃어버려가면서

 

삶의 무상함과 회의가 느껴 지실때..


이것을 기억하시라고..

 

당신의 땀과 노고가 이룩해낸 결과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값지다고

 

 

뭐 이런 내용의 말을

 

생각이 닿는데로 최대한 솔직하게

 

주욱 써내려 갔습니다.

 

 

 

 
사실 이런건 눈을 보면서 말로 해드려야 되는데

 

말로 표현하면 왠지 부끄럽고 그래서

 
편지를 써 내려 갔습니다..

 

 

 

 

 

 

 

이제 점심을 같이 먹고 편지를 드려야 겠군요.

 

*-_-*

 

괜시리 두근합니다. ㅎㅎㅎ

 

 

 

 

 

 

 

케퍽여러분들 식사 맛있게 하시고 행복한 일요일 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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