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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말이죠. 눈물을 보이면 안되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상사가 직장에서 부부싸움을 하기 시작해서 정말 참을 수 없겠더라고요. (교수 2명이서 같은 연구실을 쓰거든요.)


제가 듣는 거에 민감한 편인데 엄청 신경이 예민해 져서 그간 쌓여 놓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에스토니아 재단에 메일을 보내버렸습니다. "교수가 내 월급 보상금 (유럽 연봉 기준에 맞춰 줄려고 1년 연봉 정도를 한번에 덤으로 줍니다.)을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라고 해서 내가 화가 나있다." 정말로 그렇게 들었습니다. "만약에 내가 여기서 이 포스터 닥터 연구원 자리를 그만둔다면 대학에 얼마를 보상하고 일을 그만둬야 하나요?" 이렇게 말이죠.


처음엔 제 처우개선을 위해서 뭔가 해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워낙 좁은 나머지 이게 직방으로 재단에서 대학으로 그 다음에 대학 사무실에서 우리 보스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그 여자교수가 저를 불러서 전 아무 생각없이 그 문훵하니 열린 사무실로 들어갔죠. 그러니 정말 절 잡아 먹을 듯이 언성을 높히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러다고요. 저보고 그만두고 나가고 싶으면 짐싸서 언능 나가라고요. 


처음엔 무서워서 덜덜 떨다가 뭔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다른 7명 박사 과정생들이 문열린 바로 옆 공간에서 듣고 있어서 이런 논의하기에 적합하지 않았거든요. 남이 듣고 있으니 당당히 말도 못하겠고 교수는 그런거에 원래 신경안 쓰는 사람이라서 저를 몰아붙이고 그렇게 10분여간 시간이 지나다가 제가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이 외딴 구 소련 나라에서 더러워서 못해먹겠지만, 어디 딱히 당장 갈 곳도 없고 말이죠. 어떻게 화를 가라 앉힌 다음에 내년 12월까지는 버텨서 여기서 일을 해야 할 것 같고 정말 억울하더라고요. 그렇게 1시간 동안 저는 울고 그 여자 교수는 남자애가 펑펑 우니까 불쌍해 보였는지 태도가 부드러워져서 혼자 외딴 나라에서 살기 힘드니 이해한다. 이런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서 1시간 뒤에는 잘 마무리 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오전에만 그 시끄러운 공간에서 다른 9명이랑 보내다가 점심 때는 조용한 세미나실로 옮겨가서 제 도시락도 까먹고 혼자 조용히 보내는 걸로 합의 봤습니다.


교수가 그간 숨겨두었던 세미나실 여벌 키를 이제서야 꺼내서 보여주네요. 이제 세미나실 키 달라고 수위실 아줌마랑 손짓발짓하면서 말싸움 할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오후가 되서 너무 배가 고파서 혼자 세미나실로 온 다음에 근처 수펴에 가서 빵을 사와서 먹었습니다.


좋은 레스토랑에 가면 맛나게 먹을 수 있지만 거리도 조금 되고 팁도 매번주는게 번거러워서 말이죠. 때로는 마음편하게 혼자 빵먹는게 좋거든요. 다른 동료들은 다들 자기들 끼리 먹으러 가거나 안 먹거나 그러니까 매번 물어보기도 무안한 게 발단되어 이제는 점심은 매번 굶거나 운좋게 혼자 앉아 있는 공간에 있으면 빵사먹거나 공원에 날씨 좋으면 혼자나가서 빵 사먹거나 그랬습니다. 물론 돈이랑 시간이 많으면 그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메뉴 설명 듣고 먹고 오고요. 그래서 울적거리며 빵을 우걱거리며 먹었습니다. 사온 우유는 또 생우유인줄 알았는데 sour milk를 잘못 사와서 치즈냄새가 진동을 했네요. 그래도 아까 일로 속도 쓰리니 먹어야 산다라는 생각에 거의 다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지난주 핀란드 학회에서 만난 자상하게 보이는 영국인 할머니(라고 부르기엔 조금 젊은) 교수로부터 터키에서 메일이 왔는데요. 전임강사 자리를 줄테니 언능 자기가 있는 터키의 (가장 크다고 자랑하는) 국제 사립 대학교로 오라네요. 다음달 8일 이스탄불 경유로 한국에 휴가 들어 가는데 그때 이스탄불에서 수도인 앙카라까지 비행기표랑 숙박이랑 제공할테니 스톱오버해서 대학 들러서 구경하고 가라고 합니다. 일은 9월달부터 시작하고요. 아직 눈이 퉁퉁 부워서 글씨가 잘 안 보였지만 그렇게 메일이 온 것 같습니다. 가 봐서 제 마음에 드는 근무 환경이면 난생 처음으로 정규직 직장이 생길 것 같네요. 지난주에 같이 만난 마음씨 좋아 보이는 총장도 (그때는 안 믿었지만) 직접 저보고 오라고 했고요. 그래서 빵가루 묻은 입으로 여기 연구실 교수한테 벽너머로 썩소를 날려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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