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정쩡한 시기에 마음 속 열정을 알게 되어버렸습니다...
2010.08.15 03:17
안녕하세요. 회원님들 어떻게 지내시는지.
모모입니다. 절 아시는 분들과 모르시는 분들께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대학 졸업하고, 대학원을 갔다가 어정쩡한 이유로 수료만 하고
어쩌다가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던 학원강사가 예상보다 너무 적성에 맞아서
어떻게 하다 보니 한눈 안팔고 학원강사생활만 4년차 되는 사람입니다.
사실 대학원은 헛갔다고 생각해요. 공부할 줄을 몰라서.
대강 제 프로필 아는 분들이 있으실 거라고 생각해요. 이게 지금까지의 제 모습이고,
이렇게 살다가 좀 안정되면 파트강사하면서 학교를 도로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만 하던 상태였습니다.
앞으로 결혼도 해야 하고 아기도 낳아야 하니까 조만간 뭐라도 결정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던 상태였습니다. 가능하면 공부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어요.
문제가 풀리고, 깔끔하게 답지로 만들 때 쾌감이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에게는 앞으로 언젠가는 꼭 해야지 생각하던 게 있었습니다.
외가 쪽으로 다들 그림그리는 재능이 있어요. 어머니도 그랬고, 이모도 미대 나왔고,
외할머니 자수 작품은 정말 범상치 않거든요. 저도 그림을 어릴 때부터 잘 그렸고
어릴 때 조선일보배 무슨 대회에서 금상도 타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이모네 미술학원 선생님이 나한테 그림 좀 시켜보더니 미술하라고 권하는 걸
혼자 생각에 단호히 아니라고 말했던 것 같네요.
그냥 어릴 때는 그냥 미술은 돈이 많이 드는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어쨋건 계속 배우고 싶었기 때문에 이년 전에 동네 미술학원에 취미미술을 등록했습니다.
배우는 속도도 제가 생각하기에 빠르고 선생님도 칭찬해 주셔서, 아 내가 그림에 재능이 있나보다
생각을 했는데 어느 순간 그림 그리는 게 좀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채화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쯤이었나, 데생 배울 때보다 너무 잘 안되더라구요.
일도 마침 바빠지고 해서 결국 한 네달 가다 안 갔습니다. 몇 달 후 다른 데 등록해 봤는데
거기도 두달 정도 다니다 말았구요.
그 상태로 한 일년 소강기가 있다가, 세 달 전에 일터 아래층에 있는 취미미술을 다시 등록했습니다.
원래 입시학원인데, 그냥 취미반으로 선생님이 받아 주셨어요.
아직 데생하고, 색연필로 그림을 그려 봤습니다. 그런데 이게, 정말, 미치겠다 싶게 좋은 겁니다.
도대체 마음 속의 뭐가 건드려진 건지, 생각대로 그림이 되면 정말 혼자 미친 것처럼 실실 웃을 정도로 좋습니다
그냥 좋은 거라고 하기에는 너무 강렬한 감정이라 뭐에 사로잡힌 것 같습니다. 솔직히
내가 이렇게 그리는 것에 정열을 가질 걸 어릴 때 알았으면 그냥 미대를 갔을 겁니다.
단 한번이라도 미술학원을 중고등학교 때 등록해 볼 것을, 어째서 단 한번도
그럴 생각도 안 해 본 건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미치게, 미치게 좋아요. 말로 형언이 안됩니다.
나는 아버지께 효도하고 싶고, 얼른 결혼해서 손자를 보게 해 드리고 싶습니다.
벌써 서른 두 살이니까 노쳐녀거든요. 대학원을 다시 가서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욕망도 강렬해요.
그런데 이렇게 마음속에서 주체할 수 없이 뭔가가 건드려진 적이 처음입니다.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이런 적이 없는데.
일단 있어볼 겁니다. 이 상태를 지속해 보려구요. 이러다 또 그림이 힘들어지기도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또 쉴지도 모르지요. 그냥 나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일천한 재능으로 욕구만 강렬한 걸 수도 있구요.
이러다 마는 건데, 그냥 강도만 강한 건지, 정말 인생을 다시 생각할 정도로 큰 건지.
열정이 있어서 다행인 인생인지, 그냥 하고 싶은 것만 많고 에너지 제어가 안되는 인생인지.
코멘트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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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08.15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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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08.15 04:02
너무 거창하게 적어놔서 부끄러운데.. 사실 밥벌이-0-까지는 기대하지 않아요.;;;;;;;
그냥 놓칠 수 없는 게 또 생겼네.. 사실 일단 이러고 있는데, 마음 어딘가가 뜨거워서 좀 토해놓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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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08.15 04:04
생각해보니... 어떻게 할 줄을 몰라서 더 뜨겁게 느꺼지는 거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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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몽이
08.15 11:34
지금 늦었다고 생각한것이..나중에 지나고 생각해보면, 그때가 오히려 빨랐다는걸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저 같은 경우엔 특히나..더..)
짧다면 짧고, 또 길다면 긴 인생 살면서 그런 감정이나 열정 느끼기 쉽지 않습니다.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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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a
08.15 17:22
미술 작가들도 알고 큐레이터나 갤러리스트들도 좀 아는 입장에서는 솔직히 calm님과 같은 말씀을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만..
지난 5월에 세상을 떠난 루이스 부르조아라는 여성 작가가 있습니다. 한남동 리움에 있는 대형 거미조각 '마망'의 작가인데요.
이 작가의 무명시절이 아주 길었습니다. 이 작가는 70대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해 100살까지 30년 가량을 최정상 작가로 인정받다 세상을 떠난거죠.
선택은 모모님의 몫이지만. 부럽습니다. 그런 열정을 지금이라도 알게 되셨다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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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실 웃음이 나온다는 대목이, 마치 마음 속 얼음이 천천히 녹으며 작은 시냇물이 되어 흐르는 모습이 연상되네요.
저도 그 기분 알 것 같기도 하구요.
제 생각에도 미술은 참 좋은 취미인 것 같아요.
시간과 함께 사라지는 추상적인 것들까지도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 진정 마음에 담을 수 있기에
무상한 삶을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는 좋은 버팀목?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는 동안 들리는 형언할 수 없는 마음 속 엔진 소리, 그리고 남겨지는 그림이 있어 더욱 오래 남게 되는 것 같아요.
스마트폰처럼 가지고 다니기 쉽고 할 수 있는 것도 많고요.
그러니 잘 되길 빌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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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낭구쌤 모시고
기품 있게미술벙개 같은 거 하면 어떨까요? 출화 같은 거 다니고ㅋㅋ많은 분들이 낭구쌤을 농사 못짓는 촌민으로만 알고 계실 지 모르겠지만... H미술과에다 일본에서 수학하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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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살부터 기타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하이코드에서 버벅 거리지만...
밴드 하는 꿈을 가지고 삽니다. ^^;
꿈은 꿀 때가 행복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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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립니다.
열정이 꼭 생활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배우로 유명해진 후 노년에 감독 데뷔해서 성공적으로 하고 있고,
역시 노년에 그림공부 시작해서 수준급이 되었답니다. 영화에 그림 그리는 장면 가끔 나오죠.
선택은 본인의 몫입니다만, 홍대 경영과 교수님 외부강연 때 들으니
대한민국에서 미술에 소질있는 사람들이 몰리는 홍대 미대에서도 졸업생 중 그쪽으로 남는 사람들은 한 해에 서너명 밖에 안 된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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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타
08.16 22:27
오... 좋으시겠어요... 취미가 생긴다는것... 열심히 하시면.. 나중에라도... 취미가 본업이 될수도 있으니까요..^^;
무엇이든 열심히 하시면 끝이 보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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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로움
08.18 14:47
가슴 뛰는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모모님은 행복한 거예요^^
좋아하는 그림 열심히 그리면서
많이 행복해지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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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그림 그릴때 처럼 열정이 다시 피어났었으면 하네요.
모모님 부럽습니다.
'연탄재' 가 되셨군요. 아자.
새로운 열정이 굳이 내 밥벌이가 될 필요는 없답니다. 열정은 그 자체로 좋은것. (보통은 밥벌이가 아닐때 더 좋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