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쳐버린 천국
2011.03.17 09:54
우크라이나의 촬영기술자 블라지미르 쉐브첸코는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나자마자 그리로 달려간다.
우리 아버지는 셰브첸코를 수염달리고 친근하고 곰처럼 강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셰브첸코는 중앙 우크라이나 TV에서 일했는데 어디든 갈 수 있는 통행증을 갖고 있었다.
셰브첸코는 당시 체르노빌의 다른 모든 사람들 같이 방사선의 위험성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이 여행에서 돌아오고 잠시후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병원에서 핵물리학자였던 우리 아버지를 만난 그는 거기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줬는데, 아버지는 즉시 그 촬영기사는 아마 병원에서 살아 나가지 못할 것을 알았다.
그 필름은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그저 수술용마스크만을 쓴 채 원자로를 찍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주민들이 이송된 곳들은 여전히 활기차 보였다.
"좋은 여행 되기를!" 체르노빌의 검문자들의 인사였다.
이들이 해체작업자들이다. 아직 자신들이 무엇을 다루게 될지 모르는 이들이다. 그들 모두가 나중에 알게 되었다.
5천톤의 모래, 보론, 돌로마이트를 헬리콥터에서 투하한 후 불안정한 원자로의 붕괴위협은 크게 감소했다.
지지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서 이들은 원자로 아래에 통로를 뚫어야 했다. 여기에 콘크리트를 부어서 굳힐 것이었다.
광부들이 일하고 있다.
마스크를 쓰면 숨쉬기 힘들어진다.
따라서 대부분은 안전장비를 쓰기를 거부했다.
방사선은 시간당 10뢴트겐(100 mSv)에 달한다.
당시에 이정도의 방사선량은 높은 수치로 여겨지지 않았다.
정상범위보다 백만배나 높은 양이지만.
이들은 생화학작업자들이다.
이들은 방사능 낙진을 퍼서 옮기고 있다.
방사선량은 수천뢴트겐에 달한다.
체르노빌원전의 지붕위에서 40분을 일하면
인간의 몸은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셰브첸코는 이 필름을 찍으며 치명적인 뢴트겐량을 쏘인다.
여기 MI-8 헬리콥터다. 균형을 잃고 크레인에 부딛혀서 떨어진다.
모든 탑승자가 사망했다.
고르바쵸프의 기술고문인 예브게니 벨리코프는 1986년 5월 1일 무슨일이 생겼나 보기 위해 원전 3동 지붕에 올라가서 원자로를 보려 그는 30킬로가 넘는 납 보호구를 짊어지고도 100Rem( 1,000mSv)를 쏘인다.
셰브첸코는 그저 카메라 한대와 이것을 찍어야겠다는 집념뿐이었다.
그는 죽어갈 때 여한이라곤 체르노빌에서 더 찍어서 남기지 못한 것 뿐이라고 말했다.
4월 26일 처음 사고현장에 도착한 소방수들은 바로 시간당 10-30뢴트겐에 노출된 후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사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가까이 가는 것은 여전히 위험하다.
몇주후 이 사진을 찍은 셰브첸코는 전신에 암이 퍼져서 사망했다.
그의 카메라들도 방사능덩어리가 되어 폐기되어야 했다.
"셰브첸코 볼로지미르 미키토비치-
촬영기술자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나의 마지막 필름이자,
나의 마지막 숨.
(그의 묘비문)
무서운 집념이군요.
위험성을 몰랐기에 저런 자료가 남아있겠네요.
촬영기술자 셰브첸코 볼로지미르 미키토비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