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김연수의 원더보이

2012.09.11 22:35

jubilee 조회:1062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살다보면 책이 먼저 나를 초대하는 경우가 있다. '원더보이' 역시 그러한 경우다.
지나쳐가듯 읽었던 글 속에서 소설 제목을 읽고 한참 후 회사 도서관 서가에 꽂혀있던 것을 보고 손을 뻗어 꺼내든 것은, 소설은 안 읽겠다는 평소의 생각조차 저멀리 던져버리게 한 것은 책이 나를 부르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그렇게 하나의 이야기가 은연중 나에게 다가왔다. 

이 소설은 형식상의 성장소설이지만 그 안에 작가의 시대인식과 역사의식이 담긴 소설이다. 그 역사의식의 층이 아주 얇긴 해도, 인위적인 짜맞춤이 보이기는 해도 그런 투박함 속에 이 소설은 또한 다른 사람의 머리를 빌어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마치 정연희의 '난지도'를 읽는 것처럼.

이 책을 읽고 역시나 우주선 지구호에 탑승한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들임을, 그리고 그 가치를 지켜나가야 함을 다시금 확인했다(인간의 유전자가 하나같이 다른 형질을 발현함으로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은 고유의 독자성으로 말미암은 유일무이한 존재로서의 존엄성을 획득하는 것이기에). 마치 100000000000개의 은하 속의 100000000000개의 별이 모두 다른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하나하나가 소중한 그 행성에서 누군가는 다른 누구를 짓밟고 뭉게버린다. 그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빼앗고 말살시켜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마르틴 부버가 말한 '나와 너'의 관계가 아닌 '나와 그것'의 관계로 상대를 전락시키는 것이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일상적 폭력이 그리멀지 않은 '과거(?)'에 이 땅에서 버젓이 자행되었던 것이다.

또 하나 언급할 점은 이 책이 임철우의 '붉은 방'처럼 이제는 기억 속에서 흐릿해진 80년대를 기억나게 한다는 점이다(이책을 읽고나서 잠이 들었는데 꿈에서 이한열을 보있다). 다만 전자와 다른 점은 보다 유쾌한 활극으로 80년대를 풀어가고 있다는 점이다(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처럼). 게다가 독심술, 텔레파시, 기억술 등의 양념들이 그저그런 이야기로 흘러갈 수 있는 이야기에 재미를 부여하고 있기도 하다.

중구난방으로 글이 흘렀지만,
상처입은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서로를 위로하며 세상과 맞서 힘겨운 싸움을 해야할 터이다.
이천십이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이제 그 아픔의 시기를 '추억'하기보다 '기억'해야 할 선택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바라본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이 왜 나를 불렀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는 마라."는 문구가 문득 떠오른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공지 [공지] 2025년 KPUG 호스팅 연장 완료 [9] KPUG 2025.08.06 31089
공지 [공지] 중간 업데이트/ 다시한번 참여에 감사 드립니다 [10] KPUG 2025.06.19 56629
공지 [안내의 글] 새로운 운영진 출범 안내드립니다. [15] 맑은하늘 2018.03.30 70642
공지 KPUG에 처음 오신 분들께 고(告)합니다 [100] iris 2011.12.14 493433
29876 알뜰폰 요금제 덕분에 부담이 없네요. [7] 슈퍼소닉 07.14 397
29875 여름휴가....??? [12] 인간 07.07 548
29874 똥개 근황 그리고 카메라 바꿈질 [21] file 바보준용군 07.07 548
29873 Oscilloscope를 하나 주웠습니다 [14] 왕초보 07.02 715
29872 주말에 에어컨 청소 [5] 해색주 06.23 714
29871 뭔가 새로운 것을 질러도.. [17] 아람이아빠 06.23 708
29870 월드컵 유감 -- 미운게 더 밉네요 [6] 왕초보 06.23 688
29869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6] 해색주 06.22 683
29868 오피스 2019 라이센스 만료라기에 [3] matsal 06.18 704
29867 밝은 미래... 일부 **들 [14] 인간 06.15 685
29866 AI 데이터 센터 투자붐 [3] 해색주 06.10 737
29865 미쿡도 우리나라도 선거 열풍이 지나갔네요 [15] 왕초보 06.05 802
29864 둘째 해군 입소식 왔습니다. [8] file 해색주 05.26 836
29863 BTS가 저희 동네에 왔습니다 [8] 왕초보 05.19 853
29862 명동 번개....가는 중 입니다. [15] 맑은하늘 05.18 789
29861 즐거운 주말 아침을 달리는 덕질 해봅니다 [16] file 바보준용군 05.16 766
29860 스승의 날이네요. 감사합니다. [17] 맑은하늘 05.15 728
29859 비오는날... 무지개다리를... [9] file 인간 05.12 709
29858 KPUG 호스팅 연장 일정 및 운영계좌 상태 공지 [10] 해색주 05.06 778
29857 갤럭시21 배터리 주는 이유 발견 [3] 해색주 05.04 702

오늘:
20,133
어제:
20,222
전체:
25,063,8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