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는 쇠고기만 있는게 아니다, 커피도 있다~ (커피 시음기)
2013.02.12 11:46
주문해둔 호주산 Skybury Fancy가 도착했습니다. 온건 설 연휴 전이었지만, 일단 개봉은 오늘 하였습니다. 호주산 아라비카종 원두를 썼으며, 배전은 풀시티 중반입니다.(참고로 원두를 로스팅하는 수준은 많이 하는 순서대로 하이, 시티, 풀시티, 프렌치로 나뉘는데 로스팅을 덜 하면 신맛이 강해지고 로스팅을 많이 하면 쓴 맛이 강합니다. 풀시티 중반이면 꽤 많이 볶아댄 것입니다.) 일단 원두 수입사의 말에 의하면 '단맛이 강하고 신맛은 약하며 맛의 무게는 가벼운 대신 향이 강하다'가 이 원두의 성격입니다.
원두는 주문할 때 갈아달라면 갈아주는 것은 어디든 같지만, 커피 원두를 다 쓰는 데 2주 이상이 걸리는 경우라면 갈은 것을 사기보다는 그라인더를 하나 사서 직접 가는 것이 좋습니다. 원두 상태가 갈은 것 보다 향이나 맛 보존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라인더는 싼건 1만원 내외짜리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미분(매우 가는 커피 가루)이 많이 생깁니다. 즉, 균일하게 갈리지 않는 편입니다.
3~4만원짜리만 되어도 많이 쓸만한데, 제가 쓰는 넘은 생긴건 폼은 안나고 싸구려틱 하지만 세라믹 재질이라 물청소가 쉬운 넘입니다. 그리고 미분이 적게 나오는 모델입니다. 보통은 카페에서 볼법한 디자인을 갖고 있지만, 어차피 누구에게 보여줄것도 아닌데 실용성이 중요한거 아니겠습니까?^^
이걸 열심히 돌려 커피를 갈아냅니다. '팔 빠질 정도로 갈아야 한다'고 겁을 주는 사람도 많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생각보다는 많이 돌려야 하는 것은 많지만, 힘을 있는대로 주어야 할 정도로 단단한 것을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번 마실 정도(20g 내외)를 가는 데는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습니다.
'커피라는 구정물을 만드는 악마의 기계'라고 혹평을 받는 커피메이커에 원두를 넣은 모습입니다. 커피메이커가 그러한 평가를 받는 이유는 원두 특성에 맞는 온도 조절, 점드립, 추출의 중단을 원하는 만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기계가 있어 원두커피를 누구나 머리 아프지 않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말로 마니아라면 그냥 드립으로 마시면 그만이지 커피메이커를 쓰는 사람을 비난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하여간 시간이 지나 추출한 커피가 이렇습니다. 이 커피의 특성을 적자면 이렇습니다.
1. 원두 수입사에서는 밝히지 않았는데, 처음에 와일드한 흙냄새가 납니다. 이것은 '나쁜 것'이 아닌 '특징'인데, 호주의 토질을 생각하면 이해는 갑니다. 즉, 첫 맛은 꽤 거친 호주다운 느낌이 납니다.
2. 하지만 중간부터 그냥 크게 쓴 맛 없이 가볍게 넘어갑니다. 오래 볶은 것을 생각하면 꽤 의외인데, 쓰거나 불쾌한 맛을 남지기 않고 그냥 꿀꺽~ 넘어갑니다.
3. 커피의 단맛은 느껴질 정도로 있습니다. 오히려 그 단맛은 커피가 식으면 더 명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설탕을 반 스푼 정도로 적게 넣어 드시는 분이라면 굳이 설탕 없이 드셔도 될 정도입니다. 신 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없어 신 맛을 싫어하는 분들에게 잘 맞습니다.
4. 이 커피의 특성은 식어도 맛이 그리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뜨거운 커피보다 미지근하거나 시원한 커피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커피를 내린 뒤 식혀 냉커피를 만들어 마셔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코멘트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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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소
02.12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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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is
02.12 12:51
다만 너무 굵게 갈면 미분이 조금은 나오는건 피하기가 어렵습니다. 상대적으로 덜 나오는거지 안나오는건 아니니까요.^^
드립으로 드실거면 Skybury Fancy도 나쁘지 않지만, 이건 그래도 커피중에서는 조금 비싼 넘이라서(200g 기준 1만원대 초반) 식어서도 맛있게 마시는게 절대 명제인 분이 아니면 조금 부담스러울겁니다. 대신 이전 글에 적었던 공산주의 커피(쿠바 Altura Lavado)를 더 추천합니다. 이 커피는 신맛은 약해 거의 느껴지지 않지만, 향과 맛 밸런스가 매우 좋고 값도 비싸지 않아(200g 기준 7,000원대) 벌컥벌컥 부담없이 마실 수 있습니다. 괜히 '없는 자의 블루마운틴'으로 불리는 커피가 아닙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살 수 있는 '마트표' 가운데는 이마트에서 PB로 파는 칸타타 시다모(일단 링크를 겁니다.)가 값에 비해서는 괜찮은 편입니다. 600g짜리 캔이 1만원대 초반인데, 사실 갓 볶아 분쇄한 것보다는 확실히 맛이 떨어지기는 하나, 마트나 수퍼마켓에서 파는 다른 분쇄 커피에 비해 확실히 '돈 값'을 합니다. 이 커피는 신맛은 어느 정도 있기에 신 맛을 싫어하면 조금 거시기하지만, 밸런스는 꽤 괜찮은 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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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소
02.12 13:09
추천 감사합니다.. 저번에도 언급하신 '공산주의 커피(쿠바 Altura Lavado)'에 흥미가 갑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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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is
02.12 14:17
그리고 커피메이커나 드립으로 진하지 않게 드시는 분이라면 남미의 또 다른 마이너, 엘살바도르 SHG(El Salvador SHG)도 괜찮습니다. 역시나 중미 마이너(?)답게 가격 부담이 작은데, 엘살바도르가 커피 시장에서 그나마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게 군사독재가 끝나고 내전도 끝난 1990년대 이후라서 이름은 '아는 사람만 아는' 수준입니다. 공산주의 커피보다 더 쌀 정도입니다.^^
엘살바도르 SHG는 고산지대 원두를 말하는데, 그 뒤에 유명한 농장 이름이 붙기도 합니다. La Joya깉은 곳이 유명한데, 대충 이 동네 커피는 '커피라는 것의 특징을 머리 속에 떠올리고 마시면 깜짝 놀라는' 것입니다. 보통은 쓴맛이 강하다거나 달다거나 시다거나 하는 특징이 하나씩은 있는데, 이 커피는 그러한 것이 없습니다. 첫 맛의 부드러움에 놀라고 중간부터 끝까지 느낌 없이 쑤욱~ 넘어갑니다. 나쁘게 말하면 특징이 별로 없는 커피입니다만, 그러기에 물처럼 담백하게 마시기에 거부감이 없습니다. 에스프레소나 모카포트용으로는 NG지만 가볍게 드립하거나 커피메이커용으로는 쓴 맛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분도 저항 없이 마실 수 있는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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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ity
02.12 12:32
브랜드가 너무 멋진데요~!!! 커피 한잔 생각이 납니다~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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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is
02.12 13:04
제 맛의 스펙트럼은 '커피맛 물'부터 '에스프레소 Four Shot'까지, '270원짜리 해태 캔커피'부터 '하와이안 코나'까지 정절따윈 무시하는 범위를 자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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휼드
02.12 13:35
ㅠㅠ 궁금하네요 이번에 그라인더가 고장나서 수리 보내야됩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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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넷
02.12 15:04
커피 뽐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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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02.13 07:04
며칠전에 Trader Joe's에 갔었는데 블루마운틴 100% 커피를 팔더군요. 거의 전량 일본에 수출한다고 알려졌었는데. 맛이 어떨까 궁금하긴 합니다.
그라인더 결과물이 생각보다 곱네요;;
제가 가지고 있는 하리오는 저정도 까진 안 나오던데...
안그래도 캡슐 먹는것도 좀 식상해서 드랍을 생각해 보고 있어서
iris님이 저렴하고 괜찮은 커피를 추천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맘을 내심 가지고 있었는데
딱 글이 올라오는 군요... ㅎㅎ
2,3 개 더 추천 해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