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맛없는 통닭집.
2010.03.31 02:32
제가 사는 곳 앞에는 작은 시장이 있고, 그 시장이 시작하는 곳 즈음에, 통닭집이 하나 있습니다. 지리적으로는 아주 좋은 곳이죠.
어지간히 맛없지 않다면 망하지는 않을 그럴 위치입니다.
문제는....... 지금까지 세 번 먹어봤는데요, 정말 맛없습니다. - -;
그래서, 이 놀라운 닭의 맛의 비밀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1. (최악의 맛에) 힘을 더하는 지저분한 인테리어.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셨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닭튀기는 공간이 밖으로 노출 되어 있습니다. 닭조각들도 함께요. 즉, 길거리에서 파는 오뎅, 순대, 오징어 튀김들 아시죠? 그런 것들을 상상하시면 됩니다.
문제는 퍼포먼스도 있고, 깔끔하고, 혹은 먹음직스럽게 튀기시면 되는데, 그런 장점이 전혀 없어서 역효과만 불러옵니다.
튀기는 동안 땀에 흠뻑 젖어서 송글 송글 맺힌 땀들이 기름속으로 떨어질 때는 밥맛이 뚝 떨어지고, 그때 그때 튀기는 게 귀찮으셨는지, 한꺼번에 10마리 정도를 70퍼센트 정도 튀겨 놓고, 진열해 놓은 다음 주문이 들어오면 나머지 30퍼센트를 익히는 식이네요. 이게 또 장시간 외부에 노출되어 있다보니(황사건 비바람이건 가리지 않고 ) 먹기가 거시기 합니다.
아마 본인이 더워서 튀기는 공간 만이라도 외부에 둬서 좀 편하려는 심산이었던 것 같은데 완전 최악의 악수인 듯 합니다.
2. (최악의)맛의 비결은 고유의 튀김방법?
다른 닭튀김들 처럼 하나 하나 잘라서 튀김옷을 입히고 주문이 오면 그때 그때 굽는 방식이 아닙니다.
a-일단 닭을 양등분 하여 날개와 다리를 하나씩 갖는 두개의 큰 조각으로 나누고, 그대로 밀가루를 입혀서 대충 튀겨 놓습니다.
b- 손님이 없으면 초벌구이를 해 놓은 닭들이 얼마나 진열되었는지 알 방법은 없습니다.
c- 아무튼 주문이 오면 그때 다시 기름통에 던지는데, 이때 기름 속에서 닭을 집게로 분지르고 자르고 합니다. 이과정에서 고기 속으로 기름들이 다 들어가서 말랑말랑한 육즙이 다 빠져 나와 버리고, 겁질 뿐 아니라, 고기도 곳에 따라 감자칩 처럼 바삭바삭해 집니다. (맛이 없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d- 상자에 담는데, 은박지도 안 깔아 주고 그냥 종이 위에 "터억" 하고 놓고는 줍니다. 하지만 말투나 표정은 정말 친절합니다. - -;
3. 가장 큰 문제 -사장님의 마인드.
사장님 인상이 나쁜 것도 아니고 부지런해 보입니다. 딸도 있다더군요. 근데, 문제는 자기 요리실력을 모릅니다. ㅜ.ㅜ 정말 최악인데 맛있는 줄 알아요. ㅜ.ㅜ
특히 튀김옷은 싸구려 포장마차 튀김옷 수준인데, 자화 자찬이 끝내줍니다. "바삭바삭 하고 맛있답니다." 하면서, 원하지도 않는데, 닭 튀기고 남은 찌꺼기 들을 제가 주문한 통닭 위에 우르르 끼얹어 주고는 "맛있게 드세요." 하면서 생긋 웃는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러면서 체인점 치킨들은 밀가루 반죽 투성이로 양만 불리는데 맛도 없고 양도 적다고 하시는데, 솔직히 저의 눈에는 그 집 치킨이 양은 더 적고, 아시다시피 유명 체인점의 치킨의 겁질은 정말 맛나고 쫄깃합니다.
매일 파리만 날리면서 딸자식 키워 보시겠다고 노력하는 건 좋지만, 근본적인 게 해결이 안되는데 영업이 잘 될리가 있나요. 사장님.
흐미...... ㅜ.ㅜ
자영업자에게 있어서 가장 위험한 건, 게으름이나 불친절 보다, 본인에 대한 착각인 것 같아요. 알면 고치기라도 하는데, 본인은 알지도 못하니. 흐미...... ㅜ.ㅜ . 그리고 솔직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친절도 "말로만" 친절했던 것 같아요. 정말 친절히 고객을 위한다면, 청소부터 깨끗이 했었어야죠.
이제 절대 그 치킨집은 안 갑니다. 네버. 네버!
코멘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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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C
03.31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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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산왕
03.31 02:59
가격은 제가 먹는 치킨집보다 2000원 정도 쌉니다.
근데, 이 치킨집도 예전에는 잘 됬었다고 하네요.(믿어지지는 않지만.) 뭐랄까, 언제 부터인가 맛이 엉망이 되었으나, 그 엉망이 된 맛에 주인은 익숙해 지다보니 뭐가 문제인지 모르게 되고, 손님을 떨어져 나가고, 할 맛이 안나서 의욕도 없다보니, 맛은 한 단계 또 하락하고, 그 한 단계 하락한 맛에 또 주인은 익숙해지고, 손님들은 또 떨어져 나가는,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어 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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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암동 장사할때 먹던 그친킨집 유명했는데 인제 이름도 까먹었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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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렁뚱땅
03.31 09:01
안암이면..고대앞에 삼성통닭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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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닭하니.. 압구정.. "한잔의추억" 집이 생각나에요.. 침이 꿀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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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로
03.31 05:01
과거 kpug.net때 부터 최강산왕/님의 사려 깊은 글을 유심히 읽고 있습니다. 때로는 제게 글을 쓸 모티브를 제공하시기도 합니다.
이번 글도 무척 의미심장합니다. 통닭집 주인이 " 우리 가게의 음식이 맛있고 깨끗하다는 거짓(자신이 아는지 모르는지는 모르지만)에서 벗어 나 불순한 기름통을 보여주고 그동안의 후의를 감사하고 통닭집을 청산했다면 손님들의 마음이 이렇게 참담하지는 않을텐데...
하기야 인간에게 있어 자신이라는 아집(我執)을 벗어 던지는게 어렵기는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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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산왕
03.31 19:24
앗 그냥 통닭 이야기일 뿐인데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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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잼잼
04.01 10:30
3번 정도 사먹은 정(?)도 있으시니 내용 간추려서 영업하기 전에 문틈에 꼽아두시면 어떨까요. 직접 주면 역효과 날 수도 있으니까요.
딸래미도 키운다니...
저도 자식이 있는 입장으로 마음이 쓰이네요.
물론 고쳐지지 않을 확률이 높긴 하지만요. ㅡㅜ
가격은 싼가요??
예전에 살던 동네에 먹거리 골목에는....
위에처럼 초벌구이 해둔 상태로 있다가 손님 오면 더 튀겨서 나오는 그런집이 있었는데...
맛도좋고 맥주맛도 괜찮고....주인장분도 친절하고 깨끗하기도 했었거든요...값도 간단하게 맥주안주로 먹기에 착한가격이고....
이 동네에 이사와서 그런집은 아무리 눈씻고 찾아봐도 없네요....
가끔 예전에 살던곳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