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막히게 그리운..
2024.07.25 12:44
시골스럽게 뭐 저런 표현들을 쓰나 했는데, 가끔 느끼게 되었습니다. 끙 하는 신음소리라도 한번 내어야 일어날 수 있는.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네요. 어머니가 언제 한번 다녀가라 라고 하시는데.. 아직도 언제쯤 들르겠다는 좋은 소식은 못 드리네요.
6년된 분께 여쭈어 보니, 여전히 숨이 막히게 그리운데 그 그리움을 느끼는 순간들이 조금씩은 멀어져 간다네요. 저도 5년이 흘러서 그런 수준이라도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들 잘 지내시죠 ? 류호열님 유태신님도 잘 지내시겠죠 ?
코멘트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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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소닉
07.2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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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07.26 02:30
지금 그리운 것은 순간이 아니라 사람이라서요.
젊음은 더이상 그리운 대상이 아닌 나이가 되어버렸습니다. (혹시 마음만은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럴 지도) 어쩌면 그립다고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내 몸이 깨달은 탓일지도 모르죠. 그런데 사람 그리운 것은 벗어나 지지 않네요. 그립다고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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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P
07.25 17:08
시 하나가 생각나 공유합니다.
기왓장 내외 - 윤동주
비 오는 날 저녁에 기왓장 내외
잃어버린 외아들 생각나선지
꼬부라진 잔등을 어루만지며
쭈룩쭈룩 구슬피 울음 웁니다.
대궐 지붕 위에서 기왓장 내외
아름답던 옛날이 그리워선지
주름잡힌 얼굴을 어루만지며
물끄러미 하늘만 쳐다봅니다. -
왕초보
07.26 02:43
아버지가 남기신 책이 본가 한쪽 벽을 몇겹으로 채우고 있는데, 그 중에는 아주 옛날 윤동주 시집도 본 듯 합니다. 어쩌면 시집들은 어머니 책일 수도. 언제쯤에나 정리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는 당장 묶어서 버려라 하시는데 그게 진심이 아닌 줄은 알 나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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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색주
07.25 20:23
두 분 모두 잘 지내시겠죠. 유태신님은 참 갈때에도 그분다웠습니다. 언젠가 만나면 소주 한잔 하며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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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07.26 02:45
한 시대를 살고, 뵌 적이 있다는 것이 가슴을 따뜻하게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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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kim
07.25 21:40
그리운 이름들이네요. 두 분 모두 잘 지내고 있을거라 믿습니다. 그 곳에서도 행복하시길... -
왕초보
07.26 02:46
결국은 우리도 순서랄 것도 없이 한 이름으로 남겠지요. 그때 먼저 가신 분들처럼 한점 부끄럼없고 좋은 기억으로만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틀린거 같기도 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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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kim
07.26 22:33
1년이 지나도, 5년이 지나도 가슴 한 켠에 남아있는 그리움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듯 합니다. -
왕초보
07.30 08:16
언젠가 다시 뵙겠지 하는 희망을 안고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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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산왕
07.26 20:15
그리움을 간직한 편이 더 좋은거 같아요. 감정이 있다는건 좋은 것이니 까 말이죠. 아련한 감정이라도..
전 어머니가 떠나셨을 때, 세상이 너무 못마땅해서 견딜 수 없었던거 같습니다. 절대 살아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그 고통이 먼지처럼 사라져서 신기했습니다.
가끔 잠을 설치고 깨어나면 어머니 꿈을 꿉니다. 꿈은 잠재의식의 처리 과정이라고 하죠. 깨자마자 희미해 지는 꿈들...
완전히 숙면을 하는 동안에, 아마도 저는 그렇게 많은 밤들을 알지도 못한체 어머니의 꿈을 꾸었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노가다나 알바 등으로 하루하루 살다가, 갑자기 호주 간다고 하니 어머니가 걱정반 근심반으로 놀라셨죠. 근데 기뻐하셨던거 같아요. 제가 호주에 정착하면 같이 와서 정원사를 하고 싶으시다고, 조경을 배우기 시작하셨죠. 옥탑방에서 저와 걷지 못하시는 할머니 이렇게 셋이서 살고 있었는데, 지저분하고 좁은 베란다에 많은 꽃들을 심고 기뻐하셨던...
전 지금 잘 살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안정 되었고, 투자도 나쁘지 않고, 직업도 안정적이고 회사에서의 관계도 원만합니다. 마당 딸린 나름 큰 집에서 살고 있네요. 앞마당, 뒷마당, 옆마당에는 바빠서 방치한 레몬, 라임, 장미나무 들, 그리고 이름 모를 꽃이랑 나무들이 무성합니다. 엉망이죠 ㅎㅎ.
어머니가 같이 계셨으면 가드닝 도 하면서 작년에 태어난 아들 녀석이랑 도 놀아주고 그러셨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왕초보님도 마음 추스리시고 행복한 삶 사시길 바랍니다. 전에도 말씀 드린거 같은데, 아버지가 자랑스러워 하셨을거 같아요.
부디 어느날, 먼지처럼 고통은 사라지고, 행복한 기억만 간직한 체 평안하게 하루 하루를 살 날이 오시길 바랍니다. -
minkim
07.26 22:32
최강산왕님이 지금 잘 사시는 게 최고의 효도죠! -
왕초보
07.30 08:17
어머님은 이미 참 기뻐하고 계실 겁니다.
코코 보세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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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지나서 그런지.. 예전처럼 많이 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
일상 생활 하다가 이럴 때 같이 있었으면 하는 그런 생각은 자주 드네요.
예전에 수술실 들어 가실 때, 한번 안아 드리고 싶었는데..
경상도 사나이라 표현을 잘 못 합니다.
그렇게 수술실 들어가는 뒷 모습이 아직도 생각나면서 그 때 안아 드리지 못한게 제일 후회스럽네요.
그 모습 마지막으로 중환자실 3주 있다가 돌아가셨어요.
가끔 꿈에 나타나시면.. 아부지 번호 쫌!! 한번도 맞는 적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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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07.30 08:21
회한은 극복하는게 불가능해 보입니다. 79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한달 정도 차이로 따라가셨어요)께 미쳐 못해드린 한을 어머니는 아직도 얘기 하시거든요. 어머니 당신도 이미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당시보다 훨씬 나이가 드셨는데 말입니다. 어머니가 외할머니 돌아가셨을 연세를 지날때도 참 힘들어 하셨는데.
저희 아버지도 병원에 혼자서 걷고 지하철 타고 가서 검진받으시다가 입원하시고는 다시는 집에 못 오셨네요. 그 알량한 치료받는다고. 집에 가고싶다고 하실때 모시고 올걸 하는 생각들. 할 수 있는 것 다 하고 후회 덜하겠다고 아버지를 그렇게 힘들게 밀어붙였나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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쫀쫀
07.28 15:34
저도 이제 어느덧 30대 중반이네요.
중학생때부터 kpug 를 방문했었는데..
어느덧 저희 어머니 뒷모습도 너무나 야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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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07.30 08:22
혹시 같이 살지 않으신다면 한번이라도 더 찾아뵙고, 가능한한 자주 전화 드리세요. 같이 사신다면 매일 안아드리세요.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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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회 생활을 할 때 형/동생 문화를 좋아 하지 않습니다.
20년이 넘은 KPUG 에서도 동갑 분들과도, 연상/연하 분들과 말을 놓지 않고 상호 존대를 해야 실수를 줄이고 최소한의 예의를 갖출 수 있다고 생각 하기 때문입니다. // 장발장님은 조금 예외 스럽지만 형 동생을 하고 있습니다. 워낙 사석에서 사적으로 많이 봐서..
2015년 쯤 국내 모 대기업 재직중이신 부장님과 2~3년 일을 하다 보니, 어찌 어찌 하여 알다보니 제 첫직장 바로 옆 팀장의 대학 동기 ROTC 동기시더라구요. 공적인 업무도 많이 했지만, 사적인 술자리도 몇번 있어서 그런지, 바로 말 놔도 되냐~ 라고 물으시길래 그러세요~ 하고 형 동생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업무로 만나는 그 기업 부장님이랑 형동생 하는 부장님이 입사 동기에 동갑에 절친이라 하셔서 두 번째 부장님도 형동생 관계가 되어 1년에 2~3번씩은 셋이 모여 술을 먹었습니다.
작년 연말 먼저 형동생 되신 부장님이 암에 걸리셨답니다. 가을까지도 같이 술먹었는데, 11월 경에요.....
올 6월에 부고가 날라왔습니다. 본인 부고....
저도 간사 한게 형수님을 뵌적도 없고, 자녀 분들 역시 일면식도 없는데 굳이 가야 하나? 란 생각을 잠시 했었지만,
가시는 길 노잣돈이라도 보태자~ 라는 생각으로 두 번째 형동생 부장님과 시간을 맞춰 조문을 갔습니다 .
이름만 대면 아는 그 대기업의 현직 부장 빈소에 2시간을 앉아서 술을 먹는데, 저희 팀 빼고 딱 한팀 조문객이 있더군요.
옛말에 정승집 개가 죽으면 북적여도 정승이 죽으면 썰렁하다는데....
빈소를 떠나서 일행 셋이 2차를 가서 정말 많은 술을 먹었습니다. 고인과의 추억을 안주 삼아서요.
유태신님 조문가서 정말 많이 울었네요. 사모님도 뵙고, 아드님도 뵙고....
유태신님 아직도 가끔 생각 납니다. 몇번 뵙지 못했지만 선 했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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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08.01 00:24
본인상은 정말 황당하더군요. 예외없이 썰렁하고요.
벌써 친구 둘을 그렇게 보냈는데, 어쩌면 제 나이가 벌써 그렇게 된 건지. 주위를 정리해야 하는 시기가 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는데는 순서가 없더라구요.
아버지가 가시고 나니 아무 경황이 없이 장례식 절차가 흘러가는데, 그동안 친척들과의 연락을 도맡아 하시던 아버지가 안 계시니 연락하는것 부터 난감했습니다. 어느것 하나 아버지한테 여쭤보면 답이 바로 나올 일인데 말입니다. 그래도 참 많이들 오셨고, 신기했던건, 많은 친척 어른들이 아마도 87년에 할아버지 돌아셨을때 뵙고 처음 뵙는 분들인데, 한눈에 누군지 알아 볼 수 있었다는 겁니다. 세월이 엄청나게 할퀴고들 지나갔는데. 누군가가 제 귀에다 이름을 불러주는 느낌이었어요.
아버지 좋아하시던 음식들로만 한상을 차렸습니다. 아버지 안 좋아하시던 음식은 다 빼고요.
누구나 갖고 있을 듯한 아련한 시절... 그 숨막히게 그리운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누구나 하죠. 저도 그런 떄가 있구요. 그런데...
(나이 들어서 지금 생각을 없이)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똑같은 선택을 하고 똑같은 후회를 할 것이고,
(나이 들어서 지금 생각을 갖고)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그립지만 그렇게 간절하게 돌아가고 싶지는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