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 글은 제 블로그에 올린 글을 그대로 다시 올린 것입니다.^^

 

 

 

롯데공업에서 신라면 블랙의 단종을 공식 선언하였습니다. 롯데공업 라면의 플래그쉽 모델이 고작 네 달만에 단종되는 셈입니다. 정말로 롯데공업의 치욕이 아닐 수 없는 일입니다. 이제 웹 사이트에서도 신라면 블랙은 사라졌습니다. 아멘, 아니 아면~~~

뉴스 등 언론에서는 '공정위에 허위 광고로 두들겨 맞아서', '너무 비싸서'라고 이 라면의 실패 이유를 꼽고 있습니다. 확실히 공정위의 판정은 '우골보양식'이라는 신라면 블랙의 ID를 무너트렸습니다. 즉, '네가 무슨 설렁탕급 영양식? 차라리 사리곰탕면을 먹고 만다'고 '보양식'이라는 정체성을 흔들어 버린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값이 비싼 것도 맞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를 언론은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더 근본적으로 이 라면이 팔리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맛없는 라면'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 라면의 맛이 '저 돈 주고 못먹겠다'는 수준이기 때문에 팔리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롯데공업의 면류 제품 가운데 신라면 블랙이 가장 비싼 것은 아니었습니다. 생생야끼우동이 더 비싼 넘이었습니다. 다만 전통적인 '라면'의 분류 가운데 가장 비싼 넘이었던 것은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생생우동이나 생생야끼우동은 단종 이야기가 전혀 없습니다. 신라면 블랙만 치욕적인 단종을 맞습니다. 그저 절대적인 가격면에서 '비싸서 못먹겠다'면 이러한 생면류도 같은 원칙으로 단종이 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 생각과 달리 신라면 블랙만 철퇴를 맞은 것은 절대 가격 이외의 다른 선택 기준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맛'입니다.

생생우동은 집에서 싸구려(?) 우동집 수준 맛을 낸다는 점에서 절대 가격은 비싸도 비용 대비 만족도는 높은 편입니다. 그 때문에 이 넘의 단종 이야기는 없습니다. 가장 잘 팔리는 신라면 역시 무작정 싼 라면은 아닙니다. 롯데공업의 라면 가운데는 안성탕면이 가장 쌉니다. 신라면은 그 윗 등급입니다. 값이 싸다고 무작정 잘 팔렸다면 싸구려 OEM 라면을 '돈만 주면 다 만들어준다'는 식으로 하는 한국야쿠르트가 지금 라면 시장의 1위여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이 그런지요? 라면이 맛이 없기에 이들의 라면은 1위가 되지 못합니다.(왕뚜껑과 비빔면 제외. 저는 꼬꼬면도 오래 못가는 라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으로 야쿠르트는 면을 너무나 못만듭니다.)

신라면이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킨 것은 값이 싸기만해서도, 광고를 잘 해서도 아닙니다. 맛 그 자체의 만족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이 라면은 그냥 끓여 먹어도 괜찮고 다른 것을 섞어 끓여도 그 재료와 잘 어울립니다. 또한 면의 품질이 다른 라면 제조사보다 더 좋습니다. 분식집에서 신라면을 고집하는 것도 이러한 기본 밸런스, 그리고 다른 재료와의 궁합이 좋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비슷한 가격대의 다른 라면이 신라면을 위협조차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제 생각이기는 합니다만, 삼양라면은 육개장이 아닌 김치찌개맛 기반이기에 다른 맛을 섞기에 문제가 있는 너무 강한 개성을 가지며, 진라면은 면 품질도 좋지 않지만 스프가 너무나 빈약합니다. 열라면은 억지로 맵게 만든 느낌이 혀에서 바로 느껴집니다. 그나마 신라면과 가장 유사한 컨셉을 갖는 라면이 삼양의 맛있는라면이지만, 아직 그 장점이 그리 퍼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라면과 무파마, 사리곰탕면의 맛을 섞은듯한 신라면 블랙은 맛만 따지면 두 배의 돈을 주고 사먹을만한 매력이 전혀 없습니다. 심지어 2~3백원의 값 차이조차 인정할 수 없을 정도의 맛입니다. 값을 내려도 이 라면이 팔리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맛에서 매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맛이라는 근본적인 부분에서 아무런 매력이 없기에 '우골보양식'이네 어쩌네 하는 마케팅 요소가 붙지만, 그러한 화장발이 공정위 판정 한 번에 무너진 이상 신라면 블랙은 '맛도 없는 넘이 값도 비싼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맛의 매력도 없고 더 이상 프리미엄 라면이라는 가치도 살릴 수 없는 신라면 블랙은 더 험한 꼴을 보기 전에 시장에서 발을 빼며, 치욕스런 삶을 끝내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라면의 실패는 그저 한 제품의 실패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라면의 근본'을 잊어가는 롯데공업에 대한 경고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롯데공업의 슬로건은 '장수식품을 추구하는~'입니다. 신라면 블랙이라는 넘은 이러한 슬로건에 딱 맞는 상품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성분 분석에서 나타나듯이 롯데공업의 슬로건은 꽤 허망하고, 현실의 행동과 거리가 먼 것입니다. 롯데공업은 신라면 블랙 이전에 '재료의 고품질화'나 '영양 밸런스'를 추구한 제품을 거의 내놓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보수적인 제품 리뉴얼과 수입 식품 판매로 돈을 만지는 것에 열심이었습니다. 말만 장수식품일 뿐 하는 짓은 그냥 보통 식품 회사일 뿐이었습니다. 신라면 블랙 사건은 여전히 롯데공업의 제품 개발 컨셉이 말만 번지르할 뿐 장수식품 또는 영양식품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 뿐입니다.

안성탕면부터 신라면까지 지금의 베스트셀러를 다 만들던 시절의 롯데공업은 적어도 이렇지는 않았습니다. 라면, 그리고 식품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어떠한 기준으로 고르는지 생각하여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먹거리를 만들어냈습니다. 지금의 롯데공업은 '열혈 총학생회장이 뇌물을 대놓고 요구하는 개기름 뚱보 국회의원이 된 것'과 같을 정도로 심각한 보수성을 보여줍니다. 지금 롯데공업의 신제품 가운데 마음을 울리는 라면이 있나요? 80년대, 그리고 90년대 초반에 만들어 놓은 것을 울궈먹을 뿐입니다.

오히려 '라면의 근본'을 생각하는 면에서는 이제는 '영원한 2위'로 추락한 삼양식품이 훨씬 진보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메인스트림이어야 할 삼양라면 그 자체는 개인적으로는 가면 갈수록 퇴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신제품들은 라면의 근본인 '맛'에 대해 꽤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엔트리레벨인 쇠고기면이나 삼양라면 클래식은 싼 맛이 나기는 하나 '추하지 않은 맛'을 내줍니다. 또한 신라면의 진정한 맞수가 될 맛있는라면부터는 '재료'에 대해 꽤 신경을 씁니다. 물론 라면에 들어가는 재료이기에 자연식 수준의 고품질 재료는 아니지만 '맛의 밸런스'를 살리는 재료를 넣습니다. 신라면 블랙보다 더 '기능성 라면' 컨셉으로 나온 장수면은 '영양강화'라는 식품으로서의 근본에 충실합니다. 두 라면의 문제는 마케팅이 워낙 허술하다는 점과 메인스트림/플래그쉽이라는 제품 구분에 비해 맛 차이가 너무 적다는 점 뿐입니다.

라면이라는 식품은 취향에 따라서 고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돈을 주고 사먹을만한 가치를 갖는 맛'을 내는 것입니다. 과거에 롯데공업은 안성탕면, 신라면, 너구리, 짜파게티, 그리고 오징어짬뽕 등 성공작을 거치며 그것을 증명했습니다. 하지만 21세기의 롯데공업은 말 그대로 돈 벌이에 바쁜, 라면으로 돈을 벌면서 라면을 우습게 여기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신라면 블랙의 실패는 그저 광고의 실패나 가격 정책의 실패가 아닌 '라면과 라면의 소비자를 우습게 여긴 벌'입니다. 여전히 신라면의 아성을 무너트릴만한 맛의 유행 변화는 없고, 신라면의 장점을 뛰어 넘는 라면도 없습니다. 하지만 영원히 그러라는 법은 없습니다. 롯데공업이 계속 라면을 우습게 알고 광고만 잘 하면 황당한 라면도 팔 수 있다고 여긴다면 그들은 결국 다시 2위로 밀릴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 롯데공업이 1위를 할 때 빌린 '언론과 공권력의 힘' 없이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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