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없는 교사라는 느낌.
2012.02.15 23:22
안녕하세요, 토로록알밥입니다.
아시는 분들 아시겠지만,
저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지금 있는 고등학교에서 근무한지도 1년 반이 되었고,
새롭게 새 학년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늘 그런 것처럼,
몇 학년을 맡아서 가르칠 지는 개학하기 10일 전쯤에나 알게 되겠지만,
그래도 일단 하고 싶은 것들을 준비 중입니다.
그래도 고 3을 맡지 않는 이상,
교사가 개별적으로 교육과정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교재를 선정할 수도, 별도의 교재없이 다양한 지문을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나름 재미있는 강의를 하려고 애써왔는 데,
요즘들어 더욱더 '강의'일색의 수업에 지치고 있습니다.
작년에 고3을 해서 그런 거라 생각합니다.
전국 고3들이 수업시간에, 보충 수업시간에 EBS 문제집을 풀고 있지요.
일년 동안 부지런히 풀어도 모두 풀기 벅찬 정도의 양입니다. 헌데, 무려 수능에 그 문제집에 제시된 문항을 낸다고 하니 학생들은 하나라도 놓칠 수 없죠. 게다가 EBS는 친절하게 동영상 '강의'도 제공합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풀이식 강의는 학습자가 큰 '동기'를 갖고 있지 않은 경우에는 그 효과가 낮습니다.
교실에서도 학생들이 필요로하는 도움이 각기 다른 데, 교실에서조차 '진도'를 핑계로 강의만으로 이뤄진 수업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얼마전에 "선생님이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을 다시 보는 데, 딱 저의 모습 같은 문학선생님이 나오시더군요.
'재미있는 표정과 말투로 강의',
아이들이 힘들어 하면, '수업과 관계없는 재미있는 얘기로 분위기 띄우기'.
고3 수업을 하면서 저렇게 1년을 보냈습니다.
올해에도 고3 수업을 하게될 수도 있는 데, 그래서 내내 고심 중입니다.
"선생님이 달라졌어요"에 나온 그 선생님께 주어진 미션은
'수업과 관계없는 얘기 하지 말 것'
'올바른 표현으로 말할 것'(그 선생님은 아이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려고 욕을 쓰셨습니다.)
그 선생님의 수업은 결국 '학생이 주인인 수업'을 만들어서 가능했습니다.
저도 제 수업에서 그런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궁리 중입니다.
중학교 아이들을 가르칠 때에는 그룹을 나누고, 스스로 도와가며 지문을 읽고 저에게 질문하고, 제가 개별 그룹에게 도움을 주는 식으로 수업을 해서 너무 재미있었는 데.. 훨씬 많아진 '진도'때문에 (강의가 아닌)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는 걸 저부터 겁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흠. 괜시리 글이 길어졌습니다.
그리고,
고2를 할 때를 대비해서, 학생들이 꼭 알았으면 하는 웹툴/서비스에 대한 수업과정안도 구글닥스에 작성 중입니다. 요 며칠 학교 업무가 너무 바빠서 계속 손보고 있지는 못한데, 시간 나시면 한번 읽어보시고, 코멘트 부탁드립니다. 벌써 트위터를 통해서알게된 분들 몇 분이 코멘트를 주셨는 데, 저도 정말 얻는 게 많았습니다.
늘 그렇지만 올해의 목표도
대한민국 교사들 중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라는 걸 보여드리는 것인데..
어찌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 )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코멘트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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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thetoilet
02.15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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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로록알밥
02.16 10:32
아, 저도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요건,
-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한다는 '느낌'
- 수능에 대한 준비도 된다는 '느낌'
이 있도록 수업을 구성해야 겠지요.
완전히 혁명적인 토론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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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아시나요. 한국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지식을 습득할수 있다면 대학교 공부도 날로 먹을수 있다는걸 말이죠. 이거 무슨 이야기냐 하면 현재 한국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은 너무 많고 아이들에게 피곤함을 줄뿐입니다. 제가 기회가 있어서 고등학교 생물관련 교과서를 볼일이 있었습니다. 지식의 내용만 보면 대학교 1, 2학년에 배우는 생물학을 무미건조하게 그냥 집어넣은 듯한 느낌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근데 EBS에 나온 생물관련 문제역시 사실 기본지식 몇가지만 알면 전체 내용을 몰라도 충분히 답을 유추할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헌데 현 고등학교에서는 이런방식을 가르칠수도 없고 학생들 역시 이런식으로 문제에서 답을 유추하기 보다는 지식을 아예 외우는게 점수맞는데는 편하니 그냥 주입식으로 가는것 같습니다. 즉 문제의 내용자체는 어려울지 몰라도 답을 구하기는 쉬운데 시험이라는 시간적 여유와 점수획득을 위한 교육방식으로 많이 변질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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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로록알밥
02.16 10:33
제가 생물교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너무 많은 지식을 주입하려 한다는 데에는 동감입니다.
그리고 '주입'하려고 하는 데에 문제가 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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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욱
02.16 00:03
노고가 많으시네요.
늘 노력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으십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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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로록알밥
02.16 10:33
감사합니다.
노력하는 모습 + 좋은 결과를 이루려고 노력해야 겠지요.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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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선생님이 기억나게 하는 글이네요. (물론 KPUG 대표 국어선생님께서도!! ㅋㅋ)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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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로록알밥
02.16 10:34
그 선생님보다 제가 훨 못하지요. ㅠ.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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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의왕
02.16 00:42
학생들을 위한 선생님,,,
너무 보기 좋습니다,,,소신껏 밀어 붙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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룬이입니다
02.16 00:47
이시대의 진정한 선생님이시네요^^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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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로록알밥
02.16 10:34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진정한'이란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지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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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집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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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로록알밥
02.16 10:34
감사합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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閒良낭구선생
02.16 00:51
알밥샘.
글속에서 느낀건데 숨이 막히네요.
정답을 잘 찾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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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로록알밥
02.16 10:34
네! 일단 질문을 던졌으니,
답 비슷한 거라도 나오지 않을까 기대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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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와 생각해 보니
수업이 재미있었던, 아니 그냥 선생님이 재미있는 분이셨을 경우엔 그냥 선생님만 기억이 남았고
수업이 충실했던 선생님은 선생님하고 그 수업까지 같이 기억에 남는것 같습니다.
제일 기억나는 쌤은,, 못하는 학생이건 잘하는 학생이건 무조껀 지목해서 나와서 풀게하고
답이 맞으면 잘했다고 때리고
못풀면 못푼애 때리고
걔 주변에 있는 애들도 "얘 안알려주고 뭐했냐" 라고 하시며 때리시며 그룹과외식(?) 공부를 하게 한 수학쌤인데
기분 나쁜 매질이 아니고 다들 매를 수긍(?)을 하면서 맞아가며 배워서인지
다들 수리 가형 맨 마지막 미적분2 5문제중 3~4문제는 기본으로 맞게 되더라구요.
물론 매가 학습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고학생들이 모두 참여하는, 학생 위주의 수업을 추구하시려고 하신다니 저게 생각이 나서 적어봤어요..ㅎ;
아무튼!
이런 선생님이 계신다는것만으로도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는 밝은것 같습니다! -
토로록알밥
02.16 10:35
맞습니다.
서로 배우고, 스스로 배울 때, 정말 배움이 되고, 즐거운 배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학생의 입장으로 돌아가도,
강의만 하는 수업은 재미가 없지요.
내가 듣고 싶은 부분, 필요한 부분만 간신히 듣게 됩니다. 이건 교사 입장에서도 학생입장에서도 낭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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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신영
02.16 09:28
고민의 내용만으로도 훌륭한 선생님이십니다.
제 아이들이 이런 선생님을 만나야할텐데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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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로록알밥
02.16 10:37
고민만으로 그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이런 고민 많이 하십니다.
고민으로 끝난는 경우도 그만큼 많아서 아쉬운 것이죠.
저도 포함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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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몽이
02.16 10:02
솔직히 알밥님이 실력이 있으신지 없으신지 알 수는 없지만..
노력하는 교사라는건 느껴집니다.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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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로록알밥
02.16 10:36
네, 고민을 이렇게 올린 이유는..
더욱 열심히 고민해보려고 한 이유입니다.
실력이라는 건, 결국 좋은 수업이라는 건, 좋은 교사라는 건,
학생을 위한 고민 +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가르침
모두를 제공해야 하니까요.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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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
02.16 10:53
제 대학 친구들 중 영어교사가 많아요.근데 갈수록 교직에 대한 환멸을 느낀다하더군요.
어떤 친구는 차라리 명퇴를 고려하고 있기도 하더라구요.
막 임용되어 교단에 섰을때의 그 패기와 푸르름이 사라져 가는 자신들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녀석들의 가슴에는
시퍼런 멍자국이 너무 깊게 패여 있더군요..... 힘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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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로록알밥
02.16 22:07
제 미래..는 어떨까도 참 고민이 되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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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교사분을 뵙게 되어 좋습니다.
저도 좋은 선생님들 몇분이 기억나네요.
중학교 기술 선생님, 국사 선생님, 초보 국어 선생님(힘들어 하셨지만 친했었는데... 이름도 기억나네요.)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정말 대단한 분), 영어 선생님...
학생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 선생님이 되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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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로록알밥
02.16 22:08
기억되는 선생님이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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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02.16 12:18
실력있는 샘 맞네요. 생각해보면 좋은 선생님도 참 많으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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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로록알밥
02.16 22:08
실력은 >.<
좋은 선생님들의 좋은 면만 다 닮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런 고민을 하시는 선생님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막 듭니다.
그런데 고3수업을 그렇게 하면 부모들이 가만 있지를 않지 않습니까?
체육시간도 없애자는 엄마들인데 봉변당하실까 무섭네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