쌩뚱 맞은데서 찾는 한글의 우수성.
2012.05.29 06:10
한글키보드 배열은 처음에 어떻게 생겨난걸까요?
무슨 근거로 누가 처음 만들었지!!!?
얼핏보면 참 랜덤 스럽게 키가 배치된것 같은데
타자를 입력하다보면 오른손 왼손을 경쾌하게 번갈아 치고 있게 되지요.
뭐.. 누가 만들었던간에 맘에 들고 있으니 딱히 불만은 없습니다. ㅎㅎ
그만큼 익숙해진것이겠지만. 우리나라 한글의 특성으로 모음 자음이 번갈아가며 배치되는 글자들이 많아서
키보드 치기에 더욱 느낌이 살고 (우와아아아아아악! 하면서 왼손 오른손 번갈아 휘두르며 신나게 칠수 있지요 ㅋㅋㅋ)
반면 영뭔 쿼티배열은 그런 느낌이 좀 부족하지요
영문은 문자의 배결로 단어를 배열할때 모음 자음을 번갈아 배열한 글자도 아니고.(영어 잘 못하는 제기준의 느낌입니다.
사실이 그렇잖아요 -__- 번갈아 배열된 글자도 있지만. 아닌것들도 많다는 이야기.)
음... 그러니까 제가 이야기하는 한글의 우수성은
키보드 치는 맛이 좋다! 입니다 .ㅋㅋㅋㅋ
영문도 빨리치는 사람은 엄청나 속도로 입력하겠지만.
아마 한글치는 맛보단 덜할꺼에요.
아래는 한글키보드에 대해서 검색하다 찾은 자료입니다.
음.. 시프트 키의 사용율에 대해서만 보면 2벌식 한글자판이 꼭 우수한것만은 아니군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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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글의 경우 초성, 중성, 종성이 조합하는 과정에 의하여 한글 코드가 발생하게 됨으로 이 과정이 영문에 비해 복잡한 것이 현실이다.
(1) 한글 자판과 오토마타와의 관계
한글 입력을 위해서는 한글 오토마타가 관여해야 한다. 2벌식 한글 오토마타일 경우 3벌식 오토마타에 비해서 약간 복잡한 편이다. 그것은 초성과 종성의 구별이 없기 때문에 2벌식 에서는 이를 판단해줄 루틴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한글 코드에 있어서도 조합형 코드는 한글을 입력하는 순간 조합형 코드가 발생하게 되지만, 완성형 한글 코드는 만들어진 조합 코드를 완성형으로 만들기 위해 변환테이블을 항상 메모리에 올려놓고 있어야 한다.
(2) 한글 자판 2벌식
현행 표준으로 되어 있는 자판으로서 기존의 네벌식 자판에서 개선된 자판이다. 한글 입력시 자음과 모음만으로 구별해서 입력하게 된다. 한글이 원래 초성, 중성, 종성의 원리로 되어 있다는 것을 감안할때 일명 "도깨비 불" 이라 불리우는 현상이 일어난다.
"가기" 라는 글자를 입력할 경우
?-> 가 -> 각 -> 가기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2벌식 자판은 한글을 입력할때 처음 자음은 초성으로 생각하고 두번째 입력되는 모음은 중성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다음에 입력되는 자음은 그것이 종성인지 아니면 다음 글자의 초성인지를 알지 못한다. 따라서 다음에 연이어 입력되는 자소가 자음이면 종성이 되고, 모음일 경우는 초성이 되는 현상이다.
한글 폰트(글꼴)을 살펴보면 초성의 "ㄱ"과 종성의 "ㄱ"이 틀리다. 하지만 2벌식에서는 초성과 종성을 구별하지 않으므로 이를 구별하여 입력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ㄱ", "ㄱ" 만이 입력될 뿐이다.
그외에도 쉬프트를 상당히 많이 누르게 되어 있는데 이로 인한 타자 속도의 감소가 두두러진다. 또한 ㄲ, ㄸ, ㅆ, ㅉ, ㅃ 키가 있는데, 현재는 연타 기법으로 자소 하나를 연이어 두번 누름으로서 쌍자음을 입력할 수 있으므로 필요없는 키가 있는 셈이다.
(3) 한글 자판 3벌식
3벌식 자판은 한글 문화원의 공병우 박사님이 연구하여 개발한 자판으로 한글 입력을 초성, 중성, 종성의 3벌로 나누어 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기존의 2벌식 자판에 비해 사용하는 키가 좀 많아서 키보드 상단의 숫자 키까지 한글 자소가 배열되어 있다.
하지만 초성, 중성, 종성을 구별하면서 한글을 입력하게 됨으로 2벌식의 맹점중 하나인 도깨비불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상단의 숫자키를 거의 이용하지 않는 대신 오른쪽 하단에 숫자키를 배열함으로서 마치 키보드에 달려 있는 키패드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자음의 경우 초성과 종성의 구별 입력 "ㄱ", "ㄱ" 이 쉽게 가능하다.
따라서 3벌식 자판에는 초성에 들어갈 자음과 종성(받침)에 들어갈 자음이 각각 따로 배열되어 있다. 또한 사용 순이 높은 자소를 손가락에 맞게 배열하였으며 쉬프트 키를 동시에 누르는 횟수가 적게 설계되어 빠른 타이핑을 할수 있도록 되어 있다.
(4) 한글 자판의 쉬프트율
한글 자판을 이용하여 한글을 입력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오타율과 속도이다. 쉬프트는 바로 이것과 관계가 깊다. 그래서 좋은 자판일 수록 쉬프트를 누르는 횟수가 적으며 시험적인 벤치마크에 의해서 나타난 통계 자료는 다음과 같다.
200 단어 기준 쉬프트 비율
세벌식 (공병우) 자판
1%
2벌식 표준 자판
18%
영문 QWERT 자판
3%
코멘트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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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영문 qwerty키보드는 최대한 빨리 못치도록 설계된 자판이라고 합니다. 예전 타자기시절 빨리치면 글자를 찍어주는 햄머가 꼬여버리게 되기 때문이죠. 주변에 타자기가 있으신 분들은 두개이상의 글쇠를 동시에 눌러보시면 앱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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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thetoilet
05.30 02:04
정확한 정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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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우 박사님은 정말 대단한 애국자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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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식대로 살아왔다'라는 공병우 선생님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두벌식이 왜 표준으로 제정되었는지와 세벌식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답니다. 그때 정부 관료 이야기가 "세벌식을 인정하면 부가 어느 한 사람에게 집중된다"는 논리로 세벌식 표준화를 반대했다고 하죠. 후후.
한글 자판 문제는 오래전부터 논란이 되어왔는데, 일단 한번 표준으로 정해지면 그것을 바꾸기는 어렵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죠.
영문처럼 드보락과 쿼티를 동시에 표준으로 삼는 것도 아니고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바람에 이 지경이 됐죠.
저도 20년 넘게 세벌식390자판을 쓰고 있습니다.
두벌식은 보고 쳐야한다는.... ㄷ ㄷ ㄷ
집에서 세벌식을 쓰려면, '세벌식 파워업'이라는 도구를 써서 두/세벌식 자판을 바꿔줘야 식구들의 원성을 안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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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수동타자기 치던때가 생각나네요. 2벌식은 빨리치다보면 꼬이던 기억이 납니다. 글자체도....
3벌식이 첨에 배우기는 조금 어려웠었어도 치다보면 더 빨랐던 기억이 납니다. (2벌식과 3벌식을 다 경험해본지라....)
물론 글자체도 3벌식이 수려했었죠.
한줄 다치면 땡~ 하는소리가 나고, 그러면 휙~ 밀어주고... 조금있다 또 땡~ 하고... ㅎㅎ 얼마안된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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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동아빠
05.29 13:41
전화기에서 문자를 보내는 세상이 되면서 "도깨비불" 논란은 생각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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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과목을 좋아하던 중학교 시절, 한글과 관련한 토론을 선생님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한글의 단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국어 선생님께서는 필기 시 영어처럼 연이어 쓸 수 없다는 것을 단점으로 꼽았었습니다.
당시도 컴퓨터가 보급은 되고 있었지만,
디지털에 최적화 될 수 있는 한글의 가능성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암튼 우리 말과 글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일단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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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들이
05.29 14:28
글고보니 해례본 사건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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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현재 한국에 딱 두 권이 남아 있다. 간송본과 상주본이 그것.
간송본
초간본, 즉 원본은 현재 간송미술관에서 보관 중인 훈민정음-해례본이 1940년대에 발견된 뒤로 유일하게 알려져 있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이라는 이름보단 훈민정음 원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실은 이 간본 역시 세종대왕 생전에 나온 것으로 보긴 좀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 그래도 현재 남아 있는 판본 중에서 간행시기가 가장 이른 판본이고 내용상 원본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국어학계에서는 이를 원본이라 하지 않고 "훈민정음 해례본"이라고 정확하게 부른다. 간송미술관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공개하는 날은 적기 때문에, 직접 보기 굉장히 힘들다고 한다. 상주에서 두번째 해례본이 발견된 이후에는 구별을 위해 간송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간송본은 일제강점기의 국문학자 김태준의 제자였던 이용준에 의해 이 훈민정음 해례본의 존재가 처음 알려졌다. 이용준의 처가인 광산 김씨 종택인 긍구당에 이 해례본이 보관되어 있었다. 이것은 가문의 선조가 여진 토벌의 공로로 세종이 직접 하사한 것이었고, 이용준은 이걸 발견하고 김태준에게 이야기한 것. 당연히 김태준은 깜짝 놀라 이용준과 함께 본가가 있는 안동으로 내려가 해례본을 직접 확인했다. 이용준은 잘 보관할 만한 사람에게 넘기고 싶다고 말했고, 김태준은 당시 문화재 수집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던 간송 전형필을 떠 올렸다. 김태준은 전형필을 만나 해례본 이야기를 했고, 전형필은 그 자리에서 은행으로 달려가 1만 1천원을 찾아와 1천원은 김태준과 이용준에게 사례금으로 주고 1만원은 해례본 값으로 치뤘다. 그때 당시의 물가로 따지면 기와집 열 채값에 해당되는 금액이었고, 현대의 물가로 환산하면 무려 30억원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당시 전형필 선생이 해례본의 가치를 얼마나 높게 봤는지 알 수 있는 일화.
전형필 선생은 이것을 사들이고 나서 광복이 될 때까지 이 해례본의 존재를 철저히 숨겼다고 한다. 한국 문화를 철저히 말살하던 일제강점기 말기에 한글 창제원리를 자세히 설명한 이 책이 들켰다면...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도 피난갈 때 이 책을 먼저 챙길 정도로 보존을 철저히 했다.
1956년 이 소장본을 바탕으로 사진을 촬영하여 만든 영인본이 제작되었다. 전형필 선생은 영인본 제작을 위해 이 소장본을 흔쾌하게 내놓았다고 한다.
상주본2008년 7월, 경북 상주에서 간송미술관의 간본과 동일한 판본이 발견되었다.(이하 상주본) 훈민정음 간송본과 동일한 판본으로 서문 4장과 뒷부분 1장이 없어졌지만 보존 상태는 간송본보다 좋고 간송본에는 없는 표기, 소리 등에 대한 당시 연구자의 주석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 굳이 가격으로 따진다면 1조원 이상의 가치가 될 걸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상주본은 간송본처럼 훈훈한 미담은 없었고, 인간의 추악한 욕심만 드러낸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원래 이 판본은 상주의 골동품상 조 모씨가 가지고 있던 것인데, 상주의 골동품 수집가 배 모씨의 수중에 들어간 것. 배 모씨는 구입했다고 주장하지만 조 모씨는 훔쳤다고 주장한 것. 배 모씨는 상주본을 낱장으로 뜯어서 몰래 숨기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배째는 상태. 결국 배 모씨는 문화재보호법 위반(낱장으로 뜯었으니 일단 문화재 훼손에 해당된다)으로 구속 기소되었다.
그런데 검찰 수사 결과 화끈한 반전이 나왔다. 원래 이 상주본은 안동의 광흥사 나한상 안에 있던 불복장(불교에서 불상이나 나한상 안에 넣어놓는 물건을 뜻하는 것) 유물인데, 1999년경 문화재 전문 절도범 서 모씨가 털어가서 조 모씨에게 팔아치운 것이다. 결국 장물이 돌고 돌아 배 모씨에게까지 간 것이다. 장물매매한 놈은 세상에 잘못이 밝혀졌는데도 멀쩡히 하늘아래 걸어다니고 있고 배째고 있는 놈은 10년만 감방에 들어갔다나오면 수십 억이 굴러들어오다니...
검찰은 배 모씨에게 15년을 구형하였고, 2012년 2월 9일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서는 징역 10년을 선고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상주본의 행방은 밝혀지지 않고, 배 모씨는 항소하여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2012년 5월 7일, 상주본의 소유권자인 조용훈 씨가 소유권을 문화재청에 기부했다. 하지만 배 모씨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어 실물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다. 일각에선 배 씨가 자신만이 아는 장소에 낱장으로 보관하고 있거나 이미 외국으로 반출했다는 등의 소문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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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이 사건과 관련된 내용을 방영했었죠.
당사자들 이야기를 주욱 들어보니 대강 그림이 나오던데...
문화재 도굴꾼 서씨가 조씨의 사주로, 또는 일단 훔친 다음 조씨에게 팔았고...
이걸 배씨라는 양반이 몰래 슬쩍 해갔다? 사실 이 부분은 좀 갸우뚱하게 됩니다.
도굴꾼에게 구입해서 소장할 정도면 어느 정도 가치는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그렇게 허술하게 두었다는 게 이해되지 않더군요.
어쨌든 배씨라는 양반은 이 걸 자신의 것이라고 대내외적으로 인정받을 필요가 있어서 공개한다.
공개 당시 배씨는 아버지인지 할아버지인지가 물려주었다고 이야길 합니다만...
죽은 양반이 주었다고 말하면 사실 더 이상 파헤치지 힘들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보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더군요.
게다가 조씨의 경우, 문화재청에 기부를 했지만 아직 소유권 분쟁이 끝난 것은 아니죠.
조씨가 문화재청에 갖고 있지도 않은 걸 기부한 것은 이를 통해 자신 소유임을 주장하기 위한 근거, 그리고 기부를 하면 가치를 추정해서 대략 1/10 에 해당하는 금액을 사례비로 지불한다고 하니 최소한 몇 십억은 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겠죠.
그런데 만일 도굴꾼 서씨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조씨, 배씨, 서씨 모두 영창 갈 일이고, 일단 소유권은 광흥사로 돌려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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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05.30 00:34
원 소유주가 있고, 모두들 도둑놈들이니 원 소유주에게 돌려주는 것이 맞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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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먹어서인지.. 이제 3벌식은 다 까먹었네용..
모처럼 자판 관련 글을 보니 급 친근감 드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