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블로그에 올렸던 글인데, 조금 정리해서 다시 써봅니다.

오늘 뉴스를 보시면 일본에서 종전 경자동차(660cc)보다 더 적은 125cc 규격 자동차를 정식 규격화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나오는 모양입니다. 대충 나오는 명분은 시골에 영감님들이 교통난을 겪는데, 정부 예산으로 버스를 놓아주자니 워낙 일본 땅덩이가 넓은데다 돈도 없어서(일본 국가 부채는 상상을 초월한지 오래입니다.) 그건 못하겠고 오토바이보다 조금 나은 넘을 하나 규격화 해줄테니 그걸 알아서 사서 알아서 장보러 다녀라... 이런 취지입니다. 그리고 덤으로 이런걸 만들면 차에 관심이 없어지는 일본 젊은이들의 눈이 휙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는 모양입니다.

사실 도시에서는 저런 가치가 의문스럽지만, 진짜 시골이라면 잘 만들면 나름대로 쓸만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인구는 많다고 하지만 땅덩이 역시 넓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도시 인구 밀도는 높고 시골은 텅텅 비는 것 역시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오히려 땅덩이가 넓은 것이 시골의 교통 환경을 유지하는 데 더 불리하게 돌아갑니다. 버스만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철도의 비중이 더 넓고, 동네마다 우리나라식으로 버스를 놓자니 돈이 너무 많이 드니 그냥 주민들에게 떠넘기는 식으로 나가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배를 쨌으니 어쩌겠습니까? 그나마 영감님들 마실 나갈 때는 이런 차라도 없는 것 보다 훨씬 나을겁니다.

굳이 문제가 있다면 차량의 안정성이나 가격, 그리고 유지비용입니다. 가격이 K-Car(일본 경자동차)에 비해 훨씬 저렴하지 않다면 넉넉하다고 말할 수 없는 시골 노년층의 통장 사정에 쉽게 차를 구매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건 정부의 세금이나 구매액 보조같은 정책이 함께 따라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또한 엔진의 퍼포먼스가 그냥 오토바이 수준에 불과한 이상 무게가 너무 나가면 속도도 안나고 연비도 엉망이 되어 외면받을 위험도 있습니다. 저속 주행을 전제로 하겠지만, 너무 가볍게만 만들어도 충격 흡수가 제대로 안되어 작은 사고로도 노인의 큰 부상을 만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기에 이들 밸런스를 어떻게 잡느냐가 문제가 될듯 합니다.

하지만 일본 젊은이들이 이런 넘을 만들면 차에 관심이 갈거라 생각하는 그 넘의 일본 관료들의 생각은 무식함의 극치라고 보고 있습니다. 도요타 86(GT86)이 나왔을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일본이나 우리나라 언론 모두 일본에서 무슨 차만 나오면 '젊은이들이 차에 관심이 없어 문제다'라고 툴툴대는데, 젊은이들이 차에 관심이 그리 없게 된 것이 젊은이들 탓이겠습니까?  다 일본의 어른들과 영감님들의 탓입니다.

젊은이들이 차에 관심을 가지려면 최소한 자신이 차를 지른 뒤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여유가 있어도 차를 가져서 얻는 편익이 '전철왕국'인 일본의 인프라 환경의 장점을 크게 뛰어 넘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현실은 어떻습니까? 젊은이들의 정규직 일자리는 별로 없고 파견직은 댕겅댕겅 목이 잘려 나가며 프리터는 붕괴하여 일본식 88만원 세대로 전락했습니다. 돈이 수중에 있어야 차를 사는데 일단 가진 돈도 없습니다. 일본 젊은이들이 다 무슨 RX-7 끌고다니는 종합병원장 아들래미 형제랍니까? GT86같은걸 덥석덥석 사게 말입니다. 일본의 배에 지방 가득한 영감님들은 무슨 거품 가득한 1980년대의 일본을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차값도 문제지만 일본의 차량 유지 인프라 역시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많은 비용을 요구합니다. 분명한 주차장 확보가 안되어 있으면 차를 살 수도 없고, 우리나라보다 자동차 관련 세금도 높은 편입니다. 이것뿐만이 아니라 고급휘발유끼리 값을 비교해도 일본이 조금 더 비싸며, 일본의 일반 휘발유의 품질이 영 거시기해 오히려 우리나라의 좋은 일반 휘발유가 일본의 고급휘발유 퀄리티에 그리 뒤지지 않는다는 점까지 따지고 들면 허무해질 정도입니다. 괜히 일본차들이 조금만 비싼거면 고급휘발유 넣으라고 하는건 아닙니다. 드라마,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을 가리지 않고 고속도로를 타겠다는 장면만 나오면 통행료를 걱정하는 장면이 빠지지 않을 정도로 악명이 높은 무자비한 고속도로 통행료 역시 여행이나 데이트 목적으로 차를 사는 경우가 많은 젊은이들의 뒤통수를 여지없이 후려칩니다.

기껏해야 시내에서 출퇴근용으로나 가치가 있을까 말까한 125cc 자동차는 젊은이들의 자동차 활용 습관과 잘 맞지도 않을 뿐더러, 일본의 세제나 자동차 관련 정책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 구매와 유지에 드는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는 한 젊은이들이 새로운 규격의 자동차에 열광할 가능성은 한없이 줄어듭니다. 사실 그 전에 '잃어버린 20년'이나 어떻게 해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돈이 있어야 차를 살거 아닙니까? 누가 압니까? 일본의 전철망을 1/3쯤 줄여버리면 사는 사람이 나올지도요.

이러한 차가 나오는건 신기한 일이기는 하나 우리나라에서는 아무짝에 쓸모도 없는 일이라 더 헛짓(?)처럼 느껴집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도서산간 등 시골의 단거리 교통용으로 ATV(다륜원동기장치자전거. 쉽게 말해 4륜 오토바이)가 퍼지고 있는 단계입니다. ATV는 종전 오토바이보다 조작이 편하고 어느 정도 짐도 실을 수 있어 농어촌용으로 가치가 충분합니다. 정부도 ATV가 농어촌에 꽤 편한 물건이라는걸 이해하여 ATV 한정 원동기장치자전거 면허(J 한정 면허)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반경 10km 이내면 ATV로 이동해도 큰 지장이 없고, 그 이상은 군내버스를 이용하면 되기에 적어도 군내버스 환경이 일본보다는 나은 우리나라에서는 따로 이러한 초소형 자동차를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ATV에 지붕만 씌워도 됩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어필하는건 더 쓸모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는 '폼'이 우선이기에 경차조차 천대하는 문화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더군다나 준중형급까지는 구매비용이나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이 '차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면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지금 차를 사지 않은 젊은이는 당장 차를 사고 유지할만한 경제적인 능력이 부족하거나, 차를 살만한 동기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고속도로도 올라가지 못할 자동차 껍질을 씌운 오토바이를 만든다고 열광해서 살까요? 경차도 생각만큼 안팔리는 나라에서 말입니다.

정치와 행정이 나라를 말아먹는 곳에서 또 한 번 탁상행정이 바보짓을 하는 걸로 보여서 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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