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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저는 이 영화에 대해 시중에서 나오는 평가보다 꽤 후한 점수를 준다는 것 부터 적고 봅니다. 그 이유는 영화를 끝까지 보고나서야 이 영화의 장점, 그리고 정말 근본적인 문제점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작 사람들이 말하는 단점이라는 것이 오히려 근본적인 단점이 아닌 겉핧기 식의 불만 표현에 불과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적어도 그러한 말초적인 불만에까지 욕을 먹어야 할 영화는 결코 아닙니다. 아마 이 감상후기는 "앨리스에 대한 변명"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1. "팀 버튼"의 영화는 무조건 괴기해야 하고 어려워야 하나요? 이걸 기대하는 분이라면 당연히 실망할겁니다. 하지만 팀 버튼은 '자기 스타일'은 있는 감독일지언정 무슨 예술 영화를 찍는 감독이 아니라는 점 부터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배트맨'이 괴기하고 어려워서 성공한건가요? 뻔한 미국식 코믹스를 자신의 생각에 맞게 재구성한 것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이 점 때문에 정통 코믹스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비난을 샀지만, 성공한 '재구성'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이견의 여지는 없습니다.

 

앨리스는 과거 배트맨처럼 너무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습니다. 적어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하나의 원작 범주를 갖고 팀 버튼 감독이 지나치게 무겁게 해석하기는 어렵습니다. 진짜 성인 취향으로 어렵고 괴기하게 재구성한 앨리스는 이미 아메리칸 맥기가 그 표본을 제시한 이상 이렇게 나가는 것은 오히려 관객에 대한 모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린이 취향인 원작과 극단적인 성인 취향의 아메리칸 맥기 버전의 사이에서 할 수 있는 재해석은 이러한 회색주의적인 길 밖에는 없었을 것으로 봅니다.

 

2. 3D에 대한 불만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만 적겠습니다.

 

"아바타보다 조금이라도 3D 기술이 뒤쳐지면 다 한강, 허드슨강, 템즈강, 세느강 다리에서 뛰어내려야 하나요?"

 

리뷰들을 보면 진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3D에 대한 불만에 한결같은 비교는 전부 아바타를 대상으로 합니다. 장르도 다르고 관객층도 다른 영화를 3D 하나만 들이대 비난하는 것은 영화가 아닌 기술 추종일 뿐입니다. 분명히 아바타는 장기적으로 전체 영화의 3D  기술력을 한 차원 높여주는 촉매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영화에 이 기준을 들이대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기술력이 있었다고 해도 앨리스에는 아바타 수준의 극사실 수준의 3D 기술은 그리 맞지 않았을거라 생각합니다. 이제 갓 근대로 접어드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며 그 당시에 쓰인 원작을 바탕으로 하는 과거의 판타지와 스페이스 오페라 수준의 미래 판타지는 그 지향점은 분명히 달라야 할 것입니다. 그 정도의 기술이 해당 영상에 잘 녹아들었는가, 그렇지 않았는가가 중요할 뿐 3D의 정밀도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습니다.

 

3. 내용의 평이함에 대해서도 변명거리는 있습니다. 앞에서 적었듯이 원작과 아메리칸 맥기 버전이라는 극단적인 두 지점이 이미 존재하는 한  그 두 가지의 중간적인 성격 이외의 길은 쉽게 나올 수 없습니다. 이미 원작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며, 아메리칸 맥기 버전도 널리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략적으로 '피칠갑 앨리스'정도는 알려져 있습니다. 상업적으로 '이런 극단적인 두 가지 버전을 모두 또는 적어도 한 가지는 알고 있는 사람이 99% 이상'인 관객들을 모두 납득시킬 수 있는 내용은 그 중간 선 뿐입니다. 아니면 완전히 뒤통수를 쳐야 하는데, 이건 말 그대로 성공 가능성이 극히 낮은 도박입니다. 

 

다만 영화의 분위기는 분명히 아메리칸 맥기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단순한 모험 차원을 넘어 '원더랜드 탈환'이라는 의무를 지게 된 것, 그리고 절정부의 전투 장면은 아메리칸 맥기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밖에 없는 명백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진취적인 앨리스'라는 모델은 굳이 아메리칸 맥기의 영향이 아니었더라도 이를 수 밖에 없는 길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단순히 '원작을 스토리를 순수하게 재해석'한 리메이크작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시점에서 관객들은 이 영화에서 벌어질만한 일을 충분히 예상해옵니다. 물론 이것이 100% 맞지는 않지만, 큰 줄기는 어느 정도 예상한 범위 안에 들어옵니다. '후일담의 재해석'이라는 씨앗 하나만으로도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진취적인 앨리스의 자기 재발견 이야기'라는 스토리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범위가 됩니다. 관객이 이미 충분히 그 내용을 예상해올 수 있는 수준으로 원작이 되어 있는데다, 해석의 한계선도 명확히 그어져 있는 것이 팀 버튼이 해석한 앨리스의 타고난 약점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4. 그런데 다 보고나서 어딘가에서 이런 내용을 본 것같은 찝찝한 느낌이 남는다면... 사실 그것은 아메리칸 맥기의 영향은 아닙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고 봅니다. 이미 유명한 고전 판타지를 후일담 형식으로 재해석한 것은 영화에서도 앨리스가 처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미 성공한 롤 모델이 존재합니다. 바로 "후크"입니다.

 

과거의 판타지 주인공이 시간이 지나 다시 원더랜드로 돌아와 악을 무찌르고 다시 원래 세상으로 돌아간다... 는 점에서 후크와 앨리스는 완전히 동일합니다. 물론 '가족 페티시즘'이 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스티븐 스필버그는 피터팬이 되찾는 것을 '가족'으로 설정했다면, 팀 버튼은 앨리스가 '자아'를 찾도록 만들었을 뿐입니다. 동료들이 '구심점이 없어' 무력하기만 했던 후크에서 더 나아가 앨리스는 '무력하기도 할 뿐더러, 원작 이후에 벌어진 참상에 정신까지 나가버린' 것으로 업그레이드를 시킨 점은 다르지만 뿌리면 따지면 결국 앨리스는 후크의 그림자를 벗어던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나서 더 그러한 그림자는 짙어집니다.

 

5. 조니 뎁이 연기한 모자장수 역이 원작에 비해 너무 비중이 커졌다고 불만이 많은 분도 있겠지만, 저는 이것을 일부러 의도한 것이라고 봅니다. 수동적인 자아를 가진 앨리스를 능동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그 두 가지 모두 될 수 없는 '자아가 붕괴한' 모자장수로 대변할 수 있는 거울 뿐입니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심리의 갈등으로 결국 자아를 잃어버린 모자장수는 소극적인 자아를 강조하는 인습과 그러한 인습을 거부하고자 하는 능동적인 자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롤 모델이 되었습니다. 아메리칸 맥기 버전의 앨리스는 그 스스로의 자아를 한 번 붕괴시켰지만 팀 버튼의 모델에서 붕괴된 자아를 떠맡은 것은 모자장수입니다. 비중이 높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캐릭터가 과거처럼 확 눈에 띄지 않는다고 불만을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반대로 저는 어떤 역할을 맡겨도 완벽하게 소화하는 조니 뎁이 이번에도 합격점의 연기를 펼쳤다고 봅니다. 이미 자아가 한 번 붕괴된 모자장수라는 캐릭터는 그 스스로 확실한 개성을 담을 수 없습니다. 망가져 캐릭터성을 희생해야만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붕괴된 자아의 모습이 더 극단적으로 보여졌으면 하는 아쉬움은 저도 있지만 이 정도로도 나쁜건 아닙니다.

 

정리:

 

이 영화는 어느 정도 평이할 수 밖에 없는 뿌리에서 출발합니다. 전반적인 흐름이 평이하고 내용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 관객들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보면 이 영화는 나쁘지 않습니다. 뭔가 깨는 것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오히려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합니다. 이 영화는 뭔가 반전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사실상 완벽에 가깝게 이야기를 풀어 나갑니다. 러닝 타임의 배분 역시 딱히 부족한 것이 없을 정도로 잘 짜여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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