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안철수에 대한 실망감

2012.10.28 12:06

언이아빠 조회:825 추천:1

안녕하세요. 정치 글이어서 신경쓰입니다만, 케이퍽의 자정력을 믿고 글 써봅니다.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만, 혹시 선을 넘는다고 생각되면 기탄없이 지적해 주세요.)


저는 한국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조금 진보 쪽에 기운 사람입니다. 또 이 글을 쓴 후에도, 혹시 안철수 씨로 단일화가 된다면, 박근혜보다는 그쪽에 표를 던질 것입니다. 다만 최근 이 분이 발표한 정치쇄신안을 보고 평가가 급전직하했네요.


아시다시피 국회의원 정수 축소와 중앙당 폐지가 그 쇄신안의 핵심인데요. 발표 후 언론과 정치학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죠. 그 핵심은 현재 정치판이 썩었다고 해서 정치를 축소하거나 줄이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거였죠.


그런데 저는 다른 우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안철수 씨가 대통령의 역할과 권한에 대해서, 특히 삼권분립에 대해 아무 개념이 없는 거 아니냐는 겁니다. 그 쇄신안의 목표만 보면, 이뤄진다면 바람직한 측면도 있을 겁니다. 국회의원 정수가 축소되면 일단 세비는 좀 굳겠죠. 시골 살 때 지방토호정치의 실상을 보았기에, 중앙당폐지에는 회의적이지만요. 하지만 논의의 편의를 위해, 그게 이뤄지면 무조건 좋은 거라고 *가정*해 봅시다.


이 가정 하에, 안철수 씨가 대통령이 되면, 이 쇄신안을 이루기 위해서 무엇을 하게 될까요? 대한민국 헌법에 의하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한 명의 투표권자로서, 그 쇄신안을 지지하는 국회의원 후보에게 조용히 투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나라 국민에게는 누구나 보장된 참정권입니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는 아무래도 어렵죠. 즉 그 목표를 이루려면, 자연인으로서의 안철수가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특수성을 이용해야겠죠. 


그렇다면 그 자리가 어떻게 그걸 가능하게 해주나요? 일단 뽑힌다면 정당을 새로이 창립해서 의회에 일정한 세력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건 굳이 대통령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대통령이 급조한 정당은 바로 허수아비 정당이라는 것이고, 그런 정당을 통해서 의회를 장악하는 것은 박통, 전통 등 군사정권 때나 있었던 일이라는 거죠. 이것은 우리 정치를 반세기 이상 후퇴시키는 짓거리가 될 것입니다. 설마 이러리라고 생각은 안 합니다만...


따라서 그 쇄신안을 이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결국 민주통합당에 입당하거나 연정을 하는 것이죠. 이건 사법부 내의 세력과 함께하는 것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는 아닐 겁니다. 그런데 이럴 거라면, 왜 마치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기존의 썩은 정치판을 바깥에서 확 들어엎고, 완전히 물갈이를 할 수 있는 척 하나요? 결국은 문재인 씨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식이 될 거면서... 그런 식으로 대통령이 된다면, 국민을 기만해서 되는 것 아닌가요?


아마 본인이나 참모들은 일단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정치쇄신안을 내세운 후, 그 구현방안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차차 논의하면 된다는 거겠죠. 그런데 첫째, 이거 참 아마추어리시합니다. 대한민국 지배계층이 어떤 인간들인데, 구체적인 복안도 미리 갖추지 않은 이런 쇄신안에 "응 그러자"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둘째, 보다 중요한 문제로서, 그렇게 사법부를 개혁하는 게 목표라면, 그걸 이루기 위한 수단이 왜 대통령이 되는 건가요? 물론 행정부의 수장이 되면 권력이 생기겠습니다만, 역으로 그 자리에서 사법부에 개입하는 것은, 법적인 문제는 피해갈 수 있을지 몰라도, 삼권분립의 헌법적 가치를 크게 손상시키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정당을 만들어 의회에 먼저 뛰어들거나, 시민단체를 만들어서 외부에서 작업하거나, 이런 게 시간은 들겠지만 정석입니다.


이 시점에서, 제가 안철수 씨에 대해 제일 우려하는 것은 이런 겁니다. 우리 어렸을 적에 "나중에 뭐 될래?" 물으면 "응 대통령"하는 식으로 답하도록 교육받으면서 컸죠? 그러다 보니 대통령은 제일 높은 사람, 이런 식으로 부지불식 간에 생각하게 되었고, 박통, 전통은 그 힘을 나쁜데 써서 독재자가 되었지만 그 힘을 올바르게 쓰면 대한민국을 한 순간에 (좋은 쪽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거 아니냐는 거죠. 물론 이게 혹시 맞다면 대통령제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은 일차적으로 행정부의 수장이며, 입법부, 사법부에 개입하는 것은 한계도 있고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는 극히 상식적인 생각을 결여하고 있다는 게 됩니다.


이 우려가 틀렸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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