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는 있었지만, 자격이 없어서 할 수 없었던 농담...
2012.10.30 11:21
오전에 직원들과 커피 한잔 하면서 시덥잖은 이야기들을 주고 받다가, 본인의 학벌과 관련된 고민을 하는 직원에게 무심코 던진 농담에서 스스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사실 상급학위를 한다는 것에 어떤 의미를 주느냐는, 실제로 하는 사람이 어떤 마음가짐이냐가 중요하겠지요. 단순히 이력에 한줄 넣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무언가 학문적으로 이루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관심있는 분야에 대한 탐구의지일 수도 있겠지요.
저는 러시아에서 공부를 조금하였는데, 러시아의 학제 중에 가장 특이했던 것이 깐디다뜨라는 학위(?)입니다. 영진님이 계신 KPUG에서 러시아 이야기 하려니 부끄럽고 우습습니다(저는МИФИ 다녔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우리나라의 박사과정에 해당하는 아스삐란뚜라를 거치면 주어지는 학위의 이름이 깐디다뜨입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candidate입니다.
학제 상으로는 분명히 서구의 Pd. D이지만, 이제야 혼자서 공부할 자격을 얻어 독또르가 될 수 있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 허용된 후보자인 셈이지요. 이게 상징적으로 느껴지는 바가 참 컸습니다. 이제야...'공부할 자격'을 겨우 얻은 것이라니....러시아에서 독또르가 되는 길은.....뭐......험난하기 그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박사 취득 후, Post-Doc을 하고, 연구성과를 내고, 논문을 내고, 박사 과정 지도 성과를 내서 어느덧 석학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정도....그 때에서야 독또르가 될 수 있는 거죠...
아...쓰고 싶은 말은 박사라는 학위가 결국은 어떤 사람의 성취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그 사람이 정말 그 분야의 공부를 혼자서 계속 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것이라는 데에 의미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오전에 했던 농담은......제가 학위가 없었더라면, 자격이 없어서 할 수 없는 농담인 것이...
직원이 하도 본인의 학벌 / 학위 자체에 고민을 하고 있기에....
"학사 학위는 '아, 이제 이 분야에 대해 좀 알것 같군. 이런 식인 것이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고,
석사 학위는 '아...내가 아는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아는 게 없었군.'이라고 느끼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고,
박사 학위는 '나만 모르는 줄 알았더니, 다들 모르는 군.'이란 걸 깨달은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학벌/학위 자체에 뜻을 두지 말고, 본인이 무엇을 알고 싶어하고, 본인이 무엇을 알아야 하는 것인지를 고민해 보라....고 했습죠...
근데, 저 농담.....10년도 더 전에 부터 알고 있었지만, 자격이 없어서 차마 하지 못했는데, 결국은 이제서야 한번 써먹었습니다. ㅋㅋㅋㅋ
코멘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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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
10.3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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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들이
10.30 11:35
ㅋㅋㅋ 저도 비슷한 내용으로 알고있는데 아마 평생 못써먹을 거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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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소
10.30 11:55
해도 해도 모르겠어요;;; ㄷ ㄷ ㄷ ㄷ ㄷ 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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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D되면 느끼는것... 이 세상엔 정말 엄청나게 많은 고수들이 있구나, 나는 정말 모르는게 너무나 많구나(정말 하나도 모르는구나), 함부로 까불다간 다치겠구나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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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막 러시아어 초급 공부하려고 준비하다
좋은글을 보네요
저야 뭐 공부랑은 상관이 없는 부류였지만...
박사, 석사, 막 부르길레 그냥 그런줄 알았는데
심오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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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10.31 01:13
은근히 박사학위가 있다는 것을 자랑 ? 회사 엔지니어링에 있는 사람들 반 이상이 박사라.. 박사는 사는데 아무 의미를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현장에서 학위는 경험에 비하면 엿바꿔먹기도 부족한 넘입니다. 학교에서 아무리 많이 배워봤자 현장에서 배우는 뼈저린 지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물론 학위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없는 것을 알아내는 과정입니다만.
우리나라 학교들 (공대 얘기입니다)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대부분의 교수진이 현장경험이 거의 없이 교수로 부임한다는 현실입니다. 현장겸험을 10년이상 갖추고 나면, 나이가 많아서 교수임용에 심각한 결격사유가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현장경험에서 10년은 걸음마에 불과하죠. 그래서 학교는 현장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을 가르치게 되고.. 그런 사람이 학사석사박사를 하고 현장에 가면.. 음 길 줄도 모르는 엔지니어가 현장에 온 겁니다. 물론 자기는 나는줄 알고 있다가 엄청난 '추락'을 경험하게 되죠.
아... 그냥 가슴이 뜨끔해지는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