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저는 미국에 이민와 산지 20년 쯤 된 50대 중반의 중늙은이입니다. 한국 선거에 투표권은 없지만 그래도 변화를 가져오려고 애쓰는 여러분들을 멀리서나마 응원해왔습니다. 


오늘 한국 대선 결과를 보니 12년 전 조지 부시가 연방대법원의 힘을 빌어 앨 고어를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됐던 때가 떠오릅니다. 당시 미국 유권자 절반은 똑똑한 앨 고어를 놔두고 '칠푼이' 같은 부시를 선택했죠. "같이 맥주 한 잔 하고 싶은 사람"라는 게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유능한 빌 클린턴과 8년을 행복하게 지낸 뒤 끝이라 후임자 선택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쓸데 없는 이라크 전쟁으로 수많은 미국의 젊은이들과 죄없는 이라크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경제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상태로 곤두박질했습니다. 마치 한국인들이 군사독재 종식 20년 후 "누가 대통령이 되든 민주주의야 어쩔 수 있겠어?"라고 방심했다가 이명박 5년을 겪은 것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다시 "내가 아니라면 아닌 거"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에게 5년간 나라 살림을 맡겨야하는 마음이 얼마나 허탈하겠습니까? 멀리 있는 저도 가슴이 쓰립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 대선에서 희망을 봤습니다. 여러분들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양산 시골 구석에 묻혀있던 한 인권변호사를 끌어내 불과 1년 만에 이렇게 훌륭한 정치인으로 키워냈습니다. 조근조근한 말투로 청년들의 아픔을 달래주던 교수를 밀어내 한국 정치인들이 '기득권 내려놓기'라는 전무후무한 말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이맘 때는, 보통 사람들은 이름도 잘 모르던 시민운동가를 서울 시장으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제 기억으로는 한국 정치사에 이렇게 '맑은' 정치인들이 세 명씩이나 동시에 등장한 일은 없습니다. 이것이 제가 보는 희망이고 여러분들이 자랑스러운 이유입니다.


반독재 투쟁을 할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이 남긴 말이 있습니다. 


"닭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좌절과 분노, 허탈의 시간은 지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나면 다시 한 번 신발 끈을 단단히 묶고 5년 뒤를 준비하시면 됩니다. 여러분에게는 안철수, 박원순 그리고 여전히 문재인이 있습니다.


멀리서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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