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가득] 러시: 더 라이벌
2013.10.12 03:18
참고: 이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많은 이유는 영화 그 자체가 완전한 허구가 아닌 현실의 인물, 그리고 현실의 사건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내용 자체는 각색이 이뤄졌지만 인물의 이름이나 팀, 경기 결과를 왜곡하지는 않았습니다. F1에 관심이 많은 분은 다 자세히 알만한, 그리고 F1에 관심이 적어도 조금만 찾아보면 그 내용을 알 수 있는 것이기에 사실 스포일러라고 할만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 이 영화는 F1, 그것도 F1의 절정이자 미친 F1(터보를 달고 1,000마력을 찍고 다니던) 시절로 진입하기 직전인 1970년대 후반을 담고 있습니다. KERS도 없고 다운포스는 우걱우걱~하며 수동 미션 기어봉에 X판 브레이크를 달며 1년에 한명쯤은 죽어나가도 이상하지 않던 시절의 F1 이야기입니다. 시기적으로는 1975년 F1 월드챔피언 니키 라우다와 1976년 챔피언 제임스 헌트의 경기 및 이들이 F3같은 하위 리그에서 뛰던 시기를 다룹니다. 핵심은 1976년의 독일 뉘르부르크링(정확히는 지금 F1이 열리는 곳은 아닙니다. 여기도 크게 나누면 구 서킷인 노르트슐라이페와 지금의 GP 슈트레케로 나뉘는데 과거에는 노르트슐라이페에서 경기를 치뤘습니다. 보통 양산차의 테스트 코스로 쓰는 곳이 노르트슐라이페입니다.)에서의 사고와 그 이후 라우다의 복귀전인 이탈리아 GP, 그리고 그해 마지막 그랑프리인 후지 스피드웨이의 일본 GP(참고로 지금 일본 GP는 스즈카 서킷에서 열립니다.)를 다룹니다.
- 영화의 내용은 라우다와 헌트의 라이벌 관계를 다루지만, 실제적으로는 라우다의 관점에 더 가깝습니다. 사실 그도 그럴것이 현실적으로 살아 있는 쪽이 라우다일 뿐더러 두 사람의 위상(라우다는 F1의 전설은 아닌 레전드급 인물입니다.) 차이도 있습니다.
- 영화를 볼 때는 F1의 규정을 정확히 몰라도 그런대로 볼 수 있습니다. F1 특유의 속도감과 중간의 두 인물의 애증관계가 핵심이기에 F1 규정을 잘 몰라도 영화의 이해는 문제가 없습니다. 타이어 규격을 몰라도 되며 배기량이 얼마인지 알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중간에 멕라렌 팀의 실격이 나오는데, 이는 차량 규격(Formula)이 규정과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규격을 지키려고 차량의 밸런스가 엉망이 되는 것도 현실에서는 얼마든지 있는 이야기입니다.
- 모터스포츠 혐오자나 시끄러운 소리에 민감한 경우만 아니라면 여성이 봐도 그렇게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애들이 보기에는 좀 거시기한데, XXX한 장면이 매우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야기의 한 축인 제임스 헌트의 인생이 어느 정도 그랬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 이 영화는 전기 영화는 아니기에 사실을 그대로만 적지는 않고 각색을 합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오해를 살만한 부분도 있기에 조금 적자면 이렇습니다.
A. 영화만 보면 라우다가 그냥 돈으로 F3에서 F1으로 바로 올라간 것 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F3부터 F1까지 거칠건 정상적으로 제대로 다 거쳤습니다. 또한 BRM에서 F1 데뷰를 한 것도 아닙니다. BRM으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대출까지 받은건 사실입니다만.
B. 영화만 보면 라우다의 팀 동료인 클레이 레가초니는 겉으로는 팀 동료네 뭐네 하면서도 라이벌시하는 듣보잡 악역처럼 비쳐지지만 현실과는 다릅니다. 레가초니는 라우다를 페라리로 끌어들인, 라우다의 신화를 만든 은인이며 영화에서 듣보잡으로 만든 것과 달리 라우다와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레가초니가 사고사했을 때 라우다가 장례에 참석할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는 영화와 다릅니다.
C. 뉘르부르크링에서 라우다가 기상 조건이 나빠 경기를 하지 말자고 한 것 처럼 비쳐지지만, 라우다는 그 전부터 뉘르부르크링의 안전 문제를 늘 지적해 왔습니다. 사실 뉘르부르크링이 매우 위험하다는 점은 드라이버들은 다 알고 있던 사실이기도 합니다.
D. 영화의 프레임을 보면 사고의 원인이 정비불량이나 피트에서의 문제로 보이게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불분명한 점이 있습니다.
E. 영화에서는 일본 GP에서 라우다는 기상 악화에도 묵묵히 경기 준비를 하고 헌트가 경기 포기를 말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이것도 조금은 다릅니다. 라우다는 일본 GP에서 기상 악화로 경기 취소를 요구했으며 많은 드라이버가 여기에 공감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GP라는 상징성때문에 FIA에서 그것을 들어줄 리 만무하여 경기가 이뤄진 것입니다. 헌트의 경기 포기 발언은 다른 드라이버가 이 경기에 대해 가진 감정을 대변하는 것이지만 라우다가 경기에 찬성하거나 최소한 반대를 표명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안전이 외면된 것에 가깝습니다.
F. 라우다의 일본 GP 경기 포기는 영화적인 관점에서는 자신의 신체 이상이나 공포감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다만 공식적인 경기 포기 사유는 '안전 확보가 불가능할 정도의 기상 상황'이었습니다. 슬프게도 경기 포기 직후 그나마 기상 상황이 나아지면서 헌트의 우승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만.
- 그밖에 알아두면 도움이 될지 안될지 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A. 뉘르부르크링과 라우다는 악연이지만 정작 뉘르부르크링, 정확히 말하면 노르트슐라이페에서의 F1 랩타임 기록을 갖고 있는 것도 라우다입니다. 물론 예선전 기록이며 본선 랩타임은 듣보잡 아저씨 취급을 당하는 레가초니가 갖고 있습니다. 물론 1976년이 아닌 1975년 기록입니다만.
B. 라우다의 사고로 노르트슐라이페에서 더 이상 F1이 열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뉘르부르크링에서 다시 F1을 열 수 있도록 남쪽의 소형 코스(공도 포함)를 개조한 GP 슈트레케를 만들게 됩니다.
C. 이 사고에서 정말로 라우다는 1분 넘게 불속에서 갇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처럼 다른 드라이버들(물론 성적이야 듣보잡급입니다만)의 희생정신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이 사건은 F1에서의 인명 구조 모범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D. 영화를 보면 신부가 잠시 나오고 나중에 정신을 차린 뒤 첫 마디가 신부를 쫓아내는 것이었는데, 정말로 죽는줄 알고 신부의 종부성사까지 받았습니다. 이걸 나름대로 잘 그려냈습니다.
E. 보통 그 정도의 사고라면 죽어도 이상할게 없고(사는게 이상할 지경) 살아도 은퇴는 당연한 수준의 중증 화상 환자임에도 정말로 40여일만에 복귀했고, 영화처럼 4위로 체커를 받습니다. 라우다를 평할 때 나오는 '불사조'라는 표현도 여기에서 나옵니다. 물론 꼭 이것만이 원인은 아닌데, 뒤에서 적지만 라우다는 은퇴 후 복귀를 했고 그렇게 복귀한 뒤 월드챔피언을 또 한 번 따냅니다.
F. 복귀 인터뷰에서 라우다가 자신의 대타인 카를로스 로이테만을 살짝 까는 내용이 나옵니다. 사실 라우다와 로이테만은 관계가 나쁜 편이며, 페라리에서 로이테만을 영입한 것에 대해 라우다는 큰 불만을 가졌습니다.
G. 페라리 팀의 오너인 엔초 페라리는 사고 전까지만 해도 전해 챔피언인 라우다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를 보였고 라우다 역시 좋은 관계를 유지했지만, 로이테만 영입을 계기로 두 사람의 관계가 흔들렸으며, 라우다의 독단적인 일본 GP 포기와 그에 따른 페라리의 우승 실패는 엔초 페라리의 분노를 샀습니다.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습니다만, 라우다는 그 다음해 월드챔피언이 됩니다만 두 사람의 관계는 더 벌어지면서 우승한 드라이버가 그 다음 해 다른 팀으로 이적하는 상황을 보이고 맙니다.
H, 영화 끝부분에 비행기가 나오는데 F1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라우다가 은퇴한걸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라우다는 그 시점에서 3년 뒤에 은퇴를 합니다. 비행기가 나오는 이유는 라우다가 항공기 조종 면허를 갖고 있으며 항공기 사업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인데 은퇴 후 항공사를 차리고 직접 항공기 조종사가 되었습니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J. 라우다의 은퇴에 대해서도 조금 더 적으면 헌트가 2년 뒤 은퇴를 했다고 하지만 라우다 역시 그 뒤 1년만에 은퇴합니다. 다만 그 은퇴가 끝은 아닌데, 나중에 멕라렌의 요청으로 F1에 복귀하고 복귀 후 3년동안 활동하면서 한번 더 월드챔피언이 됩니다. F1의 역사를 모르고 영화를 보면 화상으로 F1을 접은 사람과 한 번 불꽃을 태우고 사라진 드라이버의 이야기로 보이지만, 라우다는 3번 월드챔피언에 오른 레전드입니다. 역사상 3번 월드챔피언이 된 사람은 손꼽을 정도로 적은데, 현존하는 괴물인 제바스티안 페텔, 그리고 F1 역사의 영원한 레전드인 아일톤 세나 정도입니다. 물론 세나의 라이벌이자 '교수' 알랭 프로스트나 역사에 나올 수 없는 괴물 미하엘 슈마허는 제외합니다.(프로스트는 4번, 슈마허는 7번입니다. 아마 올해가 지나면 페텔이 4번을 찍을걸로 보입니다만.)
스포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