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제가 아는 어떤분의 이야기

2011.02.03 01:49

해색주 조회:837 추천:6

 밑에 IT이야기가 잠깐 나왔습니다. 저는 개발자도 아니고 프로그래밍을 조금 할줄 알고 그걸로 밥벌이를 하는 행돌이입니다. 그렇다고 전산부는 아니구요.


 전산쪽에서 일을 하다가 보면 논란이 되는 것이 늘 두가지는 있습니다. 어느 언어가 좋느냐와 '업무위주VS기술위주'입니다. 개발언어에 대한 논란은 많이들 있겠지만, 두 번째 논란에 대해서는 지인에게 들은 내용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나이드신 전산부서 분들은 전산을 전공하지도 않으셨고 업무상 필요로 하다가 하게 되신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실제 많은 노력을 하기 전에는 다른 고급 개발언어들도 모르고 자신들이 사용했던 개발언어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코볼로 개발하셨던 분은 거기서 사고가 멈춥니다. C를 하셨던 분은 거기서 생각이 멈춥니다. C++을 하셨던 분도 거기서 생각이 멈춥니다. 요즘 잘나가는 자바나, C#, 파이썬, 루비, R 이런것 잘 모릅니다. 사실 이해도 갑니다. 난 업무만 알면 되지 왜 저런 개발언어들을 알아야 하지? 사실 업무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요, 근데 그 업무도 많이 변해가고 업무에 대한 지식도 점점 떨어져 갑니다. 덩달아 업무지식에 따라 발전하는 기술지식도 얇아지고 리젼이나 글로벌에서 내려오는 영문지침이나 방향에 대한 지식도 없어집니다.


 밑에는 젊고 영어도 잘하며 긍정적인 직원들이 실력을 쌓아 나갑니다. 본인은 안된다, 없다 이런말만 했는데 요즘은 현업도 왠만한 프로그래밍은 하고 지식도 많아서 자신의 의견에 조목조목 반박하며 일을 진행합니다. 점점 자신이 없어집니다. 아,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 밑에 있는 직원들을 회유하고 협박해서 자신처럼 만듭니다. 아는 것도 없고 자연 소극적으로 변하고 가끔 똑똑한 현업들 만나면 박살도 나고 벤더 업체들 회의하다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저게 전산부야?'라는 표정도 보게 됩니다.


 예전에 그 분도 전산부에서 빛나게 일을 잘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개발언어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보다 잘알고 명석했던 분이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책을 놨습니다, 공부를 안했습니다, 기술서적도 멀리 했습니다. 현업 책임자들과 술자리를 하고 사바사바 하면서 역시 회사생활은 '줄과 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자신을 업그레이드 하려는 의지도 없어집니다. 점점 사람들과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분위기 파악을 하며 삽니다. 어느날 자기가 최근 지식이나 기술동향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제 40대 초반인데, 난 완전 퇴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은 이제 초등학생인데 난 아직도 회사를 더 다녀야 하는데, 회사에 내가 내놓을 지식도 경험도 없습니다. 지식은 낡았고 경험은 너무 예전 것이라 남는게 없습니다. 이리저리 술자리를 기웃거리며 윗사람들의 동향을 살피고 후배들을 괴롭혀서 업무 성과를 냅니다. 그러나 다들 압니다. 그 업무는 내가 한게 아니라, 내 밑의 사원/대리/과장이 해서 내게 가져다 준것임을. 본인은 아는게 하나도 없어서 밑에 직원이 설명할때마다 '자식이 외국어로 설명하나?'하는 생각을 하고는 합니다. 어제도 술자리를 했더니 머리가 지끈합니다.


 이번에 본부장이 바뀌면 중간급을 물갈이 한다는데 어쩌면 좋을지 걱정입니다. 실세 부부장과 저녁약속을 잡으려고 하는데 잘 안됩니다. 이와중에 현업과 밑에 직원은 무슨 작당을 하는지, 큰 프로젝트 제안서를 꾸역꾸역 만들어 올립니다. 내가 일 벌리지 말라고 그렇게 타일렀는데, 대리넘이 현업 과장에게 넘어갔나 봅니다. 시스템 아키텍쳐, 디비 설계, 업무 프로세스 및 개선방향을 보내줬는데 이해가 하나도 안갑니다. 대리를 불러서 내가 알아듣게 설명하라고 하는데, 한숨부터 쉽니다. 이렇게 무시를 당하는구나 생각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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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정규직들은 일정 나이가 되면 자기개발을 안하거나 자기 개발이 필요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느날 자기가 회사를 나가면 빈껍데기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보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더욱 자기 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저는 퇴직후의 30년을 일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이제 34이고 과장 3년차, 야간대학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주변에 40넘고 부부장 되어서 아는 것 없다고 무시가 아니라 '불쌍하다'라는 소리를 듣는 분들을 보며 세월의 무상함과 세상의 무서움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저도 44에 파워포인트도 못쓰고 영어도 못하고 프레젠테이션은 전혀 못하는 후임자(부부장님)를 하드 트레이닝(뺑뺑이) 시켜서 부행장 프레젠테이션을 하게 했던 적도 있습니다. 과장이 부부장에게 소리 지르며 화내며 그렇게 몇 주를 교육을 시켰죠. 얼마나 힘들어 하시던지, 끝나고 2주정도 위장장애로 고생을 하시더군요. 삶이 쉽지만은 않지만, 자기개발을 안하면 세상은 냉혹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점점 세상이 말빨이나 경험치로는 살아갈 수 없게 변해간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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