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르 (스포 있습니다.)
2011.08.02 16:26
저의 젊은 시절(지금도 젊지만 - _ -a)에 함께 했던 스포츠 선수들이 몇명있습니다.
그리고 호나우두(브라질), 문경은, 크로캅과 효도르.
딱히 스포츠를 광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위 선수들의 경기는 항상 봐왔었죠. 이유는 드라마틱한 승부를 항상 연출해 왔고, 그들의 인생이나 과정들도 너무나 드라마틱했거든요. 뭐, 실력도 판타스틱 했지만요. ㅎ.
네 선수 전부 은퇴를 했거나 쇠퇴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만 그중에서도 최근에 효도르 선수의 몰락은 정말 여러가지로 생각나게 하더군요. 왜냐하면 다른 3명과 달리 자기 관리와 멘탈적인 부분에서 완벽한 선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호나우두, 문경은, 미르코 크로캅 이 세 선수 다 일명 "크레이지모드" 때는 신이 강림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인간일 때는 어이없는 실수를 종종하는 그러한 선수들이죠. 그래서 항상 응원하면서 조마조마 했던 재미가 있는 선수들이었습니다.
반면 효도르 선수는, 헤비급 치고는 작은 신장과 헤비급 격투기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러키 펀치(말 그대로 한방에 끝나는 게임이 헤비급이죠) 등에 위험에 처한적이 있었음에도 절대 실수를 허용하지 않은 완벽한 게임 플랜과 냉정한 위기관리 능력으로 10여년간 실질적인 무패의 챔피언으로 군림해 왔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타격으로는 크로캅 보다 아래였으며, 레스링으로는 노장인 마크 콜먼과, 한체급 아래인 히카르도 아로나(더군다나 그는 전문 레슬러가 아님;;)보다 아래였으며, 그라운드 테크닉에서는 노게이라보다 약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지지 않을 것 같은 포스를 풍기는 이상한 선수였죠. 어쩌면 그가 신앙심이 깊은게 이해가 갈정도로 그의 플레이는 "신의 가호" 라는 것이 느껴졌었지요. 항상 위기의 순간을 드라마틱하게 이겨왔으니까요. 이제, 마법이 풀리고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나봅니다. ㅜ.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효도르의 실력 자체가 하락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초반에 성급하게 끝내려는 것을 보면 체력적으로, 멘탈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이긴 합니다만, 헨드스피드, 움직임, 타격 페턴 자체는 나쁘지 않았거든요. 초반에 덴 헨대슨의 레프트 훅이 작렬 한 것이야 뭐... 효도르를 상대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노리던 효도르의 안면가드 약점이었으니 딱히 새로울 것도 없습니다. 후지타와의 경기 때도도, 크로캅과의 경기 때도, 그외 등등의 경기에서도 항상 노출되던 약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라운드에서 승기를 잡고도 신중하지 못한 경기를 하다가 백을 허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효드르의 강점인 "신의 가호" 가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격투기란 참 냉정한 스포츠 같아요. 미르코 크로캅의 경우, 기나긴 슬럼프를 끝내고, 다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간발의 차이로 KO를 당하고 사실 상성도 나빴죠(멍청한 데이나 화이트! 크로캅은 타격가이지만 순수 타격가와 싸울 때 더 약하단 말이야!!! 떡밥좀 제대로 던져!)... 효도르도 안실과의 경기를 제외하고는 져서는 안되는 경기였는데 참 3초... 아니 2초 정도의 실수가 승패가 갈려 버렸네요. 하긴... 지금까지 효도르가 쟁취해온 승리도 그 찰나에서 벌어지는 도박과 같은 승리가 많았으니 할말은 없네요.
하지만 이 경기를 통해 효도르가 은퇴를 할 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본인도 잘 알겁니다. 본인의 경기력에 문제가 없었다는 것을. 사람은 원래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 법. 링위에 선 이상, 그 누구도 절대 강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본인이 모를리 없을 겁니다. 이제 무패의 부담감과,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에서 자유로워진 그가, 다시 한번 자유롭고 냉정한 경기를 펼쳐주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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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산왕
08.02 21:29
그렇죠. 사실 알롭전에서 부터 이상했죠. 뭐 정타는 없었지만, 사실 효도르가 워낙 본능적 반사신경이 좋았기 때문에 멀쩡했던 것이지 기싸움에서 뭔가 눌려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저는 효도르가 알롭에게 지라고 도박사들에게 협박받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어요. 이기고 본인도 어이 없어 하는 표정이 느껴졌었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싸움에서 밀리고, 동기의 결여임에도 불구하고 본능적 움직임으로 그를 제압하는 모습에서 황제는 곧 부활할 것을 기대했었어요. 왜냐하면 정신적인 강인함이야 말로 효도르의 강점이었으니까요. 마치, 오른쪽 앞발만 남겨놓고 다 못쓰게 된 상처받은 사자가 궁지게 몰이고 몰려도 그 한발 만으로 적을 제압하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흠. 갈수록 흘러가는 게 과거 크로캅과 비슷해져 가네요.
아시겠지만 렌들맨에게 졌을 때의 크로캅은 다행히도 "효도르" 라는 강력한 동기가 있었기 때문에 부활이 가능했습니다. 물론 무차별 그랑프리에 효도르가 출전은 안했지만, 최강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동기가 크로캅을 이끌었었죠. 사실 당시 UFC갈 때만 해도 이제는 크로캅의 시대라고들 했었으니까요. 그리고 추락했죠;;
때문에 효도르는 이제 갈길이 멉니다. ㅜ.ㅜ 잘 알고 계시겠지만 다시 정상 오르기 까지 몇가지의 문제점이 있는데요...
1.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거 같습니다.
동시대의 라이벌들은 이미 저무는 해이고... 설상가상으로 웰라운더 들의 등장으로 효도르는 자신의 혼과도 같은 삼보베이스에서 레스링과 주짓수 훈련을 해야겠죠. 그렇기 위해 미국으로 가야할듯 한데 글쎄요.... 종교와 가족, 그리고 국가를 중요시하는 그가 과연 그렇게 할지 모르겠네요(아마 안 할 겁니다).
2. 옥타곤, 헥사곤 등의 무대 적응 문제.
크로캅도 마찬가지 이지만, 철망 경기는 덩치큰 선수가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링처럼 코너에 몰릴 걱정이 없기 때문에, 스텝이 약한 선수들은 도망치기 편하고, 반대로, 덩치있는 사람들은 스텐딩 클린치를 이용하여 집요하게 더티복싱을 펼치기 편하기 때문입니다.
뭐... 하지만 링보다는 변수가 적은 철망 무대가 더 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쉽지만 체구가 작은 선수들은 시대의 흐름이려니 생각해야죠.
3. 3세대 천재 파이터 들의 등장.
효드로, 크로캅 등이 부흥기를 이끌었다면, 이제는 누가 뭐래도 육체와 기술의 결합입니다. 동체급의 또다른 천재 케인 벨라스케즈는 강력한 맷집, 스테미너, 최강의 레스링에 타격까지 장착. 무엇보다 살과 피가 튀고, 1초의 판단 미스로 영광이 치욕이 되는 위험한 헤비급 무대에서 체스나 바둑을 두듯이 상대방의 한수 한수를 읽으면서 "고요한" 싸움을 펼칠 수 있는 "혜안의 천재".
모든 면에서 효도르+1 의 모습을 보여는 듯한 착각이...;;
UFC의 독점계약 문제등등 많은 산이 여전히 존재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효도르가 이제 슬슬 UFC로 갈 때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힘든 시기에, 최강의 무대로 돌아가서 최강의 상대와 싸우는 것. 그것이 한때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라고 불리던 사람의 진짜 황제다운 마지막 모습이겠죠!!!
PS. 그리고 효도가 정상의 자리에 올랐으나 불혹의 나이에 도달해 다시 부활한 크로캅이 마지막에 이기는 그런 모습을 기대하는.. 저는 어쩔 수 없는 캅빠인가 봅니다. ㅜ.ㅜ
오...최강산왕님이 경기를 볼줄 아시는군요... kpug에 mma 팬이 있다니 반갑습니다.
저 또한 효도르가 Rings에서 뛸 때 부터, 그리고 크로캅이 K-1에서 '미르코 타이거'라는 이름으로 뛸 때부터 그들의 모든 경기를 한경기도 빠지지 않고 봐 온 사람 입니다. ^_^
저는 몇가지 점에서 최강산왕님과 관점을 달리 하는데요..
우선 효도르는 그래플링은 세계 최고의 수준, 타격도 킥을 제외한 부분에서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서 MMA에 입문 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combat sambo 세계선수권 4회 우승자이고, 전 러시아 선수권에서도 6번을 우승할 정도로 MMA에 적합한 경기력을 갖춘 상태였죠. combat samo 전에는 유도선수로 뛰었고요, 최강은 아니었지만 유도 중량급 강국 러시아에서 3위권 정도를 유지했죠(세계선수권 3위 2차례). 유도와 삼보로는 생활이 어려워지자 일본의 PRIDE로 진출했는데, 이 때 효도르의 경기력이 엄청난 폭발력을 얻게 되었지요. 한 번 뛸때마다 억대의 돈을 손에 쥐니 그야말로 그동안 숨겨져 있던 본능이 폭발했다고나 할까요..실제로 효도르는 인터뷰에서 '그동안 유도와 삼보 선수로 뛸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나는 행복하다. 딸과 아내를 보호해 줄 수 있어서 더이상 행복할 수 없다. 나는 나에게 돈을 벌어 주는 PRIDE에 감사한다'라고 한 적도 있지요. 효도르의 잠재력은 거의 폭발적으로 증가 했는데, 특히 우크라이나 출신 A급 타격가 '양 어깨에 폭탄을 얹은 사나이' 보브찬친(크로캅에게 하이킥 한방으로 나가 떨어진 사람)에게 특별 훈련까지 받으며 팔 근육이 아닌 어깨 근육을 이용해 엄지와 검지 사이로 상대를 가격하는 특유의 타격 능력까지 갖추게 되지요. 이 시점에 효도르는 타격, 그래플링, 멘탈리티, 체력 등 모든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갖춘 전천후 선수가 됩니다.
저는 효도르의 몰락은 PRIDE의 해체에 따른 정체성의 위기, 즉 멘탈리티에 있다고 봅니다. 쉽게 말하면 돈과 명예를 이미 쌓을 만큼 쌓았다는데 있지 않을까 싶어요. 효도르는 매우 여성스럽고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로, 평소에 그림 그리는걸 즐겨 하고 또 외동딸과 보내는 시간을 가장 소중히 하는, 그런 예민한 성격을 갖고 있어요. 이미 싸워야 하는 동기를 상실했고, 명예는 정점에 있는데 그것을 무너뜨리기에는 너무나 섬세한 자존심이 허락을 하지 않는 것 이지요.
일례로 미국 진출 후 affliction이라는 급조 단체에서 Andrei Arlovski와의 경기를 보지요. 아시겠지만 알롭스키는 UFC 전 챔피언이었다고는 하나 이미 정점을 지난, 게다가 여자친구와 결별 및 Brett Rogers에의 10초KO패 등 급격한 하락길을 걷던 선수였습니다. 효도르를 좀 아는 사람은 그 경기에서 이상한 점을 느꼈을 껍니다. 눈에 띄게 늦은 풋웍(실은 알롭스키가 워낙 복싱 기반이 강해 풋웍이 좋긴합니다), 알롭스키보다 한 박자 느린 타격 등. 복싱을 좀 볼 줄 아는 분이 보면 사실 효도르가 정타를 맞은 것은 하나도 없지만, 분위기상 많이 압도 당했었어요. 결론적으로 효도르가 KO승 하긴 했지만, 이 때부터 MMA 팬들은 좀 불안해 했습니다. 뭔가 이상하다..하는 느낌이죠. 어쨌든 알롭스키는 일종의 입문용 상대였고, 좀 불안하긴 하지만 승리 했습니다(알롭스키 전에 Tim Sylvia에게 KO승을 했긴 했습니다만 팀 실비아는 워낙 기량이 떨어지는 선수였음)
strikeforce 첫번째 경기인 Brett Rogers와의 대결. 로저스는 스트리트 파이터 출신의 신예로 괴력을 자랑하는 무시무시한 선수였는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무난히 KO승 했고요. 저는 이 경기를 보고 '아 이제 효도르가 궤도에 올랐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Fabrocio Werdum에게 트라이앵글 암바로 패배하는걸 보며 무척 불안해 지더군요. A급 그래플러이나 C급 타격가인 베우덤에게 패배하다니. 하긴 베우덤은 이상스러울 만큼 강자에게 강한 모습을 보이는 특이한 파이터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Antonio Silva에게 죽도록 얻어 맞는걸 보고 이젠 끝이다 싶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경기 직후 은퇴를 선언 했을 때, 자존심을 지키려는 그의 감수성이 강하게 느껴지더군요. '그래 이제 은퇴 해라. 그만하면 됐다. 당신 가족 충분히 먹여 살릴만큼 돈도 벌었고, MMA에서 2패는 솔직히 아무것도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Fedor가 일리노이에서 열리는 strikeforce에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미국 자본가들이 돈 싸들고 얼마나 효도르를 구워 삶았을지 짐작이 가더군요. 체급과 실력을 한 단계씩 낮춘 Dan Henderson에게 KO패 하다니... 그에게 KO로 이겨도 큰 박수를 받지 못할 상황인데 져 버렸으니 MMA 팬들 사이에선 난리가 난거죠. 효도르는 이상하리만치 서두르는 것 같았고, 핸더슨은 이를 역 이용하여 받아치는 경기를 잘 하더군요. 뭔가 눈이 약간 풀린 것 같았고 전체적으로 기가 없어 보인다고 해야 하나요.. 사실 주최측에서는 효도르가 이겨 줬으면 하길 바랬을 것인데(미국 내 pay view에서 효도르는 아주 좋은 수익원 입니다. Chuck liddell, Randy Couture, Tito Ortiz 같은 돈 잘 벌어주는 스타 플레이어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말이지요.
사실 MMA에서 3연패는 그리 치명적이지 않습니다. 그 유명한 Chuck Liddell도 3연패 한 적 있고, Tito Ortiz는 4연패, Couture는승-패 반복을 8년인가 했으니까요.
저는 효도르가 멘탈적인 문제 즉 경기에 있어서 동기부여, 자기극복 이 두가지 문제만 해결 한다면 잘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미 경기력은 잘 갖춰져 있으나 PRIDE 시절 골목대장 시절 쌓아온 자아 즉 self-esteem을 넓혀야 하는 문제에 봉착한 것 같습니다. 사실 자존심은 이미 안토니오 실바에게 패 했을 때 이미 바닥을 쳤는데, 이번 댄 핸더슨 경기로 다시한번 바닥을 쳤으니 그의 자존심을 자극 시키기에 충분하다고 봐요(혹시 strikeforce측이 이런 것 까지 계산하여 Dan Henderson을 상대로 결정했는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치네요).
한번 지켜 보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