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과 같이 보냈던 1년....
2010.03.12 16:14
참 오래된 얘기 하나 끄집어내어 볼께요.
법정 스님하고 아버지는 친구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저하고도 자연스레 인연이 되었지요.
전 꼬맹이 시절에 순천 송광사에서 동자승을 했습니다.
그림 그리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송광사로 입적하시는 바람에
방학때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가 얼떨결에 붙잡혀서 동자승이 되어버렸지요.
아버지방, 제방, 그리고 법정 스님방.
툇마루를 하나로 두고 옆에 가까이서 생활했었는데요.
그때 기억나는 스님들이 몇분 계셨는데.....
九山 스님이 조실스님으로 계셨고, 보광스님을 아들로 두시고,
미국 스님이 계셨는데 (한국에 온 첫 스님이었죠) 현조스님이라고 이분이랑 많이 친했는데.....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구산스님의
설법을 듣고 바로 송광사로 입적했는데 나중에 커서 알아보니 이 현조스님이 미국불교의 원조가
되었더구먼요.
그리고, 저한테 입을것과 먹을것을 항상 챙겨주시던 법정 스님이 계셨었지요.
한번은,
맛있는것을 주겠다며 법정스님이 절 방으로 불렀습니다.
지금도 유톻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가루로 된 우유통을 꺼내놓고, 우유한잔을 타 주시더군요. 아주 귀한것이라면서 ....
당시에 우유한잔은 지금의 산삼한뿌리의 가치(?)가 있었는데
세상에서 그렇게 맛있는것을 처음 먹어보았지요.
스님이 주신 우유한잔은 두고두고 저를 괴롭히더군요.
제가 뭘 좀 잘못할때마다 이노옴~ 말안들으면 너 이제 우유 안준다고 하시면.....
전 꼼짝 못했거든요. ㅎㅎ
한번은 스님이 어디 가신날,
전 스님방으로 쳐 들어가 앉은자리에서 고이 숨겨두었던 우유 한통을 다 씹어먹었습니다.
지금도 가루우유 그맛이 기억이 나는군요. 고소하고, 은은하게 달콤한.....뭐
원래 계획은 몇숱가락만 먹고 나오려고 했는데 먹다보니 한통을 다 비웠죠.
그리고, 입을 훔치고, 방을 감쪽같이 쓱삭 닦고 아무일도 없는척 나왔습니다.
조금 있으니 배가 아파오더군요.
해우소로 달려가서 앉았는데 따발총 소리가 ........두두두두......두두두두....
방으로 돌아오니 하늘이 노래지더군요. 그렇게 몇번을 왔다갔다 하는걸
스님이 보시곤........너털웃음을 웃으시면서 ......
거봐라 이놈아.........그 맛있는걸 혼자 먹으니 배탈이 안나노
전 아무말도 못하고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쥐죽은듯이 있었습니다.
그ㄸ 이후로 지은죄가 있어서 스님이 불러도 휙 도망다니기 바빴는데
맛있는것만 생기면 절 붙들어서 제 입에 넣어주곤 괘안타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고,
지금도 길가다가 눈깔사탕을 보면 그때 생각이 절로 납니다.
그 당시에도 스님 방에는 소박한 앉은뱅이 책상이 하나 있었는데
늘 거기에 앉아서 글을 쓰시고, 제게도 붓글씨를 써보라고 권하시고,
동자들이 세명 있었는데 우리들에게는 우상이신 스님이셨습니다.
1년동안 법정스님과 같이 지낸 어린시절이 아직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나중에 제가 대학 1학년때인가.......양산 통도사에서 아버지를 만났는데
법정 스님이 제 안부를 물어보셨다더군요.
한번은 뵈러가야지 하면서도, 세월이 흘러 흘러 결국은
신세진걸 갚지도 못하고 보내는군요.
인생살이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만 못한것같아 아쉬울 뿐입니다.
코멘트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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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전부 인연으로 맺으신 사이들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전생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케퍽이란 인연으로 전부 모여 있지 않습니까..
언젠가 다시 우리도 돌아갈 그곳에서 다시 만나지 않을까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길상사 집근처라 동생차 타고 몇번 간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고개 넘어 종로 쪽으로 나갈때 저녁이면... 그 언덕 배기가 최고의 야경을 감상할수 있는 그런 곳이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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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곳으로 가셨으리라 믿습니다.
낭구 선상님도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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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인연이셨네요. ㅠㅠ
저는 한번도 뵙지도 못하고, 한번도 법문을 듣지도 못했기에 더 아쉬움이 큽니다.
예전 군대 있을때 천상병 시인 귀천하셨을때도 모포 뒤집어 쓰고 목놓아 울었는데...
이번에도 울고 싶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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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넷
03.12 17:51
좋은 인연이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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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냅시다
03.12 17:53
천상병 시인은 또 저와 인연이 없지 않습니다.
인사동에서 원래 아무나 만나면 막걸리 묵자 하고 거래를 트셨는데, 저도 유독 자주 마주쳤습니다. 그 당시 어떤 스님하고 제가 좀 친하게 지냈는데, 그 스님도 막걸리광에다가 천상병 시인과 막역한 사이였었거든요,
자그마한 단구에, 만나기만 하면 야, 우리 막걸리 묵자 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분 사모님이 인사동에서 귀천이라는 카페를 하셨죠. 남편을 언제나 시인 이라고 부르던 분이었는데, 지금도 건강하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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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03.12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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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샛별
03.12 19:35
좋은 인연을 가지셨네요.
저도 누군가에게 좋은 인연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내가 좋은 인연이 될 수 있다면 내가 만나는 사람도 좋은 인연이리라 생각되니까요.
누군가를 만나고... 또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인연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날지 모르지만....
살아 있는 동안 만나게 될 모든 인연들에 충실하고 싶네요. 좋은 만남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그리고 다시 돌아가는 날... 먼저 가신 분들을 다시 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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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로록알밥
03.12 20:02
아, 좋은 인연이네요. 정말.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겁니다.
그냥 막걸리 한잔 하고 싶어 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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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란게 참 신기하고, 한편으로는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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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 지으시고 가끔 산에서 나오실때 있으셨는데 그때 한번 뵌적은 있습니다.
좋은 추억을 가지고 살고 계신겁니다.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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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은 정말이지 파도같습니다
나에게 밀려오지만 정작 파도는 내 발끝만 적시고 가는..
인연이라는건 내가 다가서는것도 중요하다고 생각이 드네요..
p.s 고기가 먹고싶어요 낭구선생님 ㅠㅠ (슬램덩크에서 정대만이 안선생님한테 울부짖는 목소리를 생각하면서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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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주말밤......
장발장님...의 덧글에...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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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peraesthetic
03.13 05:22
법정스님의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제 동료중 한명이 선과 불교에 관심을 보이기에 법정스님의 책을 권하려 아마존.컴을 기웃거렸는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네요.... 지금 부랴 부랴 법정 스님의 책을 구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인연이 있으셨군요..
옷깃만 스치어도 인연이라고 하던데..
많이 아쉬우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