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저는 여러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다시 한 번 신발끈을 매시길...
2012.12.20 02:08
저는 미국에 이민와 산지 20년 쯤 된 50대 중반의 중늙은이입니다. 한국 선거에 투표권은 없지만 그래도 변화를 가져오려고 애쓰는 여러분들을 멀리서나마 응원해왔습니다.
오늘 한국 대선 결과를 보니 12년 전 조지 부시가 연방대법원의 힘을 빌어 앨 고어를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됐던 때가 떠오릅니다. 당시 미국 유권자 절반은 똑똑한 앨 고어를 놔두고 '칠푼이' 같은 부시를 선택했죠. "같이 맥주 한 잔 하고 싶은 사람"라는 게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유능한 빌 클린턴과 8년을 행복하게 지낸 뒤 끝이라 후임자 선택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쓸데 없는 이라크 전쟁으로 수많은 미국의 젊은이들과 죄없는 이라크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경제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상태로 곤두박질했습니다. 마치 한국인들이 군사독재 종식 20년 후 "누가 대통령이 되든 민주주의야 어쩔 수 있겠어?"라고 방심했다가 이명박 5년을 겪은 것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다시 "내가 아니라면 아닌 거"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에게 5년간 나라 살림을 맡겨야하는 마음이 얼마나 허탈하겠습니까? 멀리 있는 저도 가슴이 쓰립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 대선에서 희망을 봤습니다. 여러분들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양산 시골 구석에 묻혀있던 한 인권변호사를 끌어내 불과 1년 만에 이렇게 훌륭한 정치인으로 키워냈습니다. 조근조근한 말투로 청년들의 아픔을 달래주던 교수를 밀어내 한국 정치인들이 '기득권 내려놓기'라는 전무후무한 말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이맘 때는, 보통 사람들은 이름도 잘 모르던 시민운동가를 서울 시장으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제 기억으로는 한국 정치사에 이렇게 '맑은' 정치인들이 세 명씩이나 동시에 등장한 일은 없습니다. 이것이 제가 보는 희망이고 여러분들이 자랑스러운 이유입니다.
반독재 투쟁을 할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이 남긴 말이 있습니다.
"닭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좌절과 분노, 허탈의 시간은 지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나면 다시 한 번 신발 끈을 단단히 묶고 5년 뒤를 준비하시면 됩니다. 여러분에게는 안철수, 박원순 그리고 여전히 문재인이 있습니다.
멀리서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코멘트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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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t4street
12.20 02:27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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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지만, 안철수라는 이름은 뺏으면 좋겠습니다.
아~~. 물론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
west4street
12.20 02:21
안철수도 이번에 배운 것이 많을 것입니다. 진흙탕에서도 연꽃은 피지만 발에 진흙을 뭍히지 않고서는 그 연꽃에 가까이 갈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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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이아빠
12.20 06:17
여기 어떤 글에서 쓰시기를, 대한민국은 작은 나라라서 에잇 이 검댕묻은 놈하고 내치면 쓸만한 인재가 없다고 했습니다. 안철수가 개념없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김문수 정몽준보다는 나을 겁니다. 5년 뒤를 기약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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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바
12.20 02:16
눈물이 없던 집사람은 몇시간을 울다가 잠이들었네요.
아이들 생각에 여간 속상한게 아닌가 봅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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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t4street
12.20 02:28
고맙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더 나은 세상 물려줄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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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이
12.20 02:31
박근혜 씨는 전형적인 대학입시 3불 폐지론자인데... 이젠 부모의 재정적 뒷받침이 없으면 대학가기도 더 어려워지겠군요. 대학까지 이렇게 유리천장을 만들면 실질적으로 자수성가란게 가능한지 모르겠네요... -
감사합니다. 앞으로 5년간 이 정치인들을 잘 지켜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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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유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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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t4street
12.20 03:34
그렇습니다. 좋은 정치인을 만들고 키우는 것은 국민의 몫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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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끝나고 못먹는 술마시고 약간 울고;; 잠못자기는 처음입니다 정말 앞으로 5년간 대통령 잘못뽑았다는 이야기가 국민여론이 되어 공론화가 된다면 오늘 이밤의 기분을 다시 떠올리며 그들을 조롱할것입니다 부디 가금류가 미워서 설치류를 그리워하는 날이 정말 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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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야기가 국민 여론이 되어서 공론화가 될까요? 선관위 국정원 언론사 모두 장악당했는데, 그런 이야기는 음모론으로나 떠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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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t4street
12.20 03:56
5년 전 가금류와 설치류가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 토론회를 한 뒤 한나라당 간부 한 명이 가금류에 대해 "설치류를 지성적으로 보이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평을 내렸답니다. 아마도 그 유명한 '이산화까스' 토론회였을 겁니다. 정말 걱정이 되긴 합니다.
추천:1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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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찡긋*
12.20 08:25
좋은 글입니다.
하지만 슬픔을 가눌길이 없네요. -
PointP
12.20 08:37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국민이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는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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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술잔을 놓지 못했습니다..
좋은 글, 위안이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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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많은 위로가 되네요. 당면한 현실 때문에 많은 기대를 해서인지 실망도 엄청 컸는데 글 읽으니 이제 좀 진정되고 정신이 돌아오네요. 앞으로 5년 MB보다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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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운 머리속을 정리가 되게 만들어 주시네요.
그렇지요. 희망을 놓으면 안되겠지요.
많은 도움이 됩니다. 감사드립니다. ^^
추천!
좋은 글 감사합니다.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