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시인 백석과 김영한의 사랑 그리고 길상사
2010.03.11 15:57
그곳에선 마치 시인 백석과
그가 자야라고 불렀던 그의 연인 김영한이 이생에서 못다한 사랑을
마치 물고기로 환생하여 아름다운 삶을 나누는 듯 했다.
지난 주말 늦은 시간에 찾은 성북동의 길상사.
서울 도심에 있기에 가끔씩 찾은 사찰이지만
늘 갈때마다 맘이 새로워진다.
정말 춥던 날,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풍경소리만 들린다.
아마 길상사를 모르는 이들은 없으리라.
법정스님,
아니면 시인 백석,
아니면 김영한님과 얽혀져 있는 소문난 사찰.
난 불자는 아니지만
가끔씩 그곳을 이유없이 찾곤 한다.
원래 이 길상사가 있는 땅은 원래 유명한 요정이었다.
부지 7천평이나 되던 대원각.
1996년 그 대원각의 주인이던 김영한은 이 땅을 법정 스님에게 조건 없이 시주하여 길상사를 지을 수 있게 해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여인.
그 이후로 이곳 길상사는 일년뒤에 완성되었고,
시주한 김영한이란 여인은 3년 뒤인 1999년 83세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유명한 산속의 사찰과는 규모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그러나 아마 땅의 값어치로 따진다면 결코 뒤지지 않으리라.
서울 강북의 부촌이라고 하는 성북동이 아니던가..
그리 크지 않은 공간.
그러나 차암 정겹다.
천천히 거닌다.
어둑어둑한데...
스님들이 뭐라 하지 않을까?
걱정반 막연한 기대반으로..
여러명의 스님들이 지나간다.
그 스님중의 한분이 사알짝 날보며 미소를 지어주신다.
정말 아무도 없었는데..
왜 그땐 두손을 모을 생각을 안했지?
그냥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낸다.
길상사를 지은 법정스님과 이 땅을 시주한 김영한님과의 관계.
법정 스님은 송광사 불일암에서 지낼 때 겨울이 너무 추워 미국에 있는 사찰에 머물면서 책을 번역하고 설법을 하며 지냈단다.
그때 김영한 보살을 만나 대원각을 사찰로 만들고 싶다는 제의를 받았다고 하니..
이것도 인연이 아니던가..
지금도 큰 돈인데, 그당시 1천억원이라면 얼마나 큰돈이었을까?
사람들이 물었단다.
기부한 그 큰 돈이 아깝지 않았느냐고..
치만 김영한님은 그랬단다.
그 돈은 그 사람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고...
그렇게 김영한님이 말했던 그분이라는 사람.
바로 그녀가 평생 사랑했던 시인 백석이었다.
또한 그녀는 최고의 천재시인 백석이 사랑했던 연인이었고..
백석은 그의 시에서 늘 <자야>라는 이름으로 김영한님을 불렀단다.
그들의 운명적인 만남.
20대에 우연찮게 만난 그들은 비련의 연인이었다.
백석은 당시 일본 유학까지 마친 학교 영어 교사였고,
그가 자야라고 불렀던 김영한은 춤추고 노래하는 기생이었다.
그들은 3년 동안 서로를 뜨겁게 사랑했고,
어쩔수 없이 남과 북으로 헤어진다.
그리고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어쨋든 남쪽에 남겨진 김영한님은 평생 그의 연인 백석을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으로 간직했고,
그를 위해 살다가
마지막 죽기 전에는 평생 그가 모았던 돈을 모두 시주하여 길상사라는 사찰에
또 그의 연인을 위해 그의 이름을 영원히 기릴 수 있는 백석문학상을 남기고 떠난다.
가장 아름다운 여인..
길상사엔 알고보면 이런 애절한 사연이 담겨진 곳이다.
분명 그 둘은 백석이 남긴 시처럼 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나눌게다.
그 두분이 남긴 비련의 사랑.
그리고 김영한님이 남기고 떠난 사랑의 유산.
분명 세월이 흘러 가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우리들 가슴을 촉촉히 적셔줄 것이다.
분명 알고 있을게다.
이곳 길상사도..
당대의 천재 백석이 남긴
그의 연인 김영한님을 위한 시를 적어 본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추웠다.
정말 추웠다.
성북동 길상사에서 그랬다.
출처: http://blog.naver.com/cafeinfofam
코멘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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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03.11 16:09
전 시를 꽤 좋아하는데, 백석 시인 이름은 몇 년 전에 처음 들어봤습니다. 월북하신 분 맞지요?
위 나와 나타샤~ 란 시를 읽어본 게 얼마 안 된 거 같네요.
간혹 김영진님 올리시는 노래들 들으면서 생각하는데, 참 아름답고 색다른 곡들이 많아요.
지금도 그런 생각이 드네요.
예술은 같은 감성에 호소하는데, 이념과 사상은 다른 생각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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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이 아니라...
집이 북쪽에 있는 부자집 이었습니다.
일본에서 공부한 후 집에서 강제로 결혼을 시켰죠 그게 싫었던 백석은
한량처럼 살면서 자야와 사랑을 했고
마지막에 자야에게 가서 부모님과 결판을 내고 오겠다.
다시 돌아오면 우리 결혼하자 하고 집으로 갑니다.
그리고
6.25가 터집니다.......
그후 자야는 큰 부자가 되었고 그녀가 경영하던 회관은 유명 정치인들이 오갔으며
그녀는 천주교에 귀의하고 남은 모든돈을 사후 백석재단을 만들고
백석 대학을 만든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학교 다닐때는 몰랐는데
(그때는 북한이라면 경기를 일으키던 시절이라...)
우연히 뒤늦게 공부하다 백석의 여승이라는 시를 접하고 엄청 빠져들었습니다.
30줄 넘어서 시에 빠질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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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냅시다
03.11 18:16
20여년 전, 대원각 요정을 자주 찾았던 저는, 이제 길상사를 찾고 싶습니다.
일본인 바이어들과 함께 참 자주 갔던 곳입니다.... 그 배경에 이런 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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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타
03.11 18:42
같은장소에 많은 추억들이 생기는것이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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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백석시인의 시 한 편 붙여 봅니다.
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 백 석 -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샅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지도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깎지베개를 하고 구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아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맑은샛별
03.11 23:21
본문 출처에서 링크의 글과 사진을 보니 꼭 가봐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예전에 서울에 살 땐 왜 길상사를 몰랐는지... 백석시인을 알았지만 길상사까진 관심이 부족했었네요.
다음번에 서울에 가게 되면 반드시 길상사에 들러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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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 인근에 살아서 내용을 좀 들었습니다.
대원각은 정말 대단한 요정이었습니다.
박대통령 당시 남북회담하면서 북측 정치인 접대장소로도 쓰였고 정치인들의 밀회장소로도 쓰였다고 합니다.
실은 그래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죠.
주인 할머니는 불교신자가 아니었지만 법정스님의 책을 읽고 감동받아 기부했다고 하네요.
어떻게 쓰든 마음대로 하라고 했고, 법정스님은 처음에 고사하다가 결국 할머니의 뜻을 받아들여
요정 대원각은 불교사찰 길상사가 됩니다.
ㅠㅠ
글 읽으면서 눈물이 고이네요. ㅜㅠ